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4대강' 돌고 도는 운명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5.02 11:12:09
  • 호수 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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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열어놨더니 도로 닫는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2010년 5월31일은 조계종 문수 스님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문수 스님은 “MB(이명박)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분신해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문재인정부는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을 시작했고, 4대강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후보자 시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민주당은 MB의 4대강 보 사업을 폄훼하고 부쉈다”며 4대강 사업 계승 의지를 밝혔다.

한국에는 크고 작은 강이 많다. 한국의 강만 그려놓은 지도는 사람의 실핏줄 모습처럼 보인다. 강의 역할도 이와 같다. 강은 ▲잔디 ▲도로 ▲하수 처리장 ▲정화 시스템 ▲농업 등에 물을 공급해 오염된 물질을 제거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2011년부터 부작용
2013년 초에 완료

강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막아버린 사업이 있다. 바로 이명박정부 시기였던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이뤄진 ‘4대강 정비 사업’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도 불렀다. 이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유역을 정비하는 사업으로 이명박정부의 주요 국정 사업이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개선 ▲수변 복합공간 조성 ▲지역 발전을 목표로 했다.

한국은 여름철 집중호우로 강 주변이 범람해 홍수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비가 오지 않으면 가물기 때문에 지속적인 수자원을 얻는 게 불가능했다.


특히 이상기후로 인해 극단적인 홍수와 가뭄의 위험성이 높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2월 ‘4대강 정비 사업’을 추진했다.

4대강 사업의 총사업비는 22조원이다. 계획은 4대강 외에도 섬진강 및 지류에 보 16개와 댐 5개, 저수지 96개를 만들어 4년 만에 공사를 마무리하겠다고 설계됐다.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 및 종교단체는 예산 낭비·부실 공사·환경 오염 등을 우려해 대대적으로 반대했지만, 2009년 2월 사업은 추진됐고 2013년 초에 완료됐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될 때는 “왜가리나 모래무지에게도 4대강 사업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환경 문제가 심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전문가들은 홍수나 가뭄 등의 자연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사업이 진행되는 내내 지적됐고, 비슷한 예로 청계천을 제시하며 4대강 사업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멈추지 않았다.

22조 혈세 먹은 국책사업
윤, 보 재개 등 계승 의지

2010년까지만 해도 언론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하거나, 우려가 섞인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된지 3년째인 2011년부터는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이 속속들이 보도됐다.


충남 공주시 계룡저수지는 원래 수질이 맑은 곳이었으나 4대강 사업 이후로 변했다. 물줄기에는 녹조가 뒤덮였고, 물이 고여있어서 그런지 저수지는 새까맣게 변해 악취가 진동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전국에 있는 강 녹조가 심화됐다. 특히 수질은 악화됐고, 농지는 물에 잠겼다. 낙동강에 건설한 거의 모든 보는 물이 샜다. 강변의 모래와 자갈이 콘크리트로 대체되면서 물에 사는 동식물과 미생물이 죽어서 자가정화 작용도 할 수 없었다.

이명박정부는 4대강 사업 덕분에 장마나 홍수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기존에도 이 지역은 홍수가 잘 나지 않는 지역이었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정부에서 두 차례, 박근혜·문재인정부에서 한 차례씩 네 차례 감사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국책사업이다.

감사 결과는 ▲문제 없음 ▲공사 담합 ▲수질 평가에 외압 등 정권에 따라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재인정부는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펼쳤고, 같은 맥락으로 환경부는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을 꾸렸다.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은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4대강의 보 개방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금강·영산강의 보 개방 후에는 ▲유해 남조류 ▲저층 빈산소 ▲퇴적물 ▲생태계 건강성 등의 물 환경지표가 개선된 경향을 보였다.

수질 악화
악취 진동

또한 모래톱, 수변공간 등 생물서식처가 다양하게 형성돼, 여러 멸종위기종이 지속해서 관측됐다. 3년 반 동안 보를 개방한 결과 강의 자연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가장 큰 효과는 보 개방 이후 녹조현상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특히 완전히 개방한 금강 보 구간에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녹조가 최대 85% 줄어들었다.

또 강물 체류 시간은 전체적으로 감소했고 유속은 증가하는 등 물 흐름이 개선됐다. 금강의 체류 시간은 최대 88% 줄었으며, 영산강의 유속은 최대 813% 증가했다. 이런 구간에는 녹조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지난 3월1일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2월 26~27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4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거 및 사회 현안 27차 정기 여론조사’에서는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문재인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는 응답은 50.9%,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이 재추진돼야 한다’는 29.5%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9.5%로 집계됐다.

대중들도 문재인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양상이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오는 9일로 막을 내린다.

즉 4대강 사업에 관한 정책도 곧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지난 2월에는 당시 이재명 대통령 대선후보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윤 후보는 “4대강 보를 잘 지키겠다. 지역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시고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 후보는 “4대강이 독성물질로 사람을 공격한다. 4대강 보를 해체해야 한다”고 공약했다.

간신히 
살려놨는데…

윤 후보는 지난 2월 공식선거 기간에 경북 상주를 찾아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을 이어나가서 이 지역의 농업용수와 깨끗한 물을 우리 상주·문경 시민들께서 맘 놓고 쓰실 수 있도록 잘 해내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4대강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정책 답변서에 잘 나온다. 이 답변서에 따르면 윤 후보는 ‘지속 가능한 국토환경 조성’을 폐기해야 할 3대 과제로 꼽았다.

윤 후보가 폐기하겠다고 한 ‘지속 가능한 국토환경 조성’은 4대강 사업을 ‘인위적 사업’으로 규정한다. 또한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자연에 맞게 강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 국민의힘은 “4대강 재자연화는 친수관리와 이용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 다만 난개발이 이뤄지지 않도록 차단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조성한 친수공간이 친수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감사원 보고서에도 여러 차례 지적됐다. 국토부는 4대강 사업 당시 4대강의 둔치를 여가 등 복합공간으로 이용하기 위해 2009~2012년까지 1조7319억원을 들여 169.5㎢의 생태하천을 조성했다. 

그러나 2018년 감사원이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실태 점검 및 성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는 친수공간의 저조한 이용도와 예산 부족을 이유로 169.5㎢ 중 60.6%는 유지관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관광 측면에서도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친수공간은 효과가 없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4대강 지역인 79개 시·군·구의 친수효과 분석 결과 해당 지역의 방문 여행객 수가 20% 감소했다고 밝혔다.

윤 후보의 “4대강을 지켜 농업용수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4대강 보를 없앨 경우 농업용수가 부족해질 거라는 우려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보를 개방해서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4대강 복원 정책 때문이 아니라 4대강 사업 당시 물을 취수·양수할 수 있는 시설 자체가 잘못 설계돼 시공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 환경 흐름에 역행”
당선인 행보 환경단체들 난색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설을 잘못 만들어놔서 공급이 안 된 것이다. 양수시설은 최저 수위에서도 물을 당겨쓸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감사원 보고서에는 “4대강 사업 추진 시 보에 설치된 수문을 개방할 경우 수위 저하에 대한 고려 없이 양수장과 어도를 설계·시공, 수문을 개방하면 양수가 어렵거나 어도 기능이 상실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윤 후보는 4대강의 가장 큰 문제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른바 ‘녹조 라테’로 불리는 4대강의 녹조 문제다.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8월 낙동강과 금강 일부 지역에서 검출된 녹조에서 발암성이 있는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인체에 유해할 정도로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최근에는 이 주변 노지에서 재배한 쌀, 배추, 무 등 농작물에서도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결과를 전했다. 

김종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녹조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지속해서 밝혀지고 있는데, 계속 ‘재자연화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4대강을 정치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4대강 정책에 대해 이렇다 할 제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정부의 첫 환경부 장관 후보자를 보면 윤 당선인이 4대강 사업 재자연화 폐지를 여전히 중요사안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부 장관 후보자인 한화진 한국환경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과거 학술지 기고문에 “4대강 살리기 사업이야말로 기후변화 적응의 대표적인 통합대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후보자가 이 기고문을 쓴 시기는 이명박 대통령실에서 환경비서관직을 마친 뒤 본래 직장인 한국환경연구원 부원장으로 돌아왔을 때다.

지난달 13일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소개하며 “규제 일변도의 환경정책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지속 가능한 환경정책을 설계할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이 같은 윤 당선인의 행보에 환경단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만 
보고 있다고?

환경운동연합은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4대강 재자연화 폐기’ 등 전 세계적인 환경 전환 흐름에 역행하는 공약을 보였다”며 “4대강의 경우 2012년 준공 이후 해마다 녹조 발생 등 수질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조사에 따르면 녹조 독성이 농·식물에 검출됐다. 녹조가 우리 국민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라면서도 “그러나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4대강 생태계 건강성이 회복되고 있다. 이것이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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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