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당권주자를 만나다> 당 문지기 자청한 안철수

“난 건강한 보수 DNA를 가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가 후반전에 돌입했다. 당 대표, 최고위원 선거도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다. 비윤계, 친윤계의 극심한 대립 탓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출마하는 만큼 후보들은 열의가 넘친다. 내년 총선을 생각했을 때 이번 전당대회서 지도부 입성은 필수다.

이번에는 다르다. 더 이상의 철수도 양보도 없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의 이야기다. 출마를 선언하고부터 전국을 다니며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를 다시 봤다는 말들이다. 실제 당원들도 안 후보가 수도권에서는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라고 평가한다. 

정치권에서도 안 후보가 총선서만큼은 확실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로 본다. 대선 등 여러 대형 선거를 치른 경험을 가진 안 후보는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일요시사>가 안 후보에게 수도권 170석의 확보 방안, 당 대표로서의 공약,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김기현 당 대표 후보 논란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출마 초기 전국을 돌면서 당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청취했는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당원들이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나를 새롭게 봤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10년 정치 역정을 거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이미지 조작이 정말 심했다. 그런데 당원분들께서 만나보니 이렇게 유쾌하고 진솔한 사람인 줄 몰랐다고 나에 관해 말들 하신다. 앞으로도 열심히 당원들을 만나 뵙고 오해를 풀어드릴 생각이다. 

또, 영남서도 줄곧 강조해오던 수도권 승리의 중요성을 당원들께서 잘 알고 계셨다. 영남 어느 당협에 가도 반드시 내년 총선서 수도권을 탈환해 우리 당을 다수당으로 만들라는 숙제를 내셨다. 


-총선 사령관으로 본인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한 이유는?

▲늘 강조해왔지만, 내년 총선 승부처는 수도권이다. 지난 총선 때 우리 당은 121석의 수도권 의석 중 17석밖에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115석의 조그마한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따라서 내년 총선 승리의 열쇠는 수도권서 중도, 2030세대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수도권의 중도층과 청년세대가 중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도덕성과 개혁이다. 나는 사회서 정직하게 성공을 일구고 재산의 절반은 환원했다.

또 정치하는 동안 늘 개혁 의제를 선도해왔다. 이런 이유가 내가 수도권에서 득표력을 유지한 비결이다. 수도권서 확장성 있는 당 대표가 반드시 총선 사령관이 돼야 한다.

-최근 지지율이 다소 주춤하는 양상이다. 지지율 상승을 위한 발판으로 마련한 전략은?

▲지금 시대가 국민의힘에 요구하는 사안은 바로 ‘개혁’과 ‘도덕성’이다. 모든 당 대표 후보는 대통령과 정권의 성공을 바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꾀하려면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이 있어야 한다. 당을 어떻게 더 개혁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정당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윤 대통령의 3대 개혁과 국정운영을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 말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나는 이미 이에 대한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도덕성 역시 필수 요소 중 하나다. 지금이 보수가 진보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다. 반대로 우리가 계속해서 도덕적인 문제로 공격당한다면 내년 총선은 필패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개혁과 도덕성 부문은 내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명백히 우위에 있다. 이런 선명한 차별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당원들을 설득해내겠다.

-천하람 당 대표 후보는 자신이 실버 크로스를 이뤘다고 주장하는데…


▲실버 크로스는 천 후보의 희망사항이다. 신뢰성 낮은 ARS 여론조사 한두 개로 그런 주장을 한다. 천 후보의 주장이 희망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신뢰 가능한 면접원 전화방식의 여론조사 결과다. 여전히 나와 김 후보가 확고한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윤 대통령과 공천 상의는 위험한 일
민주당, 이재명 없는 선거 준비할 듯

다만 천 후보가 아무리 김 후보를 공격해도 김 후보는 이를 회피하지만, 김 후보는 나만 공격한다. 김 후보도 결선 상대가 내가 될 것임을 잘 알아서다. 

-일각에선 결선투표까지 가게 될 경우, 천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천 후보가 호남서 패기 넘치는 도전을 하는 점, 참신한 시각으로 당의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나와 천 후보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선투표까지 가서 나와 김 후보가 대결하게 되면, 천 후보 지지자들께서 나를 선택해주실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공천을 윤 대통령과 협의하는 게 위험하다고 말했는데…

▲헌법 제7조엔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가 명시돼있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대법원서 실형 2년의 유죄 선고가 있기도 했다. 즉, 윤 대통령과 공천에 대해 상의하겠다는 건 대통령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말이다. 김 후보가 여러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데, 만약 당 대표가 돼 실제로 공천 시 얼마나 더 큰 실수를 할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여당의 역할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 번째는 대통령실서 하고자 하는 일을 국회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용산서 민심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을 할 때 그걸 정확하게 지적하고 여론에 맞는 더 좋은 제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용산은 민심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다.

국회는 지역구 의원이 워낙 많다 보니 민심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총선서 승리하려면 당 대표가 전자의 역할만 해서는 안 되고, 후자의 역할도 잘해야 한다.

-총선서 170석 승리를 자신했다. 그래서 캠프 이름도 V170으로 정했다. 어떻게 170석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수도권 탈환을 통한 총선 압승 전략이다. 후반전에 돌입한 현재 전당대회 초기와 달라진 부분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제의 조기 붕괴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 없는 총선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달라지면 그에 걸맞은 다른 답을 내놔야 한다. 이 대표를 전제로 한 전략은 모두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개혁의 걸림돌이었던 이 대표를 반드시 극복하고 혁신적인 총선을 준비하려 들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총선 때 수도권에선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도덕성 경쟁, 개혁 경쟁이 전개될 것이다. 우리 국민의힘도 민주당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개혁을 선보여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3차례 혁신안을 발표해 이미 그 준비를 마친 상태로, 세상에 내놓을 일만 남았다. 이미 1차 혁신안에서 ‘개혁과 반개혁’의 구도를 만들어 민주당을 제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책임당원 배심원제 등을 띄웠다. 구상한 공천개혁 시스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책임당원 배심원제는 국민과 당원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현역 의원을 책임당원이 직접 거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막말이나 저질 행태 등으로 국민과 당원의 지적을 받은 현역 의원은 공천관리위원회가 아닌 책임당원 배심원단과 여론조사의 검증을 거쳐 공천신청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게 포인트다.

책임당원 선거인단제는 비례대표의 순위를 책임당원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불공정 시비를 차단하고, 스스로 당비를 내가며 정권교체와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고 묵묵히 헌신해오셨던 선배 당원들에게 권리를 돌려드리는 일이다.

“결선까지 가면 천하람 표 몰린다”
김기현 땅 문제 해결 못 하면 필패


-김 후보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민주당 DNA를 가진 인물, 당을 해코지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는데…

▲상당히 수준 낮은 공격이다. 태영호 의원이 김정은(북한 노동당 국무위원장)의 DNA를 갖고 있나?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감사원장을 역임한 최재형 의원, 검찰총장을 지낸 윤 대통령이 문재인 DNA를 갖고 있나? 상대를 더 잘 알기에 더 잘 싸울 수 있는 게 이들의 강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당의 약점과 강점을 잘 알기에 더 잘 싸울 수 있어 당 대표 적임자다. 

-김 후보는 현재 울산 땅 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향후 총선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누구보다 민주당 여론조작 방식을 잘 안다. 투기, 이해충돌 의혹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부동산 의혹은 우리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중요한 사안이다. 민주당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그 주장을 계속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의 자료를 내놓을 테고, 지속적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다. 김 후보가 땅 문제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면 총선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LH 사태가 터진 4·7 재보궐선거, 대장동 사건이 터졌던 지난 20대 대선이 민주당 패배 원인의 분명한 예다. 사전에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분명히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황교안 당 대표 후보는 가짜 보수와 함께하기 어렵다고 밝혔는데…

▲가짜 보수가 아니라 건강한 보수다. 보수의 핵심은 헌신과 도덕성에 있다. 당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가 아니라, 당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고 자격을 갖췄느냐가 중요하고 이런 점들이 당원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다. 나는 4·7 재보선에 몸을 던져 정권교체의 불씨를 살렸다. 지난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선택해 이 대표의 당선을 막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 결과가 윤 대통령의 당선이다. 다른 후보 중에서 도덕성에 한 점 의혹이 없는 깨끗한 후보다. 보수 유권자들이 바라는 청렴과 헌신의 가치에 제가 가장 잘 부합한다.

-다음 총선에서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을 회복할 방안은?

▲3대 개혁을 어느 정도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4명의 후보들 중에서 오직 나만 윤 대통령의 3대 개혁 지원 방안을 상세히 밝혔다. 3대 개혁 범국민추진지원단, 100일 개혁 투어, 연금개혁추진 여야 공동선언으로 총선 전까지 소수 여당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윤정부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으로서 반드시 3대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윤 정부의 개혁을 총력 지원해 정부와 당 지지율의 동반 상승을 이루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잠깐 민주당에 있었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나만큼 민주당과 문 전 대통령의 실체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지난 대선서 단일화한 이유도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이룬 지금 내 목표는 윤 정부의 성공이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은 첫째도 총선 승리, 둘째도 총선 승리, 셋째도 총선 승리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 국민의힘 문지기를 맡고 싶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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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