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의미와 무의미’ 최병소

1970년과 2020년의 만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종로구 소재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최병소 작가가 개인전을 연다. 최병소의 작업세계를 통해 반예술적 태도, 의미의 해체, 일상적 상황의 활용으로 대변되는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실천과 정신을 조명한다. 
 

▲ CHOI Byungso, Untitled 016000, 1975, Hangers, Dimensions variable_installation size 730 x 430 cm

최병소 작가의 개인전 ‘意味와 無意味 SENS ET NON-SENS: Works from 1974 to 2020’ 전시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최병소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예술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1970년대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을 병치했다. 

반예술적 태도

최병소는 1970년대 초반 전위적 한국 실험미술의 태동과 단색화의 경향을 관통하는 독특한 미술사적 위치에 있다. 전시제목은 최병소의 작품 ‘무제’에 사용된 메를로 퐁티의 저서에서 가져왔다. 

그는 예술과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주류 체계를 부정하며 그 체계를 해체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 그의 작업세계는 이성과 논리 세계의 무의미함을 주장하고, 경험과 물리적 경험성의 중시를 주장했던 메를로 퐁티의 세계관과 그 맥이 닿아있다. 

최병소가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는 5‧16 군사정변과 유신체제에 대한 정치적 좌절감, 그와 동시에 새마을운동으로 인한 경제적 안정과 희망이 공존하던 시대다. 


한국 실험미술의 태동 
단색화의 경향 관통

젊은 작가들은 일부 개방된 문호를 통해 국제미술의 실험적 미술경향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부독재 체제 속에서 실험적 작업과 전시들은 제재와 억압의 대상이 됐다. 

국전과 같은 공인된 무대에 설 수 있는 미술은 추상미술과 단색화 사조로 점차 편중됐다. 1970년대 이후 전개되는 모노톤 회화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성격에 비해 현실에 대한 발언을 직간접적으로 시도했던 실험적 미술활동은 당시 정권에 대한 항거로 읽혀 탄압받았다. 

이처럼 경직된 분위기에서 한국의 실험미술은 그 활동과 위상이 자연스럽게 축소됐다. 최병소는 추상미술의 형식성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직시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실험 정신을 실천하며 단색화와 실험미술의 경계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한국 작가들의 실험적 시도의 원동력에는 형식주의 예술에 대한 저항, 내면으로 침잠하던 추상미술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당시 최병소는 “순수조형에의 의지 확인과 실험의 장이자, 20세기 전반부 예술의 지자체였던 팽팽하게 고양된 캔버스의 평면성, 그 조건 위에서 추구됐던 일루저니즘의 미학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 CHOI Byungso, 0170712 Untitled, 2017, Paper, ballpoint pen, pencil, 110 x 80 x 1 cm

그의 작업 기저에는 반예술적 태도가 깔려있다. 그는 신문지, 연필, 볼펜은 물론이고 의자, 잡지 사진, 안개꽃 등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매체의 순수성,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같은 미술의 위계를 전복시켰다. 

과거 그의 대구 작업실이 침수돼 1970~1980년대에 제작된 작품 대부분이 유실 또는 파손됐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남아있는, 1970년대 사진 작품으로는 유일한 두 작품을 소개한다. 


작업실 침수로 1970년대 작품 유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작품 2점 소개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사진을 이용해 만든 ‘무제 9750000-1’과 의자 위에 사물을 놓고 촬영한 사진·문자를 결합한 ‘무제 97500000-2’는 사진의 시각 이미지를 언어로 해석 또는 지시해 놓은 작품이다. 

최병소의 작품에서 사진의 이미지는 이를 형용하는 문자와 결합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의미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우연적이고 필연적인 어긋남을 의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닐고 있는 두 마리의 새와 그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의 결합, 의자에 올려둔 사물과 그 사물을 지시하는 단어의 결합에서 관람객은 도리어 상황과 현실을 담을 그릇으로 언어가 가진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단어와 사물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관계자는 “최병소는 하찮은 물건과 행위 모두 그 시대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음을 직시함으로써 예술을 생산해내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 이르고 있다”며 “예술과 반예술,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열린 가능성을 탐색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시대를 증언하는 최병소의 실험적 태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2021년 2월2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최병소는?]

1943년생

▲개인전

‘意味와 無意味 SENT ET NON-SENS’ 아라리오 갤러리(2020)
아트바젤 홍콩(인사이트 섹션), 우손갤러리(2019)
우손갤러리(2018)
아트센터 쿠(2017)
마리아룬드 갤러리(2016)
생떼띠엔느 현대미술관(2016)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바이크샵(2016)
우손갤러리(2015) 
아라리오 갤러리(2015) 외 다수 

▲수상


11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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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