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이행관리원 계약직 공무원의 현실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6.28 08:45:36
  • 호수 13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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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활동했다고 쫓겨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그는 한 눈에 보기에도 몸이 약했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니 두통을 호소했고 인터뷰 중간 쉬는 시간도 가져야 했다. 드문 드문 불안한 표정도 엿보였다. 이 모든 일이 5년간 충실하게 직장생활을 한 결과라고 하면 어떤 심경일까. 그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창간 멤버로 그중 유일하게 남은 ‘계약직’ 직원이다. 

뭐든 처음 시작하는 일에는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기관의 창간 멤버들은 시스템을 구축시키는 과정에서 고생한다. 그래서 대부분 기관은 창간 멤버를 해직시키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예외는 존재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소속되면서 생긴 잡음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의 계약직 직원이 피해를 본 형국이다.

인사 불이익

<일요시사>가 A씨를 만난 건 지난 21일 저녁 6시쯤이다. 혹여 허기가 질까 식사를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소화를 시키는 게 힘들어서 외식을 꺼렸다. 편안한 장소로 자리를 옮긴 뒤 대화를 이어나갔다. 

A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창립 멤버다. 보직은 상담 직무로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했다. A씨는 공공기관 사이트를 보고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무엇보다도 보람차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한다.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창립 직후 상담전화는 3300건 이상이었다. 모든 직원이 끝도 없이 일했다. 


열심히 일을 하니 그래도 상담전화는 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직원이 A씨에게 팸플릿을 주면서 “A씨는 계약직이니까 같이 활동하면 좋을 것 같다”며 노사협의회와 노동조합 활동을 권유했다.

A씨는 노조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그는 “그때 그 일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나요. 당시 원장이 저에게 ‘그런 활동을 하면 힘들지 않겠냐’고 계속 말했는데, 그게 업무 양을 걱정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인사 불이익이었던것 같아요”라고 씁쓸해했다.

노조 활동을 했다고 근무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다. A씨는 근무 중 단 한 번도 지각·조퇴·결석을 하지 않았다. 귀에 통증이 생길 정도로 일했다. 그만큼 열심히 일했고, 창간 멤버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도 기대하고 있었다.

노조 가입 후 정규직 전환 탈락 후 해고
노동부 신고 결과 취소됐지만 복귀 질질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꿈’이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정규직 전환 면접시험을 봤다. A씨 역시 면접시험 대상자였지만,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면접시험 결과 ‘점수 미달’로 해고당한 것이다. 당시 면접시험을 관리한 것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었다.

A씨는 “면접에 양육비이행관리원 직원도 있었지만, 양육비이행관리원을 관리한 것 자체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다. 나를 관리하던 상사도 모두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라고 말했다.

2016년 말에 A씨는 해고됐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진 7개월이나 걸렸다. 결론은 2017년 3월23일 A씨의 해고 통보가 종료됐다. 면접시험 점수 미달로 해고된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입사가 바로 결정된 건 아니었다. A씨의 입사는 계속 늦춰졌다. A씨는 “고용노동부 결론이 난 뒤 이사장에게 전화했다. 복직을 결정해주면 이사장과 원장이 퇴사한 뒤 복직하겠다고. 육아휴직도 쓰겠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하니 복직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함께 일했던 직원은 모두 해고를 당한 후였다. 2017년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 상담 직무 직원 5명 중 4명이 해고된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계약직이었다.

“당시 기재부에서 받은 양육비이행관리원 인력은 14명이었는데,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이 인력을 계속 가져갔어요. 이런 이유로 계약직 직원들이 해고된 것 같아요. 나는 노조 활동까지 겹친 것 같구요. 인력을 가져가면 자연히 예산도 가져가고, 정규직은 해고시킬 수 없으니 계약직을 우선 해고시킨 것 같아요.”

A씨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병을 앓게 됐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질환인 불안·우울 등의 정신질환이다. 산재 신청과 질병 휴직을 신청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상사는 아직까지도 A씨에게 ‘개인 질병’이 아니었냐고 물어본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의 계약직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자녀 학자금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A씨의 아들이 “내 친구는 회사에서 학자금을 받는데. 왜 안 받는 척 했느냐”고 물었다. 

“나가라” 무언의 압박서 근무
산재 처리에도 ‘개인적 질병?’

아들의 친구 부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정규직이다. A씨와 다른 점은 계약직과 정규직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A씨는 자녀 학자금 대출을 지원해준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공무원은 계약직과 공무직 차이 없이 자녀 학자금을 지원한다. 공무원은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과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라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A씨는 관리자인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항의했고,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의 답변은 “돈이 없어서 못 준다”는 거였다. 1년이 지난 뒤 계약직 직원의 자녀 학자금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A씨 자녀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을 해서 학자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복직 후에는 인격 모독 등의 ‘직장 내 갑질’을 당했다. A씨는 이 직원 역시 양육비이행관리원 직원이 아니라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양육비이행관리원으로 넘어온 직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A씨가 올린 결제 서류는 무조건 다른 사람보다 늦게 승인이 났다. 상사는 A씨에게 “동료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회사로 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상사가 뜬금없이 채용공고를 보낸 적도 있다. 이미 몇 차례 “다른 회사에 가라”는 말을 들은 입장에서, 채용공고는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A씨가 선택한 일은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미 해고를 한 번 당해본 입장에 이 선택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만히 있기엔 너무 억울했다.


이를 안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은 A씨에게 ‘외부기관 조사 등 종료된 사건에 대해 재기하는 등의 허위사실 유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타인이 보호받아야 할 법적 이익 침해’ ‘기관의 목적 업무수행 시설을 업무 외 용도 사용으로 기관의 시설관리권 침해’ ‘직장 내 신뢰관계 및 건강한 조직문화 형성 훼손’을 이유로 사내 게시판 글을 삭제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사실 아니다”

A씨는 “이곳에 와서 직장이 지옥이라는 걸 느꼈다. 보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기득권의 파벌 싸움만 있었을 뿐”이라며 “나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문제가 해결돼 승진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 관계자는 이 일에 대해 “올해 담당자가 다 바뀌었다”며 “이 분이 하는 말이 다 맞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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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