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페이스’ 윤석열-정진석 불편한 동행 내막

‘아군? 적?’ 선 넘은 과잉 충성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은 모두 자기 정치가 하고 싶은 걸까.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차기 당권주자로 자신을 봐 달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일단 힘을 실어줬지만 불편한 기색도 내비치고 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전국 당원협의회 조직 재정비를 예고하면서 당 안팎에서 긴장감이 감돈다. 국정감사가 끝나는 시점에 현재 공석인 사고 당협의 위원장을 새로 선임하고, 당무감사를 진행해 기존 위원장들도 대거 교체하겠다는 방침이다. 국정감사가 끝난 뒤, 전당대회 시즌으로 돌입하는 시기에 당협 줄세우기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친윤(친 윤석열) 주도의 물갈이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대대적인
조직 재정비

이런 탓에 당내 혼란과 분열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비대위가 혼란을 불러오는 셈이다. 현재 국민의힘의 전국 당협 253곳 중 6개월 이상 위원장이 공석인 사고 당협은 68곳에 이른다. 수치로 환산하면 27% 정도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시절 내정된 16곳의 당협위원장 역시 교체하는 대수술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미 내정됐지만 최고위 의결이 이뤄지지 않아서 새로 공모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한발 더 나아가 정 비대위원장은 필요에 따라 전체 당협에 대한 당무감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비대위의 첫 과제치고는 상당히 중대한 사안이다.


또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조직강화특별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이다. 정 위원장이 당 조직 정비를 서두르는 이유는 윤심 세력을 일찍부터 채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당협위원장 인선과 당무감사를 통해 최대 100명까지도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실상 총선에 미리 대비하겠다는 각오로 읽힌다. 당협위원장 교체는 당내에서 ‘쇄신’이 거론될 때마다 정치권에서 꾸준히 꺼내들던 카드다. 그럴 때마다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특정 계파 죽이기 논란도 꾸준히 불거져왔다. 앞서 김무성 전 의원이 새누리당 당 대표를 할 때도 몇몇 당협위원장을 교체하면서 내분이 불거진 바 있다.

당협위원장은 지역 당원 조직을 관리하기 때문에 전당대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다. 차기 전당대회에서도 당협위원장의 입김은 세게 작용할 수 있다. 통상 당원 70%로 진행되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원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기도 해서다.

이런 특징상 당협위원장은 당권을 장악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내홍 재차 터지기 일보 직전
원외 당협위원장 불러 압박

정 위원장은 전대 룰을 손볼지도 고심 중이다. 유승민 전 의원의 지지율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마련하는 장치다. 


현재 가장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전대 룰 수정 방식은 현 방식인 7:3비율에서 당원 비율을 높이는 방안이다. 이른바 역선택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그가 대대적인 정비에 착수하는 이유는 자신이 주류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차기 당 대표를 입맛에 맞는 인물로 골라야 한다. 2024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국정 동력에 바로 타격이 가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지지율 1위는 유 전 의원이다. 당 내에선 역선택이라며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럴수록 유 전 대표는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조강특위와 당무감사 카드 역시 유 전 의원 견제용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조강특위는 과거 이 전 대표가 띄운 바 있다. 정 위원장은 당협 쇼핑으로 이 전 대표와 갈등을 빚었었다. 그러나 최근 그 화살은 부메랑이 돼 정 위원장에게 그대로 돌아왔다. 

이준석계는 즉각 반발하고 있다. 당협위원장 정리는 명분일 뿐이고 사실상 자신들을 찍어내기 위한 과정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상 이 전 대표를 확인 사살하는 것 아니냐는 데서 비롯된 의심이다. 

대놓고 
줄세우기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는 바른정당계 인물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의 핵심이었던 권성동 의원도 바른정당 출신이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만 해도 바른정당 출신 인물들이 국정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점점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다.

한 이준석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줄세우기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비대위가 정리를 위해 칼을 뽑는 행위가 의심받을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협위원장이 새로 임명되면 차기 당 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할 수 있다”며 “당권 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구도가 돼 충분히 정치적 입김을 발휘한 꼴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 전 대표 시절에도 당무감사를 진행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착수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 위원장은 자유한국당계 인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으로 근무한 바 있다. 과거부터 쭉 보수정당에 몸을 담아왔다. 

당시에는 계파에 몸담지 않았다는 평가가 내려졌고, 여러 갈등도 잘 봉합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윤 대통령에게 바짝 엎드리는 모양새다. 그가 윤 대통령을 계속 엄호하고 나서는 이유는 당권 욕심 때문으로 보인다. 정 위원장 본인이 직접 당권을 잡기 위해 포석을 다지는 행위인 셈이다. 


비대위가 출범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 위원장은 TK(대구·경북) 방문길에 올랐다. 수재민 간담회, 지역 시장 방문 등을 통해 텃밭 민심을 확인하러 가기도 했다.

민심을 챙기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공식 행보였지만, 당내에서는 당권으로서 텃밭을 다지기 위한 행동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역민심이 당권을 좌우하는 영향이 큰 것을 비춰볼 때 마냥 당연한 행보가 아니라는 것.

이 전 대표
확인 사살

윤 대통령과 정 위원장 입장에서는 당권주자들이 완벽한 ‘친윤’이 아닌 게 불안할 수 있다. 직접 전대 출마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정 위원장 본인도 당권 출마에 대해 크게 부인하지 않는 모습이다.

정 위원장의 전대 출마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당이 여전히 갈라져 있는 데다 이미 그는 과거에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여러 번 맡아봤다. 야당과의 관계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입맛에 맞는 당협위원장을 미리 심어놔야 자신은 물론 윤 대통령에게도 유리하다. 문제는 정 위원장의 행위를 두고 당내에서 여러 비판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신윤핵관으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정 위원장을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정권 1년 차에 비대위 지도부라는 비정상적인 운영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전당대회에 몰두해야 할 시점에 갑자기 당 조직을 재편할 이유가 없다고도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 비대위 관계자는 김종인 비대위 시절에도 당무감사가 진행된 적이 있다며 정 위원장이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계획대로 정비를 해야 하는 명분으로 과거에 진행됐던 전체적인 정비가 당의 기반도 조정할 수 있었고 보궐선거 승리로 이어졌다는 게 정리의 명분이다.

그는 결코 “정치적이거나 이준석계 지우기가 아니다”라고도 강조했다. 반면 비윤(비 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다.

한 비윤계 인사는 “당협위원장 재공모까지는 가능하다 쳐도 당무감사까지는 선을 넘었다”며 “비대위 체제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게 아니다. 당무감사는 차기 지도부에게 맡겨도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우선 윤 대통령은 정 위원장의 행보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원외 당협위원장을 초청해 오찬 자리를 가졌다. 

당내서도 비대위원장 월권 비판
대통령실 일부서 불편한 기류도

이날 오찬에서는 나경원(서울 동작구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정유섭(인천 부평갑) 위원장, 경대수(충북 증평진천음성) 위원장 등 100명이 참석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정 위원장이 참석했고, 주호영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엄태영 조직부총장이 이름을 올렸다.

대통령실에서는 김대기 비서실장, 이진복 정무수석, 전희경 정무1비서관 등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이 시급하다”며 “정치를 선언하고 국민 앞에 나설 때 모든 것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찬에 대해 대통령실은 원외당협위원장과의 만남을 당협위원장들의 노고에 감사한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원외 지역구에선 당협위원장이 차기 공천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만큼 윤 대통령이 사실상 압박을 가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압박이 통하지 않을 경우는 변수다. 

장기간 내홍에 지친 국민의힘이 또 다른 분란에 휩싸인다면 고스란히 그 책임은 정 위원장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정치권도 정 위원장의 계획을 국민의힘의 새로운 내홍 불씨로 본다. 앞서 정 위원장은 ‘낀박’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는 새누리당 역사상 최초 원외 당선자 신분으로 원내대표에 당선된 바 있다. 당시 김도읍 의원과 민경욱 원내대변인 등 친박(친 박근혜)계를 중심으로 원내대표단을 꾸렸으나 친박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정 위원장은 총선 참패 인원을 숙청하는 역할을 맡았다. 비박(비 박근혜)계로 이뤄진 비대위원 인선안을 내놨지만, 친박계가 상임전국위를 무산시켜버렸다. 이는 정 위원장이 안타까운 별명을 얻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이 같은 상황은 오히려 혼란을 자초했고, 보수 분열의 시초가 됐다. 현재 국민의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보수 세력이 화학적인 결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이는 민주당에게 연일 공격거리를 제공하는 꼴이다. 

비대위원장은 당 대표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정통성이 아니면 정당성이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당원들의 임시 체제기 때문이다. 임시 체제에서 당협위원장을 바꾸겠다는 행위가 월권으로 비춰질 수 있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을 때 권한대행이 장관을 싹 바꿔 버리는 행동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비대위는 위기 상황을 관리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에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변화는 오히려 모험이라고 여겨진다. 사실상 자신들이 원하는 당 대표를 세우기 위한 포석을 까는 셈이다. 

완장 차고…
또 닥칠 혼란?

이를 두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 위원장이 과도하게 윤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며 “오히려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정 위원장이 오버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4에 해당하는 당협위원장은 대의원을 지명하고 여러 가지 당협의 핵심 당원 관계자들을 관리하고 조직책으로서의 역할이 있다”면서도 “(정 위원장이)생각하는 분들이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면 차기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진석 다음 부의장은?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후임 국회부의장 자리를 놓고 여러 인물이 하마평에 올랐다.

우선 당내 최다선인 서병수 의원과 김영선 의원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정우택 의원까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층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핵심 변수는 마찬가지로 윤심이다.

윤심을 기반으로 당 주류가 된 친윤계의 의중에 따라 국회부의장의 향방도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본래 국회의장단 선출은 최다선과 연장자를 기준으로 하는 게 관례로 추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최다선 의원 여럿이 출마의 변을 밝히며 경쟁구도가 한층 더 심화하는 양상이다.

가장 먼저 도전을 밝힌 서 의원은 현역 의원들과 꾸준히 소통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서 의원은 정 의원에게 국회부의장직을 양보한 바 있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김 의원은 보수당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에 도전한다.

강점은 당의 개혁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정 의원은 서 의원의 강력한 대항마로 불린다.

후보군 중 가장 오랜 정치 경력을 보유했고, 행정 경험을 갖춘 바 있다.

또 과거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역임하면서 어수선한 당을 정리하는 정치적인 능력도 인정받았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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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