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터지는’ 총기 사건사고 백태

짐승 잡을 총으로 사람 잡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총기 소유가 허용된 미국에선 난사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피해자가 수십 명이 넘는 대형 살상 사건도 잦다. 우리나라도 마냥 ‘총기 청정국’ ‘총기 안전지대’라고 하기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엽총 사건이 발생한다. <일요시사>가 국내서 일어난 엽총 사건을 조명해봤다.
 

지난달 26일 미국 플로리다 주 잭슨빌 세인트존스 강변의 복합쇼핑몰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 데이비드 카츠는 쇼핑몰 내 게임바서 온라인게임 토너먼트에 참가하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사망자는 3명, 그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용의자였다.

앞서 시카고서 8월 첫 주말인 3∼5일과 17∼18일 등 주말 사이에 여러 건의 총격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17일과 18일 새벽 사이에 발생한 총격전에선 3세 아이가 부상을 입기도 했다.

총기 규제
엄격해도…

지난해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델레이 헤이 호텔에 투숙하던 스티븐 패덕이 맞은 편 콘서트장을 향해 10분간 총기를 난사해 59명이 사망한 일이나 2007년 4월 한국계 미국 영주권자 조승희가 재학 중이던 버지니아 공대 2곳서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살해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등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두 사건 모두 용의자는 자살했다.


잦은 총기 사건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피해선상에 오르자 미국 내에서는 총기 규제와 허용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다. 총기 규제 논쟁은 미국 사회서 오랫동안 답을 내지 못한 주제다. 

대형 살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지만 그 이상으로 총기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총을 사는 일은 운전면허를 따는 일보다 쉽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최대 총기 판매업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권총은 한화로 20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폭력전과나 정신 병력이 없고 일정 나이 이상이면 누구든 총을 살 수 있다.

그나마도 총기 구매에 나이 제한을 걸어둔 주는 워싱턴 D.C를 비롯, 20개 주뿐이다. 뉴욕은 16세, 몬태나는 15세로 제한 연령도 낮다. 미국에선 10대 청소년도 얼마든지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구매가 자유롭다보니 미국서 민간인이 총기를 소유한 비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내 경찰 외에 민간인이 가지고 있는 총기 수는 약 2억7000만정에 이른다. 미국 인구가 3억2600만여 명인 것을 감안했을 때 시민 10명 중 8명이 총기를 갖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연간 3만명, 하루 80명 이상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미국인들의 사망 원인 2위가 총기사고일 정도다.

그에 반해 국내는 총기 규제가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총기 청정국, 총기 안전지대라는 말이 나올 법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인식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전 국민에 총기 소유가 허용된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범위가 좁다 해도 정식으로 총기 소지를 허가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건·사고가 한 번씩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7년새 총기사고 90여건
총기 안전지대 균열 생겨

지난달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총기 사건·사고 통계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최근 7년새 총기 사건·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89명에 이르렀다.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집계한 숫자다. 

이 기간 동안 총포에 의한 사건·사고는 88건, 이로 인한 사망자는 32명, 부상자는 57명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2012년 11건, 2013년 13건에서 2014년 9건으로 줄었다가 2015년 10건, 지난해 15건, 올 상반기에만 9건 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건·사고가 발생한 총기 종류는 엽총이 53건, 공기총 28건, 기타 7건이었다. 

원인은 오발 사고가 52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의도 32건이나 됐다. 자살은 4건이었다.

총기 관련 사건·사고가 늘어나고 있지만 총포 소지 불허 판정은 감소하는 추세다. 범죄 경력, 정신병력 등으로 총포 소지를 허가받지 못한 건수는 2016년 175건서 지난해 93건, 올 상반기 36건으로 줄었다.

또 올해 6월 기준 소지 허가가 취소된 총기 중 미수거 총기는 149정에 달했다. 이 중 도난·분실된 총기는 128정으로 집계됐다.

이재정 의원은 “엽총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만큼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총포에 대한 관리방안은 물론 총기 출고방식, 미수고 총기 회수방안 등에 대한 대책을 깊이 있게 질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개인이 소지한 총기는 13만여정에 이른다. 종류별로는 공기총이 8만여정으로 가장 많고 엽총이 3만7000여정, 권총 1700여정, 소총 600여정 등이다. 건설용 타정총, 마취총 등 기타로 분류된 총기는 1만3000여정이다.

용도별로는 유해조수 구제용(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나 새를 쫓기 위한 목적)이 6만여정, 수렵용 4만4000여정, 사격용 1만2000여정 순이다.

반출 절차는
제대로 지켜


현행 총기 관련 법에 따르면 사냥용이나 레저용 총기는 모두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구매와 소지가 가능하다. 허가를 받은 총기는 평소 경찰서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만 신청서를 내고 찾아가도록 돼있다. 총기 허가 요건은 신청자의 범죄내역과 정신병력 등 조회 결격 사유를 확인한다.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질환자는 제한된다.

문제는 총기가 출고된 이후다. 현재까지 국내서 발생한 엽총 사건·사고의 경우 대부분 정식 절차를 거쳐 출고된 이후에 일어났다. 더 큰 문제는 총기 신청자가 허가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을 경우 총을 내주지 않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최근 경북 봉화서 일어난 엽총 사건이 그런 경우다.

지난달 21일 경북 봉화 소천면사무소에 김모(77)씨가 엽총을 들고 들이닥쳤다. 그는 직원들에게 총을 발사했고, 민원행정 6급인 손모(47)씨와 8급 이모(38)가 크게 다쳤다. 이들은 닥터 헬기와 소방헬기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손씨는 가슴 명치와 왼쪽 어깨, 이씨는 가슴에 총상을 입어 심정지 상태로 안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김씨는 앞서 이날 오전 9시께 봉화군 소천면 임기역 인근 사찰서 주민 임모(48)씨에게도 엽총을 쏴 어깨에 총상을 입혔다. 병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임씨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서 범행 동기와 계획 등이 드러났다. 김씨는 수개월 전부터 이 같은 범행을 계획했다. 그는 4년 전 봉화로 귀농했다. 이후 상수도관 설치공사 비용과 수도 사용 문제, 화목 보일러 매연 문제 등으로 이웃과 갈등을 겪어왔다. 

또 “이웃 주민이 개를 풀어놓았다”는 신고에 면사무소 공무원과 파출소 경찰관이 이를 적극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금전·불화 등
갈등 끝 ‘빵’

김씨는 범행을 결심하고 관련 허가 등을 취득해 엽총을 구매한 뒤 주거지서 사격 연습까지 했다. 사건 당일 1차로 주민 임씨에게 총을 쏘고 파출소를 찾은 이유도 경찰관을 상대로 범행을 하기 위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파출소에 아무도 없자 김씨는 면사무소로 향했다. 봉화경찰서는 “김씨가 이웃 갈등, 민원 처리 불만 등으로 수개월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2014년 귀농한 김씨는 소규모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최근 폭염과 가뭄으로 상수도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이웃과 마찰을 빚었다. 

봉화경찰서는 “김씨가 봉화에 와 수도관을 설치했고 임씨 등 세 가구가 물을 같이 당겨쓰자고 해 사용한 것으로 안다”며 “김씨가 물이 잘 나오지 않자 고지대에 살고 있는 임씨 때문이라고 여겨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범행 이후 경찰의 대처가 도마에 올랐다. 범행을 막을 수 있던 정황이 속속 발견된 것. 김씨는 지난 7월 20일부터 유해조수 구제용으로 소지 허가를 받은 엽총을 파출소에 보관해 왔다. 그리고 범행 당일 아침 소천파출소서 경찰관으로부터 엽총을 받았다.

김씨가 사건을 저지르기에 앞서 피해자 한 명을 위협해 경찰에 진정이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봉화경찰서에 따르면 제일 먼저 총에 맞은 주민 임씨는 사건 발생 10여일 전 “김씨가 나를 총으로 쏴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는 말을 한 주민에게 했고, 이 주민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것을 전해 들었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경찰은 진정서를 바탕으로 임씨 주변인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이 기간에는 김씨에게 총기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총기 위협 사실을 들었다는 주민이 경찰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고, 들었다면 바로 신고했을 것”이라고 부인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경찰은 김씨에게 총기를 내주는 문제를 두고 협의한 후 그가 임씨를 위협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 엽총을 내줬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왜 총기 출고를 해주지 않느냐고 해 내주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며 “총기 허가도 받았고 조사 결과 (임씨의) 진정 내용과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출고를 허용했다. 총기를 내주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60년 전 상해로 인한 벌금, 도로교통법 위반이 1건 있을 뿐 다른 전과는 없다고 말했다.

엽총 사건·사고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나 시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2016년 11월에는 음주 적발에 불만을 품은 이모(61)씨가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향해 엽총을 2발 난사하고 달아난 일이 있었다.

이씨는 사건 당일 오전 12시께 고성경찰서 죽왕파출소에 엽총을 들고 난입해 총을 난사했다. 앞서 경찰의 음주 적발에 불만을 품은 이씨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 있던 엽총을 들고 파출소를 찾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범행 후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관과 몸싸움 중 엽총을 빼앗기자 몰고 온 화물차를 타고 도주했지만 1시간20여분 만에 붙잡혔다. 그가 범행에 사용한 총기는 마취용으로 등록한 것이었다. 

갈등 빚다가 ‘욱’
용의자 자살 많아

2013년 12월 해당 총기로 채무자를 협박한 혐의로 구속된 전력도 있다. 이씨가 총기를 분실했다고 진술하면서 허가가 취소됐지만, 그는 자신의 집에 불법 총기를 보관하고 있었다.

2015년에는 엽총 난사 사건이 세 건이나 일어났다. 특히 2월에는 세종시와 경기도 화성시서 사흘 간격으로 총기 사건이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 총 8명이 사망했다. 2015년 2월25일 오전 세종시 장군면 금암리의 한 편의점서 강모(50)씨가 편의점 사장 김모씨의 오빠(50)와 아버지(74)에게 총을 쐈다.

이후 강씨는 김씨의 동거남 송모(52)씨를 찾아가 또 다시 총을 발사했다. 총상을 입은 이들 3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모두 숨졌다.

강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편의점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른 후 달아났다.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던 그는 사건 발생 장소서 약 1㎞ 떨어진 금강변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강씨가 자살한 것으로 봤다.

숨진 강씨의 옆에는 범행에 사용한 엽총이 놓여 있었다. 범행 동기는 돈 문제로 추정됐다. 강씨는 편의점 사장인 김씨와 한때 사실혼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서 편의점 투자 지분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세종시 엽총 사건서도 용의자는 총기 반출까지는 정식 절차를 거쳤다. 강씨는 사건 당일 충남 공주경찰서 신관지구대에 보관돼있던 이탈리아와 미국산 엽총 2정을 출고했다.

당시만 해도 주거지나 수렵지역과 관계없이 전국의 지구대에 총기를 보관하고 출고할 수 있었다. 경찰 역시 “강씨의 총기 출고와 입고 절차에 문제가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종시 엽총 사건 이후 채 사흘도 안 돼 화성시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5년 2월27일 오전 화성시 남양동서 전모(75)씨가 엽총을 난사해 형(86)과 형수 백모(84)씨, 출동한 관할파출소장 이강석(43) 경감이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전씨는 경찰과 대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경찰은 “작은 아버지가 부모님을 쐈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들고 전씨와 대치했지만 이 경감이 총을 맞고 사망했다. 전씨는 사건 당일 파출소를 방문해 사냥용 엽총을 1정 출고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전씨의 범행이 금전적인 부분서 비롯됐다고 봤다. 주변 관계자의 잔술에 따르면 전씨는 평소 술을 먹고 형을 찾아 돈을 달라며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실제 전씨 사망 이후 승용차 조수석서 발견된 편지지 6장 분량의 유서에는 형에 대한 오래된 원망과 반감, 살해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을 두고 형을 비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흘 간격으로 일어난 엽총 사건 이후 경찰은 부랴부랴 총기 관리 대책을 강화했다. 총기 소지자를 전수 조사해 폭력 전과자는 총기를 수거하기로 했고, 총기 수령 장소를 전국 경찰관서에서 소지자의 주소지와 수렵장 관할지 경찰관서로 제한했다.

총기 입출고 시간을 실제 수렵이 이뤄지는 낮 시간으로 제한하고 총기 소지 허가 갱신 기간도 5년서 3년으로 줄였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또 다시 엽총 사고가 일어나면서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이 대책을 내놓은 직후부터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상황이었다. 전남 고흥경찰서는 엽총을 발사해 자신의 조카 1명(56)을 숨지게 하고 나머지 1명(69)에게 부상을 입힌 박모(82)씨를 긴급체포했다.

박씨는 조상 묘 이장문제로 조카들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여년간 허가 없이 엽총을 보관해 오고 있었다.

규제 강화
“글쎄…”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서 “지금까지는 총기를 경찰관서에 봉인했다가 유해조수 퇴치 등을 이유로 필요하면 보관해제를 거쳐 사용할 수 있게 했다”며 “그와 관련한 심사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봉화 엽총 사건으로 두 명이 숨진 이후 나온 발언이다.

이어 민 청장은 “지금까지는 담당자 1명이 총기 출고를 심사하는 체제”라며 “여러 부서가 보관 해제 여부를 합동 심사해 위험성 판단을 강화하고,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경우 주민들로 심사위를 구성해 더욱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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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