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문재인-윤석열 파워게임

신·구 권력 제대로 붙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만남이 불발되면서 분위기가 싸늘하다. 협상 과정은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한 발짝도 뒤로 물러나지 않는 탓이다. 양측은 표면상으로만 만나자며 신경전을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담이 4시간을 앞두고 한차례 결렬됐다. 표면상의 불발 이유는 실무협상 조율 문제 때문이다. 만남이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여전히 신‧구 권력은 서로를 견제하는 모양새다.

넘어야 할 
첫 번째 산

과거에도 정권이 바뀌면 인사 문제로 현 정부와 다음 정부가 충돌을 빚어왔다. 인사 문제는 새 정부가 탄생하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으로 분류된다. 

2008년 노무현정부에서 이명박정부로 정권이 교체될 때도 극심한 대립이 펼쳐졌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측은 인사 문제를 두고서 청와대에 2번이나 인사 자제를 요청했을 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 측이 중앙선거관리위원과 감사위원 등을 임명하자 즉각 반발했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 즉각 항의하자 노 전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 위함이냐며 맞불까지 놓은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임 정부 인사의 절반을 남긴다는 관행을 깨버렸다. 참여 정부 인사 대부분을 교체하고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인사 솎아내기 작업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취임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연구기관장, 공공기관장 등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과거와 비슷한 기류가 흐른다. 현재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사이에서 대립이 극에 달한 지점은 ‘인사 문제’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다.

인사 문제를 먼저 압박하고 나선 쪽은 인수위 측이다. 권영세 기획위원회부위원장이 한 차례 “문정부에서(정치적으로) 임명된 인사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해야 한다”고 발언한 게 화근이었다.

권 부위원장의 발언은 350곳에 이르는 기관장 대부분이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임기를 유지하게 되는 상황인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중 쟁점은 검찰총장 유임과 차기 한국은행 총재 임명권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에 대한 거취와 관련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발언한 탓에 양측 인사권 대립은 더욱 불이 붙은 모양새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김 총장의 임기는 아직 1년이 넘게 남았다. 이 같은 연유로 취임식 직후 김 총장을 교체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 당선인 역시 검찰총장 재직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겪으면서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을 강조했던 바 있다.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당시 윤 당선인은 검찰의 독립성 명분을 들며 총장직에서 버텼다. 이 같은 권 의원의 발언은 총장 교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여론에 우회적으로 띄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권 둘러싼 진실공방
퇴임 앞두고 알박기 시도?

이에 대해 김 총장은 물러날 뜻이 없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반박에 나섰다. 사퇴 압박에 대해 정면돌파를 택한 셈이다.

지금까지 검찰총장 임기제가 시행된 이후 임기를 마치고 그만둔 인물은 8명에 불과하다. 통상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에 임기를 마치지 않고 그만뒀다. 

김 총장은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가장 먼저 사퇴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분류됐다. 그가 남은 임기를 이어가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데는 2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사건 수사와 검찰의 검찰 독립성이 쟁점이다. 

칼을 쥔 검찰이 대장동 사건 수사에 돌입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미적거리고 있는 상태다. 대장동은 대선기간 내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정쟁 사안이었다.

추후로도 여야가 대장동 특검을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김 총장의 거취에도 더욱 관심이 쏠릴 수 있다. 윤 당선인 본인에 대한 수사도 남아있는 터라 윤 당선인 입장에서는 김 총장의 유임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검찰 내에서도 김 총장의 유임 여부를 두고 반응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정권이 교체된다면 수장의 교체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동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임명된 검찰총장은 정치적 중립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현재까지는 친정부 성향의 검사들의 거취 표명 여부도 알 수 없다.

이런 부담 속에서 향후 윤정부가 새 총장을 임명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온다. 현 정부와 차기 정부의 인사 대립은 비단 검찰총장 유임 문제뿐만이 아니다.

과거 존중?
미래 우선?

임기가 4년 보장된 한국은행 총재 지명권을 놓고서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통상 차기 한국은행 총재는 다음 정부에서도 임기를 이어간 뒤 물러났다.


이주열 총재는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다. 이례적으로 문정부에서도 총재직을 이어가며 8년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금융권에서도 이 총재가 차기 정부에서 임기를 이어갈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총재가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히면서 지난 23일 청와대는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차기 총재로 지목했다. 이런 탓에 양측의 대립은 더욱 심화된 양상을 띤다. 향후 통화정책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보인다.

차기 총재 지목에 대해 윤 당선인 측은 “협의가 없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 국장이 좋은 사람 같다고 했던 게 전부”라며 “발표 10분 전에 전화 와서 임명하겠다고 전해 들었다”고 이 국장 지목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장 실장의 발언은 청와대 결정에 정면 반박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반면 청와대는 당선인 측과 협의가 있었다며 장 실장과는 정반대 의견이다.

다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신속히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또 이 국장이 다양한 이력을 가진 경제 금융 전문가인 만큼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설명에 대해 장 실장은 윤 당선인 측은 본인이라며 총재 지명을 두고 재차 반박하고 나섰다.

인사권 문제는 총재 임명 외에도 감사원 감사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도 난항이 예상된다. 윤 당선인 측에서 사전 협의를 요구했지만 청와대 측 입장은 현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다는 데서 완고한 태도를 취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총재 임명이 협의된다면 향후 나머지 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사 문제가 해결될 경우 두 인물의 만남이 급속도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아직까지 협의점을 찾지 못해 만남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파다하다. 

끝까지…
승리자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온도 차가 뚜렷한 것은 한은 총재 지명 외에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도 있다. 대선기간 윤 당선인은 청와대의 권력을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집무실 이전을 통해 소통하는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직접 선언한 것.

해당 사안을 두고서도 윤 당선인과 현 정부의 의견 차가 극명하다. 청와대가 용산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에 반대하는 이유는 안보 공백과 이전 비용 문제 때문으로 이전에 예비비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전 비용을 두고서도 양쪽의 대립은 격화된 상태다. 윤 당선인 측은 집무실 이전 비용을 500억원으로 추산한 데 비해 민주당 측은 1조원이 든다고 집무실 이전에 반기를 들었다. 청와대 역시 강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양측의 첨예한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민과의 가까움’을 서로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말도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용산 이전에 대해 여전히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현 시점에서는 당장 추진이 어려워 보이는 대목이다. 당초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으나 가능성이 낮아지자 한 차례 용산 이전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었다. 

용산 이전은 윤 당선인이 정권 교체의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윤 당선인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정부서 실행하지 못했던 공약을 이뤄냈다는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까닭이다. 또 청와대에서 집무실을 옮기는 게 소통이라는 구도를 만들기 위함으로도 여겨진다.

앞서 문 대통령도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추진한 바 있으나 경호 문제 등을 이유로 무산됐던 바 있다. 윤 당선인이 문정부와 반대 방향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려는 배경인 셈이다.

집무실 이전 두고도 대립
장기전 탓 양측 부담 가중

결국 윤 당선인은 용산 이전이 당장 추진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통의동 사무실을 집무실로 사용하겠다며 초강수를 뒀다. 사실상 용산 이전에 대해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힌 것으로 읽힌다.

다만 여론이 좋지 않은 편이라 재차 신중을 가하는 모습이다. 윤 당선인은 문정부와 정반대의 기조를 내세우며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의 기대를 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집무실 이전이 아닌 자신이 공약했던 것들을 먼저 이행한 뒤 집무실을 이전해도 늦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윤 당선인이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만 관련 사안을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윤 당선인 인수위가 과거 정부와는 다르게 빠른 인사 영입을 통해 이르게 출범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집무실 이전 부분만 강조되고 있는 탓에 국가 비전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인수위에 합류한 얼굴들 역시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자)이 주를 이루고 있어 비판을 샀다. 이에 대해 인수위 측은 청년 위원 등 180명에 이르는 인물을 꾸렸다며 진화를 시도했다. 인수위는 집무실 이전에만 이목이 쏠리자 재빠르게 공식 의제로 코로나19 문제를 띄우기도 했다.

현재 인수위에는 과제들이 산적해있는 상태다. 총리 지명, 통합과 소통, 제왕적 대통령 탈피라는 새 정부 과제에 대한 해답을 윤정부 출범을 앞둔 50일 이내에 도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지속된 마찰이 이런 의제 설정단계부터 시작해 물밑 기 싸움이 고조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대통령 중 전직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경우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를 제외하고는 없다.

늦은 만남 탓에 회담이 늦을수록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사실상 조율은 둘째치더라도 논의 자체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했던 셈이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한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 조율 없이 만나자”고 먼저 운을 띄웠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순리대로 해결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양측 모두 여전히 만남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열어놓았다는 취지로 읽힌다.

일단 만나야 
둘 다 산다

한편에서는 양측이 표면적으로만 만남을 원한다는 지적도 있다. 여전히 여러 문제가 조율이 되고 있지 않는 탓에 회동 자체가 불발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장기적인 만남 불발에 양측 모두 부담을 느낀 모양새다. 결국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남은 19일 만에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양측의 만남으로 어떤 결과가 도출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회동 무산된 또 다른 이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제안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 사면은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내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다. 

정치권에서는 첫 실무 협의 당시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해당 자리에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이 전 대통령의 동시 사면 방안이 제기됐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내에서도 엇갈린 의견이 쏟아졌다. 

극적 만남이 성사된 이후 문 대통령이 어떤 카드를 꺼내들지가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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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