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채권자가 말하는 '양육비이행원'의 민낯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2.15 08:18:11
  • 호수 13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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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가구는 154만 이행원 직원은 50여명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국내 한부모 가구 수는 153만9362명으로 매해 늘어나는 추세다. 한부모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자녀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지난해 양육비 이행률은 36.1%다.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양육비 이행률 72%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활한 양육비 지급을 목적으로 양육비이행관리원(이하 이행원)이 2015년 개설됐다. 하지만 비양육자 쪽에 양육비를 받아내야 하는 양육자들은 이행원이 탁상공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양육비는 미성년 자녀를 보호·양육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미성년 자녀 의식주에 드는 비용과 교육비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2009년 민법과 가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협의이혼 시 양육비에 대한 합의서를 제출하게 됐다. 이로써 이혼한 비 양육자라도 양육의 의무를 다하게 됐다.

여전한 
버티기

하지만 국내의 양육비 이행률은 높지 않다. 양육비 채무자들은 재산은닉, 해외 출국, 위장전입 등의 방법으로 양육비 의무를 피하고 있다. 결국 양육비 채권자들은 자녀 양육비를 받기 위해 채무자에게 소송을 건다.

이때 다수의 채무자가 위장전입을 하고 있어서 실거주지를 확인하려면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현실이다. 양육비 채권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이하 이행원)은 대상자들에게 ▲소송 관련 상담인 법률 지원 ▲원만한 합의 진행과 민사 집행법상의 강제집행 ▲가사소송법상의 양육비 이행확보 소송 등 양육비 추심을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한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양육비 채무자들에 대해 명단 공개, 출국금지, 운전면허 정지 처분 제도가 시행됐다. 올해 6월부터는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이 밖에도 면접 교섭을 위한 상담, 양육 지원, 조사정보를 지원 등을 제공한다. 

이 같은 절차들 중 이행원의 조사정보 지원은 소송 및 채권 추심에 필요한 비양육 부모 또는 양육비 채권자의 거주지나 회사, 소득재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 꼭 필요한 제도다.

더욱이 명단 공개, 출국금지, 운전면허 정지를 위해서는 감치 처분이 필요하고, 감치를 위해서도 채무자의 실거주지 주소가 필요하다.

감치제도는 고의로 양육비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가하는 제재로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머물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양육비 채권자들은 경제적 활동과 양육을 병행하고 있어서 이행원에 소송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행원의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채권자들이 이행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받아야 하는 양육비가 5500만원인 한 양육비 채권자 A씨는 이행원을 이용하면서 겪은 상황을 대해 토로했다.

지급 도우미 역할? 매번 탁상공론만
“면접 교섭 전 아이들 보호 선행돼야”

A씨는 2012년에 이혼했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이행원을 이용했다. 그는 이행원에서 모든 절차를 밟았지만, 이행원은 채무자가 위장전입과 재산은닉을 했기 때문에 ‘힘든 사례’라고 답할 뿐이었다며 답답해했다.

이행원은 A씨 사건을 법률구조공단으로 이관했다. A씨의 사례는 그곳에서도 ‘힘든 사례’일 뿐이었다. 양육비 채무자는 위장전입과 재산은닉으로 이미 법의 테두리 망을 빠져나간 후였다.

이행원은 A씨에게 면접교섭을 제안했다. 아이를 직접 보면 돈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A씨의 이혼 사유는 가정폭력이었고, 채권자인 전 남편은 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 A씨는 이혼 전 남편에게 얼굴을 뺀 모든 부위에 구타를 당했고, 목이 꺾여서 혀가 마비됐다. 

이혼 후에는 A씨를 찾아와 행패를 부린 적도 있어 아이와 함께 4개월간 쉼터에서 숨어 지냈다. 이미 아이가 5살 때 면접 교섭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전 남편은 아이가 활발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종일 박스에 넣어 놓거나 시장에 뒀다.

그 당시 면접교섭은 1년에 4, 5회로 끝났다. 전 남편이 개인적인 사유로 아이를 기다리게 한 것이다. 이행원은 A씨와 A씨의 자녀가 겪은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A씨는 “이행원은 전 남편에게 아이를 보여주면 양육비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또 상대방이 아이를 보러 오는 것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면접교섭을 진행하면 단발성에서 그치면 안 된다. 전 남편이 아이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번 보고 사라지면, 아이가 받는 상실감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 본인 때문에 아빠가 안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행원에서는 전 남편에게 이런 권고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에 실시한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한 심포지움’ 자료에 따르면, 면접교섭을 하고 있는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제대로 받고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18.5%에 그쳤다. 또 다수의 양육자가 전 배우자의 협박으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소송 맡겨

이행원에서 양육비 소송을 진행했지만, 자녀가 성년이 돼서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B씨가 받지 못한 양육비는 2억원이 넘는다.

그는 2008년 이혼 후 이행원에서 양육비 소송을 진행했지만 위장전입 등의 문제로 진행되지 않았고 사건이 종결됐다.

B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 양육비라고 해서 양육비 납부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 실정은 위장전입‧재산은닉 등의 방법으로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버티면 양육비를 내지 않을 수 있다.

이행원에 ‘법률지원 중단 결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미지급된 양육비가 1억3000만원인 C씨의 경우다. C씨는 이혼 전 가정주부였고 둘째가 태어난 지 30개월 때 이혼했기 때문에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이혼 당시 그의 통장에는 20만원밖에 없었다. 양육비를 받았다면 아이는 엄마와 시간을 보냈겠지만,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아 C씨는 돈을 벌었고 아이들을 챙길 시간이 없었다. 이혼 후 전 남편은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 남편이 죽은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C씨가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의 성본 변경을 위한 재판 때문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전 남편이 나타나서 아이들의 성본 변경을 거절했다.

그때부터 C씨의 양육비 소송 재판이 시작됐다. C씨는 2015년 이행원을 통해 양육비 소송을 진행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개인소송으로 변경해 진행했다.

그가 진행한 소송은 총 20번이고, 지난해 전 남편은 출국금지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 남편의 재혼 상대가 중국인이어서 공소시효가 풀린 뒤 현재 배우자를 따라 중국에 거주하면 양육비 받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지난해 시행된 출국금지는 올해 4월이면 만료된다. C씨는 다시 소송을 진행해야 했지만, 전 남편은 이미 거주불명 상태였다. 

있으나 마나 
미온적 지원

C씨는 지난해 이행원에 연락해 전 남편의 거주지와 회사 이름을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2월에 예산이 풀리니 그때 진행해보자는 것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C씨는 여성가족부에 연락해 “왜 예산이 부족하냐.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A씨도 같은 의견이다. A씨는 이행원이 재정상의 이유로 연말과 연초인 3~4개월간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7년 양육비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니 내년까지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행원은 국가기관인데 일하는 사람이 터무니 없이 적다. 언제까지 예산과 인력이 없다고만 할 건지 모르겠다. 주민센터가 돈이 없다고 문을 닫지 않는다”며 “법적으로 한 부모가 아니어도 대부분 위장전입이나 재산은닉으로 양육비 소송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다수를 위한 이행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C씨가 받은 것은 양육비이행관리원장의 이름이 적힌 ‘법률지원 중단 결정 통지서(이하 통지서)’였다.

이 통지서에는 “2021년 12월23일자로 법률지원 업무처리지침 제10조 제2항 제1호(개별사건 진행), 제6호(부당한 민원 제기 및 폭언), 제7호(지원 실익 없음), 모니터링 업무처리지침 제10조 제2항 제3조(무리한 요구 등 부당한 대우) 사유로 법률지원 중단이 결정됐다”고 적혀있다.

이행원 권한 확대 필수
양육비 소송 간소화도

C씨는 “이 통지서를 받고 너무 충격받았다. 나는 거주지 확인이나 직장 조회를 왜 못하냐, 예산이 왜 없냐고 이의를 제기한 거다. 이행원은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한다. 양육자들이 이런 통지서를 받으면 어떨지 생각해봤나.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양성욱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는 “양육비이행법 제18조에는 ‘이행관리원의 장은 양육비 이행 지원을 위해 필요한 경우 양육비 채권자가 가사소송법 및 민사집행법에 따른 필요한 법률 지원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며 “혹여 민원인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면 그 요구를 제외하고 들어주면 된다. 아마 이행원 내부 규칙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대외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밝혔다.

이행원 관계자는 “C씨는 2015년부터 소송이 여러 차례 진행됐는데 개인적으로 계속 취소했다. 이런 경우 개인소송과 중복되니 지원하기 어렵다고 이미 안내한 적 있다. 또, 폭언과 무리한 요구를 지속해서 했기 때문에 민원심의회 상정한 결과 2년 법률 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답했다.

정희경 한국여성변호사회 기획이사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권한을 강화하고, 징수 및 제재 절차를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채무자 소재 탐지, 재산 및 소득 조회 권한을 부여하고, 운전면허 정지 등 행정적 제재 처분 요청 권한도 실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육비에 대한 인식을 교정하고, 양육비 지급을 결정하는 환경‧문화적 요소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이혼법제를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변경하고, 부모 교육에 양육비 지급 내용을 보강하는 한편 면접교섭에 대한 모칭과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적극적 관리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산 없고
인원 부족

이영 양육비해결연합 대표는 “이행원의 예산 부족으로 소송이 계속 멈춘다. 인력과 예산을 대폭적으로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면, 현행 양육비 소송의 절차를 간소화시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육비 나 몰라’ 김동성 버티다…

서울가정법원이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김동성씨에게 ‘감치 30일’을 지난 9일 선고했다.

두 자녀의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은 2019년 1월 이혼 이후 지난해 2월까지 김씨가 미지급한 양육비 총 3000만원에 대해 “15개월 동안 매월 200만원씩 나눠서 양육자에게 지급하라”고 지난해 4월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김씨는 법원의 양육비 이행명령을 이달까지 단 한 차례도 따르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9일 열린 첫 감치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법정 구속은 면했다.

김씨의 전 부인 이소미씨(가명, 41세)를 법률 대리하는 남성욱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는 “김씨처럼 양육비 채무자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면 보통 한 번 더 재판 기일을 잡는 편인데, 이번 재판에선 바로 감치 결정이 내려졌다”며 “양육비 이행강화 법안이 실효성 있는 구제 수단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재판부가 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남 변호사는 감치 30일이 결정된 부분에 대해 “양육비 채무자가 법원의 이행 명령을 단 한 차례도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재판부가 본 듯하다”고 덧붙였다.

전 부인 이씨는 지난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첫 번째 재판 날 법원이 감치 결정을 내릴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였다”며 “최근 청소년기에 들어간 아이들 양육비 때문에 힘들었는데, 법원의 결정에 따라 전 남편이 양육비를 꼭 지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감치 결정에 따라 법원은 감치 집행장, 감치 결정등본 등을 김씨가 거주하는 지역 관할 경찰서에 보낼 예정이다.

관할 경찰서는 집행장의 유효기간인 6개월 이내에 김씨를 구인해야 한다.

이씨가 전남편 김씨의 감치 결정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여정은 매우 어려웠다.

김씨는 이혼 조정조서에 따라 2019년 1월부터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아이 당 양육비를 월 150만원, 매달 300만원을 이씨에게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는 이달까지 양육비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지난달 기준, 김씨가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는 약 5880만원에 이른다.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작년 7월부터 시행됨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형사처벌·신상 공개·출국금지·운전면허 정지가 가능하다. 

양육비 미지급자는 가정법원의 감치명령 결정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1년 이내에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여성가족부는 법원의 감치명령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미지급자의 신상을 여성가족부 온라인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남 변호사는 “법원의 감치 결정에도 김씨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등의 강력한 압박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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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