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5개월, 그 후…

초대형 이슈에 쥐 죽은 듯 고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올 상반기는 여느 때보다 굵직한 이슈가 많았다. 동계올림픽, 북한 비핵화 이슈를 둘러싼 남·북·미 정상회담, 6·13지방선거 등 대형 이벤트가 6개월 새 치러졌다. 여기에 하나의 사회 현상이 각계각층을 휩쓸었다. ‘미투’ 운동이다. 미국발 허리케인은 올해 1월 한국에 상륙해 대형 태풍으로 발전했다. 이후 5개월, 바람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지난해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풍파에 휘말렸다. 2016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해를 넘겨서까지 사회를 뒤흔들었다. 누적 인원 1300만명이 넘는 시민이 촛불을 들고 겨울 거리를 누볐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파란만장 6개월
대형이벤트 몰려

대통령 탄핵으로 같은 해 5월 장미대선이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재수 끝에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궐선거 개념으로 진행된 선거였기에 문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없이 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정치권, 검찰, 경찰, 재계 등 각계각층서 적폐 청산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숨 가쁘게 지나간 지난해에 이어 2018년 역시 연초부터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사회를 달군 이슈가 대부분 국내서 비롯됐다면, 올해는 그 범위가 국내외를 넘나들었다.

먼저 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동계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배했지만 남북 단일팀 구성, 북한 고위급 관계자 방남 등 개최 직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뜻밖의 성공을 거뒀다. 


그 여세를 몰아 북한 비핵화 이슈를 둘러싼 남북·한미·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렸다.

이후 6·13지방선거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동계올림픽, 정상회담 등 전 세계인의 눈이 쏠리는 대형 이벤트와 전국 단위 선거가 6개월 새 이어지면서 그 어떤 이슈도 국민들의 관심을 길게 잡아두지 못했다.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남북 관계 개선 모드에 가라앉고, 지방선거가 드루킹 특검, 북미 정상회담 등에 가려진 형국이다.

그 많던 미투는 어떻게 됐을까
가해자 지목 인사들 ‘우수수∼’

그런 와중에 지난 1월부터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된 이슈가 있다. 바로 ‘미투(#Me Too)’ 운동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서 처음 시작된 이 운동은 올해 1월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미투 운동은 대형 이슈 사이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성역 없이 각계각층에서 불거진 미투 운동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앞서 미국에선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 유명 영화제작자의 성추문 사건이 불거졌다. 주인공은 할리우드의 실력자로 알려진 하비 와인스타인. <뉴욕타임즈>는 그가 무려 30여년에 걸쳐 영화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성추행 해왔다고 보도했다.

보도 당일 와인스타인은 “동료들에게 많은 고통을 준 것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가 대표로 있던 와인스타인 컴퍼니 직원들뿐만 아니라 기네스 펠트로, 우마 서먼 등 세계적인 여배우들의 폭로도 이어졌다. 결국 그는 할리우드서 추방됐다.

미국발 허리케인
한국엔 태풍으로

미투 운동의 시초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미국의 흑인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저소득층 지역 젊은 여성 성폭력 생존자들의 치유를 돕기 위해 SNS에 “Me too(미투)”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시작됐다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당시 타라나 버크는 성추행 피해를 고백한 10대 소녀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중 ‘미투’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투 운동이 공개 운동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은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이후다. 지난해 10월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SNS를 통해 미투 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SNS에 ‘Me 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MeToo)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방법으로 심각성을 알리자고 주장했다.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 이후 24시간 만에 약 50만명이 넘는 사람이 리트윗 방식으로 지지를 표했고 10만명에 육박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와 주변 사람들의 공감, 연대가 합쳐져 파괴력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서 검사는 지난 1월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2010년 겪은 검찰 내 성추행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서 검사는 이날 인터뷰서 “서울북부지검에서 근무했던 2010년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2010년 한 장례식장서 안태근 전 법무부 감찰국장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하는 등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법무부장관도 같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안 전 감찰국장으로부터 부당한 인사발령도 당했다고 강조했다.

현직 검사의 공개 고발은 법조계는 물론 각계각층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불씨는 문화예술계로 번졌다. 연극계, 문단 등 해당 분야서 거장으로 불리던 인사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문화예술계는 피해 사실을 고백한 사람의 수가 많고 그 수위 또한 상당했다. 그중 가장 충격을 준 인사는 연극계 거장 이윤택 연출가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지난 2월 SNS를 통해 이 연출가와 있던 일을 폭로했다. 김 대표는 10여년 전 지방공연 당시 이 연출가에게 안마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서 이 연출가가 바지를 내리고 신체 일부를 주무르라는 등 성적 행위를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 같은 행위가 여자 단원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이뤄졌다고 고발했다.

연극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 연출가는 김 대표의 폭로 전 연희단거리패, 가마골소극장, 밀양연극촌 예술 감독으로 활발한 활동 중이었다. 연극계 관계자는 물론 대중들이 나서서 이 연출가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김 대표의 고발 이후 5일 만에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 사과했다.

하지만 진정성 없는 ‘반쪽 사과’ 논란이 불거지면서 오히려 연극계 미투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이 연출가는 이날 기자회견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있었지만 폭력적이거나 물리적인 강압을 통한 성폭행은 없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공을 법정으로 넘겼다.
 

그러나 기자회견 이후 이 연출가의 성폭행으로 임신과 낙태를 했다는 김지현 전 연희단거리패 단원의 고발이 나왔다. 또 이 연출가가 기자회견 전 리허설을 했다는 내부 고발까지 터지면서 그는 사면초가 상태에 처했다. 결국 극단원에 대한 상습적인 강제 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연출가는 오는 20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가해자 민낯에
대중 분노 폭발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고은 시인의 성폭력 의혹도 불거졌다. 안 그래도 ‘문단 내 성추행’ 문제로 전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던 문학계는 원로시인의 민낯에 만신창이가 됐다. 고은 시인의 경우는 미투 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최영미 시인이 게재한 시 ‘괴물’이 알려지면서 활활 타올랐다.

최 시인의 괴물에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등의 구절이 담겨 있다. 여기서 En에 해당하는 인물이 고은 시인이라는 것. 


류근 시인은 최 시인의 폭로 이후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고은 시인의 행위가 상습적이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예계서도 미투 운동이 크게 불거졌다. 배우 고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 대중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이 성폭력 가해 의혹을 받고 구설에 휘말렸다. 이들 역시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대학 강단서 교수로 강의를 하던 조민기는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대중을 경악케 했다. 줄지어 불거진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조민기는 카카오톡 대화 메시지가 공개되고, 학과 남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결국 지난 3월 경찰 소환을 앞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재현은 김기덕 감독과 함께 시사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는 신세에 처했다.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은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을 통해 김 감독과 조재현 그리고 조씨의 매니저가 여배우를 상대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지난 3개월 간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던 김 감독은 3일 <PD수첩> 제작진과 방송서 인터뷰한 여배우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김 감독은 방송 이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1월 상륙…지금은 조용∼
2차 가해 때문? 여성운동 확산?

정치권에 떨어진 미투 폭탄은 그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현직 도지사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김지은 전 정무비서의 고발로 정치 생명이 끊겼다. 김 전 비서는 방송에 나와 8개월 동안 4번에 걸쳐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비서의 폭로로 안 전 지사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로 추락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정봉주 전 의원 역시 미투 문제로 낙마했다. 한 언론의 단독 보도로 시작된 정 전 의원의 미투 의혹은 진실 공방이 벌어지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말하는 시간, 장소에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카드 사용 기록이 나오면서 결국 3월 말 출마 의사를 접었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약 3개월 간 미투 고발은 하루에 한 건 꼴로 터져 나왔다. 특정 인물이 검색어 순위에 올라 있으면 십중팔구 미투 관련일 정도였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각 분야의 거장이든 유력 대선후보든 할 것 없이 추풍낙엽처럼 쓸려갔다. 

하지만 최근 태풍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미투 관련 폭로가 여전히 나오고는 있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 성량은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대형 이슈가 미투 운동을 잠식했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 등 대형 이슈가 있던 때에도 미투 운동은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단발성 이슈가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인식됐기에 관심이 쉽사리 식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최근 미투 운동이 잠잠해진 것을 두고 대형 이슈에 따른 관심 분산보다는 2차 가해가 두려워 다시금 피해자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투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근황, 해명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검찰 고발이 이뤄진 사건은 법정 공방의 진행 상황을, 성폭력 가해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의 반박 자료 등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폭로 이후 2차 가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조민기의 자살 이후 그를 고발했던 피해자들은 ‘죽이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는 등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의혹을 고발한 김 전 비서는 신상이 모조리 털렸다. 김 전 비서를 둘러싼 온갖 근거 없는 소문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또 미투 운동이 남녀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모습도 나타나면서 불이익을 우려한 피해자들이 다시 입을 다물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투 운동이 한창 진행될 무렵 ‘펜스룰’이 유행했다. 문제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성과의 접촉을 아예 차단하자는 움직임이다. 

일부 기업에선 직원 선발 과정서 아예 여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반면 조용해진 미투 운동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 폭발력이 줄어든 대신 광범위한 여성 운동으로 정착했다는 시각이다. 최근 혜화역 시위 등 여성의 주최로 진행되는 일련의 행위가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혜화역 시위는 홍익대 누드모델 사건에 대한 비판에서 촉발돼 ‘몰카 없는 세상’을 외치는 집회로 발전했다. 두 번의 집회에 각각 2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

멈출까 확산될까
본질 훼손 우려도

한편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의 변질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을 표방하며 불거진 일련의 사건이 공방 끝에 다른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가 왕왕 있어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정말로 미투 운동이 필요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주변의 연대와 공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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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