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룰렛’ 최후의 스모킹건

검의 창 VS 명의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 어느 쪽이 더 강한 지는 맞부딪쳐 봐야 알 수 있다. 그동안 각자의 무기를 들고 변죽만 울리던 검찰과 거대 야당이 제대로 맞붙는 모양새다. 선공은 검찰이다. 

전초전이 길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감돌기 시작한 전운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칼끝을 다듬었고 민주당은 방패로 삼을 법안을 만들었다. 검찰의 최종 목표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회의원, 당 대표, 개딸(개혁의 딸) 등 여러 겹의 방패를 둘러 입었다. 

변죽만
울리다

처음에는 집안싸움이었다. ‘이재명 사법리스크’의 시발점이 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다. 성남시가 대장동 개발사업을 진행할 당시 특정 업체에 이익금이 집중된 것을 두고 특혜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면서 개발 이익금이 정관계 유력 인사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로비 의혹도 함께 부상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일 무렵 추진된 사업이었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언론인 출신 김만배씨(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남욱 변호사(천하동인 4호 소유주)·정영학 회계사(천하동인 5호 소유주)·정민용 변호사(전 성남도개공 투자사업팀장) 등 이른바 ‘대장동 5인방’은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유한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 김문기 성남도개공 개발1처장 등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대장동 사건은 대선 기간 내내 화두였다. ‘대장동 사건의 몸통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이 대표와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겨눴다. 

검찰은 대장동 사건 전담팀을 만들어 ‘윗선’ 규명에 나섰다. 하지만 수사에 돌입한 지 몇 개월이 지나도록 윗선으로 지목된 관계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늑장 수사’ ‘눈치 보기’ 등의 비판이 일었다. 대선 결과와 수사가 연동된 게 아니냐는 의문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수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공소시효 만료 하루 앞두고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

지난 3월9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나왔다. 대선 결과로 공격과 수비 진영이 명확해졌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5년 만에 집권여당에서 거대 야당으로 바뀌었다. 대형 선거에서 연달아 지면서 궤멸 직전에 몰렸던 보수진영은 대선 승리로 공격 포지션에 자리했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양 진영은 전열 가다듬기에 나섰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하자 윤 대통령은 최측근 한동훈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하는 식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취임 전 검수완박 법안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국무회의 통과까지 밀어붙였다. 

여기에 한 장관은 검찰인사로 화답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검사는 법무연수원 등 한직으로 밀려났고 좌천됐던 ‘윤석열 사단’이 전면에 배치됐다. 검찰총장 역시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임명됐다. 검수완박 법안 통과로 초토화됐던 검찰이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여 만에 진영을 갖춘 것이다. 


그 사이 이 대표는 방패 구축에 나섰다. 대선 패배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방탄 배지’라는 비판이 같은 편인 민주당에서도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도 맡은 이 대표는 결국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법안 통과
조직 재정비

그러면서 이 대표는 ‘당 대표’라는 또 한 겹의 방패를 덧세우기에 이른다. 사법 리스크를 지닌 이 대표가 당 대표 임기 도중 기소될 가능성을 두고 당헌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대선 이후 이 대표의 강력한 지지자로 떠오른 개딸(개혁의 딸)의 요구에 민주당이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릴 정도였다. 

칼끝을 날카롭게 벼린 검찰은 배지·당 대표·개딸이라는 방패로 무장한 이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대표는 대장동 사건 외에도 ▲성남FC 후원금 의혹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이재명 대표 자택 옆집 비선 캠프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받고 있다. 배우자(법인카드 유용 의혹)와 장남(불법도박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선공은 검찰이 날렸다. 검찰은 지난 1일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소환 통보를 보냈다. 대표 취임 나흘 만이다.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은 부동산 개발회사 아사이벨로퍼 측이 용도변경(자연녹지→준주거) 과정에서 성남시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 당시 이 대표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김인섭씨가 2015년 이 회사에 영입된 후 사업이 급속도로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식품연구원 등 공기업 이전 부지의 용도변경 경위에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발언했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사망한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 처장을 알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그는 ‘재직 때 몰랐고 하위 직원이었다. 그때 당시 팀장이었을 텐데 제가 이분을 알게 된 것은 경기도지사가 됐을 때 기소된 다음에 알았다’고 답한 바 있다.

산 넘어 산
첩첩산중

하지만 검찰은 이 대표가 그 이전부터 김 처장을 알고 있다고 봤다. 

김 처장과 관련된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수사 중이던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이 대표를 지난 8일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불구속기소했다. 백현동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서는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에서 불구속기소했다. 이 대표는 검찰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서면 답변만 제출했다.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대표는 검찰과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한다. 만일 재판에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공직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라 의원직을 잃게 되고 5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길이 막히게 되는 셈이다.


이 대표가 패할 경우, 민주당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보전받은 대선 선거비용 약 434억원을 반환해야 한다. 이 대표는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도 구석에 몰린 상황이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은 수사 결과가 뒤집혔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2014~2016년 두산건설로부터 55억원 상당의 광고 후원금을 유치하고, 그 대가로 2015년 두산그룹이 소유한 분당구 정자동 병원 부지 3000여평을 상업용지로 용도변경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사건은 2018년 6월 바른미래당의 의혹 제기로 시작됐다. 3년 가까이 결론을 내지 않고 있던 경찰은 지난해 9월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고발인이 이의신청을 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데 이어 수사 무마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대장동 사건과 함께 대선 내내 화두로 떠올랐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송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뇌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경찰의 재수사 끝에 180도 다른 수사 결과가 나왔다.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사건을 이관한 경찰은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새로운 진술을 청취하고 압수수색을 통해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해 이 대표에게 제3자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된다는 보완수사 결과를 내놨다. 

문제는 검찰이 들고 있는 사건이 아직 많다는 점이다. 특히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2018년 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은 변호인들에게 쌍방울그룹 전환사채 등으로 거액의 수임료가 대납됐다는 내용으로 수원지검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장동 사건, 백현동 사건 등과 달리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 본인이 직접 관계돼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검찰은 쌍방울 그룹의 횡령 의혹을 수사하면서 이 대표와의 연관성도 함께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자택인 분당 수내동 아파트 옆집에 있는 경기주택도시공사(GH)의 합숙소가 선거사무소로 쓰였다는 ‘이재명 대표 자택 옆집 비선 캠프 의혹’은 경찰 수사가 한창이다. 이 대표의 측근인 배모씨가 문제의 집을 집주인 대신 전세 매물로 내놨고 GH는 2020년 8월 이 물건을 2년간 임차하기로 계약한 정황을 잡았다고 한다.

이제 시작
다음은?

해적 룰렛은 참가자가 돌아가면서 칼집에 장난감 칼을 밀어넣는 게임이다. 특정 자리에 칼을 꽂으면 해적 모양의 머리가 튀어 오른다. 검찰은 이 대표와 관련한 사건 수사 결과를 하나씩 내놓으며 칼을 꽂는 모양새다. 아직 이 대표가 ‘펄쩍’ 튀어 오를만한 스모킹건은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의 창과 이 대표의 방패, 어느 쪽이 강할 지는 곧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내와 아들까지 ‘가족 잔혹사’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는 법인카드 유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직후인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측근인 배씨가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자신의 음식값 등을 치른 사실을 알고도 용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씨와 배씨를 검찰로 넘긴 상태다.

이 대표의 장남 동호씨도 소환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지난 14일 불법도박과 성매매 혐의를 받고 있는 동호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는 2019년부터 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한 카드게임 사이트에서 수차례에 걸쳐 불법 도박을 한 혐의를 받는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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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