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 5가지 의혹과 진실

“음원 사재기란 있을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OO처럼 나도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가수 박경은 열사의 위치에 올랐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던 사재기 의혹을 공론화시킨 박경을 향해 대중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반대로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에게는 ‘사기꾼’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중 가장 비난을 받는 팀은 데뷔 18년차 ‘바이브’다. ‘사재기 의혹’이 공론화된 지 1달여 만에 바이브 소속사는 설명회를 열고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 사진제공=메이저9

남성 듀오 바이브와 가수 벤 등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메이저9은 지난 7일 12시와 4시, 두 번에 걸쳐 설명회를 진행했다. 그 배경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방영이 있다. <그알> 제작진과 약 6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는 메이저9의 황정문 대표는 “<그알> 제작진이 사재기 의혹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악의적이고 편협한 방송 보도를 진행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음원 1위
떼돈 번다

이 설명회가 있기 전 대부분 기자는 ‘음원 사재기’의 빈틈을 찾아내겠다는 야심을 갖고 현장을 찾았다. 바이브 소속사를 비롯해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과 소속사, 관련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사재기 업체’로 확신한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두 타임 내내 날이 선 질문이 던져졌다. 메이저9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서 최대한 설명했고, 대부분 막힘이 없었다.

놀라운 점은 메이저9이 공개한 자료의 범위였다. 자사 직원들에게도 밝히지 않을 법한 광고 집행 비용, 매출, 순이익 등의 회계자료를 모두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영업비밀’의 근간이 되는 음악 시장과 SNS 관련 빅데이터, 타 가수의 광고 집행 비용 등 매우 민감한 내용을 대거 공개했다. 이 내용이 공개됐을 때 타 소속사 가수들은 아주 큰 타격을 받을 만한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그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타 회사의 비난마저도 감수하고 진행한 설명회였다.


설명회 관련 기사화가 이뤄졌음에도, 대중은 사재기 의혹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여전히 바이브와 메이저9의 소속 가수들과 의혹을 받는 가수들을 향한 비난이 거세다. 앞서 문화관광부를 비롯해 지니뮤직, 가온차트 등 정부 기관서 음원 사재기의 실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음에도, 사재기 실체에 대한 대중의 의혹은 여전히 강하다.

황 대표는 “멜론이나 지니의 로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정부기관서도 숱하게 사재기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여전히 의혹이 존재하고 있는 배경에는 음원 1위의 실제 매출 크기와 일부 주요 음원 사이트의 알고리즘, 변화하고 있는 음원 사이트 정책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고 해석된다”고 밝혔다.
 

▲ 가수 아이유

사재기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대중의 의혹은 크게 다섯 가지다.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혹과 진실을 나눠봤다.

현재 대중에게 존재하는 가장 큰 함정은 음원 1위로 인한 매출의 범위다. 약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공전의 히트를 친 곡은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남에 따라 기존 플랫폼인 멜론과 지니 등 음원 사이트를 통해 얻는 수익은 약 2억원대로 줄어들었다. 한 달 내내 1위를 하더라도 2억5000만원을 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알> 악의적 편집에 반발
최소 10억 필요…안 하고 말지~

일간 1위는 약 70만서 90만의 이용자가 노래를 들었을 때 가능하다. 국내 음원사이트 이용자 수 추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가잇썸닷컴에 따르면 현재 의혹을 받는 가수 벤과 닐로, 우디는 물론, 의혹이 없는 아이유나, 방탄소년단도 1위를 하는 기간에는 약 70만에서 90만의 정도를 넘나든다.

1위가 되려면 아이디가 90만개가 필요한데, 아이디 하나에 1만원이라고 하면, 약 100억원이 소비된다. 아이디 10만개 정도가 있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는데 그마저도 10억원이 필요하다. 현 음원 시장은 사재기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황 대표는 “압도적인 음원 1위를 하면 5억원은 나올 줄 알았는데, 바이브 ‘가을 타나 봐’나 벤의 ‘180도’, 우디의 ‘이 노래가 클럽서 나온다면’ 모두 2억원대였다. 아마 다른 가수들도 비슷할 것”이라며 “행사로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데, 우디 같은 가수는 히트곡이 하나다. 히트곡 하나로는 행사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 대학교 행사만 하더라도 히트곡 네 곡은 필요하다. 히트곡 하나 있는 가수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메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최근 국내 음원 사이트 등은 2015년 이전에 아이디 확보를 통해 스트리밍 건수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회원가입 시 휴대폰 인증을 필수로 게재했다. 아이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또 다른 휴대폰이나 일명 대포폰이 필요하다는 게 메이저9 측의 설명이다.

김상하 메이저9 부사장은 “소위 대박이 터져봐야 2억원이 최대인 시장을 위해서 수많은 대포폰을 왜 만드나. 비용 차이가 심하다. 나라면 사재기 제안이 들어와도 거절할 것”이라며 “사재기를 한 뒤에 후불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음원이 1월에 발매돼도 4월에 모두 정산이 되고 5월에나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모든 돈이 제작사로 가는데, 제작사가 돈을 안 주면 사재기 업체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재기 업자가 스스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겠나. 이건 정산 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MBC

‘우디서 숀도 안대고 닐로 먹어’라는 말이 있다. 가수 우디, 숀, 닐로는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가수다. 갑작스럽게 히트곡을 터뜨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들이 히트곡을 남긴 배경 중 하나가 바이럴 마케팅이다. 바이럴 마케팅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음원 영상을 최대한 노출해서 음악을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건강식품이나 의약품, 뷰티, 마약 베개를 비롯한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서 활용하고 있는 마케팅 기법이다.

바이럴은 연막
실제는 기계픽?

최근 들어 바이럴 마케팅은 국내 거의 모든 가수가 사용한다. 심지어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공격한 가수 중 일부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성공했거나 1500만원대의 광고비를 집행했다. 사재기를 공론화시킨 가수 박경의 KQ엔터테인먼트도 소속된 타 가수를 홍보하기 위해 바이럴 마케팅 업체와 접촉했다.

이렇듯 모든 가수가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지만, 성공 확률은 10%에 그친다. 다만 음원 바이럴 마케팅 전문 업체인 딩고, 리메즈, 포엠, 와우 등 총 네 곳의 성공 확률이 약 30%에 이른다. 이들은 바이럴 마케팅을 접목한 타겟 마케팅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부사장은 “페이스북은 1020 남성이 90% 이상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이들은 카카오톡 대신 페이스북 메신저로 소통한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이때 이들이 듣기 좋은 감성의 노래를 노출한다. 거기서 인기를 얻고 음원 사이트서 플레이리스트에 입력하는 것”이라며 “음원 사이트는 대부분 한 달 이용권을 사용한다. 따로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유입이 많은 것이다. 우리가 성공 확률이 높은 건 다른 회사서 타켓 마케팅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바이럴 마케팅은 연막이고 뒤에서 매크로를 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매크로는 <그알>서도 소개됐듯이 반복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음원 사재기의 경우 한 컴퓨터로 수없이 많은 컴퓨터를 통제해 수없이 많이 생성한 아이디로 종일 특정한 곡을 듣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멜론을 비롯한 음원 사이트들은 이러한 매크로 공격에 방어하는 기술을 지속해서 키워왔다.

실제로 2015년 전에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서 공장을 만들어 특정 가수의 곡 순위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김 부사장은 “2015년 이전에는 실제로 사재기가 존재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원 사이트의 기술력이 높아졌고, 알고리즘 자체도 변해서 절대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멜론의 한 관계자는 “멜론은 수년 전부터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에 대해 모니터링과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강화해왔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시스템보안, 신규 패턴 추가 등을 통해서 다양한 움직임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론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 중 하나는 장덕철이나 닐로, 숀, 우디와 같은 무명 가수들이 어떻게 아이유나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와 같은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두냐는 것이다.

무명 가수가
팬덤을 이겨?

연예인을 위해 방송 방청 및 콘서트 등 적극성을 보이는 수십만 명의 팬덤을 어떻게 노래만으로 승부해 이길 수 있냐는 부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음원의 스트리밍 카운트 방법만 이해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멜론에 따르면 실시간 스트리밍은 한 시간에 1번씩 카운트되며, 일간은 하루에 한 번씩 카운트된다. 한 개인이 A라는 곡이 좋아서 수백 번을 들어도 실시간으로 카운트되는 것은 하루에 총 한 번이다. 결국 ‘많이 듣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듣는 것’이 유리한 알고리즘이다. 이로써 무명 가수도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둘 수 있다.
 

▲ 걸그룹 트와이스

최소 10만 아이디가 필요한 이유도 이러한 알고리즘 때문이다.


황 대표는 “내부적으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의 인구를 600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중의 아이돌 팬덤은 어림잡아 100만명이다. 약 20% 미만인데, 우리는 20% 미만이 아닌 나머지 80%와 소통하고 있다. 아이돌 팬덤이 크다고 하지만 집에서 페이스북을 하는 1020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1020 남성을 겨냥한 타겟 마케팅을 했고, 이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음원 사이트서 1위를 하는 것이 과거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거에는 워낙 많은 대중이 사용하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인기 척도의 역할도 수행했으나, 최근 유튜브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멜론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50대가 왜
닐로 음악을?

김 부사장은 “특히 아이돌의 경우 퍼포먼스를 통한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아이돌 팬덤은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소비한다. 그러다 보니 음원 사이트에서는 자연스럽게 밀려나고 있다. 유명 아이돌그룹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음원 사이트서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는 사재기 때문이 아닌 플랫폼 사용의 이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을 시작한 TV조선 <미스트롯>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트로트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4050 이상의 세대서 가수 송가인을 향한 사랑은 극진했다. 50대 이상서 종일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송가인 신드롬은 대단했다. 이런 와중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닐로가 송가인을 제치고 멜론 50대 순위서 1위를 차지한 사진이다.

이 사건 이후로 멜론에선 나이대별 차트 순위를 삭제했고, 의혹은 점점 짙어졌다.

50대 차트의 경우 모집단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10대나 20대의 부모님인 경우가 많고, 점포를 운영하면서 1위부터 100위까지 스트리밍을 켜놓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게 메이저9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들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최근 10대와 20대서 인기를 얻은 곡이 4050서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아이유나 엑소, 트와이스 등 10대들이 좋아하는 곡들에서 4050 역시 비슷한 그래프를 보였다.

매크로는 불가능
“우리는 억울합니다”

김 부사장은 “현재 17세 이하 미성년들 부모의 평균 나이는 40대다. 미성년자의 경우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부모님 ID 혹은 가족 ID로 듣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17세 이하 미성년자들에게 인기 있는 곡은 음원 플랫폼에 가입자 기준으로 40대 쏠림현상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박경의 발언에 힘이 붙은 건 또 다른 가수들의 증언 덕분이었다. 가수 성시경은 전주를 빼라고 한 업체가 있었다고 밝혔고, 래퍼 타이거JK, 밴드 술탄 오브 디스코의 멤버 김간지와 말보는 실제로 사재기 업체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메이저9은 성시경과 타이거 JK, 김간지, 말보의 사례를 요목조목 짚었다. 먼저 성시경의 경우 전주를 빼라고 요구를 한 건 최근 트렌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성시경이 말한 내용을 보면 당사자가 바이럴 업체를 만난 것 같다. 다만 대화의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최근 10대 남성의 경우 15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 전주가 길면 듣지 않는다. 최근 성공한 곡 대부분이 전주 없이 노랫말이 바로 나온다”며 “이런 점이 뮤지션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죄는 아니지 않냐”고 호소했다.
 

▲ ▲▲ 닐로-송가인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TV조선

타이거 JK는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실제 사재기 업체의 관계자였을 수 있으며, 김간지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의 수익 배분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간지는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서 ‘사재기 업체의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차후 기자들의 인터뷰 문의에는 응하지 않았다.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말보다. 가수 말보는 <그알>에 출연해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었다고 밝혔다. 그는 약 3억원서 3억5000만원가량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방송서 말보는 “행사장서 몰래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 두 가수가 곧 음원을 내는데 1위 하는 걸 보고 결정해라고 말했다고 했고, 이후 실제로 두 가수는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만났다. 전화번호는 없었고 카톡으로만 얘기했다. 결국에 사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기꾼이
고여 든다

이에 김 부사장은 말보가 사기꾼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 알아봤는데, 말보가 만났다고 한 사람은 와우 대표였다. 실제 그 대표는 말보를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말보가 말한 A가수는 와우가 아닌 리메즈와 마케팅을 진행했고, 또 다른 가수는 포엠과 진행했다. 와우랑은 상관이 없었다. 그런 거로 봐서 말보는 사기꾼을 만난 것 같다. 지금 실제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다고 하는 가수들은 사기꾼들에게 피해를 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약 7시간에 걸쳐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응한 메이저9은 “우리야말로 사재기가 근절되길 바란다.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들이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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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