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야구 대표팀 ‘안방마님’ 강민호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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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07.20 11:21:15
  • 호수 1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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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뉴스] 오는 28일 막을 올릴 도쿄올림픽 야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 야구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 금메달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노린다. 13년 전 그 영광의 순간에 있었으며, 이제는 베테랑 포수로서 올림픽에 나설 강민호 선수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강민호는 1985년 8월18일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제주 신광초에 다니던 시절, 제주도에는 3개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야구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은 시합을 찾아가 응원했다. 

포수에 반하다

야구부가 아닌 일반 학생으로 응원을 하던 강민호는 포수 장비를 착용하고 야수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를 계기로 야구 선수의 길, 그중에서도 포수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야구부가 있는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의 경우 유혜정, 권혁과 함께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들이 졸업한 이후에는 최약체 팀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공수 양면으로 이끈 선수가 바로 강민호였다.

2학년 때 이미 고교 정상급 포수로 인정받았고, 3학년 땐 고교야구 포수 랭킹 1위로 평가받으며 청소년 야구 대표팀의 주전 포수로 낙점됐다. 2004년 발간된 아마야구사랑 스카우팅 리포트는 강민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올해 랭킹 1위의 포수. 지난해에는 팀 전력이 약해 빛을 보지 못했으나 올해는 청룡기, 무등기, 황금사자기에 출전해 기량을 선보였다. 어깨가 강해 앉아서도 2루 송구가 가능하고 팀의 리더로서 공수를 잘 조율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량을 인정받은 강민호는 200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지명(전체 17번)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2017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뛰었으며, 롯데 자이언츠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갖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

롯데 자이언츠에 있을 당시 최고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활약했다. 국가대표 포수 최다 차출인 8회를 기록하며 국가대표 주전 포수로 이름을 떨쳤다. 이대호의 해외 진출 이후 강민호 하면 롯데, 롯데 하면 강민호라는 인식이 있을 만큼 부산 출신이 아니지만 부산의 아이돌이자 롯데 자이언츠 간판선수로 활약했다.

대구에서 이승엽이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대공원역 안내방송에 나오듯, 부산 도시철도 3호선 사직역 안내방송은 강민호의 몫이었다.

입단 초기에는 프로입단 첫해인 2004년엔 겨우 3경기만 출전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주전 포수였던 최기문이 병역 문제로 2005년 스프링캠프를 참가하지 못하게 되면서 강민호에게 기회가 왔다.

응원만 하던 초등학생
프로야구 선수의 길로


2006년 포수로서 역대 3번째로 전 경기 출전의 위업을 일궈냈다. 포수로서 아직 설익은 기량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플레이하는 모습과 투고타저 시즌임에도 0.251의 타율과 9홈런, 53타점을 기록하며 타자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008년은 강민호에게 최고의 한 해였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고, 소속팀에서도 시즌 122경기에 출전해 타율 19위, 홈런 공동 5위, 타점 6위를 기록해 팀이 8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팀 내 포수 최초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강민호는 2011, 2012, 2013년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3년에는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와 총 4년간 보장액 총 75억원(계약금 35억, 연봉 10억)이라는 계약을 체결하며 당시 역대 포수 최고액을 기록했다.

FA 계약 이후에도 2015년 KBO 리그 역사상 포수 최초로 3할 30홈런을 달성했다. 역대 포수 OPS 1위를 기록하는 등 KBO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16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다시 한 번 호성적을 거두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7년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개인 통산 5번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적의 뒷말

강민호는 2017년 시즌 후 FA 자격을 재취득했고, 11월21일 계약금 40억원, 연봉 총액 40억원 등 4년 총액 80억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이는 2014년 당시 본인이 기록했던 역대 포수 최고액(4년 75억)을 다시 한 번 갱신한 금액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프런트와 팬들 모두 2차 FA고, 선수 역시 팀에 대한 애정이 넘쳤기에 롯데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삼성 라이온즈로의 이적은 충격적이었다.

롯데와 삼성이 같은 금액인 80억원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으로 이적하자 이와 관련해 수많은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면 계약설’ ‘계약 축소 발표설’ ‘추가 옵션설’ 등이 난무했다.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계약 이후 “15년 동안 뛰었던 팀에서 변화를 준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삼성에서 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줬다. 다가오는 그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협상을 대하는 진정성에서 차이가 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드릴 수 없지만, 돈 때문에 결정한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추후 보장 금액인 80억원 이외의 추가 옵션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옵션을 포함하면 총액이 최대 90억원에 달했다.

이후 KBO는 구단과 선수간의 FA 계약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계약과 연봉에 해당하지 않은 옵션 내용도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하고, 계약과 관련된 증빙 서류 제출도 요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부진과 부활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 후 2월21일 니혼햄과의 첫 번째 실전 연습경기에서 첫 타석부터 비거리 110m 홈런을 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첫 번째 시즌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2018년 시즌 강민호는 타율 0.269, 출루율 0.331, 장타율 0.457, OPS 0.788, WAR 1.97, WRC+ 90.2, 22홈런, 71타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홈런과 타점은 예년과 비슷한 기록이었고, 오히려 타점은 지난 2년보다 더 증가했다.

하지만 OPS와 WRC+, WAR이 지난 3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물론 포수라는 포지션을 감안했을 때는 준수한 성적이었지만, 4년 총액 80억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로서는 아쉬운 기록이었다. 


2019년 시즌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 투표에서 최고 득표 수로 주장으로 선임됐다. 선수협 회장 투표에서는 이대호에 이어 득표수 2위를 차지하며 리더십을 인정받는 등 기대를 모았다.

이도 잠시. 2019년 시즌 역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초반에는 타격 페이스가 나쁘지 않았으나 6월부터 잦은 부상과 타격 부진이 심해졌다. 9월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는 상대팀 선수인 신본기와 잡담을 하다 견제사를 당했다.

이 사건 이후로 많은 팬들과 언론의 질책을 받았으며 구단 자체 벌금도 냈다.

2019년 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강민호가 다시 기량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 시즌을 앞두고 예년과 달리 시즌 전 근황 기사도 없는 등 팬들의 관심과 기대 역시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이듬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부활의 가능성을 보였다.

시즌 초반에는 1할대 타율을 오가며 부진했으며 부상까지 당했다. 부상 복귀 이후에는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로 엄청난 타격감을 보이며 기록을 끌어올렸다. 타율 0.287, 출루율 0.349, 장타율 0.487, OPS 0.836, WAR 3.15, WRC+ 112.6으로 양의지의 뒤를 이어 2020 시즌 KBO리그 포수 WAR 2위를 기록했다.

비록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10개 구단 주전 포수 중에서 양의지의 뒤를 이어 OPS 2위, WRC+ 2위를 차지했다. 이는 롯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7시즌을 넘어서는 성적이었다.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베테랑 포수의 모습을 선보이며 투수진을 이끌었다. 용병들의 KBO 정착에 힘을 보태며 삼성 라이온즈의 외국인 투수 잔혹사를 끝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주전급 선수들의 부상이 겹치며 정상적인 팀 가동이 힘들었던 삼성 라이온즈였지만 강민호만큼은 부상에서 빠르게 복귀하며 묵묵히 주전의 중심을 지켰다.

제2의 전성기

1985년생 소띠 야구 선수인 강민호는 소의 해인 2021년 맞으면서 “소처럼 일하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현재 그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6월23일 기준 총 56경기에서 타율 0.330, 7홈런, 36타점, OPS 0.887을 기록하고 있다. 타율 부문에서는 특히 리그 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6년 롯데 자이언츠 시절 타율 0.323을 기록한 이후 5년 만에 다시 3할대 타율을 기록 중이다.

수비에서도 팀에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 에이스로 떠오른 원태인은 강민호의 조언 속에서 성장하는 중이다. 원태인은 8승으로 다승 2위, 평균자책점 2.59로 이 부문 리그 8위에 자리하고 있다. 투수 WAR은 2.56으로 리그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 투수 뷰캐넌 역시 강민호의 리드와 함께 9승으로 리그 다승 1위, 평균자책점 2.35로 리그 3위, 투수 WAR은 무려 3.69로 리그 1위를 기록 중이다. 

자타공인 한국 주전포수
도쿄서 베이징 영광 재현 

강민호는 마무리 투수 오승환과도 호흡을 맞춰 이번 시즌 21세이브를 합작했다. 오승환은 이 부문 압도적인 1위를 기록 중이다.

오승환은 “강민호 선수는 내가 해외에서 뛰다 와서 처음 접해보는 선수들이 많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안타를 맞거나 홈런을 맞은 뒤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상대 타자의 장단점을 공유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공수에서 활약이 돋보이면서 강민호는 대한민국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 최종명단 24인에 선발됐다. 강민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우승 신화를 창조한 멤버였으며,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단골 멤버로 이름을 올렸지만 최근 몇 번의 대회에서는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무릎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에서도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지 못했다. 대표팀 내 확실한 에이스가 없는 상황에서 김경문 감독은 베테랑 강민호의 리드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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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