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으로 본’ 부모 때문에 속 썩는 스타들 백태

낳아만 주고 평생 발목 잡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더 짙다’고 했던가. 화려한 조명 이면에 안타까운 가정사가 있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부모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기도 하고, 심지어 부모와의 천륜을 끊은 예도 있다. 부모 때문에 속 썩는 연예인들을 짚어봤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김혜수·조여정·차예련

지난해 11월 갑작스럽게 대중의 곁을 떠난 고(故) 구하라는 생전 모친으로 인한, 상처가 깊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하라가 9세 되던 해 집을 나간 뒤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구하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컸다. 

부모의 죄
자식의 한

구하라는 지난 20년 동안 모친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친모가 구하라를 찾온 때는, 구하라가 죽은 뒤였다. 구하라의 친오빠인 구호인씨에 따르면 친모는 장례식장에 상복을 입고 엄마 행세를 하려고 했다. 구씨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친모께서 상복을 입겠다고 하셨는데, 동생 지인들에게 ‘내가 하라 엄마다’라고 보여주는 게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상복을 입게 할 수 없었다”며 “친모를 쫓아냈다”고 했다. 

구하라가 사망한 지 일 주일도 되지 않아 친모는 변호사를 선임해 구하라의 재산을 5:5로 나눠 갖자고 주장했다. 이미 오래전에 남매의 친권을 포기한 친모는 구하라의 재산 분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혈연관계만 있으면 어떤 사정도 보지 않고 무조건 재산을 받을 수 있다. 자녀와 배우자가 1순위, 2순위가 부모다. 자녀와 배우자가 없는 구하라의 상속권자는 친부와 친모다. 


친부는 재산을 포기했지만, 친모는 ‘악마의 탈’을 쓴 듯 법의 빈틈을 노리고 구하라의 재산을 뺏으려 하고 있다. 

유족은 모친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상속 분할심판 청구를 제기했고, 모친은 이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 서면을 냈다. 

상속, 빚투, 탈세…고통 방식 다양
연예계에 불어 닥친 ‘양육의 비밀’

참다못한 구씨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통해 ‘구하라법’에 대한 청원 글을 올렸고, 빠른 기간 안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양육 의무를 현저히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한 해 상속 결격 사유를 추가하는 내용이 구하라 법의 골자다. 하지만 법 개정이 된다고 해도 구하라의 유족들은 소급 적용 금지 원칙에 따라 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구씨는 “앞으로도 발생하는 피해자를 막고자 하는 마음서 청원 글을 남겼다”고 밝혔다. 

비록 오빠가 구하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생전에도 모친으로부터 받은 아픔에 사무쳤던 구하라는 하늘서조차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 고 구하라 ⓒ사진공동취재단

최근에는 배우 장근석이 모친과 불화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근석의 모친은 수십억원의 세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배우 장근석의 모친이자 전 소속 연예기획사 트리제이컴퍼니 대표인 전모씨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장근석 측은 지난 2일, 탈세 혐의에 대해서는 사과하면서도, 이는 소속사 대표였던 모친이 전적으로 주도한 일로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장근석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모친의 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 모친이 보여준 모습에 크게 실망했고, 모든 사실을 숨긴 것에 가족으로서 신뢰마저 잃었다. 단호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늘이 정한 
인연 때문에…

하늘이 정한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천륜이라 한다. 구하라나 장근석처럼 천륜 때문에 상처받은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돈 때문이다. 성공한 자식의 이름을 차용해, 빚을 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빚을 지고, 자식이 성공했음에도 갚지 않은 예도 있다. 

이른바 ‘빚투’가 2018년 연예계를 휩쓸었다. 빚투는 가족이나 친척 등이 사기를 치거나 돈을 갚지 않는 물의를 저질렀다는 의혹들이 연이어 폭로되는 일련의 사회 현상을 일컫는다. 

래퍼 마이크로닷은 사실상 빚투 운동의 시발점이자 가장 악질적인 사례로 꼽힌다.

1998년 5월경, 충북 제천서 목장을 했던 마이크로닷의 부모는 주변 지인들에게 사기를 쳐 거액의 돈을 속여 뺏은 뒤 뉴질랜드로 도망갔다. 총 14명의 이웃으로부터 빌린 돈은 4억원여다. 항간서 증언들이 꾸준히 회자됐던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마이크로닷의 부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됐고, 원심은 물론 항소심서도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받았다. 
 

▲ 마이크로닷 ⓒSBS플러스

마이크로닷의 경우 부모의 죄질이 심각했을 뿐 아니라, 마이크로닷 역시 ‘사기의 수혜자’로 취급됐다. 아울러 마이크로닷 측은 대처 과정서도 거짓말을 하는 등 최악의 언행을 보였다. 연예계서 퇴출당한 마이크로닷을 향한 여론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빚투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대다수 연예인이 빚더미에 앉은 부모로 인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불화 그리고
불우한 가정사

대표적으로 배우 김혜수다. 김혜수의 모친은 사업을 이유로 지인들로부터 약 13억원을 빌린 뒤 몇 년이 지나도록 갚지 않았다. 김혜수의 모친으로부터 돈을 빌려준 사람 중에는 현직 국회의원도 포함됐다. 


피해자 대다수가 김혜수의 이름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김혜수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금전 문제로 인한 불화로 8년 가까이 연락이 끊겼다”며 “어머니가 혼자 행한 일들에 개입한 적 없다. 어머니를 대신해 법적 책임을 질 근거는 없다고 확인된다”고 솔직하게 밝혀 응원을 받았다. 

걸그룹 마마무의 휘인은 아버지의 과거 채무로 인해 빚투 폭로를 당했다. 이에 휘인은 2012년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과 함께, 모친이 결혼 당시 부친의 빚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았다는 사연을 소상히 전했다.

배우 차예련은 15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아온 부친의 빚 약 10억원을 갚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차예련은 “아버지의 사건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다. 또 내 이름을 믿고 빌려줬다는 말에, 책임감을 느꼈다”며 빚을 갚아온 이유를 말했다.

배우 조여정과 한고은도 아픈 가정사를 고백했다. 조여정은 “과거 부친의 채무로 인해 부모님은 이혼했고, 이후 아버지와 교류가 없었다. 아버지와 연락을 취하려 노력했지만, 거처도 번호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알렸다. 
 

▲ 개그맨 김영희 ⓒ인스타그램

빚투 폭로를 당한 한고은 역시 미국 이민 이후 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졌다고 밝혔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생활비를 지원해주며 힘들게 지낸 것은 물론 여러 채무로 인해 촬영장서 협박을 받고 변제해주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드러난 안타까운 가족사
“천륜 끊었다” 연예인도


이 밖에도 개그맨 황제성, 비투비의 이민혁, 배우 마동석, 김보성, 티파니 등이 빚투를 통해 안타까운 가족사가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한 바 있다. 

빚투 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부모와의 불화가 대중에 알려진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축구 선수이자 최근 방송인으로 전향한 안정환과 가수 장윤정이 있다. 안정환은 모친과 외삼촌이 1억5000만원을 빌려 갔으나 20년 동안 갚지 않았으며, 이 사건과 별개로 과거 1억원대의 빚으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안정환은 한 매체와 인터뷰서 “선수로서 성공을 거둔 후 이른바 ‘빚잔치’를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아들 훈련과 양육을 명목으로 빌리신 돈 중에 실제로 제가 받은 지원이나 돈은 한 푼도 없었다”고 밝혔다.

장윤정 역시 모친과 오랜 갈등을 고생했다. 장윤정의 모친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13년 언론 및 방송 매체를 통해 알려졌고, 극심한 입장 차이를 보이며 진실공방을 벌였다. 

장윤정의 모친과 남동생은 각종 매체에 나와 장윤정이 모친을 정신병원에 넣으려 했다는 점과 음주운전 등을 거론하며 비방했으며, 2014년 장윤정의 소속사에 빚을 갚으라고 소송을 걸기도 했다. 이 소송서 장윤정의 모친은 패소했다.

오래된 상처
공방전으로 

장윤정은 2013년 SBS <힐링캠프>서 “내가 지금까지 번 돈은 어머니가 모두 날렸다. 어느 날 은행서 연락이 와 찾아가 보니 은행 계좌 잔고에 마이너스 10억원이 찍혀 있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샀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타들의 부모 불화 대처법
응원과 이미지 훼손 사이

수많은 연예인들이 ‘빚투’ 등 좋지 않은 문제로 대중의 입방아에 올랐다.

빚투가 ‘현대판 연좌제’의 부정적인 성격을 띤다는 걸 대중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어, 연예인들에게 꼭 나쁜 여론만 형성된 것은 아니다. 대처방식에 따라 응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의 심리를 읽지 못한 잘못된 언행으로 씻을 수 없을 정도의 이미지가 훼손괸 경우도 있었다.

▲발 빠른 사과와 문제 해결 = 배우 마동석은 빚투 사태 때 가장 교과서적인 대처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부친이 5억원의 채무가 있었다고 밝혀지자 마동석은 소속사를 통해 “금액 부분에서 차이가 있어서 재판을 진행한 부분과 함께 판결에 의해 갚아야 할 금액을 모두 지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해명했다. 발 빠른 사과와 함께 문제도 깔끔하게 처리한 데 이어, 반성하는 태도까지 보인 그의 언행에 대중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고통스러웠다’ 호소 = 빚투 연예인 대부분이 자신의 상황을 호소하면서 대중의 비판을 면했다. 김혜수와 마마무의 휘인, 한고은, 조여정, 개그맨 황제성 등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과거사를 소상히 밝히면서, 부모와의 인연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다수가 더 큰 반박 없이 조용히 넘어가게 됐다. 이를 알게 된 대중은 호소형 연예인들에게 안타깝다면서 동정심을 보였다.

▲돈 갚고 ‘말실수’ = 대표적으로 래퍼 도끼가 이 부분에 해당한다. 값비싼 호텔에서 거주하는 것은 물론 호화스러운 차량을 소유한 것을 일종의 ‘스웨그’로 표현했던 도끼는 모친이 과거 1000만원의 빚을 갚지 않아 논란이 됐다. 그러자 도끼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저희 어머니는 사기 친 적 없다. 1000만원? 불만 있으면 오라고 해라. 내 한 달 밥값밖에 안 된다”고 해 또 다른 구설수를 낳았다. 어찌 됐든 피해를 받은 피해자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후 도끼는 피해자를 만나 모두 변제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 측이 “도끼는 정중한 청년”이라고 입장을 내놨지만, 그의 훼손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도끼는 호된 곤욕을 치르면서 느낀 심경을 신곡 ‘말조심’에 담기도 했다. 

▲잘못된 사실 확인 = 개그우먼 김영희는 빠르게 대처하려다 오히려 더 큰 논란에 휩싸였다. 부모가 6600만원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는 폭로를 당한 김영희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재무 변제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는 김영희 부모가 돈을 갚은 것은 10만원이었으며, 이는 ‘입막음용’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대중은 김영희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잘못이 있음을 인지한 김영희는 연극 공연에 앞서 무대에 올라 “물의를 빌어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각종 방송 및 셀럽파이브 등 활동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KBS2 <스탠드업! 스페셜>에 출연해 “작년 겨울 무척 추웠지만, 지금은 원만하게 해결됐다. 상처받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거짓 대응 ‘최악의 수’ = 빚투의 시발점인 마이크로닷은 최악의 사례로 꼽힌다. 첫 의혹이 드러난 후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마이크로닷은 피해자가 늘어나자 각 피해자를 만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도 거짓말이었다. 

사태를 해결한다고 해놓고 뉴질랜드로 떠나 잠적했다. 20년 만에 합의에 나섰음에도 이미 ‘골든 타임’은 지났고, 대중의 반응은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싸늘하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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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