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 교사들의 두 얼굴

수업 중엔 선생님 종 치면 발바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과 한 세대 전만해도 교사는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할 스승이었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교사는 본받고 따라야 하는 존재였다. 학부모의 존경도 받았다. 하지만 교권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학생들의 일탈과 학부모의 간섭만을 원인으로 삼기엔 물의를 일으키는 교사도 적지 않다.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잔인한 후유증을 남긴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여자 청소년 10명 중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생각해봤다고 응답했다. 김재엽 연세대 교수의 논문 여자 청소년의 성폭력 피해 경험과 자살 생각의 관계에 실린 내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중고교 여학생 1019명 가운데 16.2%가 어떤 유형의 성폭력이든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63.6%(105)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 학생의 경우 그 비율은 36.4%였다.

가해 교사
피해 학생

교사가 성폭력 가해자일 경우 피해 학생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피해 학생들은 교사의 권위에 눌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던 중 2018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창문 미투를 시작으로 전국의 중·고등학교서 스쿨 미투가 시작됐다.

지난해 4월 용화여고 졸업생 96명은 교사 18명의 상습적인 성폭력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 재학생들은 학교 창문에 ‘#with you’ ‘I can do anything’ ‘#Me Too’ 등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졸업생들에게 지지를 표했다. 용화여고를 시작으로 학생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이 SNS를 통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스쿨 미투 폭로가 나온 중·고등학교는 80여곳에 달한다. 재학생들은 교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성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했다. 졸업생들도 재학생들의 폭로에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스쿨 미투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교사가 가해자인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K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충북 제천의 한 고등학교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30대 교사 김모씨는 다른 지역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신체 사진 등을 강압적으로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학교서 근무 도중에 체포영장을 들고 온 경찰에게 긴급체포됐다.

김씨는 피해 학생을 인터넷 채팅방서 알게 됐다. 이후 특정 부위 사진을 요구하고 강요와 협박을 일삼다가, 직접 만나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학생의 부모가 김씨를 고소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교육청은 즉각 김씨를 직위해제하고 진상 파악에 나선 상태다.

지난 3월에는 4년 동안 18회에 걸쳐 제자를 성폭행한 전직 교사가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1부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중학교 교사 서모씨의 상고심서 징역 9,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0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간 5년 취업제한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교권 침해 심해진 만큼
각종 비위 사건도 늘어

서씨는 20133월부터 1년간 피해 학생이 재학 중인 중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일했다. 그는 학교와 피해 학생의 집, 모텔 등에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아내가 임신해 입원한 중에도 피해 학생에게 몹쓸 짓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만 13세에 불과했던 자신의 제자이자 청소년인 피해자를 위력으로 추행한 것을 시작으로 약 4년 동안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추행하거나 간음했다교사로서 학생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하고 교사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점 등에 비춰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판단해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서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1심과 같이 징역 9년을 선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장애인 제자 3명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강원지역 특수학교 교사 박모씨는 항소심서도 징역 16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2014년부터 20187월까지 지적 장애가 있는 피해 학생 3명을 교실 등에서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 용화여고 ⓒ트위터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비록 잘못을 인정하고 전과가 없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엄벌이 불가피하다원심이 너무 가볍거나 무거워서 형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 검찰과 박씨가 낸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제자와 성관계를 맺고 시험 성적을 조작해줬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교사도 있다. 광주지법 형사11부는 지난해 12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기간제 교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7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들의 비위가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교권을 침해당하는 것과 비례해 교사들의 일탈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교사 성범죄
계속 증가

김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들의 비위는 6873건으로 집계됐다. 2014702건서 20181248건으로 5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비위 유형별로는 음주운전이 2394건으로 전체의 34.8%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폭행·절도·도박 등 실정법 위반이 1850(26.9%)으로 뒤를 이었다. 성폭행·성추행·몰래카메라 촬영·공연음란·음란물 배포 등 성비위는 전체의 10%676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교사들의 성비위는 201444건에서 2015106, 2016139, 2017170, 2018168건으로 5년 새 4배나 늘었다.

지난해 5월 스쿨 미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때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초중고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고교생 10명 중 4명이 학교서 교사의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고등학생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0.9%입학 후 성희롱이 일어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조사는 지난해 전국 여고생 814, 남고생 200명을 상대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진행했다. 응답자의 34.4%는 교사들이 학생의 머리··어깨·허벅지 등을 만지거나 껴안고 뺨을 비비는 등 신체적 성희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하거나 이성친구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냐고 묻는 언어적 성희롱을 한다고 답한 비율도 21.2%였다.


응답한 학생의 27.7%는 교사에게 직접 성희롱을 당했다고 답변해 충격을 안겼다. 성희롱을 당한 상황은 대부분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던 때였다. 복장을 지적하며 지도용 봉으로 신체부위를 찌르거나 치마 길이를 확인한다며 교복을 들추는 일 등이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 꼽혔다.

문제는 학생들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응답자의 37.9%성희롱을 당했을 때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피해 학생 10명 중 4명이 교사의 성희롱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피해 학생의 20%에 가까운 응답자들도 부당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고 답변했다.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 대응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학생
소극적 대응

전문가들은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해자에 대한 징계수위를 높은 수준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하연 서울경찰청 젠더폭력예방전문 강사는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보호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을 학교 평가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학교의 사후 대책을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현장서 전문가들의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실제 성비위를 저지른 교사에 대한 징계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최근 5년간 전국 초중고 성비위 교원 징계처분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사의 성추행·성폭행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반면 10건 중 2건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학생이 피해자이고 교사가 가해자인 성비위에 대한 징계 건수는 201320건서 201536, 201641, 201760건으로 5년 새 3배나 늘었다. 이 중 징계 수위가 경징계 처분에 그친 사례는 182건 중 35(19%)에 달했다. 학생을 대상으로 성추행·성폭행을 저지른 교사 10명 중 2명은 감봉·견책·경고 등 가벼운 처벌만 받은 셈이다.

박 의원은 교사가 학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위계관계서 발생하기 때문에 취약한 가정의 청소년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교원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성비위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이 없는 엄정한 처벌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쿨 미투가 일어난 것도 교사와 학생은 수직관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투운동 자체도 위력 관계서 발생해 그동안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에서 비롯됐다. 스쿨 미투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서 쉽게 폭로하지 못한 성폭력 피해 사례를 밖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스쿨 미투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스쿨 미투를 촉발한 용화여고서 파면된 가해 교사가 검찰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북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달 7일 강제추행 혐의를 받은 용화여고 전 교사 A씨를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노원경찰서는 사건을 일부 기소·불기소 의견으로 나눠 검찰에 넘긴 상태였다.

검찰은 A씨에 대해 증거 부족에 의한 무혐의로 판단하고 기소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와 보완 수사 과정서 A씨와 피해를 호소한 학생, 졸업생의 증언이 상반되는 부분이 있어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고 했다.

스쿨 미투 시작 1년 지나 
가해 교사 솜방망이 처벌

<경향신문>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경찰에 12차례 출석해 진술한 뒤에는 나오지 않아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없었다“A씨가 알리바이를 주장한 부분 중 객관적인 사실과 부합한 것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14일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처음으로 전국 86개 중·고등학교서 발생한 스쿨 미투 현황판을 공개했다. 스쿨 미투에 참여한 전국 학교들 중 서울 소재 중·고교 수가 23개로 가장 많았다.

이날 정치하는 엄마들은 스쿨 미투 현황판을 통해 피해 학생들이 당한 성폭력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시 내 한 중학교 교사는 제자에게 고등학교에 가면 성관계를 맺자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내가 열 달 동안 생리 안 하게 해줘?”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리 오므려” “나는 네 속이 궁금해라는 식의 추행 발언을 일삼은 교사도 있었다.

지방 소재 중학교서도 나는 정관수술을 했으니 너희와 성관계를 해도 임신하지 않아 괜찮다” “몸매 이쁘네, 엉덩이도 크네등의 발언이 나왔다. 또 지방의 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는 예쁜 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 “화장실 가서 옷 벗고 기다리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는 등의 교사라는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 발언도 있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 3월 제주를 제외한 전국 16개 교육청에 스쿨 미투 처리현황 공개를 위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감사 실시 여부와 징계 등 처리 결과와 같은 주요 정보에 대해 대부분 비공개 답변을 받자 이 같은 현황판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스쿨 미투 처리현황 공개를 위한 행정소송기자회견을 열고 가해교사는 스승이 아니다라며 교사가 스승의 탈을 쓰고 교권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가해교사와 같은 장소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신변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골든아워나 마찬가지라며 학교 성폭력 공론화를 이끌어낸 재학생, 졸업생 고발자들이야말로 시대의 참스승이라고 전했다.

여성단체들
정부대책 촉구

앞서 지난 2월에도 각 지역 스쿨 미투 단체와 여성단체 등이 모여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스쿨 미투)고발 후 1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고발자는 2차 가해와 신변 위협에 시달리고, 학교는 고발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12월 정부는 최초 스쿨 미투 고발 후 열 달 만에야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학교 전수조사가 빠지는 등 근본적 해결책을 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예비교사들까지… 성희롱 단톡방 펑펑

현직에 있는 교사뿐만 아니라 예비교사의 도덕성도 도마에 올랐다. 최근 각 지역 교대서 단톡방 성희롱과 불법 촬영 등 성범죄 의혹이 잇따라 폭로됐다.

예비교사들의 윤리의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남학생들이 가입된 한 소모임서 같은 과 여학생들의 사진과 개인정보가 담긴 책자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신입생과 졸업생이 만나는 대면식 때 여학생들의 얼굴과 몸매에 등급을 매기고 성희롱을 했다는 내용이 폭로됐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이들의 성희롱을 추가 폭로하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가 걸렸다.

교육부 전수조사 나서

경인교대 체육교육과 남학생들이 모인 채팅방서 여학생에 대한 성희롱과 욕설 등이 오간 정황도 포착됐다. 채팅 내용은 경인교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익명제보가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제보자가 게시한 채팅방 사진에는 특정 여학생을 명시하며 노골적으로 성희롱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여학생을 상대로 심한 욕설을 하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서 성 관련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특별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교대, 경인교대, 광주교대 등을 시작으로 전국 교대 10곳이 특별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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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