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옥죄는 ‘삼각 포위망’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15 11:39:41
  • 호수 1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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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아미타불’ 다시 긴장모드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중대 기로에 섰다. 북한은 대화의 창구를 끊었으며, 국내에선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가 안팎에선 문재인정부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중략) 우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중략) 6월9일 12시부터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

갑작스런
태도 변환

이는 지난 8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남사업 부서 사업총화회의서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김 부부장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지 닷새 만이다. 지난 4일 그는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차단하라는 북한 측의 압박이다.


북한은 경고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나섰다.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핫라인이 설치 2년 만에 끊겼다. 청와대는 1차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2018년 6월20일 핫라인을 개통한 직후 4분19초 동안 북한 측과 시험통화를 하기도 했다.
 

▲ 판문점 남측 분계선 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핫라인은 문 대통령의 유화적 대북정책의 상징이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문 대통령의 핫라인 사용 여부가 관심을 받았다. 청와대는 실제 핫라인을 사용했는지 밝힌 적은 없다.

핫라인은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북 정상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끊긴 것은 청와대 핫라인뿐만이 아니다. 통일부·국방부와도 연락이 끊겼다. 통일부는 지난 9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업무 개시 통화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국방부는 같은 날 남북 간 군 통신선을 통한 정기 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여정, 남북 연락선 모두 차단
반기문·주호영 “대북정책 잘못”

외신들은 이번 사태를 긴급 속보로 다뤘다. AFP 통신은 지난 9일, 통신연락선 차단에 대한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전하며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했다고 해석했다. 로이터통신은 북한의 조치가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려는 노력에 중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북한 당국이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위협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가 북한 액션플랜의 첫 단추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조치가 김 부부장 등이 심의한 ‘단계별 대적사업계획’의 첫 단계라고 밝혀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북한의 다음 액션 플랜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남북군사합의 폐기 등이 예상된다. 그중 남북군사합의는 문 대통령이 자랑해온 대북관계서의 성과 중 최고로 꼽힌다. 지난 2018년 9월19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만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 즉 남북군사합의에 서명한 바 있다.


남북협력 교류를 넘어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존폐 위기다. 2016년부터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지만, 평화의 상징으로서 가치가 있다. 북한이 실제 개성공단 철거에 나선다면 이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이런 상황서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곳곳서 높아지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6일 현충일에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메시지를 통해 “정부는 평화를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가되, 국민적 공감이 결여된 대북정책으로 국민의 안보의식에 분열이 생기지 않도록 숙고하고 통찰해야 한다”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흔들림 없는 국제공조를 이뤄, 북한의 핵 도발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문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민의 안보 의식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군사합의
위태롭다

반 전 총장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대통령 직속 기구(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위원장이다. ‘국민적 공감이 결여된 대북정책’은 문 대통령의 대북유화정책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래 유화 메시지를 북한 측에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은 기고 전문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다.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를 실천해나간다면 국제사회도 이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보낸 바 있다.

대북유화정책을 지속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기존 노선을 고수하고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북유화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취임 4년 차를 맞은 상황서 보수 야권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긴급 안보 간담회를 열고 “정부는 불통적인 대북유화정책을 포기하고 현실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자리서 “북한 측이 남북 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적대관계로 전환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폭언을 한 것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평화 프로세스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주영대사관 공사였던 탈북민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북한 대남전략은 대적투쟁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대적투쟁을 우리 민족끼리로 포장했을 뿐이고 수틀리면 대적투쟁 본색을 드러냈을 뿐”이라며 “북한이 도발 명분을 찾는 데 미국에 (시비를)걸지 못하고 가장 비겁하게도 치졸하게도 힘 없는 탈북민이 보낸 삐라(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쪽) 몇 장을 가지고 도발 명분을 찾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 이후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논설서 “이후에 판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북남(남북)관계가 총파산된다 해도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응당한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인민의 철의 의지”라며 적대감을 보였다.


남남 갈등
더욱 고조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같은 날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원 리영철의 글을 통해 “평양과 백두산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무엇을 하겠다고 믿어달라고 할 때 같아서는 그래도 사람다워 보였고, 촛불민심의 덕으로 집권했다니 그래도 이전 당국자들과는 좀 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선임자들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다.

앞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20일 백두산 천지를 찾았을 때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북한의 비판은 이례적이다. 그간 북한이 문정부에 대한 비방 때도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언급은 삼갔었다. 이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동력이 힘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 입장서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는 급랭됐으며, 과거 보수정권 때보다 더한 긴장관계가 형성됐다. 북한은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대적사업 계획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부·여당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 의지를 밝혔지만,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한 바 있다.
 

▲ 김여정 북한 제1부부장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다고 해도 북한의 격앙된 태도를 바꿀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북남(남북)관계가 총파산된다 해도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응당한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논설을 낸 <노동신문>은 북한 주민들이 모두 볼 수 있는 당 기관지다. 북한 측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당장 미국의 도움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내부서 흑인 사망 항의 시위 등이 열리며 어지러운 상황이다.

군사 도발 가능성↑
대북유화정책 기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9일(현지시각) 북한의 통신연락선 완전 차단·폐기에 대해 “실망했다”고 표현하자,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같은 날 “제 집안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집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며 함부로 말을 내뱉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좋지 못한 일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권 국장은 미국의 어지러운 내부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남남갈등으로 시끄럽다. 통일부가 지난 10일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민단체 2곳을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통일부가 불과 몇 달 전엔 단속할 근거가 없다더니 ‘김여정 하명’이 있고 나서 이제는 남북교류법으로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지난 11일 입장문을 통해 “오래전부터 대북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를 일체 중지했고, 북한 측도 지난 2018년 판문점선언 이후 대남전단 살포를 중지했다”며 “정부는 앞으로 대북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며 통합당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국민 여론도 팽팽히 맞선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0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11일 발표한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 찬반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50.0%, 반대가 41.1%, 잘 모르겠다가 8.9%로 집계됐다.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문병희 기자

같은 조사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전주보다 1.6%포인트 하락한 57.5%로 나타났다. 대통령 지지도보다 대북전단 금지법 찬성이 7.5% 낮은 상황이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서도 대북전단 살포를 원하지 않는 여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한미연합
합동훈련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9·19남북군사합의에는 군사분계선(MDL) 5㎞ 내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전면 중단, 동·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일정 구역을 완충수역 지정, MDL 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사항이 담겨 있다. 만약 북한이 9·19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한다면, 접경지대에서의 군사적 긴장감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한미 군 당국은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미사일방어체계 통합연동훈련을 실시했다. 대적사업계획 등 군사도발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북한을 향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왜’ 김정은 대신 김여정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대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면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북한 전문가들의 해석을 종합하면, 남측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변환시킬 여지를 남겨두기 위함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0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서 열린 통일연구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양새를 통해 향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정상우의’ 차원서 상황을 역전시킬 여지를 두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유사한 사례가 있다. 지난 3월 김 부부장은 자신 명의의 첫 담화서 청와대를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이 지난 7일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서 대남정책을 의제로 거론하지 않은 점 또한 김 위원장이 적대적인 대남정책을 주도하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함으로 읽힌다.

홍 위원은 “보도는 안됐지만, 이 정치국 회의서 최근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모종의 의논이 있었을 것”이라며 “보도된다면 김 위원장이 이걸 주도하는 것처럼 해석이 되기 때문에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려는 게 아니었나 싶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계획된 수순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백두산을 등정했을 시점부터 대남정책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의 백두산 등정 후 김 위원장이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직접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대남정책 전환이 늦춰져 지금에 이르렀다고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이 진단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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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