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창당 러시’ 신당 세력 대해부

‘선거의 계절’ 철새들도 파닥파닥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총선 정국’이 다가오면서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20대 총선 때 뜨거웠던 ‘녹색 돌풍’처럼 거대 양당체제에 맞설 신(新)정치세력이 재현될 수 있을까.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다양한 유권자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뀔 공산도 크다. 신당 창당 움직임을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총선이 5개월 남짓한 시점서 신당 창당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국회는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비당권파인 변화와 혁신(이하 변혁),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인 대안정치가 신당 창당을 예고한 상태다. 여기에 무소속 이언주, 이정현 의원도 가세해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원외에선 프로젝트 2040, 소상공인당, 기본소득당 등 직능과 세대에 특화된 신당 창당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여의도에 부는
‘새집’ 바람

거대 양당 체제하에서는 다양한 유권자들의 이익을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만약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직업, 세대, 지역 등이 다양한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군소정당들의 원내 진입은 용이해질 전망이다. 신(新)세력들이 거대 양당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질 수 있는 셈이다.

이미 많은 국민들은 20대 국회의 패스트트랙 정국, 조국 사태, 필리버스터, 식물 국회 등으로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던 거대 양당에 염증을 느껴왔다. 최근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신당 창당은 그야말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격.

다양한 움직임 속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세력은 중도정치를 추구하는 변혁과 대안신당이다. 변혁과 대안신당은 20대 총선서 '녹색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내년 총선서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먼저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선 정당은 대안신당이다. 지난 8월 민주평화당 당권파와의 갈등으로 공식 탈당 후 연내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성엽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제대로 된 보수, 합리적인 진보가 어우러질 때 생산적인 정치가 가능하다”며 신당 창당으로 정치세력의 전면적인 교체를 그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변혁’ ‘대안신당’총선 정국 변수로
무소속도 가세…세대·직능 특화 당도

대안신당의 창당 성패 여부는 ‘새로운 인물 영입’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서 불었던 녹색 돌풍을 안철수 전 대표가 이끌어낸 만큼 대권 주자에 버금가는 인물을 내세워야 제3지대로서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유 대표는 새로운 인물들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한 명의 ‘스타 정치인’보다는 다수의 결집을 중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 정치는 그동안 어떤 대선 후보급 인물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지고 정당의 운명이 그 인물에 따라 달리하는 후진적인 그런 정치 상황을 보여왔다”며 “새로운 인물들이 함께 모여 나라의 비전을 생각해보고 국민들과 대화하면서 정치 결사체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한다”고 밝혔다.

대안신당 세력은 탈당 이후 바미당 내 호남계 의원들을 포함해 새 인물 영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민주평화당 일부 의원들과의 통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대안신당이 지난 10월 민주평화당 일부 의원들과 함께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을 만난 사실이 보도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유승민계와 안철수계로 이뤄진 바미당 비당권파인 변혁은 지난 9월에 독자 행보를 선언, 신당 창당 절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변혁과 바미당은 당 정체성과 노선, 지도체제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서서히 ‘분당선’을 밟아왔다. 당내에선 지난 4·3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으로 ‘손학규 퇴진론’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내홍 수습을 위해 혁신위가 출범했다.


하지만 혁신위 활동으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면서 성과 없이 막을 내려야 했다. 손 대표는 올해 추석 때까지 지지율 10%가 나오지 않으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변혁은 지난 9월 신당 기획단을 출범했다. 유승민 의원과 오신환 원내대표 중심으로 보수통합과 재건에 대한 논의를 이어온 변혁은 지난 4일에 ‘개혁적 중도보수’ 신당을 위한 창당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총선 2배
속속 제3지대로

중앙당 창당대회가 내년 1월 초로 예정된 만큼, 변혁의 탈당 절차는 이달 중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비례대표 의원들은 본인이 스스로 하는 탈당일 경우에는 의원직을 상실하게 때문에 즉각적인 탈당이 어렵다. 따라 일부 의원이 먼저 탈당한 후에 비례대표 의원들이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변혁 의원들 역시 신선한 인재 영입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변혁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 등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민주당을 두루 포섭하는 중도성향 인사를 포함하는 ‘빅텐트’를 구상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변혁의 탈당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야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과 변혁의 통합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 창당발기인대회 갖는 이언주 무소속 의원

무소속 의원들이 이끄는 신당 창당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지난 1일 의원회관 대회의실서 ‘미래를 향한 전진 4.0’(이하 전진)의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창당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의원은 “내년 설 전에 중앙당 창당을 마무리짓고, 총선 때 최대한 많은 후보를 출마시키겠다”고 말했다. 전진은 창당 발기문에 ’노동자를 보호해야만 했던 시대는 끝났다’며 ‘대한민국은 민간주도의 사회로,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사회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가로 변화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 의원은 지난 달 21일 BBS 라디오에 출연해 “보수신당 내지는 중도보수신당을 창당하겠다”며 “헤쳐모여 식의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날 이 자리에는 이정훈 울산대 교수, 백승재 변호사, 김상현 국대 떡볶이 대표, 김원성 전CJ 전략기획본부 국장, 박휘락 국민대 교수,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 등 1000여명의 사회 각계각층 인물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3%면 배지?
개정 기대

무소속 이정현 의원도 신당 창당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한국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제는 어느 정당이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포괄정당으로 가야 한다”며 “지금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고, 깜짝 놀랄 만한 인사들과도 대화를 하고 있으며 굉장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의원은 내년 1월 말까지 진보와 보수가 한 당 안에 포함된 새로운 정치 세력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국가혁명배당금, 핵나라당, 부정부패척결당 등 이색적인 이름의 신당도 눈에 띈다. 특히 국가혁명배당금당은 17대 대선 후보였던 허경영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허 대표는 15대 대통령 선거부터 여러 차례 대선과 총선에 출마하며 다소 비현실적인 공약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허 대표는 지난달 27일 당을 출범하고 총선에 출마할 계획을 밝혔다. 그는 “국민 1인당 월 150만원의 배당금을 제공하고 배당금당이 국회 150석을 확보하고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 당원 150만명을 확보할 것”이라며 공약을 발표했다.

2040프로젝트, 기본소득당, 소상공인당과 같이 특정 세대와 직능에 특화된 신당 창당 움직임도 총선 전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축으로 구성된 프로젝트2040은 진영논리서 벗어난 젊고 혁신적인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당대당 통합 시 지분 챙겨

염승열 대표 멤버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노후한 국회, 젊고 역동적으로 바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이 되겠다”며 “스타트업 방식으로 정치에 도전해 ‘시장의 혁신자’가 되고자 한다. 단기적으로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최대한 많은 젊은 인재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1차 목표”라고 말했다.

기본소득당은 전 국민에게 무조건적으로 ‘기본소득 월 60만원 지급’을 핵심 정책으로 정했다. 신민주 서울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수당 대신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각자가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 21대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소득당은 오는 18일 창당할 예정이다. 국회 내 기존 정당과 달리 기본소득당은 20대 초중반 청년이 중심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당 등록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으로 등록된 정당은 총 34개, 창당준비위원회는 13개에 달한다. 20대 총선 전인 2015년 12월에는 정당이 19개인 점을 비춰봤을 때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일각에선 총선 정국 때 당대당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비해 신당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세력들이 당 통합 시 원하는 지분을 마련하기 위해 발판을 만드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기대로 인해 신당 창당이 급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본회의에 부의된 선거제 개정안이 통과되면 원외 정당이 원내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특정층 겨냥
선전할 수도


선거제 개정안에 따라, ‘전국 정당 득표율 3% 또는 지역구 의석 5석 이상’을 넘으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은 비례대표 47석을 75석으로 늘리고,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연동률 50%를 적용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다만, 선거제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상공인이나 극우 세력 등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정당이 선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뛰따른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변혁-한국당 통합?

정치권서 내년 총선 정국 전 변화와 혁신(이하 변혁)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통합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변혁 의원들은 ‘탄핵 인정’ 등 변혁 측이 내건 조건을 한국당이 수용하지 못한다면 통합 가능성은 없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다.

하지만 총선 정국서 변혁 소속으로 선거에 나간다면 수도권을 제외한 곳에서 변혁 의원들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다.

아울러 보수 지지층의 표가 갈리게 된다면 여당이 유리해지는 선거판이 만들어진다. 

이에 따라 변혁과 한국당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합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공천 주도권을 한국당이 가지는 흡수 통합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TK지역서 유 의원에 대한 반감이 높아 황교안 대표가 쉽게 당대당 통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