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억지 주장’에 뿔난 SK이노베이션 막전막후

‘더 흐리게’ 물타기 작업 노림수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배터리 특허 소송’을 둘러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공방이 멈추지 않고 있다. ‘반박문’에 ‘재 반박문’이 오가며 신경전은 더 격화되는 모양새다. 갈등의 발단은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배터리 기술(특허번호 994) 특허 관련 소송전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선행기술을 탈취한 뒤 특허로 등록하고는 오히려 자신들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며 LG화학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LG화학 폴란드 배터리공장 ⓒLG화학제공

SK이노베이션이 최근 논란이 되는 ‘994 특허’에 대한 LG화학의 주장에 정면 반박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4일부터 특허침해 소송과 관련, 날선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금요일인 4일부터 일요일인 6일까지 각각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상대방을 비판했다.

공개적으로
날선 신경전

LG화학은 지난 4일 오후 “SK이노베이션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어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겠다”며 입장 자료를 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994 특허’는 SK이노베이션이 특허를 출원한 2015년 6월에 이미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선행 기술”이라며 “2013년부터 크라이슬러 퍼시피카에 판매된 LG화학 A7 배터리가 해당 기술을 탑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이 남의 기술을 가져가서는 특허로 등록하고 역으로 특허침해 소송까지 제기했다”며 “이를 감추기 위해 증거인멸을 한 정황을 우리가 지적하자 ‘협상 우위를 위한 압박용 카드’ ‘여론 오도’라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한다”고 지적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994 특허가 자사의 선행 기술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의 994 특허 발명자가 LG화학의 배터리 관련 세부 정보가 담긴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억지 주장”이라며 즉각 반박문을 내놨다. LG화학의 입장문이 발표된 지 약 4시간30분 만에 “994특허는 자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ITC 최종판결 한달 앞두고 감정싸움 격화
LG화학 선제공격 “해당 특허 먼저 보유”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자신들의 기술이 특허화된다고 생각했다면 출원 당시 이의제기를 했을 것”이라며 “특허 출원 시 LG화학의 선행 기술이 있었다면 등록도 안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쟁사의 특허개발을 주시하며 특허 등록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기술이 특허화된다고 생각했으면 이미 특허 출원 당시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SK 빌딩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또 “우리 독자 특허를 마치 원래부터 잘 알고 있던 자신들의 기술인 것처럼 과장, 왜곡하는 LG화학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증거인멸도 없다. 어떤 자료도 삭제할 이유도 없고 삭제하지도 않았으므로 ITC서 소명될 것”이라고 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나온 지 이틀 만인 이날 재 반박문을 내놨다. ‘SK 입장에 대한 당부사항’이란 제목의 입장 자료를 통해 “제발 소송에 정정당당하게 임해달라”고 지적했다.


LG화학은 “특허 소송에 대한 주장도 장외 여론전이 아닌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양사가 충실하게 소명해 나갔으면 한다”며 “떳떳한 독자기술이라면 SK이노베이션서 발견된 LG화학의 관련 자료와 이를 인멸한 이유부터 소송 과정서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고 했다.

반박 재반박
갈등 최고조

사전에 해당 기술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LG화학은 “당시 내부기준으로는 특허로 등록해서 보호받을 만한 고도의 기술적 특징이 없고 고객 제품에 탑재돼 자연스럽게 공개되면 특허 분쟁 리스크도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특허로 등록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원 당시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당사는 경쟁사의 수준과 출원 특허의 질 등을 고려해 모니터링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소송 절차가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는 “제기된 직후 자사 선행기술임을 파악해 대응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떳떳한 독자기술이라면 SK이노베이션에서 발견된 LG화학의 관련 자료와 이를 인멸한 이유부터 소송 과정서 명확히 밝혀라”고 덧붙였다.
 

▲ ▲LG화학 본사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반박 수위를 높였다.

지난 6일,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SK 입장에 대한 당부 사항’이란 제목의 입장문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 소송을 억지·왜곡 주장으로 덮으려 한다”며 “LG화학은 소송을 먼저 시작한 당사자로서 사실을 근거로 정해진 소송절차에 정정당당하게 임해 주길 바라며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 달라”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입장 자료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은 2015년에 지금 논란이 되는 994 특허를 출원했다”며 “LG화학이 (994특허의) 선행기술이라 주장하는 A7이라는 제품은 2013년에 출시했는데, 이미 출시된 경쟁사 제품에 적용된 기술을, LG의 표현에 따르면 ‘훔쳐서’ 무효가 될 특허를 출원할 바보는 없다”고 주장했다.

무산된 합의
싸움 장기화

이어 “이는 특허를 다뤄본 사람에게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고 LG화학도 이를 모를 리 없다”며 “LG화학은 특허 자체에 대한 합리적 논쟁보다 오로지 SK이노베이션을 비방하는 데 몰두하다가 급기야 상식 밖 주장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은 논란의 핵심인 특허 994와 관련해 “특허 994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 LG화학이 그들이 가진 기술을 특허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A7이라는 제품을 내놓고 특허 무효를 주장했을 것”이라며 “LG화학은 소송을 제기한 2개월이 지난 후 제출한 첫번째 서면서 100여개의 특허를 나열하며 선행기술이라 주장했지만 거기에는 A7이라는 제품은 들어 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LG화학이 증거로 인용한 문서들에 대해서는 문서 제목만 제시해 뭔가 있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특허 관련 정보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지적한 문서 중 ‘Creative Idea’를 논했다고 주장하는 파일이라는 문서는 A7 제품에 대한 어떠한 언급조차 없다”며 “2015년 ‘2nd Regular Meeting Material(2차 정담회)’ 또 사내 팀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미팅 자료로서 특허 기술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담겨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994 특허 발명자가 LG화학서 이직한 사람은 맞지만, LG화학이 관련 제품을 출시한 2013년보다 5년 전인 2008년 이직했다”며 “이직했다는 사실과 특허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음은 시간 순서만으로도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SK이노 즉각 반박 “억지 주장 멈춰야 한다”
합의는 난항…제2의 삼성 vs 애플 사건 되나?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손을 들어준 미국 ITC의 예비 판정에 대해 “ITC가 위원 만장일치로 전면재검토(Review in its entirety)를 결정하면서 지워진 문서 중 어떤 문서가 영업비밀이나 LG화학의 손해와 관련된 문서라는 것인지 설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ITC는 분쟁과 관련한 증거가 실제 삭제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994 특허소송서 ITC의 명령으로 SK이노베이션 내에서 LG화학 측 전문가가 2개월간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했다”며 “994 특허에 LG화학의 정보를 참조했거나 이런 사실을 은폐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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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주장하는 증거인멸은 정직한 소송 행위라기보다 소송과 소송 밖 협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비신사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LG화학에는 더이상 억지 증거인멸 주장을 유포하지 말고, 소송 절차 내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실을 가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ITC는 영업비밀 침해 관련에선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고, 내달 최종 판결을 할 예정이다.

예비 판정이 뒤집힐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 합의를 시도했지만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두 회사가 합의점을 찾지못하면 삼성전자와 애플이 7년간 벌인 특허전처럼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장차 크다
절충점 없나? 

양사는 합리적인 합의를 바란다고 하지만 입장 차는 커 보인다. 업계 안팎에선 LG화학이 수 조원, SK이노베이션이 수 천억원을 제시하면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LG화학 관계자는 “합리적인 수준서 합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끝내 멈추지 않는다면 소송 상대방인 SK이노베이션은 어쩔 수 없이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며 “대화를 통해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해결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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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