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①] ‘베트남 호치민’ 꿈꾸는 조경태 의원

“언론이 조명한 빅3 ‘삑사리’ 날 수 있어”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정치권의 시계가 벌써부터 12·19 대선에 맞춰진 분위기다. 저마다 잠룡들이 대선 출사표를 내던지며 강력한 대권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다. ‘미래권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대선불판 역시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일요시사>는 승천을 꿈꾸는 잠룡들을 만나 저마다의 집권플랜을 세세히 들어봤다. 그 첫 번째로 민주당 깃발로 PK불모지 개척에 성공한 3선의 조경태 의원을 만나봤다.

“내 다라이(대야)~.”

이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었다.

이는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조경태 의원의 이야기다. 당초 공학박사로 학자의 길을 걷고 있던 조 의원은 지난 1995년 구포장터에서 노점상인 단속반들의 폭압적인 철거과정을 지켜봤다. 70대 어르신들의 눈물, 아주머니들의 울부짖음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이때부터 조 의원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힘없는 약자 편에 서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며 정치에 본격 입문했다.

조 의원의 정치적 스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조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999년 종로 국회의원이었을 당시 비서관으로 연을 맺었다. 그래서일까. 조 의원의 정치적 궤적은 노 전 대통령을 쏙 빼닮았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거듭된 낙선에도 PK 도전과 청문회 스타까지.

특히 조 의원은 민주당의 불모지인 부산에서 내리 3선이라는 경이로운 기록까지 세운 상태다. 친노 깃발 없이 지역주의를 맨몸으로 깨부순 것. 그리고 마침내 조 의원은 ‘어게인 2002’를 외치며 대선출사표를 던졌다. 노 전 대통령도 지난 2002년 대선 경선에 뛰어들 당시 낮은 지지율로 출발해 ‘이인제 대세론’과 ‘정몽준 대망론’을 꺾었다는 이유에서다.


조 의원은 본격 진검승부 국면으로 접어들어 자신의 경쟁력이 알려질수록 폭발적인 지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노무현 외로울 때 정치 외면하던 문재인, 이제 와서 후광 혼자 받아”
“지나치게 여론 눈치 보는 박근혜, 자신의 목소리로 ‘수첩공주’ 떨쳐야”

-민주당 내에서 가장 먼서 대선후보 경선 출마 선언을 하셨다. 언제쯤 이런 구상을 했는가?

▲초선시절부터 의정활동을 하면서 정치가 당리당락에 치우치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행태로 인해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은커녕 절망만 주는 실정이다. 지금 국민들께서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태다. 때문에 민생제일주와 정치개혁을 위해 출마하게 되었다. 특히 YS?DJ가 못다 이룬 ‘40대 기수론’을 완성시키겠다는 각오다.

-민주당 깃발로 여당의 텃밭에서 3선에 성공했다.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따뜻한 가슴과 신뢰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으로 지역에서 소문났다. 사소한 민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특히 나는 지역구인 신평-다대포 지하철 연장이라는 지역주민의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공사비용 7800억 정도의 국책사업규모로 여러 정치인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사안이다.


-민주당내 후보군이 문재인·손학규·김두관 ‘빅3’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비교하면 민주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비교가 안 된다. 모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빅3가 ‘삑사리’가 날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나의 경쟁력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주목 받게 될 것이다.

-빅3 후보를 평가하자면.

▲문재인 의원은 초선이다. 의정활동을 통해 신념을 파악해야 하는데 정치적 신념을 모르겠다. 게다가 당신께서는 정치 안하신다고 하셨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도에 부산시장으로 나와 달라 했을 때 안 나왔다. 노 전 대통령께서 그 어렵고 외로웠을 당시 왜 안하셨는지. 하지만 지금 후광은 문 의원이 다 받고 있다. 게다가 김두관 지사도 민주당 깃발이 아니라 무소속 당선이었다. 경남에서 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 중 무소속은 많다. 민주당으로 경쟁해야지, 우린 무소속은 안쳐준다(웃음). 손학규 고문 역시 지속적으로 정체성에 의심을 받는 분이다.

-대선후보로서의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지율이 아쉽다.

▲대선의 예비고사로 불리는 지난 4·11 총선에서 내가 문재인 의원보다 득표율이 높았다. 언론에서 ‘문재인 띄우기’가 한창이었지만 조경태보다 지지율이 낮았다. 역으로 말하면 나의 경쟁력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진검승부 국면으로 접어들어 국민들께서 조경태의 경쟁력을 자세히 알게 되면 지지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조경태를 알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은 있는가?

▲소위 메이저언론에서는 후보자의 객관적 평가보다 비약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국민들께 직접 다가서서 평가를 받을 생각이다. 가수 장윤정씨의 경우도 당초 공중파에서 안 써줬다. 실력은 쟁쟁했지만 소위 백그라운드가 없기에 전국을 누비며 인지도를 쌓았고, 결국 방송에서 안 써줄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나 역시 바닥을 훑으며 국민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조경태를 알리고 인지도를 높이겠다.

-광화문 광장, 서대문 독립공원 등 이색장소에서 후보들의 출마선언이 이어졌다. 출마선언 장소가 아쉽지 않나?

▲이벤트성이다. 자신의 지역구나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오히려 낫다. 이것은 세 과시나 줄세우기 또는 줄서기다. 이 역시 구태정치라는 생각이다.

-‘손학규-세종, 김두관-룰라’처럼 조경태의 정치적 롤모델이 누군지 궁금하다.

▲정치를 노무현 전 대통령께 배웠는데 노 전 대통령께서 링컨을 존경했고 나 역시도 그렇다. 덧붙이자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을 잘 실천한 베트남의 호치민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청문회 스타·PK에서의 도전 등 노무현 전 대통령과 행보가 많이 닮았다.

▲2002년 대선 당시에도 ‘이인제 대세론’으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저평가 됐었다.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 한 사람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이 없었다. 그런 어려움과 대세론을 극복하고 대통령까지 당선되셨다. 나 역시 진검승부를 통해 누가 정권교체의 적임자인지 국민들께 평가받을 각오가 돼있다.

-노 전 대통령을 회고하자면.

▲유불리를 떠나 단 한 번도 원칙에 어긋나지 않았던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노 전 대통령은 95년 부산시장선거와 2000년 총선에서 북강서을 출마 당시 무소속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민주당 간판을 세웠다. 버림을 통해 정치를 세운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신’이 여러 가지 정치적 행태와 정당의 움직임까지도 뒤바꾼 셈이다. 조경태의 3선은 앞서 노무현 정신이 PK에서 일궈 논 자산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정책은.

▲주택과 교육문제이다. 특히 참여정부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때문에 주거마련 정책에 관해 정밀한 공약을 준비 중에 있다. 교육은 모든 국립대 무상등록금을 계획 중이다. 이는 예산문제를 많이 지적받는다. 전국 약 20여 개의 국립대 등록금 수입이 1조7000억이다. 장학금이 2000억 정도가 되니 1조5000억이라는 예산이 필요하다. 4대강 사업에 22조를 퍼붓는 현실에서 교육에 이정도도 투자를 못 하겠나? 특히 무상등록금 시 인재들이 국립대에 몰려들어 경쟁력이 치열해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사립대도 등록금 인상에 대한 부담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며 복지?경제민주화 등 후보들마다 내세우는 해법이 다르다.

▲현재 화두는 양극화 해소다. 양극화 해소의 해법은 임금격차의 최소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두 배 이상 나는데 이를 간과한 채 양극화 해소는 어불성설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심하다. 때문에 동일노동·동일임금으로 임금격차를 해소하면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내가 집권하면 이 양극화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국가관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는데.

▲이제 구태의연한 이념논쟁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하지만 좌우이념·색깔논쟁은 국가관·안보관과는 별개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 대한민국이 있기에 나 조경태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국가관은 뚜렷해야 한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사퇴 목소리가 높은데 이에 대한 입장은. 아울러 야권연대의 향방은.

▲통진당 사태의 본질은 부정선거다. 부정선거는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역행하는 중대한 도발이다. 좀 더 진상을 밝혀봐야겠지만 부정선거가 사실이라면 이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때문에 즉각 사퇴가 옳다. 게다가 대한민국 국민이 애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자격이 없다. 통진당 사태 수습 이후 야권연대를 이야기해야 한다. 통진당 내부적으로도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야권연대를 이야기 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견해는?

▲안철수 원장은 높은 국민적 지지율로 이제 야권의 ‘상수’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주다 보니 생긴 현상으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때문에 민주당이 민심흡수를 위한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향후 안 원장과는 민주당내에서 경선을 치르고 나면 2차 경선을 통해서 ‘노무현-정몽준 모델’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민생제일주의로 YS·DJ가 못다 이룬 ‘40대 기수론’ 완성할 것”
민주당 깃발로 PK 도전에서 청문회스타까지 노무현 궤적 빼닮아

-대선 경선을 관리할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이해찬-박지원 연대설’이 불거졌는데.

▲새로운 지도부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한 경선룰과 절차를 통해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어떤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고 정권교체를 할 것인지 본선 경쟁력을 면밀히 따져 봐야한다. 지도부는 특히 ‘어게인 2002’의 드라마틱한 경선을 통해 민주당이 수권정당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 이번 경선이 정치공학적으로 ‘어게인 2007’이 돼버리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께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절대적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평가하면.

▲장단점이 있다. 국민적 시각으로는 신뢰의 정치인으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정수장학회 등 한국정치사에서 극복해야 될 과제들이 많다. 스스로가 얼마나 개혁을 해 낼지 국민적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사회적 이슈가 되는 언론파업 등 책임성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타이밍이 한 템포씩 늦다. 그런 부분이 부족해서 ‘수첩공주’라는 별명까지 생기지 않았나?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는 내야한다.

-지역구 현안인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생각은.

▲가덕도 신공항으로 가야하는 게 맞다. 김해공항의 안정성과 교통량 증가로 인한 포화상태로 발생한 문제다. 김해공항은 부산시민이 주로 이용한다. 때문에 부산시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덕도로 가는 것이 옳다. 너무 정치적 논리로 해석되기에 지역 간의 불신과 갈등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만약 대구공항이 포화상태라서 공항을 지어야 한다면 그때는 대구시민에 뜻을 묻는 게 옳다.

-대권·당권 분리규정을 두고 당헌당규 개정 목소리가 나온다.

▲룰은 원칙이다. 축구경기를 앞두고 룰을 그때그때 바꿔서야 되겠나? 룰은 늘였다 줄였다하는 고무줄이 아니다. 만약 룰을 바꾸려면 전대를 통해 당원들에게 의사를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미 준비하신 분들은 다 나왔다. 때문에 손학규 고문도 지난해 대표직에서 그만 둔 것 아닌가. 대선에 뜻을 두고 있었다면 지난 1·15 전당대회 당시 출마하지 않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모바일 투표가 민심을 왜곡시킨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공명정대하게 잘 관리를 한다면 모바일 투표 확대가 바람직하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위해 필요하다. 다만 통진당의 부정한 방법이라면 민주당은 대선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MB정부를 평가한다면.

▲국민들이 경제대통령이라 해서 뽑았지만 4년간 서민들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경제성장도 공약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MB정권에 대해서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때문에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마이너가 메이저를, 약자가 강자를, 비주류가 주류를,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사회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활력소가 되지 않겠나? 하지만 항상 주류가 점하고 있다. 좋은 학벌이 있어야 출세하는 사회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한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고 대접받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 우리나라는 현재 수출 7위국가다. 하지만 과거 20위일 때가 오히려 위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 반드시 기회 균등의 시대를 이룩하겠다.

 

<조경태 의원 프로필>

▲ 경남고등학교 졸업

▲ 부산대학교 토목공학 학사

▲ 부산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 박사

▲ 2002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책보좌역

▲ 2004 열린우리당 원내 부대표

▲ 2004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 2008 제18대 민주당 국회의원

▲ 2012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 2012 제19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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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