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하도급업체 대표의 눈물

대기업에 치이고 공정위에 까이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 논란은 이미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받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갑질 병폐를 없애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하도급업체의 피해 사례는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 S사 공장 기계 및 가구 등에 붙은 압류딱지

정말 절박합니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시내 한 카페서 만난 중소기업 S사의 A 대표는 연신 땀을 흘렸다. 에어컨이 가동 중인 카페는 습도가 높은 야외에 비해 시원한 편이었다. 그는 변호사,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조사관, 대기업, 협력업체 관계자에게 이미 수차례에 걸쳐 한 이야기를 다시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업 시작
4년 만에…

사업을 시작한 건 2015년이었습니다.”

휴대전화는 배터리, 액정 등 여러 업체서 만든 부품을 조립해 완성된다. A 대표의 S사는 휴대전화 조립과정서 사용되는 자동화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한다. 201535세의 나이로 사업에 뛰어든 A 대표는 4년여 만에 파산 직전에 몰렸다. A 대표의 현 상황은 사면초가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심각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S사는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이하 LG전자 생기원)의 협력업체인 풍산시스템 등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부품을 생산하는 하도급업체다. 2017년 기준 2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 직원 수는 14명이었다.


불과 몇 년 새 자금이 말라붙으면서 사업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직원 수는 4명으로 줄었고 그마저도 월급을 챙겨주지 못한 지 오래다.

월급이 밀리면서 그만둔 직원들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다음 달 20일까지 월급을 챙겨주지 못하면 구류 처분을 받게 된다. 거래하던 업체에도 대금을 주지 못해 이제 몇 건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의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공장 기계는 물론 가구에도 빨간 압류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현재 저는 신용불량자 상태입니다.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원도 갈 수 없습니다. 아내가 제3금융권서 돈을 빌렸습니다. 장모님께 빌린 돈도 있습니다. 저 하나면 상관없는데 가족들도 다 엮여 있어서 막막합니다. 딸들에게도 미안하고요.”

물품 납부했지만 발주서 주지 않아
대금 밀리면서 신용불량자 신세로

A 대표에게는 다섯 살, 3개월 된 딸이 있다. A 대표의 아내는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린다. 50만원, 100만원씩 빌린 건 이제 셀 수도 없는 지경이다. 주변서 파산 신청을 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A 대표는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사업을 하면서 알고 지낸 분들이 아직 젊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서 한번 접으라고들 하세요. 폐업을 하고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저를 믿고 함께해준 직원들은 어쩌고, 거래해왔던 대표님들은 어쩌겠습니까. 또 저 개인적으로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A 대표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에는 풍산시스템의 갑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풍산시스템은 휴대전화 조립 자동화 장비를 개발하고 만드는 업체다. S사 등에서 부품을 받아 자동화 장비를 만들어 현대케피코, LG전자 생기원 등에 납품한다. 지난해에는 LG전자 최우수협력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S사는 20168월부터 201712월까지 풍산시스템이 주문의뢰한 물품을 제작해 납품했다. A 대표는 이 과정서 풍산시스템의 거래 방식이 비정상적이었다고 주장했다. S사가 속한 업계에선 일반적이지 않은 거래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풍산시스템을 제외하고는 해당 방법으로 거래한 업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보통 물건을 납품하거나 업체와 계약할 경우 공급받으려는 쪽에서 공급자에게 제작을 의뢰한다. 그러면 공급자가 견적서를 작성해 보내고 이를 수령한 쪽에서 발주서를 통해 금액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최우수협력사
갑질 업체?

이 과정서 정해진 공급 금액과 발주조건에 따라 납품이 이뤄지면, 공급 받은 쪽에서 일정 기간 내에 대금을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견적서는 공급하는 쪽에서, 발주서는 공급받는 쪽에서 보내는 문서로 A 대표에 따르면 S사가 속한 업계에선 이 두 문서가 계약서에 가까운 기능을 했다.

하지만 풍산시스템과의 거래는 달랐다. 풍산시스템이 주문의뢰를 하면 S사가 견적서를 보내는 것까지는 같다. 이때 주문의뢰는 대부분 이메일로 진행됐다. 문제는 풍산시스템서 보내야 하는 발주서가 제 날짜에 날아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S사는 발주서를 받지 못한 채 풍산시스템이 주문의뢰를 하는 과정서 정한 납기일에 맞춰 납품했다. 발주서는 납품 이후에야 S사로 넘어왔다. 이때 발주서에는 S사가 견적서에 기재한 금액보다 낮은 액수가 기재돼있었다. 실제 대금도 감액된 금액으로 지급됐다.
 

예를 들면 1월에 납품한 제품의 발주서가 7개월 뒤에 오는 식이다. 20161228일 풍산시스템은 S사에 201712일까지 제품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S사는 메일을 받은 당일 견적서를 보냈고 납품 완료 후 거래명세서도 받았다. 발주서는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774S사로 넘어왔다. 당초 견적서에 기재한 가격보다 낮은 금액이 기재돼있는 상태였다.

이메일로 주문의뢰를 받을 때마다 저희는 견적서를 보냈는데, 풍산시스템은 발주서를 주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이면 견적금액을 계약금액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풍산시스템서도 견적금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견적금액이 부당하다고 여겼다면 제작 단계서 발주서를 보내 금액에 대한 논의를 했으면 되는 거거든요.”

A 대표는 감액된 금액이 기재된 발주서가 납품 이후 날아오는 일이 수차례 일어나면서 6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168월부터 201712월까지 거래하는 동안 풍산시스템서 S사에 지급해야 하는 돈은 266150여만원에 이르는데, 실제 S사가 받은 돈은 206180여만원에 그쳤다는 주장이다.

조사한 지 1년 6개월 ‘감감무소식’
결과 기다리다 민사소송도 스톱

A 대표는 발주서가 제품 납품 시기보다 늦게 오는 문제가 반복되는 사이에도 밀려드는 주문의뢰를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은 제작해서 납품되는데 대금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됐다. 먼저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고, 거래업체와의 대금 지급 기한을 계속 어기게 됐다.

풍산시스템과 정한 대금 지급 기한은 60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20일에 제품을 납품하면 320일 이전에 대금이 들어와야 합니다. 하지만 발주서가 늦게 오다 보니, 발주서가 온 날짜에서 또 60일을 기다려야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와 거래하는 업체들도 그 지급 기한에 맞춰 회사를 꾸리고 있는데, 저희가 계속 돈을 밀리다 보니.”


풍산시스템의 행위가 하도급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4(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금지)에 따르면 협조요청 등 어떤 명목으로든 일방적으로 일정 금액을 할당한 후 그 금액을 빼고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등을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으로 보고 있다.
 

11(감액금지)에는 원사업자는 제조 등의 위탁을 할 때 정한 하도급대금을 감액해서는 안 된다고 돼있다. 특히 위탁할 때 하도급대금을 감액할 조건 등을 명시하지 않고 위탁 후 협조요청 또는 거래 상대방으로부터의 발주취소, 경제상황의 변동 등 불합리한 이유를 들어 하도급을 감액하는 행위 등을 막고 있다.

다만 정당한 사유를 입증한 경우에는 하도급대금을 감액할 수 있다. 이때도 감액사유와 기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적은 서면을 해당 수급업자에게 미리 주도록 하고 있다. 또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감액한 금액을 목적물의 등의 수령일부터 60일이 지난 후에 지급하는 경우, 그 초과기간에 대해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이 많아서 ”
바쁜 조사관

실제 공정위는 지난 51일 하도급업체들에 대금을 늦게 지급하면서 지연이자 등을 주지 않은 것으로 조사된 남해종합건설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12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남해종합건설은 201511부터 201612월까지 36개 하도급업자들에게 법정 지급기일을 최대 528일 초과해 대금을 지급하면서 지연이자 11138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A 대표는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풍산시스템에 대금 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하 공정거래조정원)에 사건을 접수했다. 공정거래조정원은 공정위 산하기관으로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당사자 간의 자율적인 조정을 통해 신속하게 해결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공정거래조정원서 3개월 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정위로 사건이 넘어간다. A 대표의 사건은 지난해 4월 공정위로 넘어갔다. 문제는 A 대표의 사건이 13개월째 공정위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담당자가 바뀌면서 결론이 언제쯤 날지 기약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A 대표는 답답한 상태다. 공정거래조정원에 사건을 접수하면서 함께 제기한 물품대금 청구 민사소송은 공정위 결론이 늦어지면서 진행되지 않고 있다.

A 대표의 사건을 맡고 있는 공정위 관계자는 접수된 사건 순서대로 진행하고 있다. 담당자가 바뀐 것은 통상적인 인사이동이었다. 전임자가 있었다고 해도 결론을 내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후임자가 직접 사건자료를 다시 다 봐야 한다. 일부러 사건 처리를 지연한다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지난 2015년 만든 내부지침에는 사건 접수 뒤의 처리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담당자가 사건 처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대개 1명의 조사관이 맡고 있는 사건의 수는 15건이 넘는다. 나도 현재 16건의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A 대표의 사건보다)더 이전에 접수된 사건도 있다고 덧붙였다.

“월급도 못 주고 …
감옥 가게 생겼다”

A 대표가 풍산시스템과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회의록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정거래조정원에 사건을 접수하고 다음 날인가 풍산시스템서 연락이 왔습니다. 협의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직원들 급여가 밀려 있었고, 일부 거래업체로부터 물품대금 지급명령신청을 당했습니다. 거래 계좌도 압류당한 상태였습니다. 말 그대로 한 푼이 아쉬운 때였습니다.”

​​​​​​​A 대표는 2018117일 풍산시스템 관계자와 대금 지급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다. A 대표에 따르면 이날 논의서 다뤄진 부분은 20179월과 11월의 마감분 물품공급, 201711월 말일(9월분)20181월 말일(11월분) 정기결제돼야 할 금액에 대한 선지급 협조요청과 지급완료 확인, 201712월 마감분으로서 20182월 말일 정기결제 될 금액에 대한 선지급 협조요청과 풍산시스템의 조기결제 요청의 수락 등이었다.

2017년 풍산시스템이 발주 처리를 하지 않은 건에 대해 5600만원을 받기로 한 점, 상호 간 처리되지 않은 대금에 대한 협의는 이날 완료돼 추가 잔금은 없다는 점, 대금 조기 결제가 이뤄진 후 회의와 관련된 미처리 대금에 대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점 등이 논의됐다. A 대표는 이날 회의와 관련돼 작성한 회의록에 서명했다.

회의록에 서명을 해야 대금을 지급해준다고 했습니다. 회의 때 논의된 5600만원도 실제로는 5694만원이었습니다. 풍산시스템서 94만원을 깎은 거죠. 그마저도 20182월에야 들어왔어요. 풍산시스템은 제가 서명한 회의록을 근거로 과거 거래의 대금까지 전부 지불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피해업체?
엄벌해 주길

풍산시스템은 저 같은 하도급업체의 납품단가를 착취해 250억원 상당의 사옥을 짓는 등 호위호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도 직원도 챙기지 못한 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습니다. 저 말고도 아직 나서지 못하는 피해업체 관계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을 엄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강화됐으면 합니다.”

이와 관련해 풍산시스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현재 공정위 조사나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돈 안 주는 기업 손 본다’ 하도급 신고센터 운영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를 추석 연휴 전날인 911일까지 운영한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명절을 앞두고 자금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중소기업이 하도급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자금난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지난 설 320억원 지급

지난 설 연휴 기간에도 공정위는 47일간 신고센터를 운영했다. 그 결과 총 286, 320억원이 지급 조치됐다.

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는 수도권과 대전·충청권, 광주·전라권, 부산·경남권, 대구·경북권 등 전국 5개 권역에 10개소가 설치된다.

통상적인 방식과는 달리 하도급대금 조기 지급에 중점을 두고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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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여러 비선 실세가 있었다. ‘V0’ 김건희씨의 최측근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군 인사를 좌지우지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이들에게는 ‘무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기일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이 서로 일면식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명씨와 전씨는 김건희씨 및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통화했다. 노 전 사령관만이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알았는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건희 일가를 잘 아는 이들은 위의 인물들이 각자의 존재를 인지해 왔다고 한다.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이른바 ‘비선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범하자 기웃기웃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예비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달았다. 지난 2021년 TV 토론회 당시 그의 손바닥에서 ‘王’ 자가 세 차례 포착됐다. 이는 김씨의 무속 의혹과 겹치면서 지지율 폭락을 가져왔다. 전씨는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1월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전씨가 윤 전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리고 사무실을 소개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전씨가 ‘고문’으로 네트워크본부의 실질적인 지휘를 담당했다는 의혹과 함께 ‘무속인’이 캠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거대책본부는 “(전씨는) 고문으로 임명된 바 없다”고 해명한 뒤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전씨의 영향력은 위축되지 않았다. 최근 검찰 수사에선 전씨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최소 3명의 공천 청탁을 했고, 비슷한 시기 통일교 전 고위간부 윤영호씨가 전씨에게 김씨에게 줄 선물용 목걸이를 전달한 정황 등이 확인됐다. 전씨는 당시 ‘윤핵관’으로 꼽혔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 선거 운동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건진법사 게이트’를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확보한 문자 메시지를 보면 2021년 12월 윤 의원은 전씨에게 ‘권성동 의원과 제가 빠지는 게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라고 묻는다. 전씨는 ‘후보는 끝까지 같이 하길 원하는데 빠진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검찰 조사에서 전씨는 “사람들이 제가 힘 있는 줄 안다”며 이런 의혹들을 부인했다. ‘무속인 논란’ 이후 기자 등을 피해 숨어 지냈다고도 했다. 전·노 윤석열 캠프 외곽 그룹서 활동 “정권 초기부터 셌다” 일면식 있었나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과 달리 전씨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당선 후 더 커졌다. 검찰은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씨가 받은 경북 영주시장·경북도의원 등의 공천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들을 확보했다. 또 전씨가 경북 봉화군수·경남 합천군수·경기 성남시장 후보 등과 관련해 윤 의원에게 청탁을 시도한 정황도 파악했다. 청탁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당선됐다. 전씨는 검찰에 “공천 부탁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특검팀은 최근 전씨 휴대폰을 포렌식하며 ‘건희2’로 저장된 인물과의 대화 내역 일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19일 ‘건희2’로 저장된 번호로 8명의 이름과 근무 희망 부서를 적은 명단을 보냈다. 8명은 대부분 윤 전 대통령 대선캠프 내 ‘네트워크 본부’에서 일했다. 전씨는 “사모님께 말씀드렸다. 꼭 해주시라고 당부했다”는 취지의 문자를 이어 보냈다. 그러자 ‘건희2’로 저장된 인물은 다음 날 전씨에게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답했다. 김씨 측은 전씨가 ‘건희2’로 저장한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김씨의 ‘문고리 3인방’으로 꼽히는 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25일과 31일 두 차례 정 전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특검팀은 정 전 행정관을 상대로 전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씨가 보낸 메시지를 김씨에게 전달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검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및 김씨와의 친분을 내세워 다수의 공직 희망자로부터 인사 청탁과 공천 청탁을 받고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그는 윤석열 캠프서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특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은 주로 출근하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제의로 캠프에 몸담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의 역할이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뛰어넘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5월 단독으로 보도했던 노 전 사령관 기사를 보면 그는 2020년~2021년 사이 ‘식목일행사계획’ ‘YP(윤 전 대통령 추정)작전계획’ ‘YR(와이알)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압수한 노씨의 유에스비(USB)에 있던 문건으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가 주된 내용이다.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식목일행사계획 파일에는 ‘분노와 정의’라는 제목 아래 ▲(검찰총장) 퇴임 시 행동 ▲퇴임 후 동력 유지 방안(예) ▲퇴임 이후 정치 참여 방안(2~3개월 야인 생활 후) ▲대선 카드 준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대해 “자의로 퇴임 시 지금의 몸값을 최대한 유지하여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 직전이 유리, 기자회견은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여 퇴임합니다’라고 간명하게 함”이라고 적었다. 2021년 4월 치러졌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뜻인데, 윤 전 대통령은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 한 달여 전인 3월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해서 노 전 사령관은 문건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우려와 인식을 공유하여 지도자급으로서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재래시장, 청계천, 남대문, 지하철 등에서 몰래카메라의 형식으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냄새를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깜짝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또 “현 정치체제와 일정 기간 거리 두기를 하다가 내년 9월을 목표로 국민의힘에서 모셔가는 형식으로 영입” “AN(안철수 추정) 등 여타의 후보군을 모두 참여시켜서 경선을 하고 여타의 후보군이 꼼짝없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사전에 정리 작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 4개월 뒤인 2021년 7월 영입 제안을 받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YP작전계획’ 문건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이라는 ‘Y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연예인, 중도좌파도 끌어들이는 과감한 인물 영입”을 통해 “후원 지지 그룹 구성”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어 “친박, 비박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사용하고 “좌파 중량급을 영입”해서 “당권 장악”을 한 뒤 “대선 성공”을 하는 단계를 순서도 형식으로 그렸다. 막강한 영향력 아울러 “좌파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을 좌파 적폐 척결 차원에서 폐지”하고 “한미일 안보 축을 기본으로 하고 한일관계를 적폐 청산과 국민적 인기 영합 차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정책적 내용이 적시됐다. ‘YR계획’에는 “국립묘지 참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 두루 참배” 등 내용이 적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10월26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김대중·이승만·김영삼 전 대통령 순서로 묘소에 참배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11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 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 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책·현안 모두 비선 실세 말대로 실현 김·노 라인 물적 증거 없어 수사 필요 전씨와 노 전 사령관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의외로 ‘일본’과 무속이다. 김건희 특검팀 관계자 4~5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진법사 전씨의 법당으로 들이닥쳤을 당시 ‘일본 신상’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전씨의 법당은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 면적만 279㎡(약 84.4평)에 이르는 단독 주택 2층에 있다. 2층(90.18㎡)엔 거실과 큰방, 작은방, 화장실이 있고, 1층(134.02㎡)은 일반 가정집 형태 생활공간으로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설치돼 있다. 2층 거실과 큰방에 각각 부처상과 일본 신화에 나오는 아마테라스상을 모신 불당과 신당이 한 개씩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자 신도(神道)의 주신으로 일컫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건 한국 전통 무속이 일제 시대 신사 참배 등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은방은 테이블과 방석이 깔려 있는 응접실 형태의 손님 대기실인데, 전씨는 이 방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2018년 자유한국당 영천시장 예비후보와 사업가 이모씨, 축구선수 이천수 등을 만났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일본어를 매우 잘한다. 육사 졸업 후 일본에서 수년간 거주한 까닭이다. 노 전 사령관이 일본 동북대 석사 위탁교육을 받는 동안 그의 딸들은 현지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한 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일본에 오래 거주하지는 않았다. 일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신사에도 자주 갔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2019년부터 경기도 안산 본오동 ‘아기보살’ 점집에 얹혀살았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점집의 소유주가 아기보살 윤모씨로 돼 있다. 왜 하필 일본? 윤씨와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한 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기보살 점집에 가보면 노씨가 트레이닝복이나 잠옷 차림으로 있기도 했다. 점 보러 오는 손님이 많은 집이라 노씨가 손님들 줄도 세우고 그랬다. 1년쯤 지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씨가 실은 자기가 장성 출신이라고 그러기에 ‘웃기지 마라, 나도 군대 ‘장’ 출신’이라고 대꾸해 줬다, 병장. 그런데 몸집도 탄탄하고 해서 장군 출신이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데 사는구나 짐작했다. 노씨는 후배 군인들을 데려와 점을 보게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