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1년3개월 후…끝나지 않은 성폭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1월 미국발 허리케인이 국내에 상륙했다. 이른바 미투운동의 등장이다.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서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각계각층 저명한 인사들의 과거 잘못된 행동이 쏟아져 나왔다. 단발성 폭로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미투운동은 사회현상을 넘어 변화의 시발점이 됐다 . 그로부터 13개월이 지났다 .

▲ 서지현 검사

시작은 SNS 해시태그(#)였다. 201710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도 피해자’(Me Too)라는 단어에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공유했다. 미국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유럽 등지로 광풍처럼 뻗어나갔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알리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했다.

해시태그 운동
사회 뒤집어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미투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2017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타임>은 이들을 가리켜 침묵을 깬 사람들 ’(The Silence Breakers)이라고 명명했다. 표지 사진에는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전 우버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포함됐다.

<타임> 이 운동, 심판은 위대한 사회적 변화가 그러했듯이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과 함께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이러한 심판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지만 사실은 몇 해, 몇십년 , 몇 세기 동안 계속 끓어올랐다침묵을 깬 사람들은 하루 만에 힘을 모으고 거부 혁명을 시작했으며 그들의 집단적인 분노는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고 설명했다.

실제 배우인 알리사 밀라노의 트위터 글로 시작된 미투운동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30 년간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몰락했다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도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바람은 현직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됐다.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는 지난해 1 월, 한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미투운동은 각계각층에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투운동에 적극 지지입장을 밝히면서 핵폭탄급 이슈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우리 사회 전 분야로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어 미투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고 덧붙였다.

서 검사의 폭로로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먼저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문단_ _성폭력) 운동이 진행 중이던 문단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가 들썩였다.

폭발적인 파괴력은 줄었지만
사회 전반에 영향 끼치고 있어

일각에서는 2016년 문화예술계서 촉발된 성추문 폭로 사건을 우리나라 미투운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이후 정치권 , 연예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서 연이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체육계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피해 경험을 고백하고 가해자로 지목한 코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지도가 높은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성폭력 사실은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과정서 2차 가해, 거짓 폭로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다 . 미투운동은 조직 내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위계 문제로 인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를 고발한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가해자와 비교해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 이는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증거 없이 피해자의 주장만 남은 사례도 있다. 피해자의 증언만을 판단 근거로 가해자가 지목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악의를 가지고 거짓으로 폭로하거나 이를 보도하는 과정서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에 잠깐 부는 바람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는 공감했다. 거짓 폭로, 자극적인 보도 등으로 단발성 이슈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에 천천히 연착륙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부조리한 사실은 밖으로 꺼내 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미투운동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문재인정부서 양성평등 정책을 내놓는 데 미투운동이 장작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빚투’( 채무에 대한 폭로),‘공투’(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 등 미투서 비롯된 신조어도 나왔다.

터지면 ‘끝’
유명인사 ‘훅’

이후 13개월이 흘렀고 미투운동 초기의 폭발적인 파괴력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피해자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의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피해자들도 언론 인터뷰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실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법적 조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연극계 대부서 몰락한 이윤택 전 연희당거리패 예술감독은 항소심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1년 추가됐다.

▲ 김기덕 감독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장판사 한규현)는 지난 9일 상습 강제추행 및 유사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심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 전 감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공판서 원심 중 일부 무죄로 판단한 선고를 각각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7 ,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했던 연극 단원 A씨 강제추행 혐의와 추가 기소 사건인 안무가 B 씨 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면서 형량이 늘었다.


지난해 2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SNS를 통해 자신이 10 여년 전 지방 공연을 하던 당시 겪은 일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지방 공연을 맡았던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자신도 여관방으로 호출당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안 갈 수가 없었다.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라도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 선배쯤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맺었다.

1심·항소심
판결 바뀌어

당시 김 대표는 이 전 감독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글 곳곳에 이 전 감독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대표의 폭로 이후 이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

이 전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법적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지만 기자회견 리허설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판 수위는 높아졌다.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재판 중에 있다. 안 전 지사는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될 만큼 정치적 미래가 밝았지만 성추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 안 전 지사의 공보비서를 지낸 김지은씨가 방송에 출연했다.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김씨는 안 전 지사에게 8개월에 걸쳐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월 항소심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에선 무죄였다 . 서울고법 형사12(부장판사 홍동기 )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저지른 10차례의 범행 중 한 번의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자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위력에 대해 폭넓게 해석한 점이 1심 판결과 달랐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

심석희 선수에 대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항소심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장판사 문성관) 는 지난 1월 상습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코치에 대해 징역 16개월을 선고했다.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 고소를 진행 중이다.

조 전 코치는 지난 20148월부터 201712월까지 태릉·진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 7곳에서 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심 선수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 진술과 조 전 코치와 성폭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문자메시지, 심 선수의 동료·지인 등 참고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성폭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판결 나와
부정 여론에 방송서 사라지기도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인 만큼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며 피해자 진술, 복원된 대화 내용 등 여러 증거가 조 전 코치가 (심 선수를)성폭행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전했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관련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방송사와 여배우 C씨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C씨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의 촬영 당시 , 김 감독이 연기지도 명목으로 뺨을 때리고 사전 협의 없이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김 감독은 여배우 C 씨와 <PD수첩>을 방영한 MBC 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C씨와 MBC <PD 수첩> 제작진이 허위의 주장을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 배우 고 조민기씨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김 감독이 여배우 C씨와 MBC <PD수첩 > 제작진을 상대로 각각 무고 혐의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치열하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자취를 감춘 이들도 있다.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울 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실제 방송계서 미투운동이 불거졌을 무렵, 제작진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출연진이 나온 장면을 편집하고 대체자를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짠돌이’ ‘통장요정 콘셉트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방송인 김생민은 지난해 4, 10년 전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모든 방송서 하차했다 . 10여개에 달하는 광고, 여러 프로그램에 메인으로 참여하던 김씨가 방송가서 자취를 감추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다.

학생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던 배우 조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2월 온라인상에 조씨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 조씨가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고발한 글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 연기파 배우로 불렸던 조씨는 가족과 함께 예능에 출연하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쌓고 있던 차였다.

차가운 
대중 시선

조씨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아이들이 있다 고 말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누리꾼의 비난은 계속됐다. 이뿐만 아니라 조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추가로 나왔다 . 또 조씨가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당시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20여명에 달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조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 조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대신 목숨을 끊었다. 조씨에 대한 미투 폭로가 나오고 불과 20 여일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9년 4월16일 <'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여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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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부인은 통신상 기밀을 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대통령의 아내’다. 비화폰이 필요하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 김건희씨는 그 어떤 영부인과는 달랐다. 윤석열정부 초부터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화폰은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고 내용도 암호화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경호처·안보 담당 고위 관계자, 군·정보기관에 근무 중인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민간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건희씨는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지켜졌던 관행을 파괴하고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수사기관·정치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 개입 정황 확인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씨가 사용했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에 나섰다. 정민영 특검보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관계자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당사자 21명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및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제출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외압이 의심되는 기간 비화폰 통신 기록을 분석하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특검보는 김씨도 비화폰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본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8월 소위 ‘VIP 격노’ 이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된 배경에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점으로 한 수사 외압과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인물의 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이 당시 보안성이 높은 비화폰을 사용해 연락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통신 기록 확보에 추가로 나선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일반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들은 어느 정도 확인됐는데 중간중간 비화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누구와 어떤 시기에 수발신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 윤·김 통신 기록 확보 조태용·김태용 등 “VIP 격노 사실” 앞서 특검팀은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통신 기록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고, 경호처 측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특검에 제출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비화폰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이 됐던 2023년 7월31일 VIP 격노 회의 전후 기간 이들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내가 VIP(윤 전 대통령)한테 얘기하겠다”고 지인에게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아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비화폰 기록을 토대로 김씨가 이 전 대표와 어떤 통화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씨의 비화폰 사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 이전엔 대통령 부인이 비화폰을 상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호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부인이 비화폰을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관행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경호처는 “비화폰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 등을 근거로 한 대통령경호처의 내부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김씨에 대해서는 관련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에게 지급된 비화폰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송수신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송만 가능하다. 그의 비화폰 기록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의 비화폰 기록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도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지난해 7월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으로 검찰 출장 조사를 받기 전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30분 넘게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부 맞다” 줄줄이 실토 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김 전 수석이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2차례 통화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김씨의 비화폰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특검팀은 최근 조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가량 조사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을 당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 7명 중 한 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육군 중장·현 국방대학교 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 대통령실 내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조 전 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보실 회의 참석자로만 보면 4번째다. 정 특검보는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기록의 회수와 관련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확인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순직 사건 기록을 이첩한 당일 임 전 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수사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 전 비서관 등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북경찰청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이첩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박모 총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며 이 전 비서관이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총경은 대통령실과 국수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3년 8월2일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경북청이 연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2023년 8월2일 오후 1시21분 이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뒤이어 오후 1시42분 유 전 관리관에게 전화했다. 누구와 통화했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 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청에서 전화를 걸어올 것이란 말을 들었고, 경북청 관계자와 통화하며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관리관은 노모 당시 경북청 수사부장과의 통화에 대해 “경북청에서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해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판단하기론 ‘항명에 따른 무단 이첩이라 회수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유 전 관리관과 경북청의 통화 이후 해병대수사단에서 이첩한 수사 기록은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검찰단에서 회수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으로 혐의자가 적시된 해병대 수사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를 거쳐 2명으로 축소돼 경북청에 다시 보내졌다. 특검팀은 수사의 초점을 점차 국방부검찰단의 수사 기록 회수와 국방부조사본부의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 확인으로 옮기고 있다. 정 특검보는 “기록 회수와 재검토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수사 초반에 비해 기록 회수나 (조사본부) 재조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김진락 전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장(육군 대령)의 2023년 8월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수첩을 확보해 국방부의 외압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아닌 2023년 초부터 사용 “문제 생기거나 위기 때마다 애용” 국방부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해병대수사단 수사 기록 재검토에 들어갔고 닷새 후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혐의자로 판단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방부조사본부는 총 6차례에 걸친 보고서 수정을 거쳐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한 재검토 결과를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김씨와 비화폰으로 통화한 인물들은 모두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에 김씨가 윤 전 대통령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화폰으로 김 전 수석과 조 전 원장 등과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한 인물은 윤석열정부 초대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했다고 한다. 김씨가 비화폰을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2023년 초부터다. 특검팀도 2023년 3월부터 김씨가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9월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사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과 김씨가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직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연남 역할은? 한 정보사 관계자는 “김씨의 어머니인 최은순씨의 내연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노상원을 후원하던 사람이라는 풍문은 많이 알려진 얘기”라며 “노상원과 내연남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내연남이 노상원에게 돈을 퍼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연남이 노상원과 비화폰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무속과 고민 상담 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