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조은지 감독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답니다”

“감정만큼은 편견 없이 봐야 하지 않나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조은지는 영화계에서 꽤 인정받는 배우였다. 독특한 감성을 갖고, 그만의 해석이 분명했다. 교묘한 감정을 캐치해서 뻔한 듯 뻔하지 않게 표현하는 배우로 평가된다. 그런 그가 메가폰을 잡았다. 이성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진심만큼은, 그래도 인정하는 게 좋지 않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진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서다. 기성 감독들보다도 뛰어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중에 꼭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마저 남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 나타났다.

대중적으로 매우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아니었지만, 업계에선 나름 출중한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배우 조은지가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글이었다. 일기나 에세이를 쓰며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면서 얻은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배우서 감독으로

그렇게 이런저런 글을 쓰던 중 이별 과정에서 겪었던 독특한 에피소드를 담은 글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지인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말했다. ‘이건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연기를 업으로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연출에 손을 댄다는 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이미지가 있어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조은지 역시 선뜻 연출을 맡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글이 좋았다. 그냥 썩혀두기 아깝다는 판단이 들어 연출에 도전했다. 그 작품이 단편영화 <2박3일>이다. 

한 여성이 이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남자친구 가정의 이혼을 목격하는 기발한 상상이 구현된 작품이다. 남자친구와 이별하기 싫어 집착하고 애걸복걸하는 여성의 심리와 어떻게든 헤어지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상식적이지 않은 한 가정의 이혼을 경험하는 구도가 상당히 흥미롭다.


그런 와중에 연출적인 감각과 재미가 톡톡 튄다. 

<2박3일>은 2017년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업적이다. 놀랍게도 <2박3일>은 조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깊이 포함돼있다.

이후 한동안 연기 활동에 전념하던 그에게 연출 제안이 간다. 제목은 <입술은 안돼요>였다. 단편영화를 흥미롭게 본 제작사 대표가 <입술은 안돼요>와 결이 맞는 감독을 찾다 조은지를 발견한 것. 조은지 감독에게는 고맙고 흥미로운 제안이었지만, 일단 브레이크를 건다. 

<장르만 로맨스> 통해 던진 진정성의 의미
 “류승룡 배우 말고는 대체제가 없었어요”

“고마운 제안이었는데, 선뜻 받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제가 각색해보고 그래도 작품과 결이 맞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이미 그 작품은 각본가가 있고, 한 번의 각색을 거친 작품이었거든요. 사실 제작사 대표님도 용기를 낸 제안이죠. 단편 하나 찍은 감독한테 장편을 맡기는 건요. 근데 <2박3일>에서 하나의 주제를 갖고 끝까지 끌고 가는 감정이 좋았다고 하시면서 제안해주셨어요. 현(류승룡 분)과 유진(무진성 분)이 골자로 있었는데, 저는 주위 인물의 폭을 확장했어요. 코미디 요소도 더 많이 했고요. 혜진(류현경 분)도 좀 더 폭을 넓혔죠.”

한 달 동안 각색한 작품은 더 견고해졌다. 조은지 감독은 단순히 코미디 장르의 수준을 넘어 인간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독특하게 담으려 했다. 꼭 사회적으로 통념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진심이 있다면 사람들이 공감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그 사이에 제목은 <입술은 안돼요>에서 <장르만 로맨스>로 변경됐다. 


영화에는 불편함이 있는 관계가 그득하다. 한때 문학계의 거장으로 불린 대학교수 현을 중심으로 주위 사람들의 모든 관계가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인식되기 어렵다.

현의 전 아내 미애(오나라 분)는 현의 30년 지기 친구 순모(김희원 분)와 연인 관계며, 사춘기가 뒤늦게 온 성경(성유빈 분)은 옆집 유부녀 정원(이유영 분)을 좋아한다. 현을 좋아한다며 집착적으로 따라다니는 제자 유진은 성 소수자다. 두 사람은 불편하고도 특별한 협업을 시작한다. 

이 외에도 슬럼프에 빠진 현과 반대로 부커상 후보에 오른 후배 문애리(최희진 분)가 있고, 현 아내 혜진은 딸과 외국에서 살고 있다.

겉만 보면 누구보다 멋있고 고민거리 하나 없이 살아갈 것 같은 현이지만, 그 안에 렌즈를 대면 누구 하나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가 없어 외롭기 그지없는 인생이다. 그를 중심으로 불편한 관계를 설명하는데, 그 안에 하나 같이 진심이 녹아있다.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 관계가 많은데, 저는 어떤 부분이든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아요. 성소수자의 진실한 마음, 전 부인과 친한 친구의 연애, 유부녀에게 고백하는 고등학생 모두요. 우리 모두 보편적인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교통사고처럼 사고 나듯이 변하죠. 감정은 갑자기 생겨나죠. 그런 감정 자체에 편견을 갖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현은 자신의 신작 ‘두 남자’의 북 콘서트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려 한다. “우리 모두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모여”라며 말을 이어간다. 다만 끝까지 이어가지는 못한다. 영화 엔딩이 돼서야 문장이 완성된다. 각기 다른 모양의 사람이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진심만은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불편한 관계 가득
재기발랄한 유머

조 감독이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 전하고 싶은 주제의식이다. 

“연기할 때도 그렇고 연출할 때도 저는 ‘마음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요. 살면서 진정성을 많이 따지죠. 소통할 때 진정성으로 대하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화가 잘 풀리고요. 살다보면 내 모습이 아닌 채로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부대끼기도 하는데, 그걸 이겨내는 게 진정성이 아닌가 싶어요. 내 의도와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닌가 하고요. 그런 가치관에서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돼요. 사회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진심이 녹아있다면 그래도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이 영화로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영화 내에서 가장 까끌까끌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유진은 영화 말미에 진실한 모습으로 현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을 내비치는 그였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느낌을 받은 관객이라면, 조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셈이다. 

“누군가는 유진을 불편해하겠죠. 그 마음도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유진은 정말 진심으로 현을 대하거든요. 그 진심이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영화 내에서 갈등이 있고 어찌됐든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유진을 위한 응원이길 바라긴 했어요.”

발칙한 관계가 다수 놓여 있고 모든 것이 폭로되는데, 이를 풀어내는 화법은 코미디다. <장르만 로맨스>라는 제목은 로맨스를 주제로 이어가지만, 실제로는 코미디라는 숨은 의미도 담겨있다. 국내 코미디 장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이병헌 감독의 <스물> <극한직업>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다. 


대사가 일품이며, 매우 재기발랄한 시추에이션 유머가 녹아있다. 유머 면에서는 탑티어급의 재능을 보여준 감독이다. 여성 감독이 선보인 코미디 영화 중 가장 수준 높은 웃음을 구현한다. 

웃음을 터뜨리다 못해 놀라움으로 이어지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인다. 평소 타인을 웃기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명감이 갈고 닦아진 결과물이다.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고, 친해지는 과정이 긴 편이라 매우 많은 장소에서 웃기려 하지는 않지만, 막상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개그 욕심이 엄청나요. 저의 개그로 사람들이 웃는 게 행복해요. 혹자들은 ‘왜 웃기려고 하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래야 좋아요. 집에 가서 생각하다 보면 ‘왜 그때 그 말을 안 했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하고, 크게 웃긴 날은 뿌듯하기도 해요. 한 번 개그를 시작하면 흐름을 끊지 않고 던집니다. 사실 긴 정적에서 불안감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웃기려고 해요. 안 먹힐 때도 있긴 한데, 도전은 많이 해요. 분위기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에는 편견 없었으면”
“촬영 내내 강박이 컸어요…기회가 또 있길”

매 순간 웃기고자 했던 노력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모든 배우가 강력한 웃음을 선사한다. 작품의 화자인 류승룡을 통해 시나리오에 담긴 유머가 스크린 안에서 펑펑 터진다. 류승룡이 아니었다면 <장르만 로맨스>의 고퀄리티 유머는 없었을 테다. 유머 수준이 높은 관객이라면 즐길 것이고, 개그 이해도 낮은 관객에게는 다소 어려운 영화가 될 수 있다.

“<극한직업>이 개봉하기 전에 미리 시나리오를 드렸어요. 생활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어요. <극한직업>이 그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요. 제게는 다행이죠. 류승룡 배우 말고는 이 역할을 해줄 분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 촬영 내내 매우 세심한 디테일을 보여주셨고, 메인 주인공이자 어른으로서, 리더십도 발휘해주셨어요. 승룡 선배님 아니었으면, 좋은 작품이 안 나왔을 거예요.”


<장르만 로맨스>는 외연적으로도 큰 역할을 한다. 배우 무진성을 발굴한 것. 어쩌면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이자,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점에서 막중한 임무를 띠는 역할이다. 비교적 경험이 부족한 무진성은 완성형 신예로서 매우 훌륭히 인물을 소화해낸다.

특히 감정의 과잉없이 철저히 절제된 연기가 돋보인다. 조만간 드라마와 영화계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일 배우로 여겨진다. 

“오디션에서 거침없이 연기하는데, 해석이 독특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마음이 가나 싶어 오디션을 한 번 더 봤는데, 연기를 잘하더라구요. 지속적으로 절제된 연기를 주문했죠. 쉽지 않은 역할인데, 정말 연기를 잘해줬어요.”

이 외에도 순모 역의 김희원, 미애 역의 오나라, 혜진 역의 류현경, 성경 역의 성유빈, 정원 역의 이유영 등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매우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생활연기가 일품이다. 마치 연극을 보듯 물샐틈없는 짜임새가 엿보이는 것은 물론, 뛰어난 합이 절로 느껴진다. 뛰어난 연기자들의 협업이 시너지를 냈을 때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가 복이 많아서 좋은 배우들과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선을 많이 신경 썼어요. 공간에서 각자 행동하는 패턴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런 모습이 마치 연극처럼 느껴지게 한 건 아닌가 싶어요. 늘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배우들은 하나같이 조 감독이 뛰어난 디렉션을 보여줬다고 한다. 배우의 마음을 읽고 자신을 존중하면서 디렉팅을 했다고 밝힌다. 그 표현에는 웃음이 가득 담겨있는데 이는 좋은 감독을 향한 애정으로 비춰진다. 

출연배우들 호평

“저는 배우들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 나름대로 감정선을 명확하게 잡아놓고 있어서, 디렉팅을 너무 분명하게 한 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배우들의 자유를 구속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와서는 좀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사실 첫 장편이라 스스로 옭아맨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스케줄 안에 주어진 숙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컸죠. 옆에서 여유를 줘도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어요. 사실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이 배웠어요. 다시 연출의 기회가 생긴다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더 소통하면서 교류할 것 같아요.”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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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