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1년3개월 후…끝나지 않은 성폭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1월 미국발 허리케인이 국내에 상륙했다. 이른바 미투운동의 등장이다.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서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각계각층 저명한 인사들의 과거 잘못된 행동이 쏟아져 나왔다. 단발성 폭로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미투운동은 사회현상을 넘어 변화의 시발점이 됐다 . 그로부터 13개월이 지났다 .

▲ 서지현 검사

시작은 SNS 해시태그(#)였다. 201710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도 피해자’(Me Too)라는 단어에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공유했다. 미국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유럽 등지로 광풍처럼 뻗어나갔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알리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했다.

해시태그 운동
사회 뒤집어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미투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2017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타임>은 이들을 가리켜 침묵을 깬 사람들 ’(The Silence Breakers)이라고 명명했다. 표지 사진에는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전 우버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포함됐다.

<타임> 이 운동, 심판은 위대한 사회적 변화가 그러했듯이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과 함께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이러한 심판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지만 사실은 몇 해, 몇십년 , 몇 세기 동안 계속 끓어올랐다침묵을 깬 사람들은 하루 만에 힘을 모으고 거부 혁명을 시작했으며 그들의 집단적인 분노는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고 설명했다.

실제 배우인 알리사 밀라노의 트위터 글로 시작된 미투운동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30 년간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몰락했다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도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바람은 현직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됐다.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는 지난해 1 월, 한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미투운동은 각계각층에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투운동에 적극 지지입장을 밝히면서 핵폭탄급 이슈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우리 사회 전 분야로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어 미투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고 덧붙였다.

서 검사의 폭로로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먼저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문단_ _성폭력) 운동이 진행 중이던 문단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가 들썩였다.

폭발적인 파괴력은 줄었지만
사회 전반에 영향 끼치고 있어

일각에서는 2016년 문화예술계서 촉발된 성추문 폭로 사건을 우리나라 미투운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이후 정치권 , 연예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서 연이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체육계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피해 경험을 고백하고 가해자로 지목한 코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지도가 높은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성폭력 사실은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과정서 2차 가해, 거짓 폭로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다 . 미투운동은 조직 내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위계 문제로 인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를 고발한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가해자와 비교해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 이는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증거 없이 피해자의 주장만 남은 사례도 있다. 피해자의 증언만을 판단 근거로 가해자가 지목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악의를 가지고 거짓으로 폭로하거나 이를 보도하는 과정서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에 잠깐 부는 바람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는 공감했다. 거짓 폭로, 자극적인 보도 등으로 단발성 이슈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에 천천히 연착륙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부조리한 사실은 밖으로 꺼내 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미투운동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문재인정부서 양성평등 정책을 내놓는 데 미투운동이 장작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빚투’( 채무에 대한 폭로),‘공투’(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 등 미투서 비롯된 신조어도 나왔다.

터지면 ‘끝’
유명인사 ‘훅’

이후 13개월이 흘렀고 미투운동 초기의 폭발적인 파괴력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피해자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의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피해자들도 언론 인터뷰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실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법적 조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연극계 대부서 몰락한 이윤택 전 연희당거리패 예술감독은 항소심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1년 추가됐다.

▲ 김기덕 감독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장판사 한규현)는 지난 9일 상습 강제추행 및 유사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심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 전 감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공판서 원심 중 일부 무죄로 판단한 선고를 각각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7 ,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했던 연극 단원 A씨 강제추행 혐의와 추가 기소 사건인 안무가 B 씨 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면서 형량이 늘었다.


지난해 2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SNS를 통해 자신이 10 여년 전 지방 공연을 하던 당시 겪은 일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지방 공연을 맡았던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자신도 여관방으로 호출당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안 갈 수가 없었다.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라도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 선배쯤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맺었다.

1심·항소심
판결 바뀌어

당시 김 대표는 이 전 감독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글 곳곳에 이 전 감독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대표의 폭로 이후 이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

이 전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법적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지만 기자회견 리허설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판 수위는 높아졌다.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재판 중에 있다. 안 전 지사는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될 만큼 정치적 미래가 밝았지만 성추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 안 전 지사의 공보비서를 지낸 김지은씨가 방송에 출연했다.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김씨는 안 전 지사에게 8개월에 걸쳐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월 항소심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에선 무죄였다 . 서울고법 형사12(부장판사 홍동기 )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저지른 10차례의 범행 중 한 번의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자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위력에 대해 폭넓게 해석한 점이 1심 판결과 달랐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

심석희 선수에 대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항소심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장판사 문성관) 는 지난 1월 상습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코치에 대해 징역 16개월을 선고했다.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 고소를 진행 중이다.

조 전 코치는 지난 20148월부터 201712월까지 태릉·진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 7곳에서 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심 선수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 진술과 조 전 코치와 성폭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문자메시지, 심 선수의 동료·지인 등 참고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성폭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판결 나와
부정 여론에 방송서 사라지기도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인 만큼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며 피해자 진술, 복원된 대화 내용 등 여러 증거가 조 전 코치가 (심 선수를)성폭행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전했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관련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방송사와 여배우 C씨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C씨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의 촬영 당시 , 김 감독이 연기지도 명목으로 뺨을 때리고 사전 협의 없이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김 감독은 여배우 C 씨와 <PD수첩>을 방영한 MBC 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C씨와 MBC <PD 수첩> 제작진이 허위의 주장을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 배우 고 조민기씨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김 감독이 여배우 C씨와 MBC <PD수첩 > 제작진을 상대로 각각 무고 혐의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치열하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자취를 감춘 이들도 있다.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울 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실제 방송계서 미투운동이 불거졌을 무렵, 제작진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출연진이 나온 장면을 편집하고 대체자를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짠돌이’ ‘통장요정 콘셉트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방송인 김생민은 지난해 4, 10년 전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모든 방송서 하차했다 . 10여개에 달하는 광고, 여러 프로그램에 메인으로 참여하던 김씨가 방송가서 자취를 감추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다.

학생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던 배우 조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2월 온라인상에 조씨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 조씨가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고발한 글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 연기파 배우로 불렸던 조씨는 가족과 함께 예능에 출연하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쌓고 있던 차였다.

차가운 
대중 시선

조씨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아이들이 있다 고 말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누리꾼의 비난은 계속됐다. 이뿐만 아니라 조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추가로 나왔다 . 또 조씨가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당시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20여명에 달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조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 조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대신 목숨을 끊었다. 조씨에 대한 미투 폭로가 나오고 불과 20 여일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9년 4월16일 <'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여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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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