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 5가지 의혹과 진실

“음원 사재기란 있을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OO처럼 나도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가수 박경은 열사의 위치에 올랐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던 사재기 의혹을 공론화시킨 박경을 향해 대중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반대로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에게는 ‘사기꾼’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중 가장 비난을 받는 팀은 데뷔 18년차 ‘바이브’다. ‘사재기 의혹’이 공론화된 지 1달여 만에 바이브 소속사는 설명회를 열고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 사진제공=메이저9

남성 듀오 바이브와 가수 벤 등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메이저9은 지난 7일 12시와 4시, 두 번에 걸쳐 설명회를 진행했다. 그 배경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방영이 있다. <그알> 제작진과 약 6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는 메이저9의 황정문 대표는 “<그알> 제작진이 사재기 의혹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악의적이고 편협한 방송 보도를 진행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음원 1위
떼돈 번다

이 설명회가 있기 전 대부분 기자는 ‘음원 사재기’의 빈틈을 찾아내겠다는 야심을 갖고 현장을 찾았다. 바이브 소속사를 비롯해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과 소속사, 관련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사재기 업체’로 확신한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두 타임 내내 날이 선 질문이 던져졌다. 메이저9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서 최대한 설명했고, 대부분 막힘이 없었다.

놀라운 점은 메이저9이 공개한 자료의 범위였다. 자사 직원들에게도 밝히지 않을 법한 광고 집행 비용, 매출, 순이익 등의 회계자료를 모두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영업비밀’의 근간이 되는 음악 시장과 SNS 관련 빅데이터, 타 가수의 광고 집행 비용 등 매우 민감한 내용을 대거 공개했다. 이 내용이 공개됐을 때 타 소속사 가수들은 아주 큰 타격을 받을 만한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그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타 회사의 비난마저도 감수하고 진행한 설명회였다.


설명회 관련 기사화가 이뤄졌음에도, 대중은 사재기 의혹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여전히 바이브와 메이저9의 소속 가수들과 의혹을 받는 가수들을 향한 비난이 거세다. 앞서 문화관광부를 비롯해 지니뮤직, 가온차트 등 정부 기관서 음원 사재기의 실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음에도, 사재기 실체에 대한 대중의 의혹은 여전히 강하다.

황 대표는 “멜론이나 지니의 로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정부기관서도 숱하게 사재기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여전히 의혹이 존재하고 있는 배경에는 음원 1위의 실제 매출 크기와 일부 주요 음원 사이트의 알고리즘, 변화하고 있는 음원 사이트 정책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고 해석된다”고 밝혔다.
 

▲ 가수 아이유

사재기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대중의 의혹은 크게 다섯 가지다.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혹과 진실을 나눠봤다.

현재 대중에게 존재하는 가장 큰 함정은 음원 1위로 인한 매출의 범위다. 약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공전의 히트를 친 곡은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남에 따라 기존 플랫폼인 멜론과 지니 등 음원 사이트를 통해 얻는 수익은 약 2억원대로 줄어들었다. 한 달 내내 1위를 하더라도 2억5000만원을 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알> 악의적 편집에 반발
최소 10억 필요…안 하고 말지~

일간 1위는 약 70만서 90만의 이용자가 노래를 들었을 때 가능하다. 국내 음원사이트 이용자 수 추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가잇썸닷컴에 따르면 현재 의혹을 받는 가수 벤과 닐로, 우디는 물론, 의혹이 없는 아이유나, 방탄소년단도 1위를 하는 기간에는 약 70만에서 90만의 정도를 넘나든다.

1위가 되려면 아이디가 90만개가 필요한데, 아이디 하나에 1만원이라고 하면, 약 100억원이 소비된다. 아이디 10만개 정도가 있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는데 그마저도 10억원이 필요하다. 현 음원 시장은 사재기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황 대표는 “압도적인 음원 1위를 하면 5억원은 나올 줄 알았는데, 바이브 ‘가을 타나 봐’나 벤의 ‘180도’, 우디의 ‘이 노래가 클럽서 나온다면’ 모두 2억원대였다. 아마 다른 가수들도 비슷할 것”이라며 “행사로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데, 우디 같은 가수는 히트곡이 하나다. 히트곡 하나로는 행사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 대학교 행사만 하더라도 히트곡 네 곡은 필요하다. 히트곡 하나 있는 가수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메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최근 국내 음원 사이트 등은 2015년 이전에 아이디 확보를 통해 스트리밍 건수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회원가입 시 휴대폰 인증을 필수로 게재했다. 아이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또 다른 휴대폰이나 일명 대포폰이 필요하다는 게 메이저9 측의 설명이다.

김상하 메이저9 부사장은 “소위 대박이 터져봐야 2억원이 최대인 시장을 위해서 수많은 대포폰을 왜 만드나. 비용 차이가 심하다. 나라면 사재기 제안이 들어와도 거절할 것”이라며 “사재기를 한 뒤에 후불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음원이 1월에 발매돼도 4월에 모두 정산이 되고 5월에나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모든 돈이 제작사로 가는데, 제작사가 돈을 안 주면 사재기 업체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재기 업자가 스스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겠나. 이건 정산 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MBC

‘우디서 숀도 안대고 닐로 먹어’라는 말이 있다. 가수 우디, 숀, 닐로는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가수다. 갑작스럽게 히트곡을 터뜨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들이 히트곡을 남긴 배경 중 하나가 바이럴 마케팅이다. 바이럴 마케팅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음원 영상을 최대한 노출해서 음악을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건강식품이나 의약품, 뷰티, 마약 베개를 비롯한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서 활용하고 있는 마케팅 기법이다.

바이럴은 연막
실제는 기계픽?

최근 들어 바이럴 마케팅은 국내 거의 모든 가수가 사용한다. 심지어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공격한 가수 중 일부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성공했거나 1500만원대의 광고비를 집행했다. 사재기를 공론화시킨 가수 박경의 KQ엔터테인먼트도 소속된 타 가수를 홍보하기 위해 바이럴 마케팅 업체와 접촉했다.

이렇듯 모든 가수가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지만, 성공 확률은 10%에 그친다. 다만 음원 바이럴 마케팅 전문 업체인 딩고, 리메즈, 포엠, 와우 등 총 네 곳의 성공 확률이 약 30%에 이른다. 이들은 바이럴 마케팅을 접목한 타겟 마케팅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부사장은 “페이스북은 1020 남성이 90% 이상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이들은 카카오톡 대신 페이스북 메신저로 소통한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이때 이들이 듣기 좋은 감성의 노래를 노출한다. 거기서 인기를 얻고 음원 사이트서 플레이리스트에 입력하는 것”이라며 “음원 사이트는 대부분 한 달 이용권을 사용한다. 따로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유입이 많은 것이다. 우리가 성공 확률이 높은 건 다른 회사서 타켓 마케팅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바이럴 마케팅은 연막이고 뒤에서 매크로를 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매크로는 <그알>서도 소개됐듯이 반복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음원 사재기의 경우 한 컴퓨터로 수없이 많은 컴퓨터를 통제해 수없이 많이 생성한 아이디로 종일 특정한 곡을 듣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멜론을 비롯한 음원 사이트들은 이러한 매크로 공격에 방어하는 기술을 지속해서 키워왔다.

실제로 2015년 전에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서 공장을 만들어 특정 가수의 곡 순위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김 부사장은 “2015년 이전에는 실제로 사재기가 존재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원 사이트의 기술력이 높아졌고, 알고리즘 자체도 변해서 절대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멜론의 한 관계자는 “멜론은 수년 전부터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에 대해 모니터링과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강화해왔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시스템보안, 신규 패턴 추가 등을 통해서 다양한 움직임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론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 중 하나는 장덕철이나 닐로, 숀, 우디와 같은 무명 가수들이 어떻게 아이유나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와 같은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두냐는 것이다.

무명 가수가
팬덤을 이겨?

연예인을 위해 방송 방청 및 콘서트 등 적극성을 보이는 수십만 명의 팬덤을 어떻게 노래만으로 승부해 이길 수 있냐는 부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음원의 스트리밍 카운트 방법만 이해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멜론에 따르면 실시간 스트리밍은 한 시간에 1번씩 카운트되며, 일간은 하루에 한 번씩 카운트된다. 한 개인이 A라는 곡이 좋아서 수백 번을 들어도 실시간으로 카운트되는 것은 하루에 총 한 번이다. 결국 ‘많이 듣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듣는 것’이 유리한 알고리즘이다. 이로써 무명 가수도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둘 수 있다.
 

▲ 걸그룹 트와이스

최소 10만 아이디가 필요한 이유도 이러한 알고리즘 때문이다.


황 대표는 “내부적으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의 인구를 600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중의 아이돌 팬덤은 어림잡아 100만명이다. 약 20% 미만인데, 우리는 20% 미만이 아닌 나머지 80%와 소통하고 있다. 아이돌 팬덤이 크다고 하지만 집에서 페이스북을 하는 1020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1020 남성을 겨냥한 타겟 마케팅을 했고, 이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음원 사이트서 1위를 하는 것이 과거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거에는 워낙 많은 대중이 사용하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인기 척도의 역할도 수행했으나, 최근 유튜브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멜론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50대가 왜
닐로 음악을?

김 부사장은 “특히 아이돌의 경우 퍼포먼스를 통한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아이돌 팬덤은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소비한다. 그러다 보니 음원 사이트에서는 자연스럽게 밀려나고 있다. 유명 아이돌그룹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음원 사이트서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는 사재기 때문이 아닌 플랫폼 사용의 이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을 시작한 TV조선 <미스트롯>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트로트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4050 이상의 세대서 가수 송가인을 향한 사랑은 극진했다. 50대 이상서 종일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송가인 신드롬은 대단했다. 이런 와중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닐로가 송가인을 제치고 멜론 50대 순위서 1위를 차지한 사진이다.

이 사건 이후로 멜론에선 나이대별 차트 순위를 삭제했고, 의혹은 점점 짙어졌다.

50대 차트의 경우 모집단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10대나 20대의 부모님인 경우가 많고, 점포를 운영하면서 1위부터 100위까지 스트리밍을 켜놓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게 메이저9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들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최근 10대와 20대서 인기를 얻은 곡이 4050서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아이유나 엑소, 트와이스 등 10대들이 좋아하는 곡들에서 4050 역시 비슷한 그래프를 보였다.

매크로는 불가능
“우리는 억울합니다”

김 부사장은 “현재 17세 이하 미성년들 부모의 평균 나이는 40대다. 미성년자의 경우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부모님 ID 혹은 가족 ID로 듣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17세 이하 미성년자들에게 인기 있는 곡은 음원 플랫폼에 가입자 기준으로 40대 쏠림현상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박경의 발언에 힘이 붙은 건 또 다른 가수들의 증언 덕분이었다. 가수 성시경은 전주를 빼라고 한 업체가 있었다고 밝혔고, 래퍼 타이거JK, 밴드 술탄 오브 디스코의 멤버 김간지와 말보는 실제로 사재기 업체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메이저9은 성시경과 타이거 JK, 김간지, 말보의 사례를 요목조목 짚었다. 먼저 성시경의 경우 전주를 빼라고 요구를 한 건 최근 트렌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성시경이 말한 내용을 보면 당사자가 바이럴 업체를 만난 것 같다. 다만 대화의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최근 10대 남성의 경우 15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 전주가 길면 듣지 않는다. 최근 성공한 곡 대부분이 전주 없이 노랫말이 바로 나온다”며 “이런 점이 뮤지션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죄는 아니지 않냐”고 호소했다.
 

▲ ▲▲ 닐로-송가인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TV조선

타이거 JK는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실제 사재기 업체의 관계자였을 수 있으며, 김간지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의 수익 배분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간지는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서 ‘사재기 업체의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차후 기자들의 인터뷰 문의에는 응하지 않았다.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말보다. 가수 말보는 <그알>에 출연해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었다고 밝혔다. 그는 약 3억원서 3억5000만원가량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방송서 말보는 “행사장서 몰래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 두 가수가 곧 음원을 내는데 1위 하는 걸 보고 결정해라고 말했다고 했고, 이후 실제로 두 가수는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만났다. 전화번호는 없었고 카톡으로만 얘기했다. 결국에 사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기꾼이
고여 든다

이에 김 부사장은 말보가 사기꾼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 알아봤는데, 말보가 만났다고 한 사람은 와우 대표였다. 실제 그 대표는 말보를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말보가 말한 A가수는 와우가 아닌 리메즈와 마케팅을 진행했고, 또 다른 가수는 포엠과 진행했다. 와우랑은 상관이 없었다. 그런 거로 봐서 말보는 사기꾼을 만난 것 같다. 지금 실제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다고 하는 가수들은 사기꾼들에게 피해를 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약 7시간에 걸쳐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응한 메이저9은 “우리야말로 사재기가 근절되길 바란다.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들이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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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