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캠프 관계자 사망 사건’ 구자근 의원 공소장 공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30 10:21:15
  • 호수 1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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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측근이 죽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캠프 관계자 사망 사건’이 결국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됐다. 사망자인 황모씨 측은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이 황씨에게 보좌관직을 약속한 후 이를 이행하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끝에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구 의원 측은 그런 약속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일요시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해당 사건의 공소장을 공개한다. 
 

▲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은 지난 10월8일,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구 의원은 21대 총선이 열리기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지금은 고인이 된 황모씨를 세 차례 찾아가 선거를 도와주면 보좌관직을 주겠다고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참모

<일요시사>는 지난 24일 해당 사건의 공소장을 입수했다. 단 공소장에 담긴 범죄 사실은 검찰이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사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재판에 의해 확정된 사실은 아님을 알린다.

공소장에 따르면, 21대 총선에 출마할 계획을 하고 있던 구 의원은 구미 지역 내부 사정에 밝고, 선거 관련 기획 업무에 능한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에 구 의원은 경북 칠곡군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황모씨를 찾아갔다.

황씨는 지난 수십년간 여러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을 도운 이력의 소유자다. 19대 총선을 시작으로 6회 지방선거, 20대 총선, 7회 지방선거 등에서 선거 관련 기획 업무를 도맡았다.


황씨의 지인은 “구미 지역에서 선거 기획을 가장 오래한 전문가를 꼽으라면 황씨일 것”이라며 “선거철마다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후보자가 줄을 섰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선거 도와주면 보좌관” 약속
불이행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

구 의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세 차례 황씨를 찾아가 21대 총선의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공소장에는 구 의원이 황씨에게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자신 있어. 준비 많이 했잖아. 선거 공부를 많이 했어. 이번 선거는 수월해. 공천은 100% 받을 수 있어. 끝나고 나면 니(‘너’의 경상도 방언) 맘대로, 구미는 하고 싶은 대로 해.”

황씨는 국회 보좌관직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이에 여러 후보자들이 선거를 도와달라고 요청할 때면 황씨는 보좌관직 내지는 시장 비서관직 제공을 약속받고 캠프에 합류했다. 그러나 후보자의 낙선 또는 약속 불이행 등 여러 사유로 황씨의 바람은 무산됐다.

구 의원과 황씨는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도 함께 선거를 준비한 바 있다.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예비후보자 신분이었던 구 의원은 황씨를 찾아가 선거운동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황씨는 승낙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황씨가 보좌관직을 원하고 있음을 구 의원이 인지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구 의원은 새누리당 경선에서 탈락했고, 황씨 역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황씨의 아내는 이 같은 남편의 열망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찾아와 “구미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하는 구 의원에게 “구미를 어떻게 마음대로 하느냐. 구미를 마음대로 하려면 보좌관이나 돼야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구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그럼”이라고 답했다.
 

황씨 부부는 그때까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황씨의 아내는 서울에서 내려와 구 의원을 돕는 사람 중 한 명에게 보좌관직을 제공하는 것 아니냐고 구 의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구 의원은 “아니다. 선거 끝나면 집에 갈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황씨의 아내는 지난 7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도 소위 ‘서울팀’의 존재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황씨는 구 의원의 선거 캠프에 정식으로 합류하지 않았다. 공소장에 따르면, 구 의원은 망설이는 황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아, 왜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느냐. 니 방 다 꾸며놨다. 니만 오면 되는데, 왜 안 나오냐.”

진실공방 결국 법정으로
검 “고인에 이익제공 표현”

구 의원은 황씨의 아내에게 황씨가 캠프에 출근하도록 설득해달라고 요청했다. 황씨의 아내는 그런 구 의원에게 황씨가 선거 캠프에 합류해 선거운동을 돕는 대가로 보좌관직을 제공받을 수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구 의원은 “에이, 나도 알고 있지. 그런 것은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장 말미에 ‘이로써 피고인(구 의원)은 선거운동과 관련해 고 황씨에게 이익 제공을 약속했다’고 적시했다.

결국 황씨는 구 의원 캠프에 합류했다. 그러나 기획 담당이 아닌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구미갑 정당선거사무소의 회계책임자로 신고됐다. 미래통합당 구미갑 정당선거사무소는 구 의원의 선거사무소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다. 황씨는 이곳에서 ‘실장’ 내지는 ‘기획실장’으로 불렸다.

회계책임자로 신고됐지만, 담당 업무는 구 의원의 선거 관련 기획이었다. 그는 선거 슬로건과 공약을 짰다. 통합신공항 이전, 금오산 케이블카 연장 등 지역 현안에 대한 보도자료도 작성했다. 각종 언론 인터뷰 답변서 작성도 황씨의 몫이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14일부터 4월18일까지 황씨가 구 의원의 활동과 관련해 제작한 보도자료만 43건에 달한다.

황씨는 21대 총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5월1일 사망했다.

황씨 측은 “선거가 끝난 후 평소 앓던 간경화가 급속히 악화돼 혼수상태에 빠진 뒤 급성 간부전으로 사망했다”며 “구 의원의 배신으로 남편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황씨가 구 의원에게 배신을 당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구 의원은 당선 후 황씨를 보좌관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구 의원은 선거운동의 대가로 황씨에게 보좌관직을 약속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한다.


진실은?

지난 27일 구 의원 측은 <일요시사>에 “당시 구미 발전을 위해(황씨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을 뿐 당선 후 특정한 직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 바가 전혀 없다. 검찰 측 자료를 검토한 결과 고소인 측의 일방적인 주장 외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고소인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검찰이 기소를 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이며, 향후 재판 과정을 통해 당당히 진실을 밝히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구 의원의 재판은 12월 초순에 열린다.
 

<chm@ilyosisa.co.kr>


<구자근 의원 입장문>
캠프 관계자 사망 관련 공직선거법 기소 사건

1. 당시 구미 발전을 위해 황씨에게 선거를 도와줄 것을 요청했을 뿐 당선 후 특정한 직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 바가 전혀 없다. 검찰 측 자료를 검토한 결과 미망인의 일방적인 주장 외에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었다. 객관적 증거가 없음이 수사결과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검찰이 기소를 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 

2. 황씨의 미망인은 선거 직후 약속했던 보좌관직을 이행하지 않아 그 충격으로 황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황씨는 이미 4월초 병원진단을 통해 간경화 진단을 받았고 황달과 각종 병세의 악화로 인해 선거캠프에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3. 검찰과 고소인은 황씨가 보좌관직을 제안받고 선거캠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황씨의 통화이력을 살펴 보면 선거운동 기간 동안 황씨가 당시 후보자와 통화한 이력은 문자 3건이 전부이다. 

미망인의 주장대로 황씨가 보좌관직을 약속받았다면 선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황씨는 선거캠프에서 보도자료 작성 역할만 주로 하였을 뿐 보좌관직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한 바가 없다. 

4. 황씨가 선거기간 동안 병세 악화에도 불구하고 본 의원을 도와준 것과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슬픔에 대해서는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하지만 구미 발전을 위해 선거를 도와달라는 순수한 요청을 보좌관직 제안으로 왜곡하고, 건강악화로 인한 사망의 책임을 본 의원에게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5. 본 의원은 향후 재판을 통해 당당히 진실을 밝히겠다. 또한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구미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의정활동에 매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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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