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천빙상장 ‘황제 대관’ 의혹

‘인천의 전명규’ 황금시간대 독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 빙상계는 수십 년간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만들어낸 ‘빙상강국’이라는 빛에 취했다. 그 이면에 갑질과 파벌 그리고 독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은 ‘금메달’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렵게 드러난 어둠은 그 근원을 알 수 없을 만큼 뿌리가 깊었다. 최근에는 인천 빙상계에도 ‘또 다른 전명규’가 존재해왔다는 소문이 불거졌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치른지 꼭 30년 만에 강원도 평창 일대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은 개최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정 농단 사태로 모두가 실패를 점쳤지만 평창올림픽은 예상 밖의 성공을 거뒀다. 금메달 8개, 종합순위 4위라는 당초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질적 향상을 이뤄낸 대회였다는 평을 받았다.

성공한 대회?
어두운 진실

하지만 마냥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대한빙상연맹)과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이 축제의 오점으로 남았다. 여타 대회와 마찬가지로 빙상 종목서 빼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그 과정엔 논란이 가득했다. 진상조사 요구가 빗발쳤고 대한빙상연맹은 청산해야 할 적폐로 지목됐다.

지난 5월23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합동으로 실시한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평창올림픽 과정서의 여러 논란과 의혹을 밝히기 위해 실시한 감사였다. 감사 결과서 주목할 점은 ‘특정인물’로 지목된 전 전 부회장이 한국 빙상계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이다.

그는 권한도 없이 대한빙상연맹 업무에 개입했고 부회장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권한을 남용해 국가대표 지도자의 징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임한 이후에도 대한빙상연맹 업무에 전 전 부회장의 입김이 미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빙상장이 특정인들에게만 부당하게 대관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배후에 전 전 부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교육부의 추가 현장 조사 결과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전 전 부회장은 빙상장 사용 허가 없이 전 한체대 조교가 자신이 지도하는 고등학생을 데리고 대학생들과 빙상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빙상계 관계자는 “전명규 전 부회장의 영향력은 한체대 빙상장서 나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훈련하려는 사람에 비해 빙상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서 대관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엄청난 권력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전 전 부회장의 빙상장 대관 전횡과 똑같은 사례가 인천 빙상계서 일어났다는 의혹이 나왔다.

빙상장 운영 과정서 전횡 의혹
“마치 개인 사유시설처럼 사용”

선학국제빙상경기장(이하 선학빙상장) 운영 과정서 조성만 인천빙상경기연맹(이하 인천빙상연맹) 부회장이 ‘갑질 대관’ ‘대관 장사’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 

2015년 3월 개장한 선학빙상장은 인천에 딱 하나뿐인 빙상경기장이다. 주경기장(지상)과 보조경기장(지하) 등 두 면의 빙판에 7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관람석은 3200여석 규모다.


앞서 2015년 2월 말까지는 동남스포피아 아이스링크장이 인천 유일의 빙상장이었다. 1993년 개장한 동남스포피아는 2004년 재정난으로 폐장될 위기에 처했지만 박대성 인천빙상연맹 회장이 인수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동남스포피아에는 박 회장 외에도 조 부회장, 정○○ 이사 등 인천빙상연맹 관계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선학빙상장의 개장과 맞물려 동남스포피아의 폐장이 결정됐다. 선학빙상장은 인천시체육회(이하 체육회)가 인천시의 수탁을 받아 관리하기로 했다. 이때 동남스포피아 소속 강사는 물론 정빙기 운전원까지 선학빙상장으로 옮겨왔다. 

선학빙상장 관계자 A씨는 “시청 공무원과 체육회 관계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허수아비였다”며 “실질적인 운영은 동남스포피아 출신 관계자들이 다 했다”고 전했다.

실제 선학빙상장 별동에 위치한 사무실에는 ‘(주)동남스포피아, 인천광역시빙상경기연맹, 인천광역시장애인빙상경기연맹’이라고 쓰인 대형 스티커가 지난해 4월까지 붙어 있었다. A씨는 “인천빙상연맹은 동남스포피아와 동격으로 보면 된다”며 “강사, 정빙기 관리, 매점 운영까지 돈이 오고가는 자리에 모두 동남스포피아 관계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독점한 대관
장사했나?

또 A씨는 선학빙상장으로 넘어온 동남스포피아 관계자들이 빙상장 대관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틈을 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 부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빙상장 대관을 독점했다고 강조했다. 

대관은 선학빙상장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2017년 선학국제빙상경기장 수입 현황’에 따르면 매출 17억원 중 8억9000만원가량이 대관 수입이었다.

선학빙상장의 경우 지상에 위치한 주경기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인에게 개방돼있어 그 이후 시간대부터 대관이 가능하다. 지하의 보조경기장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대관용이다. 지상은 쇼트트랙과 피겨 선수들이, 지하는 아이스하키팀이 주로 사용한다.

대관을 하려는 사람들은 오후 6∼8시 시간대를 가장 선호한다. 선수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훈련하기에 좋은 시간대기 때문이다. 오후 8∼10시, 오후 10∼12시 시간대도 선호도가 높다. 

이보다 더 늦어지면 다음날 선수들의 학교 수업에 지장이 있어 피겨나 쇼트트랙 강사들은 오후 6∼12시 대관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대관 업무에 밝은 빙상계 관계자 B씨는 “황금시간대 대관, 특히 지상의 주경기장을 독점한다는 것은 빙상 강습을 통한 수익 사업을 독점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며 “조 부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오후 6∼12시 시간대를 차지하고 다른 강사들의 진입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2017년 2월 대관표를 예로 들었다. 오후 5∼6시에는 ‘인천빙상’과 ‘장애인꿈나무’가 대관했다. 장애인꿈나무는 인천장애인빙상경기연맹 박○○ 전무이사가 맡고 있다. 오후 6∼8시에는 ‘엘리트피겨’ ‘엘리트쇼트’ 등이 탄다.


B씨에 따르면 엘리트피겨는 인천시 소속 피겨선수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인천 등록 선수들과 타지역 선수 희망자, 개인 레슨생들로 이뤄진 사설 피겨클럽이다. 클럽 운영과 수업은 조 부회장의 제자이자 인천빙상연맹 이사로 활동해온 정OO씨가 맡고 있다. 오후 8∼10시는 ‘조성만’ ‘킬러웨일즈’ 등이 빌렸다.

B씨는 “조 부회장은 선학빙상장을 마치 개인 사유시설처럼 사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조 부회장의 대관 독점 의혹이 인천 빙상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고도 했다. 

선학빙상장서 대관 업무를 봤던 체육회 관계자 C씨도 조 부회장의 대관 독점 의혹에 대해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마다 다음달 대관 일정을 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는데 매번 비슷한 사람들이 왔다”고 덧붙였다.

직접 피해를 당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또 다른 빙상계 관계자 D씨는 “대관회의 날짜를 도통 알려주질 않았다”며 “25일에 자기들끼리 미리 대관회의를 해놓고 내게는 29일쯤 돼서야 남은 자리를 잡으라고 통보가 왔다”고 토로했다.

측근들에게
좋은 시간대

D씨는 지하의 보조 경기장이나 오전 6∼10시 시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오전에는 선수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며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시간대라도 잡아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서 “선학빙상장 개장 초기에는 대관이 다 차지도 않았다. 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관내 소속 선수들이 그 시간대에 타게 된 것”이라며 “일단 우리 지역 선수들이 먼저 사용하고 남는 시간을 따지는 게 맞지 않느냐고 시에 주장해왔다. 어느 시도를 가도 자기 지역 선수들이 먼저 쓴다”고 해명했다. 

이어 “인천빙상연맹 관계자로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에 타던 선수들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의혹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조 부회장의 대관 관련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 부회장이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받아 횡령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회의를 통해 대관 스케줄이 결정되면 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럼 체육회에서는 허가승인 공문을 내려 보낸다. 이 양식에 체육회 수익금 통장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대관비는 시간당 평일 10만원, 주말 13만원이다. 2014년 8월12일부터 2017년 12월31일까지 체육회서 선학빙상장을 수탁 운영한 기간 동안 발생한 모든 대관비는 체육회 통장으로 입금돼야 했다.

하지만 실제 대관비의 일부가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과정서 ‘이중대관’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조 부회장이 대관을 독점한 뒤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를 다른 강사들에 팔아 그 수익을 챙긴다는 의혹과 함께 나온 표현이다.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보낸 적이 있다는 관계자 E씨는 “대관을 잡을 수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중에 조 부회장이 대회 참석차 해외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 부회장이 잡아둔 시간대가 비어 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한테 돈을 내고 타라’고 해서 개인계좌로 입금했다”고 언급했다.

수탁운영 동안 관리 엉망
인천시 “문제 없다” 답변

E씨가 조 부회장의 개인계좌로 돈을 넣은 시기는 2016년. E씨는 자신과 같은 일이 당시에는 많았다고 말했다. E씨에 따르면 조 부회장은 “(대관)빈 시간에 얘기해라, 타고 싶으면 얘기해라” 등의 말을 했고, 대관을 잡지 못한 강사들은 그의 개인계좌로 돈을 넣고 빙판을 사용했다.

조 부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는 개인계좌로 대관비를 받은 적이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2016년 당시 체육회서 단체 이름으로만 대관비를 받았기 때문에 학부모와 강사들의 돈을 모아서 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편의상 자신의 계좌를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대관비를)횡령했다면 개인계좌로 받은 돈을 (체육회에)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냈다”며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체육회가 수탁 운영을 하던 무렵 선학빙상장 대관비 관리는 엉망이었다. 선학빙상장이 민간위탁 시설로 전환되기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미납된 대관비는 1억원에 달했다. 선학빙상장서 대관업무를 봤던 체육회 관계자 F씨는 인수인계를 받고 황당했다고 했다.

2017년 8월 기준 대관비 미납 금액은 1억원에 이르렀고 이 중 절반 정도인 4000만∼5000만원이 인천빙상연맹 몫이었다. 약 4∼5개월 정도의 대관비가 밀린 것이다.

또 2017년 8월 대관표를 기준으로 7월 대관비를 추산하면 6800여만원인데 반해, 실제 잡힌 수입은 3400여만원에 불과했다. 약 3000만원이 누락돼있던 것. 인천시 체육시설관리운영조례에 따르면 체육시설 사용료는 사용허가를 받음과 동시에 납부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대관비를 내지 않으면 빙상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F씨의 말과 수입 내역으로 추정해보면 대관비를 내지 않고 빙상장을 이용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조 부회장은 “체육회서 청구서를 보내야 대관비를 내는데, (체육회서)공문을 몰아서 보내거나 누락된 일이 있었다”며 “또 청구서에 오차가 있어 이를 조율하는 과정서 대관비 납부가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F씨는 “이전 담당자가 결재한 날짜와 대관표를 비교해봤다. 청구서가 늦게 들어갔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 부회장의 해명대로면 인수인계 직후 인천빙상연맹서 대관비를 납부했어야 했는데, 1차, 2차, 3차 독촉 공문까지 보낼 동안 받지 못했다”며 “4개월여 동안 인천빙상연맹, 조 부회장과 싸운 끝에야 (대관비를)다 받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학빙상장이 민간 위탁으로 전환되는 과정서 인천빙상연맹이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마지 못해 미납금을 냈다는 소문도 돌았다.

돈 안 내고
마음대로?

당시 선학빙상장의 최종 관리주체였던 인천시청 체육진흥과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소문일 수도 있고…”라며 “별도의 행정조치나 징계가 이뤄지진 않았다. 보통 그런 일이 있었다면 보고가 진행되고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지는데 결손 처리한 게 없고 대관비에 따른 세입조치도 끝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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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