<국힘 최고위원 후보를 만나다> ‘끝까지 나답게’ 허은아

“이 당,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가 후반전에 돌입했다. 당 대표, 최고위원 선거도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다. 비윤계, 친윤계의 극심한 대립 탓이다. 다양한 인물이 출마하는 만큼 후보들은 열의가 넘친다. 내년 총선을 생각했을 때 이번 전당대회서 지도부 입성은 필수다.

“나라는 국회의원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면서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세금 주기 아깝지 않은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국민의힘 허은아 최고위원 후보는 당의 때를 벗겨달라는 요청을 받고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미지 컨설턴트 출신답게 의원실은 입구부터 다른 의원실과 차별화돼있었다. 

딱딱한 인상보다는 환하게 열려 있으니 누구든 들어오라는 이미지마저 느껴진다. 허 후보는 오로지 민생을 위해 뛰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최고위원에 도전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허 후보를 만나 출마 이유, 현장에서 보고 느낀 당원 이야기, 공약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허은아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공정·혁신이다. 지금까지 3년 동안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또 한 가지는 선출직으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하는 부분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자유를 말하고, 공정한 사다리를 마련하려면 공정한 시스템이 늘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추구해나가는 사람이 혁신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개혁파다. 

-최고위원 출마를 오랜 기간 고민했다. 출마 이유는?


▲대선을 기점으로 우리 당 이미지는 바뀌었다. 국민의힘이 정말 국민에게 사랑받는 당이 돼야 하는데, 공정도 자유도 사라지고 폭력과 구태가 횡행한 상태다. 이 안에서 ‘내가 지켜봐야만 하나’라는 생각을 했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고민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꼭 나여야만 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스스로 자질이 있는지도 되돌아봤다. 두 번째는 겁이 났다. 지금 당내 분위기 자체가 약간 겁나는 분위기다. 

-출마 고민을 상당 기간 동안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20대라면 덜 두려웠을 것이다. 20대부터 실패를 많이 해왔고, 이를 통해 성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DNA가 내재해 도전을 많이 했지만, 이번에는 사실 좀 겁났다. 아이도 있고, 나보다 가족 생각에서다.

나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부분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허은아답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권력을 얻겠다고 시작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난 당당하다. 

자유·공정·혁신 최우선 가치로
현장서도 윤핵관 겁나 몰래 응원  

-현장에선 어떤 목소리를 들었나?


▲시장도 가고 현장 가서 당원 목소리, 국민 목소리를 들어보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신다. 당 좀 살려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손을 꼭 잡고, 고맙다는 말을 몰래 불러서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혹시라도 우리가 잘못될까 봐 그러신단다.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우리가 상당히 걱정되시나 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나는 사실 존경까지 받을만한 인물이 아니다. 배운 대로 정치인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상식으로 일을 해왔다. 당원들은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부분을 갖고 존경한다, 고맙다. 이준석 전 대표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전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가 얼마나 일을 못해서, 우리 당이 도대체 어떻게 해왔기에 당원들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지긋하신 60, 70대 분들이다. 

-지역 구석구석까지 찾아가는 게 힘들지 않나?

▲대구서 출발해서 경북 영천·군위·의성·상주·문경까지 여러 곳을 갔다. 군위는 시장에 가기로 했는데 사람이 너무 없다고 가지 말라고 들었다. 그 정도다. 마지막에 갔던 곳도 상점에 딱 두 분이 계셨다. 문경도 나름 큰 곳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없어 놀랐다. 

-지역을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나는 현장에 가면 꼭 시장을 찾는다. 큰 시장이 아닌,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장이다. 막상 도착하면 시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다. 사람도 없다. 어르신 몇 분이 거기서 장사하고 계신다. 지역 시장에 다니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장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장사하시며 40년째 책임당원으로 계신 분이 하신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그분께선 내게 “젊은 사람들이 바꿔야 한다. 힘들겠다”며 걱정해주셔서 너무 미안했다. 그 시장은 화장실도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았다.

도대체 그동안 뭐 했길래 이렇게 방치하듯이 돼있는지 모르겠다. 동원한 사람들 모아놓고 외치게 했던 그 시장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영남 지역에 대해서 소외된 분들을 우리가 지켜줘야 할 필요가 있다. 

-당내 상황이 혼란을 거듭하는 이유를 진단한다면?

▲당내 상황이 이렇게 변한 이유는 권력욕 때문이다. 정치는 권력을 쟁취하는 행위지만 너무 도가 지나쳤다. 새 옷을 입고 우리가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는 약속을 분명 드렸다. 야당에 있을 때 여러 모습을 보여주면서 약속했는데 여당이 되면서 뒤에 숨어있던 구태 세력들이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으로 당을 망쳤다.


정상적인 상황이 비상 상황으로 변했다. 18년 동안 당이 변화하던 모습을 호떡 뒤집듯이 바꿔버렸다. 유승민 전 의원을 배신자로 만들고 이 전 대표를 날리면서 두 사람을 악의 축으로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당 대표 후보한테까지 하는 행위는 상식적이지 않다. 당원들도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서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를 다시 보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핵관을 향해 비판하는 게 두렵지는 않나?

▲지금 윤핵관과 싸우는 건 걱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당당하다. 자신들만의 권력을 위해 보수의 가치나 당내 민주주의를 흔드는 이들이다. 부끄러움이 있다면 그분들이 더 흔들릴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여의도 문법을 탈피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개혁을 외치고 있는데, 기존 정치인들이 이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텐데…

▲작금의 시대정신은 세대교체로 본인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령 우리가 공부할 때 교과서 격으로 사용하던 <수학의 정석>을 지금은도 똑같이 사용할까? 여의도 문법이라는 것도 기존 문법과 현재 문법, 미래 문법이 계속 달라진다. 이런 부분을 기존의 세력이 받아들이고, 자신이 꽉 쥐고 있는 부분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권력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당 망쳐
‘천하용인 상식적인 것’ 하는 사람들

-국민의힘 상황 중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우리 당은 더불어민주당이 따라가지 못하는 대변인단 공개 선발을 통해 청년들이 우리를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30대 후반 여성분들도 많이 유입됐다. 완전히 판도가 바뀐 상황에서 왜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현장에 계신 어른들도 알고 계신다고 한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최근에는 잠잠하다

▲전면에 나서는 게 역효과라는 걸 스스로 안다. 그렇기 때문에 대리 전당대회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전대서 이슈된 부분은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모두가 컷오프를 통과했다는 점이다. 후반전에 임하는 각오는?

▲꼭 당선된다. 과거의 문법에 절대 갇혀 있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모습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민심 속에 있는 당원의 마음을 끌어내겠다. 나에게는 아직 여러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해 돌아오겠다는 자세로 임하겠다. 

-지도부에 입성해서 이루고 싶은 일은?

▲공감 능력이 필요한 지도부가 되고 싶다. 말로만 당원이 주인이라고 하면 안 된다. 예전에 했던 일이 고객 만족과 감동시키는 일이었다. 이 부분에 기초해서 진행해야 한다. 당원들이 표를 줄 때만 당원이 주인이 되는 건 위험하다. 평상시에도 당원을 주인처럼 모시고, 당원은 우리를 위해 뛰어주고 응원해주신 분들이다.

지도부나 리더가 이끌 때 당원들은 따라줬다. 지도부에서 처음으로 행해야 하는 게 공천 혁명이다. 반드시 공천 혁명을 이뤄내야 한다. 공천 혁명은 낙하산 공천을 없애서 기존에 열심히 일하고, 투쟁한 인물에게 보상해주는 것과 같다.

적어도 공천 시스템이 공정하다, 내가 도전할만하다는 느낌을 들도록 해야 한다. 또 권력 자체를 당원과 국민에게 되돌려드리는 일을 하겠다. 이런 이유에서 상향식 공천이 필요하다. 

-안 후보도 공천을 당원으로부터 상향식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비슷한 느낌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차이점은 있다. 내가 내세우는 공천개혁은 경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누구든 나와서 싸우고 싶으면 당당하게 평가받자는 게 다르다. 경선하고 선택을 받으면 된다. 선택은 결국 당원 몫이다.

“총질 말하는 사람 
국민 복장에 총질”

윗사람이 평가하면 안 된다. 공천권 때문에 지금까지 권력끼리 싸움을 벌여왔다. 공천 혁명은 나에게 하나의 키워드와 같다. 

-천하용인은 개혁보수임을 자처한다. 개혁보수가 뭔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자유와 공정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다.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우리 당은 뻔한 걸 안 해서 문제다. 천하용인은 상식적인 것을 하는 사람들이다. 극단주의서 빠져나와 국민에게 가깝게, 또 당연하게 다가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현재를 움직이기 위해 현재를 걸어간다. 이런 인물들이 개혁보수다. 

-일각에선 너무 개혁보수 목소리만 외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당내 안정을 원하는 당원도 상당수 있는데?

▲윤핵관이 전형적으로 원하는 프레임이다. 맹목적인 추종과 결 자체가 다르다. 당이라면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목소리만 따라가는 건 북쪽에 계신 분들이 하는 것이다. 난 한 가지 생각과 의견만 내는 걸 반대한다. 당선만 되면 쓴소리보다 더한 소리를 하겠다. 우리 당을 위해서라도. 

-내부 총질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프레임이다. 정상적·상식적으로 하면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선전·선동하고 있다. 아주 ‘민주당스럽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이분들이 어떻게 민주당과 전쟁을 치르려는지 의구심이 든다. 내부 총질을 말하는 사람은 ‘국민 복장 총질러’다. 국민과 당원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하는 게 어떻게 내부 총질인지 모르겠다. 현장 좀 다녀봤으면 좋겠다. 

-김기현 당 대표 후보가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당선된다면 공천 시스템이 개선될 거라고 보나?

▲기존에 열심히 했던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비례대표제도 번호 순번을 바꿔 기존처럼 하겠다는 건지 의문스럽다. 분명 당원이 주인이라고 김 후보도 외친다. 당원이 주인이라면 당원에게 공천권을 줘야 한다. 당원과 약속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전 지도부서 사퇴한 조수진 최고위원 후보가 다시 출마했는데…

▲이번 전대는 보궐선거나 다름없다. 조 후보는 민주당과 다를 게 없는 인물이다. 일전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보궐선거 당시 당헌·당규를 바꿔 자신들이 또 나왔다. 이걸 갖고 우리 당은 얼마나 많은 비판을 했는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본인은 어떤지 되돌아봐야 한다. 보궐선거를 하게 만든 사람 중 한 명이다. 스스로 사퇴했다. 멀쩡했던 지도부를 비대위로 만들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대충 할 거라면, 출마도 안 했다. 각오는 충분히 돼있고, 당원들이 조금 더 도와줬으면 좋겠다. 가끔 돌아다니다 보면 응원가를 부르는 것으로 폄훼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응원가를 부르는 이유는 당원들이 원해서다. 응원가를 부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며 한 명의 당원이라도 원했기 때문에 했던 일이다.

당원의 말은 고객의 요청과 비슷하다.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비윤 프레임, 이준석 프레임, 아바타뿐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다. 제발 당원만 생각하는 정치를 했으면 한다. 나는 이 당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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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