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탁, 음원 사재기의 비밀

“1위 만들어줄게” 유령 조작 브로커의 만행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지난해 1월 국내에서는 음원 사재기 논란이 가요계를 휩쓸었다. 가수 박경은 가수들이 음원 스트리밍을 조작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공론화된 가수들은 엄청난 마녀사냥에 시달렸지만, 음원 스트리밍 조회 수를 조작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멜론을 비롯한 음원사이트에서 아무리 음원 사재기가 없다고 해도, 대중은 믿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영탁 소속사 대표 이씨가 기소됐다. 음원 사재기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서다. 조작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공공연히 “음원 사재기는 없다”고 말한다. 명확히 말하면 음원 스트리밍을 조작한 사람들은 있을지언정 ‘성공한 사재기는 없다’고 한다. 

시도 있어도 
성공은 없다

오랜 기간 멜론을 비롯한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 조작과 관련해 보안이 뚫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도 대중은 믿지 않고 있다. 아마도 갑작스럽게 무명의 가수가 엄청난 팬덤을 가진 가수를 제치고 음원 1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서일 테다. 

음원사이트에서 공개하는 차트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음원 사재기가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다만 차트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해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 

음원 스트리밍을 조작하는 것은 비용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한 달 내내 1위를 차지해도 음원으로 거둬들이는 수익은 2억원 내외다. 지난해 1월 가요기획사 메이저나인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 달 동안 매일 80만 조회 수를 기록해도 2억5000만원을 넘게 벌기 힘들다.


반면에 음원 조작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수십억원이 넘는다. 이조차도 최소한으로 잡은 금액이다. 

그 배경을 설명하면, 현재 음원사이트의 카운트는 한 사람당 1회로 집계된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곡을 1번 듣던 10번 듣던 카운트는 1로 계산된다. 10명의 사람이 B곡을 한 번씩 들으면 카운트는 10이 된다.

음원을 많이 듣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듣는 것이 유리한 시스템이다. 아무리 30만명이 넘는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아이돌이라 해도 차트 1위가 쉽지 않은 건 확장성이 떨어져서다. 약 70만에서 1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해야 상위권에 오를 수 있었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인기를 끌어야만 차트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차트 내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카운트를 10만으로 본다. 10만명은 노래를 들어야 급상승 순위에 음원을 올릴 수 있어서다. 최소 10만명은 확보해야 상위권에 진입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는 것. 

이른바 ‘탑100’을 반복 재생하는 자영업자의 수가 코로나19로 인해 줄어들면서, 현재 1위 곡들은 하루에 대략 50만명에서 60만명이 듣는다. 음원 사재기 논란이 발발했던 2019년 이전만 해도 90만명에서 110만명은 들어야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한 달 내내 1위 해도 음원 수익은 2억원
엄청난 운이 필요한 사재기…비용 29억원


그 수가 어떻든 간에 최소 10만명은 필요하다. 10만명을 확보해 차트 내 급상승 음원이 돼 대중의 눈에 띈 뒤에는 흔히 말하는 ‘기도 메타’에 돌입한다. 최소 40만명 이상이 들어야 하는 확장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유명세가 있는 뛰어난 실력의 가수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운이 따라야지만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 대중이 듣기에 좋지 않은 곡이라면 10만명 수준에서 그치게 된다. 이러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엄청난 운이 따라서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해야만 2억원 내외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가수가 적당한 히트곡이라도 내면 각종 행사를 다닐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는데, 최소 행사를 다니려면 히트곡이 약 3곡은 있어야 한다. 하나의 히트곡으로는 행사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10만 조회 수를 조작한다고 할 때 필요한 비용이 대략 수십억원이다. 한 휴대폰으로 음원사이트 아이디 3개를 만들 수 있다. 10만개의 아이디를 만드는 데 필요한 휴대폰은 약 3만3000개다.

아무리 싼 휴대폰이라 하더라도 3만개 이상이 필요한데, 스마트폰 하나에 2만원씩만 잡아도 6억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여기에 음원사이트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비용 8000원이 든다. 또 한 지역에서 일정한 패턴으로 스트리밍을 돌리면 음원사이트의 보안 체계에 걸리기 때문에 각 아이디 당 아이피(IP)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작업실에서 수백개의 아이디만 스트리밍을 돌려도, 음원사이트에 아이피 정보가 가기 때문에 음원 사이트에서는 이를 스트리밍 조작 현장으로 보고 걸러낸다. 한 지역에서는 같은 아이피가 뜨기 때문에 조작하려는 정황이 명확히 포착된다.

따라서 아이디마다 아이피가 필요하다. 업계에 따르면 아이피 하나에 최소 3000원 이상이 든다. 아울러 휴대전화 요금제 최소금액 1만2000원을 더하면 약 2만3000원의 비용이 든다.

“히트곡으로”
대부분 거짓말

휴대폰 비용 6억원에 아이디 10만개 유지 비용 23억원을 더하면 약 29억원이다. 이조차도 최소 금액이다. 이 금액에는 스트리밍을 지속해서 돌릴 때 발생하는 인건비나 전기료 등 제반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음원 사재기는 약 29억원의 비용을 들인 데 더해 불법을 저지르는 리스크를 감행하면서, 엄청난 운에 기대야만 겨우 2억5000만원의 수익을 내는 구조다. 막대한 손해를 보는 구조다. 최소 15곡은 1위로 만들어야 이익을 내는 셈이다.


혹시나 중간에 음원 사이트 보안 체계에 걸리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된다. 

해킹을 사용한다고 해도, 해당 사용자가 음원 사이트에 접속하면 다른 휴대폰에서는 접속이 통제된다. 해킹을 통한 조작도 불가능에 가깝다.

불확실하고 수익도 보장되지 않는 불법적인 행위에 29억원을 투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음원 사재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런 정황이 있는데도 대중은 음원 사재기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 가요 관계자조차 여전히 음원 사재기가 통용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한동안 가요계에 음원 사재기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다. 

그 소문의 근원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한 OST 제작사의 작곡가 K는 음원 조작이 가능한지 테스트를 했다. 당시 테스트 음원으로 사용된 음원이 송하예의 ‘니소식’이다. K는 테스트를 하는 과정을 촬영해 영상으로 남겼다.

K 역시 스트리밍 조작은 실패했다. 


수천만원으로?
사실상 불가능

하지만 K는 촬영한 테스트 영상을 마치 사재기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짜깁기 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음반 소속사 대표들을 만나 송하예와 바이브, 볼빨간 사춘기, 임재현, 아이유, 알리 등 가수들을 거론하며 자신이 음원 사재기로 이들의 곡을 차트 1위로 만들었다고 거짓말했다. 

이에 혹한 음반 소속사 대표 대다수가 K에게 수천만원을 건네며 자신의 소속 가수 곡도 조작해달라고 거래했다.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대다수 소속사 대표들이 K에게 돈을 건네며 음원 사재기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가요 관계자 C는 “K가 영업을 매우 잘한 것으로 안다. 국내의 수많은 소속사에서 그에게 돈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K가 일종의 사기를 친 것”이라며 “K는 그렇게 돈을 받아놓고 음원 사재기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사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눈 뜨고 코 베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소속사에서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불법인 음원 사재기를 의뢰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언론에 알렸다가 혹여 의뢰한 사실이 드러나면 소속 가수의 이미지가 회생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지고, 의뢰한 소속사 직원은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K에게 건넨 수천만원을 포기하는 것이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사기를 당한 소속사 관계자들은 음원 사재기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K가 거짓말을 하기 위해 만든 짜깁기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은 지난해 정민당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비록 자신의 소속사는 사재기에 실패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있다고 여긴 것이다.

가요 관계자 C는 “당시 K와 거래하면서 K가 만든 조작 영상을 본 소속사 직원들 사이에서 음원 사재기 소문이 떠돌았다. 당시에 숀, 임재현, 바이브, 송하예 등의 가수가 거론됐다. K가 소속사를 상대로 사기칠 때 거론한 가수들이 진짜 피해자”라며 “K가 있지도 않은 음원 사재기 괴소문을 만든 본원”이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가수 영탁의 소속사 밀라그로 대표 이모씨 역시 K로부터 사기를 당한 인물 중 하나다. 이씨는 영탁의 노래 ‘니가 왜 여기서 나와’의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 2019년 K씨에게 3000만원을 건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사기꾼이 만든 가요계 괴소문
당해도 밝히지 못하는 가수들

이씨는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는데, 이는 적발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당시 ‘니가 왜 여기서 나와’는 주요 음원사이트 순위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등 실제 차트 조작이 성공하지는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음원 순위가 예상한 만큼 오르지 못하자 K에게 환불을 요구해 1500만원을 돌려받았으며, 2019년 10월에는 K에게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소장 각하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경찰은 지난해 2월부터 가요계 음원 사재기에 관련한 언론 보도를 접하고 내사를 진행했다.

내사 진행 중, 이씨로부터 매니지먼트 권한 위임을 받은 D씨가 투자자에게 ‘영탁의 음원에 대한 사재기를 의뢰했다’고 고백한 녹음파일과 해당 내용이 담긴 고발장이 같은 해 7월경 접수되자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이씨가 음원 사재기를 의뢰했고, 의뢰를 받은 K가 스트리밍 조작을 시도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씨와 D씨, 스트리밍 조작을 시도한 K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씨는 음원 사재기를 시도한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일각에서는 가요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는 후문이다. 소속사 대표들을 상대로 돈을 받은 K가 혹시나 수사기관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까 걱정돼서다. 수사기관을 통해 K가 소속사 대표와 가수를 고발하기라도 하면, 해당 가수의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음원 사재기 괴소문의 뿌리를 뽑고, 부정한 방식으로 결과를 내놓으려 했던 가요 관계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묻힐 뻔한
이번 사건

한 관계자는 “이씨가 돈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지하에 묻혔을 것이다. 불법을 저지른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좀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며 “그것과는 별개로 음원 사재기 괴소문으로 인해 피해를 본 아티스트가 굉장히 많다. 이번 일을 계기로 K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밝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탁은 사재기 몰랐나?
“아티스트, 회사 일 잘 몰라”

영탁 소속사 대표 이모씨가 음원 사재기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검찰로 송치된 가운데 논란의 불길은 영탁에게 향하고 있다.

영탁이 소속사 대표와 음원 사재기와 관련된 대화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음원 사재기를 공모했다는 의혹이 생겨나면서 영탁의 이미지는 완전히 추락하고 있다.

영탁이 공식 입장문을 통해 “음원 사재기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밝히고 있지만, 대중은 믿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음원 사재기 내용 어려워”
“들었어도 이해 못 했을 것”

그런 가운데 한 관계자는 영탁이 해당 내용을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아티스트의 경우 회사에서 발생하는 업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게 요지다. 

가요계 관계자는 “음원 사재기의 경우 내용도 어렵기 때문에, 이씨가 영탁에게 설명을 명확히 안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영탁이 내용을 들었다고 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아티스트들은 회사의 업무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회사 일이 본인의 업무와는 다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며 “영탁이 소속사 직원들과 함께 공모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