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연약하면서 강한’ 이진주

세상의 사각지대를 좇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2020년 가을 기획전시장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서 이진주 작가의 개인전 ‘사각’을 소개한다. 이진주는 삶과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찰을 토대로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억의 편린이나 일상의 상징적 오브제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낯설고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 사각 死角 (a) The Unperceived (a) ⓒ 2020 Jinju Lee_세부

우리는 저마다 경험과 사고의 틀 내에서 주관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볼 수 없는 혹은 보이지 않거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들도 있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어딘가 왜곡되거나 결핍된 ‘불완전한 보기’다. 

왜곡과 결핍

이진주는 이번 전시서 이미지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도록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A자 구조로 작품을 배치했다. 펼쳐진 두루마리를 감상하듯, 관람객들은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작품을 따라 움직이며,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필연적인 사각을 발견한다.

이 과정서 삶의 곳곳에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진실의 구조를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작품 사각은 가로 폭 4.8m 회화 2점과 2.4m 회화 1점이 영어 알파벳 A자 형태를 이루는 대형 설치 회화다. 두루마리처럼 가로로 길게 펼쳐진 화면 위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풍경과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미지들은 파편화되고 비논리적이지만 매우 현실적이면서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됐다. 


현실과 닿아 있지만
낯설고 생생한 풍경

발끝으로 아슬아슬하게 디디고 선 현실에 놓인 개인의 경험과 기억, 상상이 스며든 주관적 진경이다. 환경과 종교, 코로나19 등 사회적 이슈와 개인의 평범한 일상이 뒤섞인 중에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며 애쓰고 노력하는 희망을 엿볼 수 있다. 

A면은 삶의 한 단계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마디마디를 상기시키는 흰색 벽으로 구분했다. 그 벽들 사이로 의사가 갓 태어난 아기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리는 모습, 곳곳에 놓인 외래종 식물들, 바닥에 떨어진 종교적 도상, 숭어를 든 손, 곤충 표본 등 다양한 오브제들이 앞뒤가 맞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나타난다.

B면은 어지럽게 뒤엉킨 흰색 광목천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끈적거리는 느낌의 적갈색 물, 핏빛 속살을 드러낸 고무나무, 고무나무 수액으로부터 채취한 라텍스를 말리는 모습 등 무질서한 혼돈의 풍경을 드러낸다.
 

▲ 허망한 수사들 Futile Rhetorics, 2020, Korean color on linen, 68.4x50.7cm ⓒ 2020 Jinju Lee

천을 받치고 있는 가느다란 막대와 얇은 끈들이 무질서함 속에서 서로를 연결하고 지탱하면서 버티고 있다. 

A와 B의 세계를 지나 C면에 다다르면 고요함과 침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검은색 배경의 한가운데에 한 여인과 미성숙한 여아가 눈을 감은 채 앉아있고 주변으로는 눈꽃처럼 잿가루가 흩날린다. 잿가루는 실제 향을 피워 나온 재에 동양화 접착제인 아교를 섞어 조제한 잿가루 물감으로 그렸다.

이진주의 남편 이정배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애도의 표현으로 향을 피우고 재를 모아 물감을 만들어 회화작업을 했는데, 그 남겨진 잿가루를 작품에 사용했다. 


A자형으로 작품 배치
향의 재로 물감 만들어

작품 ‘허망한 수사들’은 이진주의 블랙 페인팅 시리즈 중 하나다. 블랙 페인팅 시리즈는 주로 손이나 얼굴 등 파편화된 신체를 매우 순도 높은 검은색 바탕 위에 배치해 대상을 집중력 있게 드러낸 작품이다. 허망한 수사들 속 인물은 검게 덮인 화면서 유일하게 드러난 얼굴마저 두 손으로 은폐하고 표정을 읽을 수 없도록 만들어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작품 ‘검음, 얼굴들’에서는 마주 겹쳐진 남녀의 얼굴 사이를 뾰족하게 깎은 날카로운 연필 한 자루가 관통한다. 평소 모델을 무표정하게 그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웃에 살고 있는 부부의 인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 검은 배경은 부부 사이에 켜켜이 쌓인 보이지 않는 이면의 복잡한 관계와 심리를 드러낸다. 

불분명한 완성

조숙현 미술평론가는 “이진주의 미학은 한없이 연약한 면을 드러냄으로써 강함을 표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다양한 손의 표정을 포착하는 섬세함, 디테일하게 주변 풍경을 담아내는 정교함, 조명 기법처럼 강약의 조절이 분명한 색 감각, 미완의 분명함보다 불분명한 완성을 추구하는 태도 등은 이진주만이 갖고 있는 스타일이자 예술가의 사회적인 자아와 따뜻한 온기로부터 비롯되는 창작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세계는 불분명하기에 더없이 솔직하고 위태롭기에 스릴 넘친다. 어느 예술가가 말했듯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이진주는?]

▲학력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2003)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석사 졸업(2014)

▲개인전
‘사각 死角’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2020)
‘Tilted’ 트라이엄프 갤러리(2019)
‘SYNAPSE-Life wanders but memories remain’ 에드윈즈 갤러리(2018)
‘Dialogical Self’ BAIKART갤러리(2017)
‘불분명한 대답’ 아라리오 갤러리(2017) 외 다수

▲수상
광주화루 우수상(2019)
송은미술대상전 우수상(2014)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우수상(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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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