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 5가지 의혹과 진실

“음원 사재기란 있을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OO처럼 나도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가수 박경은 열사의 위치에 올랐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던 사재기 의혹을 공론화시킨 박경을 향해 대중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반대로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에게는 ‘사기꾼’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중 가장 비난을 받는 팀은 데뷔 18년차 ‘바이브’다. ‘사재기 의혹’이 공론화된 지 1달여 만에 바이브 소속사는 설명회를 열고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 사진제공=메이저9

남성 듀오 바이브와 가수 벤 등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메이저9은 지난 7일 12시와 4시, 두 번에 걸쳐 설명회를 진행했다. 그 배경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방영이 있다. <그알> 제작진과 약 6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는 메이저9의 황정문 대표는 “<그알> 제작진이 사재기 의혹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악의적이고 편협한 방송 보도를 진행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음원 1위
떼돈 번다

이 설명회가 있기 전 대부분 기자는 ‘음원 사재기’의 빈틈을 찾아내겠다는 야심을 갖고 현장을 찾았다. 바이브 소속사를 비롯해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과 소속사, 관련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사재기 업체’로 확신한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두 타임 내내 날이 선 질문이 던져졌다. 메이저9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서 최대한 설명했고, 대부분 막힘이 없었다.

놀라운 점은 메이저9이 공개한 자료의 범위였다. 자사 직원들에게도 밝히지 않을 법한 광고 집행 비용, 매출, 순이익 등의 회계자료를 모두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영업비밀’의 근간이 되는 음악 시장과 SNS 관련 빅데이터, 타 가수의 광고 집행 비용 등 매우 민감한 내용을 대거 공개했다. 이 내용이 공개됐을 때 타 소속사 가수들은 아주 큰 타격을 받을 만한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그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타 회사의 비난마저도 감수하고 진행한 설명회였다.


설명회 관련 기사화가 이뤄졌음에도, 대중은 사재기 의혹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여전히 바이브와 메이저9의 소속 가수들과 의혹을 받는 가수들을 향한 비난이 거세다. 앞서 문화관광부를 비롯해 지니뮤직, 가온차트 등 정부 기관서 음원 사재기의 실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음에도, 사재기 실체에 대한 대중의 의혹은 여전히 강하다.

황 대표는 “멜론이나 지니의 로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정부기관서도 숱하게 사재기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여전히 의혹이 존재하고 있는 배경에는 음원 1위의 실제 매출 크기와 일부 주요 음원 사이트의 알고리즘, 변화하고 있는 음원 사이트 정책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고 해석된다”고 밝혔다.
 

▲ 가수 아이유

사재기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대중의 의혹은 크게 다섯 가지다.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혹과 진실을 나눠봤다.

현재 대중에게 존재하는 가장 큰 함정은 음원 1위로 인한 매출의 범위다. 약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공전의 히트를 친 곡은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남에 따라 기존 플랫폼인 멜론과 지니 등 음원 사이트를 통해 얻는 수익은 약 2억원대로 줄어들었다. 한 달 내내 1위를 하더라도 2억5000만원을 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알> 악의적 편집에 반발
최소 10억 필요…안 하고 말지~

일간 1위는 약 70만서 90만의 이용자가 노래를 들었을 때 가능하다. 국내 음원사이트 이용자 수 추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가잇썸닷컴에 따르면 현재 의혹을 받는 가수 벤과 닐로, 우디는 물론, 의혹이 없는 아이유나, 방탄소년단도 1위를 하는 기간에는 약 70만에서 90만의 정도를 넘나든다.

1위가 되려면 아이디가 90만개가 필요한데, 아이디 하나에 1만원이라고 하면, 약 100억원이 소비된다. 아이디 10만개 정도가 있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는데 그마저도 10억원이 필요하다. 현 음원 시장은 사재기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황 대표는 “압도적인 음원 1위를 하면 5억원은 나올 줄 알았는데, 바이브 ‘가을 타나 봐’나 벤의 ‘180도’, 우디의 ‘이 노래가 클럽서 나온다면’ 모두 2억원대였다. 아마 다른 가수들도 비슷할 것”이라며 “행사로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데, 우디 같은 가수는 히트곡이 하나다. 히트곡 하나로는 행사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 대학교 행사만 하더라도 히트곡 네 곡은 필요하다. 히트곡 하나 있는 가수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메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최근 국내 음원 사이트 등은 2015년 이전에 아이디 확보를 통해 스트리밍 건수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회원가입 시 휴대폰 인증을 필수로 게재했다. 아이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또 다른 휴대폰이나 일명 대포폰이 필요하다는 게 메이저9 측의 설명이다.

김상하 메이저9 부사장은 “소위 대박이 터져봐야 2억원이 최대인 시장을 위해서 수많은 대포폰을 왜 만드나. 비용 차이가 심하다. 나라면 사재기 제안이 들어와도 거절할 것”이라며 “사재기를 한 뒤에 후불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음원이 1월에 발매돼도 4월에 모두 정산이 되고 5월에나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모든 돈이 제작사로 가는데, 제작사가 돈을 안 주면 사재기 업체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재기 업자가 스스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겠나. 이건 정산 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MBC

‘우디서 숀도 안대고 닐로 먹어’라는 말이 있다. 가수 우디, 숀, 닐로는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가수다. 갑작스럽게 히트곡을 터뜨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들이 히트곡을 남긴 배경 중 하나가 바이럴 마케팅이다. 바이럴 마케팅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음원 영상을 최대한 노출해서 음악을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건강식품이나 의약품, 뷰티, 마약 베개를 비롯한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서 활용하고 있는 마케팅 기법이다.

바이럴은 연막
실제는 기계픽?

최근 들어 바이럴 마케팅은 국내 거의 모든 가수가 사용한다. 심지어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공격한 가수 중 일부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성공했거나 1500만원대의 광고비를 집행했다. 사재기를 공론화시킨 가수 박경의 KQ엔터테인먼트도 소속된 타 가수를 홍보하기 위해 바이럴 마케팅 업체와 접촉했다.

이렇듯 모든 가수가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지만, 성공 확률은 10%에 그친다. 다만 음원 바이럴 마케팅 전문 업체인 딩고, 리메즈, 포엠, 와우 등 총 네 곳의 성공 확률이 약 30%에 이른다. 이들은 바이럴 마케팅을 접목한 타겟 마케팅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부사장은 “페이스북은 1020 남성이 90% 이상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이들은 카카오톡 대신 페이스북 메신저로 소통한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이때 이들이 듣기 좋은 감성의 노래를 노출한다. 거기서 인기를 얻고 음원 사이트서 플레이리스트에 입력하는 것”이라며 “음원 사이트는 대부분 한 달 이용권을 사용한다. 따로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유입이 많은 것이다. 우리가 성공 확률이 높은 건 다른 회사서 타켓 마케팅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바이럴 마케팅은 연막이고 뒤에서 매크로를 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매크로는 <그알>서도 소개됐듯이 반복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음원 사재기의 경우 한 컴퓨터로 수없이 많은 컴퓨터를 통제해 수없이 많이 생성한 아이디로 종일 특정한 곡을 듣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멜론을 비롯한 음원 사이트들은 이러한 매크로 공격에 방어하는 기술을 지속해서 키워왔다.

실제로 2015년 전에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서 공장을 만들어 특정 가수의 곡 순위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김 부사장은 “2015년 이전에는 실제로 사재기가 존재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원 사이트의 기술력이 높아졌고, 알고리즘 자체도 변해서 절대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멜론의 한 관계자는 “멜론은 수년 전부터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에 대해 모니터링과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강화해왔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시스템보안, 신규 패턴 추가 등을 통해서 다양한 움직임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론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 중 하나는 장덕철이나 닐로, 숀, 우디와 같은 무명 가수들이 어떻게 아이유나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와 같은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두냐는 것이다.

무명 가수가
팬덤을 이겨?

연예인을 위해 방송 방청 및 콘서트 등 적극성을 보이는 수십만 명의 팬덤을 어떻게 노래만으로 승부해 이길 수 있냐는 부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음원의 스트리밍 카운트 방법만 이해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멜론에 따르면 실시간 스트리밍은 한 시간에 1번씩 카운트되며, 일간은 하루에 한 번씩 카운트된다. 한 개인이 A라는 곡이 좋아서 수백 번을 들어도 실시간으로 카운트되는 것은 하루에 총 한 번이다. 결국 ‘많이 듣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듣는 것’이 유리한 알고리즘이다. 이로써 무명 가수도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둘 수 있다.
 

▲ 걸그룹 트와이스

최소 10만 아이디가 필요한 이유도 이러한 알고리즘 때문이다.


황 대표는 “내부적으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의 인구를 600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중의 아이돌 팬덤은 어림잡아 100만명이다. 약 20% 미만인데, 우리는 20% 미만이 아닌 나머지 80%와 소통하고 있다. 아이돌 팬덤이 크다고 하지만 집에서 페이스북을 하는 1020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1020 남성을 겨냥한 타겟 마케팅을 했고, 이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음원 사이트서 1위를 하는 것이 과거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거에는 워낙 많은 대중이 사용하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인기 척도의 역할도 수행했으나, 최근 유튜브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멜론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50대가 왜
닐로 음악을?

김 부사장은 “특히 아이돌의 경우 퍼포먼스를 통한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아이돌 팬덤은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소비한다. 그러다 보니 음원 사이트에서는 자연스럽게 밀려나고 있다. 유명 아이돌그룹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음원 사이트서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는 사재기 때문이 아닌 플랫폼 사용의 이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을 시작한 TV조선 <미스트롯>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트로트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4050 이상의 세대서 가수 송가인을 향한 사랑은 극진했다. 50대 이상서 종일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송가인 신드롬은 대단했다. 이런 와중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닐로가 송가인을 제치고 멜론 50대 순위서 1위를 차지한 사진이다.

이 사건 이후로 멜론에선 나이대별 차트 순위를 삭제했고, 의혹은 점점 짙어졌다.

50대 차트의 경우 모집단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10대나 20대의 부모님인 경우가 많고, 점포를 운영하면서 1위부터 100위까지 스트리밍을 켜놓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게 메이저9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들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최근 10대와 20대서 인기를 얻은 곡이 4050서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아이유나 엑소, 트와이스 등 10대들이 좋아하는 곡들에서 4050 역시 비슷한 그래프를 보였다.

매크로는 불가능
“우리는 억울합니다”

김 부사장은 “현재 17세 이하 미성년들 부모의 평균 나이는 40대다. 미성년자의 경우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부모님 ID 혹은 가족 ID로 듣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17세 이하 미성년자들에게 인기 있는 곡은 음원 플랫폼에 가입자 기준으로 40대 쏠림현상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박경의 발언에 힘이 붙은 건 또 다른 가수들의 증언 덕분이었다. 가수 성시경은 전주를 빼라고 한 업체가 있었다고 밝혔고, 래퍼 타이거JK, 밴드 술탄 오브 디스코의 멤버 김간지와 말보는 실제로 사재기 업체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메이저9은 성시경과 타이거 JK, 김간지, 말보의 사례를 요목조목 짚었다. 먼저 성시경의 경우 전주를 빼라고 요구를 한 건 최근 트렌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성시경이 말한 내용을 보면 당사자가 바이럴 업체를 만난 것 같다. 다만 대화의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최근 10대 남성의 경우 15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 전주가 길면 듣지 않는다. 최근 성공한 곡 대부분이 전주 없이 노랫말이 바로 나온다”며 “이런 점이 뮤지션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죄는 아니지 않냐”고 호소했다.
 

▲ ▲▲ 닐로-송가인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TV조선

타이거 JK는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실제 사재기 업체의 관계자였을 수 있으며, 김간지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의 수익 배분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간지는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서 ‘사재기 업체의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차후 기자들의 인터뷰 문의에는 응하지 않았다.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말보다. 가수 말보는 <그알>에 출연해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었다고 밝혔다. 그는 약 3억원서 3억5000만원가량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방송서 말보는 “행사장서 몰래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 두 가수가 곧 음원을 내는데 1위 하는 걸 보고 결정해라고 말했다고 했고, 이후 실제로 두 가수는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만났다. 전화번호는 없었고 카톡으로만 얘기했다. 결국에 사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기꾼이
고여 든다

이에 김 부사장은 말보가 사기꾼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 알아봤는데, 말보가 만났다고 한 사람은 와우 대표였다. 실제 그 대표는 말보를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말보가 말한 A가수는 와우가 아닌 리메즈와 마케팅을 진행했고, 또 다른 가수는 포엠과 진행했다. 와우랑은 상관이 없었다. 그런 거로 봐서 말보는 사기꾼을 만난 것 같다. 지금 실제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다고 하는 가수들은 사기꾼들에게 피해를 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약 7시간에 걸쳐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응한 메이저9은 “우리야말로 사재기가 근절되길 바란다.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들이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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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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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