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선거판 바꿀 정의당 성추행 파문 막전막후

하늘이 돕는 민주당?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정의당은 창당 이래 최악의 위기에 놓였다. 재보궐선거 ‘완주’ 의사를 밝혀왔던 정의당은 현재 ‘무공천’을 고심 중이다. 여권 내에서는 정의당 표를 대거 가져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지만, 재보궐선거의 책임이 더불어민주당에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 정의당이 최근 성추행 논란으로 대형 악재에 휘말린 모양새인 가운데 강은미 원내대표와 심상전 전 대표가 회의에 참석해 있다. ⓒ고성준 기자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같은 당 소속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의당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정의당은 사건 발생 이후 재보궐선거운동을 중지하고, 비상대책회의(이하 비대위)를 설치했다. 현재 당내에서는 시장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패닉…
분당 조짐

사건은 지난달 15일 저녁, 김 대표가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당무 면담을 위해 식사 자리를 가졌던 게 발단이었다. 면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자리가 끝난 후 차량을 기다리던 중 김 대표가 장 의원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

장 의원은 깊은 고심을 거쳐 사건 발생 3일 뒤 해당 사건을 당에 알렸다. 정의당은 여러 차례 김 대표와 장 의원의 면담을 거쳐 조사를 진행했고,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성추행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다.

가해자인 김 대표도 모든 사실에 대해 인정했다. 김 대표는 “차량 대기 중 피해자가 원치 않고, 전혀 동의도 없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행했다”며 “성희롱, 성폭력을 추방하겠다고 다짐하는 정당의 대표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종철발 대형 악재…공중분해로?
비판 쏟아내는 정치권 ‘내로남불’

정의당은 당 징계 절차인 중앙당기위원회 제소를 결정하고 당규에 따라 김 대표를 직위해제했다. 김 대표에 대한 형사상 고소는 피해자인 장 의원의 의견에 따라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정의당 내에서는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직위해제된 당 대표의 공석을 채우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당 지도부는 총사퇴 가능성을 일축하고, 늦어도 3월 초까지는 새 당 대표를 선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 고개 숙이는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박성원 기자

정의당은 서울과 부산에 각각 단일후보를 내고 후보 공천을 확정한 상태였다. 서울시장엔 권수정 서울시의원, 부산시장엔 김영진 부산시당위원장이 나섰다. 정의당은 후보 단일화를 위한 범여권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독자후보를 낼 것을 강조해왔다. ‘민주당의 2중대’라는 오명을 벗고, 여권 내 차별화된 정책을 선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상승세 민
호재로 작용?

하지만 최근 정의당은 선거운동을 중단하면서 ‘무공천’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무공천으로 성비위 사건을 둘러싼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 제기되면서다. 지금까지 재보궐선거에 귀책사유가 있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향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온 만큼, 정의당 역시 후보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배복주 부대표는 CBS 인터뷰에서 “안타깝게도 이번 재보궐선거는 민주당의 젠더폭력이라는 상황 때문에 (단체장이)궐위된 두 지역의 선거고, 저희 당이 그 선거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며 “공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당이 ‘발전적 해체’에 가까운 수준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공당의 당 대표가 성비위로 사퇴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특히 정의당은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는 점에서 창당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모습이다.

이는 지지율에도 드러난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달 25~27일 사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1월 4주차 주중 잠정집계 결과에서 정의당은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태로 지지율이 4%대로 내려앉았다. 당이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한 같은 달 26일엔 3.4%까지 폭락했다.
 

▲ 김종철 정의당 대표 ⓒ박성원 기자

반면 민주당은 서울에서 6주 만에 국민의힘 지지율을 앞섰다. 민주당은 지난주에 비해 5.8%포인트 오른 32.4%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은 6.6% 떨어진 28.5%였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으로 우상호 의원과의 2파전이 확정돼 주목도가 상승한 효과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계산 분주

다만 정의당이 이번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한 점에서 거대 양당과는 차별화의 모습을 보였다는 호평도 나온다. 민주당은 소속 지자체장의 성비위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내부 비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여성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민주당 인사들이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에게 ‘피해 호소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로 2차 가해를 행한 점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정의당을 향한 여권의 맹비난은 국민들이 더욱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범여권을 거세게 비난했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인권과 성평등 실현에 앞장서 왔던 정의당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라고 했다. 이에 더해 민주당을 향해서는 “사과와 태도에 관한 한 정의당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가기 바란다. 자기편 감싸기, 남의 눈 티끌 찾아내기 경쟁을 멈추고 이번 사건을 정치권 대각성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들 역시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이는 범여권 성추문을 국민의힘의 호재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전 의원은 “민주당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정의당마저 정의와 멀어지는 모습에 국민의 마음은 더욱 쓰라릴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 없는 정의당 무공천?
갈 곳 잃은 표심 민 선점?

그러면서도 정의당을 향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낙인찍어 집단적 2차 가해를 저지른 민주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여권 내부에서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점에서다. 잊힐만 하면 터지는 정치권 내 성추문으로 ‘여권 심판론’이 부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의당 성추문이 터지면서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등 여권 인사 등이 다시 거론되기도 했다.
 

▲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고성준 기자

하지만 국민의힘 역시 안심할 수 없다. 소속 인사들의 성추문으로 국민의힘은 과거 ‘성누리당’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병욱 의원이 스캔들에 휩싸여 탈당했다. 또 당 지도부는 성 범죄에 연루된 정진경 변호사를 추천한 점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 사건은 선거판에서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할까.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권 내에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성추문 이슈가 커질수록 여성인 박 장관의 강점이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정의당의 무공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원래 정의당은 재보궐선거에서 5% 정도 득표율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정의당이 무공천을 선택하면, 이 표의 상당수가 민주당으로 갈 수 있다.

정의당 표
어디로 가나

현재 보수진영은 후보 단일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있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줄다리기로 묘한 기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3월에 예정된 안 대표와의 단일화에 실패할 시 야권 필패는 불 보듯 뻔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의당이 무공천으로 결론낼 시, 민주당은 사실상 범여권 단일화에 성공한 셈이다. 그렇게 되면 아직 단일화에 지지부진한 야권을 상대로 여권은 더 치고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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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