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유산슬 메이커’ 유벤져스 3인방 직격 인터뷰

“트로트 전성기, 눈물이 날 지경”

[일요시사 연예부] 함상범 기자 = 트로트에 ‘ㅌ’도 몰랐던 신인 가수 유산슬(본명 유재석)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그가 부른 ‘합정역 5번 출구’는 전 연령대의 모닝콜이자 18번이다. 유산슬을 국내 최고의 트로트 스타로 만든 세 사람이 있다. 대중은 유벤져스라고 한다. 스스로를 박토벤이라 칭하는 박현우 작곡가(이하 박토벤)와 천재 편곡가 정경천(이하 정차르트), 이 두 사람을 살피며 늘 중재하는 60세 막내 이건우 작사(이하 작신)가 그 이름이다. 가요시장의 변두리에 있던 트로트를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반백 살을 훌쩍 넘어 인기의 정점에 오른 대가들의 진심을 들어봤다.
 

▲ ⓒ문병희 기자

“아이고 죄송합니다.” 막내 이건우 작사가가 뒤늦게 동묘역 인근에 위치한 박현우 작곡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막내가 제일 늦어서 부끄럽네”라며 미안함을 표한 그는 “광고며 방송이며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그거 처리하다가 늦었다”며 고개를 연신 굽혔다. 이어 “형님들, 우리 대박났어”라며 최근에 들어온 출연 요청 관련 내용을 쫙 읊는다. 광고만 무려 10개가 넘고, 지상파 예능과 각종 인터뷰, 웹 예능까지 온갖 미디어서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대박이네 대박” “우리가 매니저를 잘 뒀어”라는 형님들의 추임새도 이어진다. 

세 사람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갑작스럽게 투입된 뒤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5분 만에 곡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가 하면, 쉬우면서도 시적인 가사에 포인트를 딱딱 짚어내는 편곡 실력으로 대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거기에 조금도 꾸밈없이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들의 활약 덕에 트로트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TV조선 <미스트롯>을 발판으로 유산슬까지 이어지면서 트로트는 약 50년 만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대중의 사랑에 따라 스케줄이 워낙 몰아닥친 탓에 박토벤은 ‘링거 투혼’을 발휘해가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정차르트는 자제로부터 ‘스타 아버지’라는 대우를 받고 있으며, 작신은 환갑의 나이에 매니저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솔직하고 유쾌한 세 사람의 입담은 카메라가 없는 인터뷰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놀면 뭐하니?> 이후 삶이 완전히 바뀌신 것 같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박토벤(이하 박): 예능 프로그램 이후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이렇게 바쁘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적이 없었다. 작곡해달라는데도 시간이 없어서 처리를 못 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작신(이하 작): 저는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또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다. 길거리서 많이 알아보고 사인도 해달라고 하는데,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기분은 좋다. 

▲박: 작신은 요번에 CF할 때 춤을 잘 춰 가지고 춤 선생으로도 소문났다.

▲정차르트(이하 정): 내가 집에서만 일하니까 애들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유명한 사람으로 보고 있더라. 음식점 갔는데 돈을 안 받아서 곤란할 때도 있다. 나나 형(박)이나 70대가 넘었는데 남들이 시기를 할 정도로 대박이 나서 기쁘고 좋다. 

- 세 사람을 두고 ‘유벤져스’라고 하는데, 마음에 드나?

▲작: 원래 어벤져스인데, 유산스를 만들어줬다고 해서 유벤져스라고 하는데, 그 마음이 정말 좋다. 원래 교통방송서 시작한 말이라는데 고맙다. 

▲박: ‘최일구의 허리케인’이라 하는데 11월에 한 게 13만 조회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1월 6일에 또 했고. 


- 세 분 덕분에 트로트가 다시 완전한 전성기에 돌입한 것 같다. 트로트의 전성기를 보는 마음이 남다를 것 같다.

▲작: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사실 가요시장이 성인가요와 젊은 층의 가요로 양분됐는데, 최근 들어 성인가요도 젊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트로트였다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완전히 갈라졌다. 다시 기회가 온 만큼 작곡가나 작사가들끼리 정말 좋은 노래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 TV조선 <미스트롯>이나 <놀면 뭐하니?>한테 정말 감사하다지.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으로 트로트를 알려줬으니 정말 고맙다. 

▲정: 좋은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서, 이 인기를 잘 유지해야 한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을 거다. 

스타덤에 오른 6070 ‘음악의 대가’
“‘뉴스타’가 있어야 바람이 분다”

- 성인가요가 왜 인기가 없어진 것 같나? 이렇게 듣기 좋은 노래가 많은데.

▲작: 어떤 영역서든 바람이 불려면 뉴스타가 필요하다. 트로트는 새로운 스타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미스트롯>의 영향이 대단히 큰 것이다. 스타가 확대 재생산이 돼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고정적인 사람들만 매일 보게 됐다. 스타가 없으니 인기도 시들고 프로그램도 폐지됐다. 콘서트는 꿈도 못 꿨는데 <미스트롯>은 미어터진다. 트로트도 점차 콘서트나 버스킹으로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 트로트와 성인가요의 대가들인데, 원래 세 분이 친했나?

▲정: 박토벤 형하고 나하고는 50년 정도 됐다. 가깝게 지냈다기보다는 항상 잊지 않고 지내고 있다가 <놀면 뭐하니?>를 통해서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고, 싸움도 많이 하게 됐다.

▲작; 별로 안 친했다가 방송하는 거다. 방송하는 중에 (서로 안 친한 게) 나오지 않나. 은연 중에. (하하)

▲박: 작신은 한국저작권협회 이사직 역임했고, 난 현 이사고, 정차르트도 3선이다. 작신하고 나는 4선 이사다. 원래 잘 아는 사이다. 

▲정: 여기서 중요한 건 나나 자신은 박토벤을 찍었는데, 박토벤은 우리를 안 찍었다는 거다.(하하)


- 박토벤은 왜 두 분을 안 찍었나?

▲박: 그건 또 그렇게 되더라고. 

- 박토벤은 예술가 기질이 탁월하다. 느낌이 오면 바로 내달린다. 집중력이 어마어마한 것 같다. 두 사람이 보기에 박토벤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정: 박토벤을 평소에 생각했을 때 얌전하고 점잖고, 말이 없는 사람이고 후배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안다고 생각했다. 평상시에 존경해왔다. 그런데 나를 막 깐다.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

▲박: 나는 까는 게 아니고, 이 양반이 나를 까. 형이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정을 가리키며) 못됐다고. 으잉.(하하)
 

▲ ▲▲ ⓒ문병희 기자

▲작: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서 박토벤은 엄청 유명하다. 시청자들이 몰랐을 뿐. 예술가적인 기질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대가쯤 되면 자기 일에 진지하고 철두철미하지 않나. 박토벤은 대가니까.


- 정차르트는 주변을 잘 살피고 눈치도 빠르다. 말도 재밌게 하는 편이다. 두 사람이 보기엔 어떤가. 

▲박: 이 양반 뒷북치는 스타일이다. 

▲작: 형수님한테 레슨을 받고 나온다. 거울 보고 연습하고. 그러지 않고서는 그런 멘트가 나올 수 없다. 

▲정: 전혀 안 그렇다.

▲박: 코드도 제수씨가 해준다고. 

▲작: 방송 분량이 20회가 넘게 있다. 

▲박: 정차르트는 음흉해. 솔직하지 못하고. 나는 가슴을 탁 터는데, 가슴을 안 털어내. 가만히 있다가 엉뚱하게 탁 튀어나와. 예측을 못 한다.

▲정: 이거 봐. 날 또 까고 있잖아. 난 존경한다고 했는데.

- 박토벤이 앞을 보고, 정차르트가 주위를 보면, 작신은 두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막내로서 특화된 것 같다. 두 형님은 후배를 어떻게 보나. 

▲박: 작신은 평소에도 그렇고 얌전하고 남을 배려한다. 정말 정말 내가 예뻐한다. 이 동생의 이런 좋은 점을 정차르트가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건우 아우는 모든 선배들한테 다 잘한다. 우리한테만 잘하는 게 아니다. 괜히 4선 한 게 아니다. 
 

- 지금도 티격태격을 하는데, 방송하다가 진짜로 화가 난 적 있나?

▲작: 많다. 나는 확실히 안다. 그런데 참고 방송을 하는 거다. 두 분다 기분이 엄청 나쁜데 참고 방송하는 거다.(하하)

▲정: 확실히 기분 나빴던 것은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내가 주의를 한다. 그러니까 박토벤이 나를 까기 시작했다.

▲박: 내가 60년에 데뷔를 했고, 그 후에 한참 뒤에 데뷔한 게 정차르트다. 그런데 내보고 작곡 공부하라니까 내가 열이 안 나나?

▲정: 나는 순전히 재밌으려고 한 얘긴데, 그렇게 기분 나쁠 줄 몰랐지.

▲박: 지는 재미지만, 나는 안 좋지. 

▲작: ‘인생라면’ 투표 때 분명히 김태호 PD가 비밀투표라 그랬는데, 우리를 속였다. 제일 아름다운 그림은 정차르트는 박토벤 찍고, 박토벤은 정차르트 찍고, 나는 박토벤 찍으면 좋았는데, 서로 자기를 찍었다. 원래는 내가 무효표를 찍었다. 그러니까 김 PD한테 연락와서 ‘이거 비밀투표인데 이렇게 하면 어떡하냐’고 해서 박토벤 찍은 건데, 그렇게 방송이 됐다. 

▲박: 김태호가 진짜 무서운 사람이야. 

“티격태격? 방송 중에 진짜로 화내”
“유재석은 선하고, 김태호는 무서워”

- 세 사람이 보기에 김태호 PD는 어떤 사람 같나?

▲작: 예능의 신이다. 정말 상상을 못 하겠다. 처음에는 성격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인사도 안 했다. ‘여기는 PD가 인사도 안하냐’면서 우리끼리 얘기했는데, 계속 앞에 있었던 거다. 자기를 알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샤이’한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박: 김태호는 천재다.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뭐가 터질지 모르겠다.

▲작: 추진력이 좋은 건지 그림을 잘 그리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는 박토벤도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건데, 계속 나오고 버스킹에 콘서트까지 갔다. 

▲박: 옆에 PD들도 엄청 칭찬하더라. 그리고 뭐든 말을 안 한다. 유재석 올 때도 유재석 온다고 안 했다. 그냥 신인가수 온다고 했지. 

- 세 사람 다 유재석이 왔는데 전혀 의식을 안 하고 편하게 대하더라. 그 대목이 이 프로그램의 신호탄이었던 것 같다. 

▲박: 내는 선생하고 제자라는 식으로만 생각했지. 스타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래서 막 다뤘다. 신인가수라서 감정도 못 넣으니까 내가 막 보여주고 그랬지. 그게 색다르게 보인 게 아닌가 싶다.

▲작: 유재석이 그쪽에서 대가이긴 하지만, 우리도 조용필, 나훈아랑 술 먹고 자는 사이다. 스타로서 의식이 안 된다. 유재석이 가수도 아니고 나이도 어리지 않나. 그러니까 편하게 되더라. 그냥 유명한 애였다. 

▲박: 그 다음에 정차르트가 오면서 팍팍 재밌어진 거지. 완성품이 된 거다.

- 세 사람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탈권위’에 있다고 본다. 권위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 2030은 그 지점에 열광하는 것 같다. 

▲작: 그게 맞다. 일에는 냉정하지만, 사회생활에는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작곡이나 편곡, 작사는 사실 대가다. 그때는 철저하게 하지만, 사람 살 때는 더불어 살고 싶은 거다. 셋 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 작신이 작사가라 그런가, 말을 잘하긴 잘한다. 
 

- ‘합정역 5번 출구’는 대박이 터졌다. 유산슬의 ‘인생라면’ 어떻게 보는가.  

▲작: ‘인생라면’은 슬로우다. 슬로우를 하려면 세월이 더 가야된다. ‘인생라면’은 진짜 도전이다. 녹음도 더 정교하고 노래도 많이 해야 한다. 야단치고 혼나고 그러다가 울고 그런다. 유산슬한테 그렇게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합정역 5번 출구’는 90% 마음에 들었는데, ‘인생라면’은 아무리 잘해봐야 60% 만족스러울 것 같다. 

▲정: 슬로우라도 멜로디가 쉬워서 잘 따라 부를 거다. 괜찮다. 

- 옆에서 보기에 유재석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정: 참 착하다. 선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인간성 하나는 정말 훌륭하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인사성도 밝다. 

▲작: 차이나타운서 버스킹 할 때 사람들하고 악수하는데 ‘손이 참 차가우시네요’라고 하더라. 그거는 콘셉트로 하긴 힘든 건데 하더라. 사람을 대하는 좋은 애티튜드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도전정신이 있다. ‘뽕짝’을 하든 드럼을 치든 도전정신이 있다. 욕심이 있다. ‘못해요’라고 하지만 악다구니가 있어서 어떻게든 해낸다. 예능이더라도 프로페셔널에 근접하지 않나. 대단한 것 같다.

- 세 분 다 스스로를 대가라 칭하고,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음악을 만드는 가치관이 있나.

▲박: 가사에 따라서 곡이 다 변해버린다. 가사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면서 쉽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합정역 5번 출구’도 국민가요가 됐지. 

▲정: 곡과 가사를 보면 솔직히 알아서 떠오른다. 곡이 안 좋으면 좋은 편곡이 안 나온다.

▲작: 작사와 작곡은 엄마와 아빠다. 편곡은 옷을 입히는 건데, 어떤 옷을 입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허접스럽게 입히면 히트가 안 된다. 이번에 편곡의 힘을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작사를 할 땐 위로를 주고 싶다. 슬프면 슬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어떤 감정이든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쓴다.

- 대가들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있나.

▲박: 인기가 많으니께네,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담배도 함부로 버리면 안 되고, 남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

▲정: 원래 나는 남들 지적을 잘했다. 누가 꽁초를 버리면 뭐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러면 안 된다. 옷도 막 입었는데, 신경을 쓰고 살아야겠더라. 

▲작: 원래 유명해지는 걸 그리 바라지 않았는데, 이미 호랑이 등에 타 버렸다. 아모르파티라고 ‘내 운명을 사랑하자’라는 뜻인데, 어떤 길로 가진 모르지만 앞으로도 운명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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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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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