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1년3개월 후…끝나지 않은 성폭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1월 미국발 허리케인이 국내에 상륙했다. 이른바 미투운동의 등장이다.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서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각계각층 저명한 인사들의 과거 잘못된 행동이 쏟아져 나왔다. 단발성 폭로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미투운동은 사회현상을 넘어 변화의 시발점이 됐다 . 그로부터 13개월이 지났다 .

▲ 서지현 검사

시작은 SNS 해시태그(#)였다. 201710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도 피해자’(Me Too)라는 단어에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공유했다. 미국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유럽 등지로 광풍처럼 뻗어나갔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알리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했다.

해시태그 운동
사회 뒤집어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미투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2017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타임>은 이들을 가리켜 침묵을 깬 사람들 ’(The Silence Breakers)이라고 명명했다. 표지 사진에는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전 우버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포함됐다.

<타임> 이 운동, 심판은 위대한 사회적 변화가 그러했듯이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과 함께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이러한 심판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지만 사실은 몇 해, 몇십년 , 몇 세기 동안 계속 끓어올랐다침묵을 깬 사람들은 하루 만에 힘을 모으고 거부 혁명을 시작했으며 그들의 집단적인 분노는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고 설명했다.

실제 배우인 알리사 밀라노의 트위터 글로 시작된 미투운동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30 년간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몰락했다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도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바람은 현직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됐다.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는 지난해 1 월, 한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미투운동은 각계각층에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투운동에 적극 지지입장을 밝히면서 핵폭탄급 이슈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우리 사회 전 분야로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어 미투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고 덧붙였다.

서 검사의 폭로로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먼저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문단_ _성폭력) 운동이 진행 중이던 문단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가 들썩였다.

폭발적인 파괴력은 줄었지만
사회 전반에 영향 끼치고 있어

일각에서는 2016년 문화예술계서 촉발된 성추문 폭로 사건을 우리나라 미투운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이후 정치권 , 연예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서 연이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체육계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피해 경험을 고백하고 가해자로 지목한 코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지도가 높은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성폭력 사실은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과정서 2차 가해, 거짓 폭로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다 . 미투운동은 조직 내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위계 문제로 인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를 고발한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가해자와 비교해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 이는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증거 없이 피해자의 주장만 남은 사례도 있다. 피해자의 증언만을 판단 근거로 가해자가 지목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악의를 가지고 거짓으로 폭로하거나 이를 보도하는 과정서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에 잠깐 부는 바람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는 공감했다. 거짓 폭로, 자극적인 보도 등으로 단발성 이슈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에 천천히 연착륙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부조리한 사실은 밖으로 꺼내 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미투운동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문재인정부서 양성평등 정책을 내놓는 데 미투운동이 장작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빚투’( 채무에 대한 폭로),‘공투’(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 등 미투서 비롯된 신조어도 나왔다.

터지면 ‘끝’
유명인사 ‘훅’

이후 13개월이 흘렀고 미투운동 초기의 폭발적인 파괴력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피해자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의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피해자들도 언론 인터뷰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실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법적 조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연극계 대부서 몰락한 이윤택 전 연희당거리패 예술감독은 항소심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1년 추가됐다.

▲ 김기덕 감독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장판사 한규현)는 지난 9일 상습 강제추행 및 유사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심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 전 감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공판서 원심 중 일부 무죄로 판단한 선고를 각각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7 ,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했던 연극 단원 A씨 강제추행 혐의와 추가 기소 사건인 안무가 B 씨 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면서 형량이 늘었다.


지난해 2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SNS를 통해 자신이 10 여년 전 지방 공연을 하던 당시 겪은 일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지방 공연을 맡았던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자신도 여관방으로 호출당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안 갈 수가 없었다.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라도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 선배쯤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맺었다.

1심·항소심
판결 바뀌어

당시 김 대표는 이 전 감독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글 곳곳에 이 전 감독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대표의 폭로 이후 이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

이 전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법적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지만 기자회견 리허설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판 수위는 높아졌다.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재판 중에 있다. 안 전 지사는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될 만큼 정치적 미래가 밝았지만 성추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 안 전 지사의 공보비서를 지낸 김지은씨가 방송에 출연했다.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김씨는 안 전 지사에게 8개월에 걸쳐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월 항소심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에선 무죄였다 . 서울고법 형사12(부장판사 홍동기 )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저지른 10차례의 범행 중 한 번의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자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위력에 대해 폭넓게 해석한 점이 1심 판결과 달랐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

심석희 선수에 대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항소심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장판사 문성관) 는 지난 1월 상습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코치에 대해 징역 16개월을 선고했다.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 고소를 진행 중이다.

조 전 코치는 지난 20148월부터 201712월까지 태릉·진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 7곳에서 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심 선수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 진술과 조 전 코치와 성폭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문자메시지, 심 선수의 동료·지인 등 참고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성폭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판결 나와
부정 여론에 방송서 사라지기도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인 만큼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며 피해자 진술, 복원된 대화 내용 등 여러 증거가 조 전 코치가 (심 선수를)성폭행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전했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관련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방송사와 여배우 C씨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C씨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의 촬영 당시 , 김 감독이 연기지도 명목으로 뺨을 때리고 사전 협의 없이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김 감독은 여배우 C 씨와 <PD수첩>을 방영한 MBC 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C씨와 MBC <PD 수첩> 제작진이 허위의 주장을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 배우 고 조민기씨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김 감독이 여배우 C씨와 MBC <PD수첩 > 제작진을 상대로 각각 무고 혐의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치열하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자취를 감춘 이들도 있다.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울 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실제 방송계서 미투운동이 불거졌을 무렵, 제작진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출연진이 나온 장면을 편집하고 대체자를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짠돌이’ ‘통장요정 콘셉트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방송인 김생민은 지난해 4, 10년 전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모든 방송서 하차했다 . 10여개에 달하는 광고, 여러 프로그램에 메인으로 참여하던 김씨가 방송가서 자취를 감추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다.

학생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던 배우 조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2월 온라인상에 조씨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 조씨가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고발한 글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 연기파 배우로 불렸던 조씨는 가족과 함께 예능에 출연하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쌓고 있던 차였다.

차가운 
대중 시선

조씨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아이들이 있다 고 말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누리꾼의 비난은 계속됐다. 이뿐만 아니라 조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추가로 나왔다 . 또 조씨가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당시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20여명에 달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조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 조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대신 목숨을 끊었다. 조씨에 대한 미투 폭로가 나오고 불과 20 여일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9년 4월16일 <'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여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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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