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검찰개혁 ‘진짜’ 이유

창 들었을 때 방패부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10일은 검찰 입장에서 운명의 날이었다. 국회와 법무부에서 검찰 압박을 위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위원회가 법무부에서 열렸고, 국회에서는 검찰개혁의 핵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두 사건의 명분으로 모두 검찰개혁을 내세웠다.
 

▲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서 열린 본회의서 공수처법이 가결 처리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앞서 열린 안건조정위원회에서는 6명 중 4명의 찬성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장 추천위원의 의결 정족수를 기존 7명 중 6명에서 3분의 2로 완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야당 패싱
일방 통행?

사실상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또 정당이 10일 이내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대신 학계 인사 등을 추천하도록 하고 공수처 검사의 요건을 현행 변호사 자격 10년에서 7년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여당은 야당의 개정 의견을 일부 수용, 공수처장에 재정신청권을 주는 특례조항을 삭제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토론 없이 안건을 표결에 부쳤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 11명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기립해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회의장을 찾아 “권력을 잡으니까 보이는 게 없느냐”며 “이렇게 날치기하면 안 된다”고 항의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지난 9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에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국민의힘이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시작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서 “대한민국은 ‘문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문님’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문빠’들로부터 나온다”고 비판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비꼰 내용이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지난 10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87인 중 찬성 187인, 반대 99인, 기권 1인으로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공수처법 원안에 가까운 수정안을 제출하고 유상범 의원이 반대 토론에 가까운 수정안 설명에 나섰지만 의석 수에 밀렸다. 

이로써 문재인정부에서 추진한 검찰개혁의 핵심 정책인 공수처 출범이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여야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자신의 SNS에 “공수처 출범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운영은 더 중요하다”며 “공수처가 가동되면 권력층의 불법적 특권과 불합리한 관행은 사라지고, 공직사회는 더욱 맑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썼다.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
야당 비토권 무력화

반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참으로 참담한 분노가 치솟는다”며 “민주당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수처법 개정안의 통과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이 폭망의 길로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고 확신한다”며 “국민들이 이런 부정, 불법, 비양심, 사기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약 없이 공수처 출범이 미뤄져 안타까웠는데, 신속한 출범 길이 열려 다행이다.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과 특수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 성역 없는 수사와 사정,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부패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었다”며 “새해 벽두에는 공수처가 출범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수처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와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검사징계위도 지난 10일 법무부에서 열렸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징계를 청구해 징계위가 소집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날 징계위는 외부위원인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전남 광양 출신의 정 교수는 2017년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와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정 교수 외에 외부위원으로는 안진 전남대 로스쿨 교수가 참석했다. 또 다른 외부위원 1명은 불참했다.

당연직 위원인 이용구 법무부 차관, 추미애 장관이 지명한 2명의 검사는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과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다. 법률상 징계 혐의자인 윤 총장은 심의에 출석하지 않았고, 대신 이완규·이석웅·손경식 등 특별변호인 3명이 참석했다. 

윤 총장 측은 회의 시작 후 징계위원들에게 추미애 장관이 징계청구자이면서 징계위를 소집하는 건 위반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징계위원들은 윤 총장 측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원 5명 중 신성식 반부패부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기피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
환영의 뜻

이 차관에 대해서는 이미 기피신청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 윤 총장 감찰·징계 청구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심 국장이 징계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확인되면서 기피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징계위는 윤 총장의 기피신청을 ‘기피권 남용’이라면서 기각했다.

심 국장은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하고 징계위에서 물러났다.

징계위는 10일 오전 10시4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장장 9시간 동안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심의를 했지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징계위 회의는 징계위원 기피 신청 판단 등 절차적 논의와 법무부의 징계 사유 설명에 이어 윤 총장 측의 의견 진술 순으로 이뤄졌다. 

윤 총장 측은 류혁 법무부 감찰관, 박영진 울산지검 부장검사,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한동수 감찰부장, 정진웅 차장검사에 이어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징계위는 심 국장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들 증인에 대한 심문과 징계 의결 절차는 오는 15일로 미뤄졌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부터 권력기관 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특히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이면서도 개혁 대상으로 꼽혔다. 당·정·청은 검찰개혁을 위한 제도 입법화에 공들였다.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늦어도 내달 초면 공수처 출범이 가능하게 됐다.

검찰 견제를 위한 마지막 틀이 완성된 것. 
 

▲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해서도 당정청은 연일 검찰개혁을 내세웠다. 추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인사권과 감찰권, 수사지휘권을 휘두르면서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언급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의 징계위 전날인 9일에도 자신의 SNS에 이연주 변호사가 쓴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라는 제목의 책을 일부 발췌해 “공수처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는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책이다. 추 장관은 이 책에서 “검사의 직무관련 범죄를 수사하는 처지에 놓인 검사들은 ‘국민을 배반할 것인가, 검찰을 배반할 것인가’라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중략- 어쨌든 검사들에게 국민을 배신하는 대가는 크지 않으나 조직을 배신하는 대가는 크다”라는 부분을 인용했다. 

9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

문제는 청와대와 집권여당, 법무부에서 명분으로 언급하는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 여론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윤 총장의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 한 이후 공수처 출범과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처리 등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정권을 향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방편으로 검찰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전문 4개사가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추진 방향이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진 것 같다고 답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조치에 대해서도 50%의 응답자가 ‘잘못한 일’이라고 답했다. ‘잘한 일’은 30%로 나타났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자세한 사항은 NBS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총장은 지난해 8월 취임 한 달 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전격 압수수색과 함께 시작된 수사로 윤 총장은 집권여당은 물론 청와대와도 대립각을 세웠다. 올해 1월 추 장관이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에 입성하면서는 ‘추윤대전’이라고 불릴 만큼 끊이지 않는 갈등을 겪었다. 

추 장관은 인사권을 통해 윤 총장의 수족을 쳐냈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주요 사건에서 윤 총장을 배제했다. 집권여당은 윤 총장의 자진사퇴를 압박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자리를 지켰다. 식물총장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윤 총장은 지난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반전의 키를 쥐었다. 

징계위는 결론 못 내고 15일로
때릴수록 윤 총장 지지율 올라 

집권여당의 공세를 작심발언으로 맞받아친 윤 총장에 대해 추 장관은 감찰권으로 맞섰다. 윤 총장은 지방 검찰청 방문 등의 행보를 보였다. 특히 지난달 3일 충북 진천군 법무연수원을 방문해 신임 부장검사를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 강의에서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도 엄정히 수사할 수 있는 검찰을 만드는 것이 검찰개혁”이라고 말했다. 

이후 대전지검에서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문제를 두고 수사에 돌입했다. 감사원에서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결과를 내놓은 이후였다. 월성원전 수사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직원 2명의 구속으로 수사가 그보다 더 윗선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의 소환도 초읽기 상태다.
 

▲ ▲문재인 대통령 ⓒ고성준 기자

이외에도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 조 전 장관 가족 비리 의혹 등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문재인정부 관계자들 연루 의혹 사건이 산재해있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2022년 3월 대선까지 대형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윤 총장에 대한 당정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그의 체급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추 장관과의 갈등이 시작될 무렵부터 대선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한 윤 총장은 최근 조사에서 양강으로 분류됐던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오차범위 밖으로 밀어내고 1위를 기록했다. 

정권 노리니
날려버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국민일보> 의뢰로 지난 7~8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에게 대선주자 선호도를 물은 결과 윤 총장은 25.8%로 단독 1위를 기록했다. 이 대표와 이 지사는 20.2%로 나타났다. 윤 총장은 2주 전(11월23~27일) 조사와 비교해 지지율이 6%p 급상승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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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