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법의인류학자 박대균 순천향대 교수

“법의학은 산 사람 위한 학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국민을 통틀어 3명뿐인 직업이 있다. 이들은 전국을 3개로 쪼개 각 지역을 담당한다. 1명만 없어도 남은 2명의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백골이 된 사체의 신원을 밝혀내는 법의인류학자. <일요시사>가 박대균 순천향대 해부학교실 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9월13일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에서 만난 박대균 교수는 코로나19를 심하게 앓았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의 앞에는 <일요시사> 취재진이 사전에 보낸 인터뷰 질문지가 놓여 있었다. 질문지는 답변을 위한 기록으로 빼곡했다. 

뼈가 하는 말

박 교수는 국내에 단 3명뿐인 법의인류학자다. 사망 이후 백골이 된 사체의 뼈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다른 2명은 가톨릭대 해부학교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 교수는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의뢰를 받는다. 백골화 된 사체가 발견되면 박 교수에게 연락이 오고 사람의 뼈로 판명되면 부검 등의 작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법의인류학은 법의학이라는 큰 범주 안에 아주 작은 부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법의학을 1로 따지면 법의인류학은 1/16 정도입니다. 법의학자는 사망 이후 3일 이내 사체를 부검해서 사인을 밝히는 게 주 업무입니다. 저는 그 상황을 넘어선 부패가 심하거나 백골화된 시신을 부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뼈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성별, 사망 당시 연령대, 키, 생전 앓았던 질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예를 들어 100명의 백골화된 사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남녀를 구분해 먼저 50명으로 줄인다. 나이에 따라 또 줄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범위를 좁힌 후 실종자 가족 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역으로 말하면 백골 사체의 유전자 정보가 나왔어도 대조하지 못하면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실종자 가족이 유전자 정보 등록을 해서 백골 사체와 비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기에 백골 사체를 의뢰받아 부검을 진행해 정보를 제공해도 법의인류학자는 이후 상황을 알 수 없다.

전국서 3명뿐인 직업
백골 사체 신원확인

박 교수는 “백골 사체를 부검하고 감정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이후에 실제로 신원확인이 이뤄졌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하지만 수사기관으로부터 그런 정보를 받을 수 없어 짐작만 할 뿐이다. ‘잘 되셨을까?’ ‘잘 되셨겠지’ 정도다. 그런 부분이 상당히 아쉽다.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좀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국내 법의학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참사 현장과 닿아 있다. 사고 과정에서 나오는 대다수의 사체를 부검하고 식별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 박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가톨릭의대 학부생 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공보의로 근무할 때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였기 때문에 현장에는 살점이 거의 없는 백골화된 상태와 똑같은 사체가 대부분이었다.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학자의 역할은 그 상태에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박 교수는 지하철에서 ‘붓질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마치 유적 발굴 현장에서 고고학자가 붓을 들고 조심스럽게 흙을 쓸어내듯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인류학자는 조심스럽게 사체를 찾아냈다. 박 교수는 “‘사체 혹은 사체 조각은 현장에서 들어 올리는 순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일단 그대로 둔 상태로 붓질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머리, 목, 몸통,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를 찾아내면 비로소 사람 1명이 된다. 사진을 찍은 뒤에 순서대로 옮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유전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면 신원확인이 이뤄진다. 작은 조각의 치아로도 개인식별이 가능하다. 사체에 남아 있는 소지품도 큰 역할을 했다. 

작업을 반복한 끝에 142명의 미확인 사체 가운데 136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6명 가운데 3명은 유전자 정보가 확인됐는데 대조할 가족이 없었고 남은 3명은 완전히 탄화돼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실제 대구지하철 참사 실종자 수는 6명으로 최종 집계돼있다.

박 교수는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 말할 때는 유가족께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위로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법의학의 필요성과 국내 법의학 수준을 사회에 알린 사건으로 꼽힌다. 법의인류학자 역시 이 사건을 통해 그 역할이 알려지게 됐다. 

많은 사람이 법의학을 ‘죽은 자’의 학문으로 여긴다. 사망한 사람의 몸에 남은 흔적으로 사인을 밝히고 감정하는 일이 주 업무기 때문에 산 사람과는 연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법의학자는 법의학이야말로 산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지하철 참사 시신 발굴
감정 이후 상황 몰라 아쉬워

죽음이 주는 정보가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의학의 존재 이유는 망자의 인권을 지키고 사인을 밝히는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죽은 사람이 건네는 정보를 통해 산 사람의 건강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예방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박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사망 원인 등 들쭉날쭉한 통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로 든 건 변사자 통계였다. 경찰과 해양경찰에서는 매년 변사자 수를 파악해 공개한다. 국내 변사자 수는 이 두 기관에서 나온 수치를 합친 것이다. 1년에 3만명가량이다. 

문제는 부검 수다. 3만명의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는 경우는 8000~9000건 정도다. 법의학자는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지 않은 2만여명에서 억울한 죽음, 확인되지 않은 죽음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사인을 정확히 통계화할 수 없는 사망이 그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1년에 국내서 발생하는 변사자 수를 7만명 정도로 보기도 한다. 매년 최소 2만여명에서 6만여명의 부검하지 않은 변사자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부검을 하고 망자를 통해서 사인을 확실하게 밝히면 좀 더 정확한 질병 통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사망 원인으로 이 경우가 제일 많으니 조심합시다’라는 예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통계가 부족하다보니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들어야 한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끝에 법의인류학자가 됐다는 박 교수. 그는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법의학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법의인류학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체는 스스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학자는 그 말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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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