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법의인류학자 박대균 순천향대 교수

“법의학은 산 사람 위한 학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국민을 통틀어 3명뿐인 직업이 있다. 이들은 전국을 3개로 쪼개 각 지역을 담당한다. 1명만 없어도 남은 2명의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백골이 된 사체의 신원을 밝혀내는 법의인류학자. <일요시사>가 박대균 순천향대 해부학교실 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9월13일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에서 만난 박대균 교수는 코로나19를 심하게 앓았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의 앞에는 <일요시사> 취재진이 사전에 보낸 인터뷰 질문지가 놓여 있었다. 질문지는 답변을 위한 기록으로 빼곡했다. 

뼈가 하는 말

박 교수는 국내에 단 3명뿐인 법의인류학자다. 사망 이후 백골이 된 사체의 뼈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다른 2명은 가톨릭대 해부학교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 교수는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의뢰를 받는다. 백골화 된 사체가 발견되면 박 교수에게 연락이 오고 사람의 뼈로 판명되면 부검 등의 작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법의인류학은 법의학이라는 큰 범주 안에 아주 작은 부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법의학을 1로 따지면 법의인류학은 1/16 정도입니다. 법의학자는 사망 이후 3일 이내 사체를 부검해서 사인을 밝히는 게 주 업무입니다. 저는 그 상황을 넘어선 부패가 심하거나 백골화된 시신을 부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뼈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성별, 사망 당시 연령대, 키, 생전 앓았던 질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예를 들어 100명의 백골화된 사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남녀를 구분해 먼저 50명으로 줄인다. 나이에 따라 또 줄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범위를 좁힌 후 실종자 가족 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역으로 말하면 백골 사체의 유전자 정보가 나왔어도 대조하지 못하면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실종자 가족이 유전자 정보 등록을 해서 백골 사체와 비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기에 백골 사체를 의뢰받아 부검을 진행해 정보를 제공해도 법의인류학자는 이후 상황을 알 수 없다.

전국서 3명뿐인 직업
백골 사체 신원확인

박 교수는 “백골 사체를 부검하고 감정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이후에 실제로 신원확인이 이뤄졌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하지만 수사기관으로부터 그런 정보를 받을 수 없어 짐작만 할 뿐이다. ‘잘 되셨을까?’ ‘잘 되셨겠지’ 정도다. 그런 부분이 상당히 아쉽다.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좀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국내 법의학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참사 현장과 닿아 있다. 사고 과정에서 나오는 대다수의 사체를 부검하고 식별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 박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가톨릭의대 학부생 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공보의로 근무할 때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였기 때문에 현장에는 살점이 거의 없는 백골화된 상태와 똑같은 사체가 대부분이었다.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학자의 역할은 그 상태에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박 교수는 지하철에서 ‘붓질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마치 유적 발굴 현장에서 고고학자가 붓을 들고 조심스럽게 흙을 쓸어내듯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인류학자는 조심스럽게 사체를 찾아냈다. 박 교수는 “‘사체 혹은 사체 조각은 현장에서 들어 올리는 순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일단 그대로 둔 상태로 붓질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머리, 목, 몸통,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를 찾아내면 비로소 사람 1명이 된다. 사진을 찍은 뒤에 순서대로 옮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유전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면 신원확인이 이뤄진다. 작은 조각의 치아로도 개인식별이 가능하다. 사체에 남아 있는 소지품도 큰 역할을 했다. 

작업을 반복한 끝에 142명의 미확인 사체 가운데 136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6명 가운데 3명은 유전자 정보가 확인됐는데 대조할 가족이 없었고 남은 3명은 완전히 탄화돼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실제 대구지하철 참사 실종자 수는 6명으로 최종 집계돼있다.

박 교수는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 말할 때는 유가족께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위로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법의학의 필요성과 국내 법의학 수준을 사회에 알린 사건으로 꼽힌다. 법의인류학자 역시 이 사건을 통해 그 역할이 알려지게 됐다. 

많은 사람이 법의학을 ‘죽은 자’의 학문으로 여긴다. 사망한 사람의 몸에 남은 흔적으로 사인을 밝히고 감정하는 일이 주 업무기 때문에 산 사람과는 연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법의학자는 법의학이야말로 산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지하철 참사 시신 발굴
감정 이후 상황 몰라 아쉬워

죽음이 주는 정보가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의학의 존재 이유는 망자의 인권을 지키고 사인을 밝히는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죽은 사람이 건네는 정보를 통해 산 사람의 건강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예방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박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사망 원인 등 들쭉날쭉한 통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로 든 건 변사자 통계였다. 경찰과 해양경찰에서는 매년 변사자 수를 파악해 공개한다. 국내 변사자 수는 이 두 기관에서 나온 수치를 합친 것이다. 1년에 3만명가량이다. 

문제는 부검 수다. 3만명의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는 경우는 8000~9000건 정도다. 법의학자는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지 않은 2만여명에서 억울한 죽음, 확인되지 않은 죽음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사인을 정확히 통계화할 수 없는 사망이 그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1년에 국내서 발생하는 변사자 수를 7만명 정도로 보기도 한다. 매년 최소 2만여명에서 6만여명의 부검하지 않은 변사자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부검을 하고 망자를 통해서 사인을 확실하게 밝히면 좀 더 정확한 질병 통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사망 원인으로 이 경우가 제일 많으니 조심합시다’라는 예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통계가 부족하다보니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들어야 한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끝에 법의인류학자가 됐다는 박 교수. 그는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법의학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법의인류학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체는 스스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학자는 그 말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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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