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의 걱정

“피해 구제법, 기업 구제법 될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1년이 지났다. 가해기업 대부분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상황은 나아지는 듯 보였다. SK케미칼과·애경산업 대표는 청문회에 나와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피해자 배상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가해기업들이 서로 재판부 판단에 따른 눈치 보기만 거듭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해기업이 재판에 넘겨진 것과는 다르게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연루된 각 정부부처 관계자 대부분은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부위원장과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부처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흐지부지

그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먼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유명무실하게 된 원인으로 환경부의 월권 행위를 꼽았다. 앞서 환경부는 사참위 활동 근거인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사참위 조사 권한을 축소시키는 개정안을 고집해왔다. 당시 사참위는 사회적참사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운영비와 조사비를 포함한 직원들의 임금까지 체불될 상황이었다.

사참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당시 조사권이 배제되지 않았어도 경비가 부족할 지경이었다”며 “내부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당시 문재인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 의지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많은 시민단체는 환경부의 행태가 박근혜정부 때 해양수산부를 통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킨 상황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결국 2020년 12월 국회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참법을 대폭 수정했다.

박 의원 발의안은 ▲조사시간 동안 정부·기업 등 사건 관련자들의 공소시효 중지 ▲조사관 인원 120명에서 150명으로 증가 ▲가습기살균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수사권(특별사법경찰관제도) 부여하는 방안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정무위는 ‘피해자 구제 및 제도 개선, 종합보고서 작성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 한정해 수행’하도록 의결했다.

환경부 말만 들은 민주당 행태
개정안 수정에 특조위 유명무실

최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큰 무력감을 느꼈었다. 환경부와 국회에 실망했고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을 향한 피해자들의 분노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특조위의 조사대상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대부분은 재판에 넘겨졌으나 정부부처는 아직 검찰 수사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특조위만이 정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최 소장은 “환경부는 핵심적인 조사대상기관이었다. 특조위가 더 이상 연장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책임 회피 또는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국회와 민주당은 그런 환경부의 말만 듣고 특조위 핵심 기능을 빼버렸다”고 지적했다.


사참위는 지난 6월 활동이 종료됐다. 특조위의 추가 조사는 끝났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 소장은 “예산 중 1억여원을 써서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건강 피해를 겪은 이가 95만명에 달하고, 사망자는 2만여명에 이른다고 결론냈다”며 “환경부가 하지 않았던 일이기에 유의미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사참위와 고려대 보건과학과·서울대 보건대학원 등 연구진은 2020년 9월 한국환경보건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국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약 95만명(최소 87만명~최대 102만명)이며 사망자는 약 2만366명(최소 1만8801명~최대 2만1931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019년 10~11월 전국의 5000가구(만 19~69세 성인 남녀 1만5472명,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1.414%포인트)를 방문, 면접 방식으로 조사했으며 이를 2019년 9월 기준 만 19~69세의 성인 인구 3800만명에 대입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재판부, 가해 기업에 면죄부
“배상 안 하려는 근거 될 수도”

최 소장은 “더 정확하고 명확한 데이터를 얻으려면 그만한 예산이 든다. 환경부가 나섰다면 더 정확한 피해 인원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천식이나 비염, 간질성 폐질환 등을 제외한 다른 질병으로 돌아가신 분까지 포함한다면 사망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부분은 환경부, 질병관리본부, 식약처, 공정위 등의 정부기관에 대한 형사처벌을 바란다. 최 소장은 “정부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다. 불법·탈법 등 특정 인물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안을 수없이 검토했으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으나 소극·졸속 행정 정황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 소장은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문이 따라붙는 공무원들의 행태는 많았다”며 “정부 관계자들의 소극적 대처가 더 큰 참사를 낳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앞으로 정부가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및 배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배·보상의 확실한 기준을 법 개정으로 정해야 하고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생활화학 제품에 의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며 “스프레이 제품의 안전을 사전에 확인한 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들이 피해 보상을 한 피해자는 400여명에 불과하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피해자 4350명의 10% 수준이고, 피해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까지 넓혀 보면 5%까지 떨어진다. 다른 제품과 함께 옥시 제품을 쓴 피해자는 85.6%인 3727명이다.

특히, 사망자는 913명으로 10명 중 8명이 넘는다. 다른 회사 제품은 빼고 옥시 제품만 사용한 사망자만 봐도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0명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초 옥시와 애경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배상을 위한 조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사실상 모든 논의가 중단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간 불공정한 책임 비율'을 들었으나 사실상 자신들의 책임이 너무 과하다는 게 이유다.


한계 봉착

조정위원회가 11년 만에 내놓은 조정안에서 옥시의 몫은 전체 분담금 9240억원 중 54%다. 조정위가 분담금을 1000억원가량 감면해주겠다고 했지만 옥시는 이마저도 거절했다.

최 소장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재판이 중요하다. 기업들이 재판을 핑계로 배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며 “항소심도 1심 결과와 똑같이 나온다면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문은 더 좁아진다”고 우려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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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