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 13년간의 기록

받을 걸 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긴 시간이었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 사이 10대에 일본으로 끌려갔던 소년들은 노인이 됐다. 몇몇 피해자들은 하늘 위에서 소식을 듣게 됐다. <일요시사>가 강제징용 재판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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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로 토목공사장, 광산 등에 끌려갔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1945년까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13만서 14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가혹한 노동 현장에 내던져졌다. 그러나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그 어떤 보상도 외면했다.

1937∼1945년
끌려간 사람들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민사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한국 대법원서 나왔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서 처음 소송을 낸 이후로 21, 20051심 법원에 소송이 접수된 지 13년 만이다. 1945년 광복 이후로 계산하면 무려 7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지난달 30일, 이춘식(94) 할아버지 등 19411943년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 4명이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사건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서 나온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단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동일한 소송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패소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은 물론, 당시 판결의 근거가 됐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도 전면으로 부정했다. 쟁점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 차관 2억달러 등의 돈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이 포함돼있는지 여부였다.

당시 협정문에는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적혀 있고, ‘모든 청구권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와 학계서도 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봐왔다.

해배상 청구 1명만 생존
재상고심 끝에 배상 판결

하지만 대법원서 한일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에 근거해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또 협상 과정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 부인하면서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양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만큼 적용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냈다. 이기택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개인청구권 부분에 대해선 2012년 대법원 판결이 결론을 낸 상황서 이를 변경한 예외적인 상황이 없었기 때문에 기속력에 따라 추가 심리 자체가 필요 없이 상고 기각됐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베 일본 총리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 역시 별개의견을 통해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도 판단을 조금 달리했다. 이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한일협정만으로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두 사람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됐다피해자들이 일본 국민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국내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 소송을 제기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청구협정권
해석 따라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제징용 문제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14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이미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제기한 962명의 경우 승소 확률이 커졌다. 이 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여운택(사망), 신천수(사망), 김규식(사망), 이춘식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은 길고 긴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941년 당시 대전시장이 일본에 보내려 모은 보국대에 뽑혔다. 보국대는 일제가 조선인 학생, 여성 등을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조선에서보다 좋은 조건일 것이라는 기대로 건너간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은 고됐고 식사는 부실했다. 죽어라 일했지만 월급은 받지 못했고 1945년 일본 패망 후에도 상황은 여전했다. 여운택 할아버지와 신천수 할아버지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제철소서 일하는 동안 식사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월급을 받지 못하는 등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얻지 못했다.

이후 1997년 여운택·신천수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미지급 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013월 오사카 지방재판소는 구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여운택 할아버지 등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211월 오사카 고등재판소 역시 이들의 항소를 기각했200310월 일본 최고재판소도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20052월에는 여운택·신천수·김규식·이춘식 할아버지가 서울중앙지법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20058월 당시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군대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이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공식의견을 표명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그러나 3년 뒤인 20084월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판결이 우리나라서 효력이 인정되고, 신일본제철이 구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듬해 7, 서울고등법원 역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20125월 대법원서 반전이 일어났다. 대법원은 일본 판결은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고 판단,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의 확정판결은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가치와 정면충돌해 국내에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으며,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서울고법은 2013년 파기환송된 사건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총 4억원의 위자료와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대법원은 올해 7월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 지난달 30일 신일본제철의 상고를 기각하며 최종 결론을 내렸다.


사법 농단
대표 사건?

그 사이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4명 가운데 이춘식 할아버지를 제외한 세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대법원 승소 판결 이후 소감을 밝히는 자리서 처음 재판은 넷이 했는데 이제 혼자 남아서 마음이 슬프고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원고들이) 같이 선고를 들었으면 엄청 기뻤을 텐데 나 혼자 들어 눈물이 난다고 흐느꼈다.

대법원 최종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신일본제철 측이 대법원 판결에 승복한다면 배상은 이뤄질 수 있다. 또 신일본제철 측이 한국에 재산을 갖고 있다면 강제 집행도 가능하다.

신일본제철 측이 지난 2012년 주주총회서 사법부의 판결을 수용할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 따르면 당시 신일본제철의 사쿠마 소이치로 상무는 2012626일에 개최한 주주총회서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의 발언은 한 주주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소송서 진다면 지불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대법원 판결 전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일본 NHK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아베 총리는 국회서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질의에 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판결 이후 항의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직접 강하게 항의했다. 고노 외무상은 담화서 이번 판결을 두고 매우 유감이라며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엎는 것이라며 한국에 국제법 위반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해 적절한 조치를 즉시 강구하길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강제 징용 피해 선고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지난달 31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고노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갖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교환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전날 대법원 판결에 우려를 표시하는 등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강 장관은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고, 이번 판결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토대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서 5년 허송세월
일본 반응 “매우 유감 ” 

이번 대법원 판결은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의 대표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판결 이후 5년 가까이 선고를 하지 않았다.

상고심서 파기환송된 사건이 재상고심에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고의로 심리를 끌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같은 의혹은 지난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하던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특별조사단은 법원행정처 컴퓨터 하드디스크서 청와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이라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한 청구 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쓰여 있는 문건을 발견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하드디스크서 이를 뒷받침하는 문서가 추가로 속속 나오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에 부정적인 외교부 입장을 재판에 반영했으니 법관 해외 파견을 요구하자는 취지의 문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지난 7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모 변호사는 당시 검찰 참고인 조사서 대법원이 두 번째 심리하는 사건인 데다 쟁점이 처음과 다르지 않아 심리불속행 기각 대상인데도 결론을 5년째 미루고 있다소송이 길어지면서 원고 중 일부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한 피해자들도 힘들어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세부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미묘하게 달랐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판결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은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영화 '군함도' 스틸컷

이어 재판이 길어진 배경에는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이 있다특별재판부를 통한 사법 농단 사태의 진실규명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하면서 사법 농단 사태를 부각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 역시 일본 정부는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일제 치하 반인륜범죄에 대한 사과를 촉구한다”며 특히 이번 승소 판결은 박근혜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사법 농단의 근인을 척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일본이 말하는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더 이상 망언과 몰염치로 버틸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반인권적 불법행위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논평했다.

정치권 환영
미묘한 차이

바른미래당 김삼화 수석대변인은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만큼 신속히 일본 정부, 해당 기업의 사과와 어르신의 피해 배상금을 받아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일본은 이제야말로 일제강점기 당시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을 참회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법부-외교부-김앤장 시민단체 제기한 의혹은?

대법원의 선고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특히 신일본제철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벽은 높았다.

최근 김앤장이 사법부와 행정부를 쥐락펴락했다는 의혹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는 모양새다.

KBS에 따르면 2014년 김앤장은 대법원에 신일본제철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김앤장은 대법원에 외교부 의견서를 빨리 받아달라고 하는데, 외교부에서 제출한 의견서는 상고이유서와 대부분 일치했다.

이는 지난 7월 여러 시민단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폭로한 의혹과 비슷하다. 당시 그들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부와 외교부, 김앤장의 추악한 유착 의혹에 대해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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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