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터지는’ 외교관 성추문 백태

국가 대표로 국가 망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외무공무원의 성 비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교부장관이 나서 무관용 원칙을 말해도, 처벌 수위를 높혀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온다. 해외서 국가 이미지 제고에 힘써야 할 외교관들이 성 관련 사건에 휘말리면서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1월 미투 운동으로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국내 미투 운동의 시초로 알려진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법조계서도 성범죄 사건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화·예술계, 방송계, 종교계도 미투 운동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에는 교사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외교부도
성비위 발칵

국내 미투 운동은 ‘설마 검사가 피해자일까?’ ‘설마 선생님이 학생들을?’이라는 의심을 걷어내는 데 일조했다. 누구나 가해자일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미투 운동으로 민낯이 드러난 각계각층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엄중한 처벌 혹은 징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앞다퉈 내놨다.

문제는 이 같은 사후대책에도 불구하고 성 비위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데 있다. 외무공무원들의 연이은 성 비위 사건이 대표적이다. 

앞서 한 외교관의 성 비위 사건으로 처벌 수위가 강화됐고 장관이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지만 근절은 요원한 상태다. 더군다나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외국서 국가 이미지에 신경 써야 할 외무공무원인 점이 더 큰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외교부 산하 해외공관서 외무공무원 2명이 성 비위 문제를 일으켜 귀국 조치된 사실이 확인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지난 3일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이들은 부하직원을 성추행, 성희롱한 혐의로 적발됐다.

해외 공관서 여직원 성추행
무관용 원칙에도 계속 표출

박 의원실에 따르면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 중인 고위 외교관 A씨는 여성 행정직원 B씨를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와인을 마신 뒤 피해자를 끌어안고 무릎에 앉히는 등의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B씨에게 자신의 집에 과일이 많으니 나눠주겠다고 부른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사건 발생 다음날 대사관 동료에게 얘기했고, 사건담당 영사가 피해자와 면담 후 외교 본부에 보고했다. 

당시 A씨의 부인은 한국으로 가서 집에 없던 상황이다.

같은 달 인도 대사관서도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인도 대사관에 파견 나간 4급 공무원이 동료직원에게 “자신이 머무는 호텔서 술을 마시자” “방 열쇠를 줄 테니 오라” 등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한 사실이 드러났다. 
 

동료 직원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해당 공무원의 언행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로 소환 조치된 이들은 대기발령 상태서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재발 방지
다짐했지만…

지난해 7월에는 주 에티오피아 대사관서 근무하는 간부급 외교관 C씨가 여성 행정직원 D씨를 성폭행했다는 제보가 접수돼 외교부서 조사에 돌입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C씨는 사건 당일 D씨와 와인 3병을 곁들여 저녁을 먹은 뒤, 만취해 의식을 잃은 D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튿날 새벽 깨어난 D씨는 상담기관의 조언에 따라 병원 진단서를 받은 뒤 모친을 통해 외교부 영사콜센터에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C씨와 D씨는 사건 이후 귀국해 외교부 감사관실 등에서 조사를 받았다. 

C씨와 D씨는 조사에서 진술이 엇갈렸지만 외교부는 조사를 거쳐 C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징계위원회서 파면을 결정했다.

당시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서 해당 의혹에 대해 사과하고 “해외근무 외교관에 대한 복무 감찰의 획기적인 강화를 위해 감사관실 내 감찰담당관실 신설 등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외교부 혁신 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조직·인사의 강도 높은 혁신을 통해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강 장관 역시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외교부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서 이렇게 심각한 재외공관의 복무기강 문제가 발생하게 돼 정말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미 전 재외공관장에 대해 엄중한 복무 기강 지침을 하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성 비위’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 그리고 관련 규정 법령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외교부서 해당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서 또 다른 성추문이 불거지기도 했다. 피해자가 조사를 받는 과정서 김○○ 전 에티오피아 주재 대사도 성추행을 했다고 진술한 것. 

김 전 대사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외교부가 에티오피아 현지에 특별감사단을 파견해 조사하던 중 그의 추가 혐의를 잡아냈다. 결국 외교부는 지난해 8월, 김 전 대사를 성범죄 혐의로 검찰에 형사고발했다.

김 전 대사는 에티오피아 대사로 재직한 2015년 3월 대사 직위를 이용해 여성 1명과 성관계를 맺고 2014년 11월과 지난해 5월 각기 다른 여성 2명을 각각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C씨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D씨는 조사 과정서 ‘김 전 대사에게도 기분 좋지 않을 정도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외교부에 알렸다. 
 

이후 교민사회서도 김 전 대사가 현지에 파견된 외교부 산하 단체 직원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이 부적절했다는 등의 제보가 잇따랐다.

김 전 대사는 지난달 12일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김 전 대사에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김 전 대사는 대한민국 위상을 드높일 책임이 있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오히려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피해자를 추행하고 간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사는 별다른 죄의식 없이 비교적 대담하게 성폭력 행위에 이르렀다”며 “간음에까지 나아간 점을 보면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이 무겁다”고 덧붙였다.

실형 선고
법정 구속

앞서 2016년에는 칠레 주재 공관서 일하는 외교관이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현지 방송을 통해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2016년 12월18일 SNS를 통해 공개된 영상은 칠레의 한 방송사가 함정 취재를 통해 포착한 내용으로, 한국의 박○○ 참사관이 미성년자에게 성적인 표현을 하며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하려는 모습은 물론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미성년자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집안에 끌어들이는 장면 등이 실렸다.

심지어 해당 방송 관계자가 함정 취재를 통해 성추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박 전 참사관이 ‘제발 부탁한다’며 사정하는 모습까지 담겼다. 이 영상은 첫 피해 여학생의 제보를 받은 현지 방송사가 다른 미성년 여학생에게 의뢰해 박 전 참사관에게 접근시켜 함정 취재를 벌이는 과정서 포착됐다.

박 전 참사관은 현지 미성년자 여학생에게 휴대전화로 음란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도 받았다. 영상이 공개된 이후 문제의 외교관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부터 칠레 교민 사회에 끼칠 악영향까지 부정적인 반응이 폭발했다.


교민사회에도 부작용
징계 절반이 성 문제

외교부는 즉각 박 전 참사관을 국내로 소환했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파면을 의결하는 한편, 검찰에 형사고발 조치했다. 1심서 박 전 참사관은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광주지법 형사11부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 전 참사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성추행 횟수가 4차례에 이르고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았다는 게 양형 이유였다. 법원은 박 전 참사관의 범행으로 공무원의 품위와 국가 이미지가 손상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고 피해 가족들이 용서를 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형량을 2년6개월로 감형했다.

2016년에는 중동 지역에 주재하는 현직 대사가 대사관 직원을 성희롱한 혐의로 징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의 대사가 현지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민원이 외교부를 통해 접수됐고, 외교부는 민간 전문가 등에게 의뢰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해당 대사는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드러났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잇단 외교관 성추문에 대해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송구스럽다”며 “과거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태국, 뉴질랜드 등지서도 외교관이 성 문제로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있었다. 2012년 태국 방콕 주재 한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현지서 한국인 여교수를 성추행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뉴질랜드에선 분관장이 해외에 다른 부처 공무원과 몸싸움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서 분관장은 성희롱 의혹도 받았다.

한국 외교관 성추문 사건에 있어 가장 큰 흑역사로 꼽히는 ‘상하이 스캔들’도 있다. 상하이 스캔들은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이 중국 여성인 덩신밍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사건을 말한다. 

외교관 성추문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상하이 스캔들이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중국 여성과 외교관들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 핵심 인사들의 연락처를 포함한 정부 자료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졌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 영사들은 덩신밍에게 한국 비자를 부정 발급해주고, 한국비자 신청대리권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덩신밍이 스파이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주 상하이 영사관에 파견해 조사를 벌였지만 해당 사건을 ‘심각한 수준의 공직기강 해이 사건’으로 마무리지었다. 당시 외교부는 상하이 스캔들 사건에 연루된 외교관 전원을 징계했다.

외교관의 성 비위 사건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외교부서 발생한 징계 중 절반은 성범죄 사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지난 4일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원 징계 현황에 따르면 외교부서 발생한 12건의 징계 중 절반인 6건이 성희롱, 성폭력 등 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지난해 징계자 중에는 커피숍서 16차례나 여성을 몰래 촬영한 공무원이 포함됐다. 외교부 소속 김○○씨는 2015년 4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치마 속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지난해 8월까지 10여회 넘게 여성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서 김씨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23단독 남현 판사는 김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을 40시간 이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외에도 총영사로 재직하며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고위공무원도 징계를 받았다.

몰카 공무원
벌금형 받아

2016년에도 전체 17건의 징계 중 7건이 성 문제로 인한 징계였다. 이 의원은 “전 에티오피아 대사의 성폭력, 주 칠레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등은 주재국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교육 등을 통한 사전예방에 최선을 다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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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