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LG 인력 빼가기 두 얼굴

우린 되고 너흰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건설자재 업체인 LG하우시스가, 경쟁사가 애써 키워놓은 인테리어 전문 인력을 대거 빼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관계사인 LG화학이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이기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LG하우시스 측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직원 빼가기 의혹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 LG화학 폴란드 배터리 공장 ⓒLG화학

LG하우시스가 경쟁사의 핵심 인력을 대거 영입한 것과 관련해 빈축을 사고 있다. 관계사인 LG화학이 인력 유출 등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고소한 이후라, 업계의 이목이 크게 집중되고 있다.

LG하우시스와 한샘은 41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 선점을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불꽃 경쟁을 펼치고 있다. 거주 트렌드 변화에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기존 주택의 인테리어 수요가 늘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고, 여기에 가구·건자재 기업들의 시장 확장 정책이 맞물리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수십조원 전쟁
핵심인력 영입

LG하우시스는 올해 가전과 인테리어 제품을 원스톱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 채널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LG전자 베스트샵에 LG지인(Z:IN) 인테리어 매장을 열었고, 지난달에는 이마트-일렉트로마트,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 등 유통 업체의 대형 가전 전문마트에도 입점했다.

홈 리모델링 공사 때 인테리어와 가전제품을 동시에 구매하는 수요층을 공략하고, 판매·상담 매장의 이종결합으로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LG하우시스는 수도권과 광역시 베스트샵 20여곳에서 LG지인 인테리어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연말까지 전국 80여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LG하우시스는 홈쇼핑 방송을 통한 창호 판매 등 인테리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1분기 매출액은 723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0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90% 늘었다.

매출의 70% 가량이 건축자재 부문서 발생했고, 실적을 깎아먹는 자동차소재 부문 매각이 실현되면 2분기 실적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한샘은 ‘리하우스’ 브랜드로 업계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리하우스는 공간 패키지 상품 기획부터, 상담, 설계, 실측, 견적, 시공, AS까지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한샘만의 특장점이 돋보이는 브랜드다.

LG하우시스 경쟁사 직원 영입 빈축
2012년에도 논란 “상도의 아니다”

고객은 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디자이너(RD)’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상현실(VR) 서비스를 통해 PC나 모바일 기기서 3D로 구현된 현관, 거실, 침실, 주방 등의 리모델링 공사 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한샘은 RD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6월 현재 전국 510개 리하우스 대리점서 2000여명이 활약하고 있고, 2500명까지 늘리기 위해 상시 채용·교육을 진행한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한샘은 올해 1분기와 2분기 판매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86%, 201% 각각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한샘은 리하우스 부문을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3년 내에 월 1만 세트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LG화학 본사

한샘 관계자는 “지금의 경기침체 상황은 중장기적 시각으로 볼 때 리모델링·인테리어 시장서 독보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확장하고, 시장 주도적 사업자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LG하우시스는 최근 한샘의 시공관리 직원 10여명을 한꺼번에 대거 영입했다. 사실상 경쟁업체 인력을 빼간 것이다. 이 과정서 헤드헌터가 역할을 했지만, 한샘 내부에선 “상도의가 아니다”라며 발끈하고 있다.

1위 되려고?
손쉬운 방법

홈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은 토털 홈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 디자이너(RD)를 집중 양성해왔다. 현업 종사자는 전문성을 강화하고 신입 RD 등도 확충해왔다. RD는 한샘 리하우스 대리점에 소속돼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필요한 고객 상담과 디자인 설계, 시공감리 등 인테리어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홈 인테리어 전문가다.

여기에 자극받은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 경쟁력을 한번에 올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대거 영입해갔다는 분석이다.

창호, 바닥재, 인조대리석 등 건축자재와 산업용 필름이 주력인 LG하우시스는 ‘LG지인’ 브랜드를 중심으로 LG전자와 협업하는 등 인테리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샘과의 인테리어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샘이 RD를 직접 육성하는 등 2등과의 ‘초격차’ 전략을 내세우자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의 대거 영입으로 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사업서 1위인 한샘의 기존 사업을 손쉽게 따라가려고 한 것 같다”며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하면 시공협력 업체들도 한꺼번에 데려오는 효과가 있어, 땅 짚고 영업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고성준 기자

이에 대해 LG하우시스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샘 내부의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겨 LG하우시스로 대거 이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샘은 정통적으로 영업력을 중시해 높은 인센티브를 줘왔고 영업능력이 검증된 경력직을 선호해왔는데 올해는 신입 공채를 늘리면서 공채와 경력직간 연봉과 업무분장 등에 대한 불만이 생겨 이직 인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샘의 성과지표에 따른 보상 체계 개편으로 상위 등급 연봉 상한폭이 하향 조정되면서, 연차가 높은 인력들이 대거 LG하우시스로 이직하는 촉매가 됐다는 게 LG하우시스 측 설명이다.

아전인수
아이러니

하지만 한샘의 연봉이나 처우 등은 경쟁사와 비교우위에 있어 자발적인 인력 이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실제 1000여명에 달하는 한샘 RD는 판매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감안하면, 연봉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LG하우시스가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한 것에 그치지 않고 구매 담당이나 개발자 등에 대한 영입에도 나설 전망인 만큼 한샘과의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도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너무 많이 빼가는 바람에 한샘이 LG하우시스에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정도로 갈등이 표출됐다.

관계사인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서, LG그룹 자체의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말 영업비밀 침해 및 인력 빼가기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지난해 5월 LG가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1년여 만에 검찰에도 사실 규명을 요구한 셈이다.

관련 업계에선 “미국 소송서 양사 합의 가능성이 낮아져 국내로도 전선을 넓히는 것 아니냐”라고 봤다.

LG화학, SK이노 소송 상황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먹칠

LG화학은 2017년 자사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국내서 “영업비밀이 유출됐다”며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왔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미국 ITC에도 같은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오는 10월 최종 결과를 앞두고 있다.


LG화학은 “정확한 사실 관계 규명을 위해 경찰에 이어 검찰에 고소장을 낸 것”이라며 “검찰에 의견서를 접수하는 절차가 현실적으로 없어 고소 형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LG화학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을 압박하기 위한 고소라는 분석이다.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영업 비밀이 유출됐다”며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LG화학은 지난해 1월 대법원서 최종 승소했다. 이어 지난해 4월 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 강계웅 LG하우시즈 대표이사 ⓒLG하우시즈

이와 관련해 미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변론 등 절차 없이 최종 결정을 낸다는 ‘조기 패소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린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정황 등을 이유로 예비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양측의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해왔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측은 공개채용을 통해 인재들을 영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월 국내 법원에 “LG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와 달리 LG하우시스는 한샘 내부서 보상 체계 개편 등으로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겼고, 이에 따라 해당 인력들이 LG하우시스로 이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샘의 연봉 등을 감안하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이번 LG하우시스의 인재영입이 기업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엇갈린 주장
갈등 대폭발

이와 관련해 LG하우시스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홈페이지를 통해 채용 공고를 내고 인테리어 관련 경력사원 채용을 진행했고, 당시 공개 채용 과정에는 한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의 경력자들이 지원했으며 서류전형-면접-인적성검사 등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합격자 중에는 한샘을 포함해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서 근무 경험이 있는 지원자들이 포함돼있었고, 공개적인 채용 절차를 거쳐 지원자의 업무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해 채용했을 뿐 의도적으로 특정 회사의 직원을 빼내오기는 결단코 아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관계사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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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