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법정 최고형> ‘사형 구형’ 사건들 막전막후

사람 죽여도 죽이진 않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이웃나라 일본이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02명에 달하는 사형을 집행한 것과 대조된다. 2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사형을 구형하는 사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요시사>가 검찰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한 사건을 들여다봤다.
 

▲ 어금니 아빠 이영학

대한민국은 형법 제41조에서 사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199712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이 집행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았다. 국제 엠네스티는 한국을 10년 이상 기결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 즉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집행 안 해도
구형은 나와

지난 8일, 검찰은 춘천 연인 살해사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피고인 A씨는 상견례를 앞두고 연인을 목 졸라 살해한 후 흉기로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춘천지법 형사 2(박이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무기징역 선고 시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피고인은 만 47세에 출소할 수도 있다”며 피고인의 반사회성, 폭력성, 집착성이 사회에 나가 재발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우려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A씨에게는 3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과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해자의 유가족은 지난해 10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발 도와주세요. 너무나 사랑하는 23살 예쁜 딸이 잔인한 두 번의 살인행위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을 올렸다.


청원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저녁 A씨를 만나러 춘천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A씨는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후 식칼로 가슴과 목 부분을 여러 차례 깊숙이 찌르는 등 잔혹한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은 이런 끔찍한 사건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생되고 있다잔인하고 중대한 범죄에 대해 살인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한다면 저같이 피눈물 흘리는 엄마가 나오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종로 고시원 화재 용의자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이러한 살인마(A)는 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될 수 있게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해당 청원에는 21만명이 넘는 국민이 동의를 표했다.

사형제도 존폐 논란은 한국 사회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사형제 폐지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사형제를 당장 혹은 향후에 폐지하는 데 동의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20.3%가 찬성 의견을 냈다. 반대는 79.7%에 달했다.

사형제 존폐 논란은 살인 등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불거진다. 또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은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 수치가 높아진다.

하지만 세계적 흐름은 물론 한국 사회서도 사형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조금씩 물러나는 모양새다. 1996년과 2010,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결정은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형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의견에 무게중심이 실렸다. 1996년에 72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반면, 2010년에는 54로 위헌 의견이 늘어난 것.

1997년 이후 사형 집행 전무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 분류


반면 검찰은 사형 구형에 있어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살인범죄에 대한 구형량을 대폭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성폭행이나 미성년자 납치 등 강력범죄와 함께 살인죄를 저질렀을 경우 무기징역 구형을 기본으로, 최대 사형까지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초 살인범죄 사건처리기준 합리화 방안을 전국 검찰청서 시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나 여성을 상대로 범죄가 이뤄질 경우 가중처벌 요소로 본다는 입장을 정했다.

검찰이 2018년 처음으로 사형을 구형한 피고인은 어금니 아빠로 불리는 이영학이다. 지난해 130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 11(이성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 등 살인, 추행유인,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영학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영학은 2017930일 당시 14세였던 딸의 친구를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추행하고 다음날 낮 목졸라 살해했다.

거대 백악종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딸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여러 차례 방송에 나왔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검찰은 “(이영학이) 여중생의 귀에 대고 속삭였을 목소리를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분노의 감정으로 처벌할 수 없지만, 더 큰 피해를 막고 우리 사회의 믿음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사형을 구형한 이유를 밝혔다.
 

▲ 법정 의사봉

이후 이영학의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이영학이 극도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고 시체를 유기했으며 사후 처리 방식 등을 보면 이영학이 주장하는 정신병의 근거는 없다고 일축했다.

또 개선의 여지도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리고 지난해 1129일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형제 논란
뜨거운 감자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약물을 주입해 숨지게 한 의사에게는 1심과 항소심서 모두 사형이 구형됐다. 201792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한경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재혼한 아내의 도움으로 성형외과를 개업한 피고인이 아내 명의로 된 수억원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내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이어 자신의 처방으로 수면제를 사고 외국서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하는 독극물을 함께 구매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라며피고인의 죄질이 아주 불량하고 살해의 동기와 조사 과정의 태도 등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법정 최고형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했다.


지난해 316일 열린 항소심서도 검찰은 피고인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아내 살해를 시도하고 미수에 그치자 4개월 만에 아내를 결국 살해했다극악무도한 범행을 한 피고인을 영원히 우리 사회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 기관이 물증을 찾아내자 처벌을 덜 받으려 어쩔 수 없이 자백한 것이라며 의학지식을 악용해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돈을 노린 계획적 범행이 명백하다고 엄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4월에는 성매매를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여관에 불을 질러 투숙객 7명을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유모씨가 사형을 구형받았다.

지난해 4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재판장 성창호 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서 욕정을 채우지 못한 피고인이 분풀이를 위해 치밀하게 방화 계획을 세우고 불특정 다수가 숙박하는 여관에 불을 질렀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생전에 느꼈을 공포와 고통, 가족들이 느낀 슬픔과 비통함을 고려한다면 죄책에 상응하는 선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인간 존엄의 근간인 생명권을 침해한 점, 자기 책임을 줄이는 데 급급해 졸렬한 주장을 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달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항소,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항소심서 재판부는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잔혹한 범죄
유가족 슬픔

20171025일 오후 730분께 경기 양평군 윤모씨의 자택 주차장서 윤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지갑, 휴대전화,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허씨에게도 사형이 구형됐다.

숨진 윤씨가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의 부친이자 김택진 대표의 장인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허씨는 1심 결심공판서 금품과 차를 훔친 것은 인정하면서도 살인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424피고인의 옷과 벨트 등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DNA가 검출됐다피고인이 범행 후 살인’ ‘살인 사건’ ‘사건 사고등을 집중적으로 검색한 정황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고인은 교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람으로 우리 사회서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헤아려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을 토대로 허씨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사형 구형은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하면서 피고인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본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허씨는 항소심 최후진술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수사과정 등을 문제 삼으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주장한 허씨와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검찰의 항소 모두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해 430일에는 재가한 어머니의 일가족을 살해하고 계좌서 돈을 빼내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붙잡힌 김성관씨가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20171021일 오후 모친과 이부동생을 용인의 집에서 찔러 살해하고 체크카드 등을 강탈한 데 이어 계부도 흉기와 둔기를 사용해 살해한 뒤 차량 트렁크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는 범행 이후 계좌서 돈을 빼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현지서 붙잡혀 한국으로 송환됐다.

피고인 극형 내려달라 요청해도
2017 년 이후 사형 확정선고 ‘0’

검찰은 1심서 피고인은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범행을 하고도 지금까지 괴로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평소 자신에게 서운하게 했다는 등 피해자 탓만 하고 있다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행을 했다는 것을 피고인이 알게 해야 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했지만, 결국 항소심서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승강기를 타려고 기다리던 이웃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30대 남성 강씨와 가요주점 여성 동업자를 둔기로 때리고 성폭행한 뒤 잔혹하게 살해한 50대 남성도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사형을 구형받았다.

강씨는 지난해 5월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에 있는 다세대 주택 7층서 같은 층 주민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단지 같은 건물에 산다는 점 말고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피해자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납치해 잔인하고 포악한 방법으로 살해했다이는 아주 중대한 범죄이며 소위 말하는 묻지마 살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221일 청주지법 형사 11(소병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가요주점 살인사건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피해자가 실신한 상태서 불을 지르는 등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다는 이유였다.
 

▲ 김성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피해자는 둔기로 맞아 실신한 상태서 방화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 과정서 성폭행 사실도 추가로 제기됐다.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5일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대부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이 1심서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면 재판부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패턴을 보였다.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 항소심서도 사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사형이 확정 선고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영학만이 2015년부터 현재까지 1심서 사형 선고를 받은 유일한 피고인이다. 이영학 역시 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90년대 이후 법원 최종심서 단 한 건의 사형 선고도 나오지 않았던 해는 일곱 해로 1994, 2008, 2011, 2012, 2014, 2017, 2018년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5월 이후에도 역시 사형 확정 선고는 나지 않았다.

재판부 고민
무기징역 많아

이 같은 사례로 볼 때 사형 선고에 대한 재판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종로여관 방화 사건서 검찰은 1·2심서 모두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가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대법원 판례를 봤을 때 사형에 처할 만한 사안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되고 사형 선고를 내린다 해서 피해자나 유족에게 완전히 위로가 되는지 알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양평 살인사건의 경우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며 이 사건이 누구라도 사형을 인정할 만한 특별하고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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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