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록 법무사의 쉬운 경매> 배당요구 안 하면 소액임차인은 배당 못 받나요?

[Q] 소액임차인이라도 배당요구를 하지 않으면 배당받지 못하나요?

[A] 그렇습니다. 소액임차인이나 확정일자에 의한 우선변제권 있는 임차인이라도 집행법원에 배당요구종기까지 권리신고 및 배당요구를 해야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집행관의 현황조사 시 임대차관계를 진술하고 임대차계약서 사본을 제출했더라도 별도로 배당요구종기 이전에 집행법원에 가서 권리신고 및 배당요구를 해야 합니다.

권리신고 및 배당요구 양식은 인터넷 대한민국 법원(www.scourt.go.kr)-대국민서비스–양식–강제집행–권리신고 및 배당요구 신청서(주택임대차)에서 다운받아 사용하면 됩니다. 신청서에는 임대차계약서 사본과 주소변동사항이 포함된 주민등록등·초본을 첨부해야 합니다.

상가건물의 경우에는 임대차계약서 사본, 상가건물임대차현황서 등본과 건물도면의 등본(건물 일부를 임차한 경우)을 첨부하면 됩니다.

배당요구란 다른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개시된 집행절차에 참가해 동일한 재산의 매각대금에서 변제받으려는 집행법상의 행위를 말합니다. 


권리신고는 배당요구와 달리 부동산 위의 권리자가 집행법원에 신고해 그 권리를 증명하는 것이며, 권리신고를 함으로써 이해관계인이 되지만(민사집행법 제90조 제4호), 권리신고를 한 것만으로 당연히 배당받게 되는 것은 아니며 별도로 배당요구를 해야 합니다(민사집행법 제148조).

배당요구는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배당에 참가할 수 있는 채권자가 있는 반면, 배당요구를 하지 않으면 배당에 참가할 수 없는 채권자가 있습니다. 

배당요구가 필요한 배당요구채권자가 실체법상 우선변제청구권이 있다 하더라도 적법한 배당요구를 하지 않으면 배당에서 제외되고, 배당받은 후순위채권자를 상대로 부당이득의 반환을 청구할 수도 없습니다(2001다70702).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배당에 참가할 수 있는 자로는 ①배당요구의 종기까지 경매신청을 한 이중경매신청인 ②첫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에 등기된 가압류채권자 ③경매개시결정 기입등기 전에 등기된 담보권자(저당권, 근저당권, 가등기담보권) 등입니다(민사집행법 제148조, 제91조).

최선순위의 지상권, 지역권은 매수인이 인수해야 하므로 배당요구에 불문하고 배당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전세권의 경우에는 전세권자가 배당요구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하면 매각으로 소멸합니다(민사집행법 제91조 제4항).

따라서 전세권의 경우에는 첫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에 등기가 돼있더라도 배당을 받으려면 배당요구종기까지 배당요구가 필요합니다.

최선순위 전세권은 오로지 전세권자의 배당요구에 의해서만 소멸되고, 전세권자가 배당요구를 하지 않는 한 전세권은 매수인에게 인수되며, 반대로 배당요구를 하면 존속기간이 언제든지 상관 없이 전세권은 매각으로 소멸합니다(2009다40790).


임차권등기가 첫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에 등기된 경우, 그 임차인은 별도로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배당받을 채권자에 속하는 것으로 봅니다(2005다33039).

경매개시결정이 등기되기 전에 설정된 담보가등기권자는 집행법원이 정한 상당한 기간 내에 그 가등기가 담보가등기라는 내용과 채권의 존부·원인 및 액수를 신고한 경우에 한해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2항).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에 체납처분에 의한 압류권자는 배당요구가 없어도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96다51585). 매각부동산에 관해 경매개시결정이 등기되기 전에 체납처분의 절차로서 압류등기(국세징수법 제61조에 의한 참가압류 포함)가 돼있는 경우에는 교부청구를 한 효력이 있고, 교부청구의 법적 성질은 강제집행에서의 배당요구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92다52733).

다음으로 배당요구를 해야 배당에 참가할 수 있는 채권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배당요구를 해야 배당에 참가할 수 있는 채권자는 민사집행법 제88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①집행력 있는 정본을 가진 채권자 ②경매개시결정이 등기된 뒤에 가압류한 채권자 ③민법·상법, 그 밖의 법률에 의해 우선변제청구권이 있는 채권자입니다.

즉, 우선변제청구권이 있거나 가압류한 채권자를 제외하고는 집행력이 있는 정본에 의하지 않으면 배당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배당요구를 할 수 있는 채권자라도 배당요구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하지 않으면 배당받을 수 없음은 물론, 배당받은 후순위채권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도 할 수 없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소액보증금반환채권도 배당요구가 필요한 배당요구채권에 해당합니다(2001다70702). 

부동산경매절차에서는 ‘집행력 있는 정본을 가진 채권자’는 자신이 별도의 경매신청을 하거나 배당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유체동산경매절차에서는 ‘민법, 상법 그 밖의 법률에 따라 우선변제권이 있는 채권자’만이 배당요구를 할 수 있는 채권자고(민사집행법 제217조), 집행력 있는 정본을 가진 채권자라도 자신이 별도의 강제집행을 신청(이중압류)해야만 하고 배당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금전채권집행절차에서는 ‘민법, 상법 그 밖의 법률에 의해 우선변제청구권이 있는 채권자’와 ‘집행력 있는 정본을 가진 채권자’만이 배당요구를 할 수 있으므로(민사집행법 제247조 제1항),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채권자는 민사집행법 제247조 제1항 각 호(제3채무자의 공탁 신고, 채권자의 추심 신고, 집행관이 현금화한 금전을 법원에 제출한 때)의 사유 발생 전에 미리 가압류를 하고 경합 압류채권자로서 배당에 참가해야 합니다.

배당요구에는 집행력 있는 ‘정본’이 아닌 ‘사본’으로도 가능하지만(민사집행규칙 제48조 제2항), 배당금을 출급받고자 할 때에는 집행력 있는 정본을 제출해야 합니다. 배당요구와 달리 강제경매신청을 함에 있어서는 집행력 있는 정본을 제출해야 하고 사본으로는 강제집행절차를 개시할 수 없습니다(민사집행법 제81조 제1항).

변제기가 도래하지 않은 채권에 대해서는 집행권원을 가지고 있더라도 배당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조세의 경우에도 국세징수법에 의한 교부청구 당시 납기 전 징수를 위해 정하거나 변경한 납부기한이 이미 도래했음을 요합니다(91다44834).


경매개시결정이 된 뒤에 가압류를 한 채권자는 배당요구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해야 하고, 배당요구를 하지 않으면 배당에서 제외됩니다(민사집행법 제88조 제1항).

경매절차 개시 전의 부동산 가압류권자는 배당요구를 하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배당요구를 한 것과 동일하게 취급되므로, 그런 가압류권자가 채권계산서를 제출하지 않더라도 배당에서 제외해서는 안 되고(94다57718), 그 배당액을 공탁하도록 돼있습니다(민사집행법 제160조 제1항).

민법·상법, 그 밖의 법률에 의해 우선변제권이 있는 채권자란 주택임대차보증금채권[확정일자에 의한 우선변제채권(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및 소액보증금채권(동법 제6조)], 상가임대차보증금채권[확정일자에 의한 우선변제채권(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5조) 및 소액보증금채권(동법 제14조)], 임금채권(근로기준법 제38조), 퇴직금채권(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12조), 사용인의 우선변제권(상법 제468조) 등과 같이 우선변제청구권은 인정되고 있으나 등기가 돼있지 않기 때문에 배당요구를 하지 않으면 그 채권의 존부나 액수를 알 수 없는 채권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의 확정판결 등 집행권원을 얻어 임차주택에 대해 강제경매를 신청했다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중 우선변제권을 선택해 행사한 것으로 봐야 하고, 이 경우 우선변제권을 인정받기 위해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별도로 배당요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2013다27831).

전세권설정 등기가 선순위의 근저당권의 실행에 따른 경락으로 인해 말소되더라도 그 때문에 피고가 위 전세권설정 등기 전에 전세계약을 맺고 주민등록을 함으로써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해 확보된 대항력마저 상실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93다10552, 93다10569).

집합건물이 아닌 지상건물과 그 부지 중 건물에만 전세권설정 등기를 한 경우라도 전세권자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의 우선변제권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그 부지의 매각대금에서도 배당을 받습니다.


전세권설정계약서에 날인된 등기소의 일부인도 확정일자로 봐야 하므로(2001다51725), 부지의 매각대금에 대한 배당순위도 위 날짜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부동산매각절차에서 조세의 교부청구도 배당요구와 마찬가지로 배당요구의 종기까지만 할 수 있으나, 경매부동산에 대해 국세체납처분의 절차로서 압류의 등기가 돼있는 경우에는 교부청구를 한 효력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하고, 이 경우 배당요구종기까지 체납세액이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때에는 당해 압류등기촉탁서에 의한 체납세액을 조사해 배당해야 합니다(96다51585).

선행사건의 경매신청이 취하되거나 그 절차가 취소된 경우에는 선행사건의 강제경매신청인은 후행사건의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별도의 배당요구를 해야만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이중경매신청이 있는 경우의 배당요구의 종기는 선행경매신청이 취하되거나 그 절차가 취소돼 후행경매사건에 의해 진행되는 결과 새로이 배당요구종기를 정한 경우에는 새로 정한 종기가 배당요구의 종기가 됩니다(2000다61466). 

배당요구에 따라 매수인이 인수해야 할 부담이 바뀌는 경우 배당요구한 채권자는 배당요구의 종기가 지난 뒤에 이를 철회하지 못합니다(민사집행법 제88조 제2항).

강제경매의 경우에는 채권의 일부를 청구금액으로 해서 경매신청을 한 후 나머지 채권에 대해 배당받으려면 이중경매신청을 할 필요 없이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배당요구를 하면 되고, 이때 배당요구는 청구채권을 확장한 채권계산서 제출에 의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담보권실행을 위한 경매의 경우에는 경매개시결정 후에는 신청채권자는 청구금액의 확장을 할 수 없으므로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이중압류를 해야 합니다(92다50270).

부동산경매절차에서 집행력 있는 정본을 가진 채권자가 하는 배당요구는 민법 제168조 제2호의 압류에 준하는 것으로서 배당요구에 관련된 채권에 관해 소멸시효를 중단하는 효력이 생깁니다(2000다25484).

집행력 있는 정본에 의한 배당요구채권자는 매각절차의 이해관계인이 되므로(민사집행법 제90조), 매각허가 여부 결정에 따라 손해를 볼 경우에는 항고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민사집행법 제129조).

경매신청채권자나 배당요구한 채권자도 배당요구의 종기 후에는 배당요구의 종기까지 배당요구하지 않은 채권을 추가하거나 확장할 수 없습니다(2015다203660).


<02-535-3303 · www.김기록법무사공인중개사.com>


[김기록은?]

법무사·공인중개사
전 수원지방법원 대표집행관(경매·명도집행)
전 서울중앙법원 종합민원실장(공탁·지급명령)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