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김정은’의 두 번째 카드

간 빼주고 쓸개까지 내줄까?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북미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제 곧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하게 된다. 북미정상회담은 6월쯤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회담이 3∼4주 이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정상회담은 5월에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판문점 선언 당시 핵 동결을 선언했던 김 위원장이 완전한 핵 폐기로까지 입장을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한 북한의 카드로 주한미군 철수 혹은 축소가 꼽히기도 했다.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는 아직까지 좋은 상황이다.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의사 개진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성사에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김 위원장과 위협적 언사로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일각에서는 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풍계리 폐쇄
비핵화 의지

그러나 김 위원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의 개선 등을 공표하며 반전의 단초를 제공했다. 김 위원장은 화해와 통일을 언급하며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했고,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기류가 흐를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북미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핵 동결선언의 연장선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주요 관계자 및 언론인들에게 폐쇄 장면을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국제사회에 핵 폐기 의지를 보여주고, 홍보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해외 언론에 공개한 전력이 있다.


동시에 핵 실험장과 관련된 그간의 불신을 종식시키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 문제가 대두됐을 당시 그 실효성에 대해 반문하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풍계리 핵 실험장의 수명이 이미 다했다는 것이었다.

풍계리 핵 실험장은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최적의 핵실험 장소로 평가받는 곳이다. 해발 2205m의 만탑산을 비롯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부분 단단한 화강암으로 암반이 자리잡고 있다. 이로 인해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풍계리는 6차례의 핵실험까지 치르면서 지반 붕괴 조짐이 가시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총 6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다. 2009년 5월과 2013년 2월, 2016년 1월과 9월, 그리고 지난해 9월3일을 마지막으로 핵 실험은 중단된 상태다.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은 지반 붕괴설에 힘을 실어준다. 

탈북자들은 “나무를 심으면 대부분이 죽고, 우물이 말랐다”며 “기형아가 출생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북한은 핵실험을 할 때마다 “방사능 누출이 전혀 없었고 주변 생태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살펴볼 때 지반 붕괴 등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만큼 폐쇄의 실효성이 높겠느냐는 것이었다.

비핵화 구체안 북미회담서
완전한 폐기? 조건부 철회?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지난달 29일 춘추관 브리핑서 김 위원장의 입장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 못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시설보다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고 아주 건재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1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4월30일(현지시각)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아직 지하 핵실험을 언제라도 실시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38노스>의 프랭그 파비안과 잭 류 연구원 등은 이날 사이트에 풍계리 핵실험장에 관련된 글을 게재했다. 이들은 “여전히 지하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 억류돼있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출소시켰다. 지난 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이들은 4월 초 노동교화소서 출소해 평양 인근의 한 호텔서 필요한 의료 처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상 교육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은 김동철 목사와 김학성씨, 김상덕씨다. 김 목사는 지난 2015년 스파이 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뒤 10여년간 강제 노동에 투입됐다. 김학성씨와 김상덕씨는 지난해 적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억류됐다. 

이들은 평양과학기술대학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웜비어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 대학생 웜비어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지난해 6월 석방됐다. 무의식 상태로 미국에 돌아온 그는 6일 만에 숨졌다. 웜비어 부모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달 26일 공식 성명을 내고 북한과 김정은 정권을 비난했다. 

이들은 자신의 아들이 정치적 이유로 감금됐고, 잔악하게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적극적 자세
회담성사 단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호의적인 제스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CVID 기조는 잃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CVID란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불가역적인(Irreversible) 핵 폐기(Dismantlement)를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핵 폐기가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이라 여기는 모양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 장관의 발언서도 확인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극비리에 방북해 김 위원장과 만났을 당시 CVID의 방법론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며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진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일(현지시각) 국무장관에 취임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CVID’대신 ‘PVID’라는 새로운 표현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우리는 북한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을 영구적이고(Permanent) 검증 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방식으로 폐기(Dismantling) 하도록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그가 PVID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CVID보다 더 강력한 의미라는 시각도 있지만 단순히 표현을 조금 바꾼 것일 수도 있다는 입장도 있다. CVID나 PVID는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하고, 표현만 달리한 것이어서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핵과 관련한 의제는 북미정상회담에 분명히 오를 것으로 점쳐지지만 완전한 핵 폐기라는 결론으로 수렴될지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시각이 다분하다. 완전한 핵 폐기와 관련해 두 정상이 테이블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유다. 

최근 완전한 핵 폐기와 관련해 주한미군의 철수 혹은 축소 발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대해 철수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란은 남북정상회담 전후에도 있었지만 잔잔한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의 ‘주한미군 발언’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일단 주한미군 철수?
카드로 쓰기엔 제약 


문 특보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 뒤 “평화협정 체결 시 주한미군 주둔 정당화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문 특보는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려면 보수진영이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큰 정치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의 발언은 국내에 파장을 야기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곧 바로 문 특보의 발언에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은 “주한미군 철수가 청와대의 입장이 아니라면 문정인 특보를 즉각 파면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문 특보의 발언이 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문 대통령은 직접 나서며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문제로,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자신의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서자 지난 3일(현지시각)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북미 간 국교가 정상화되면 자연히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그런 논의에 대해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얘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화협정 이후에도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과 국내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군 철수
장애물 있어

마크 내퍼 미국 대사 대리는 주한미군 문제는 북미정상회담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일 KBS와의 인터뷰서 “북미정상회담의 가장 핵심적인 의제는 비핵화 검증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상회담 준비에 가장 힘을 쏟는 것 역시 북핵 검증의 틀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주한 미군 철수 논란에 대해서는 “그것은 북한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주한미군의 주둔에 대한 모든 결정은 한미동맹서 결정될 문제”라고 못 박았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내 전쟁의 위협을 차단한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더 나아가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 병력을 주둔시켜 패권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국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따라서 미국이 평화협정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으로 연일 맞서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서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등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화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영국, 호주 등과 함께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중국과 대립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남중국해 인공섬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CNBC 방송은 지난 2일(현지시각) 중국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의 인공섬에 방어용 미사일을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백악관은 중국의 미사일 배치를 두고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경고했다. 

세라 허커비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열린 정례 브리핑서 “우리는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단기적, 장기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역시 대변인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인공섬 군사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왔다”며 입장을 밝혔다.
 

주한미군 철수는 주일미군의 확장이라는 풍선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한반도 내 미군이 철수한다면 미일 동맹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나 동북아 안보가 중국과 얽혀있는 상황서 주한미군의 철수는 상당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미군 철수에 불안을 느낀 일본이 군비를 확장한다면 동북아 안보 정세는 더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힘의 균형을 깨트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주둔은 김 위원장 선대의 유훈이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비핵화만 선대의 유훈이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 역시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당시 김일성 주석이 노동당 국제비서 김용순을 미국 뉴욕으로 보내 미 국무부 차관 아놀드 캔터를 만나게 했다”며 “그 자리서 북한은 ‘북미 수교만 해 주면 앞으로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은 바뀌어야 되겠지만 통일 후에도 남쪽 또는 조선반도에 머무를 수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그 얘기를 2000년 6월14일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만날 때 되풀이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냉전이 끝나고 난 뒤 미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냉전 시대의 미국은 북한을 견제하고 위협하는 역할을 했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난 뒤에 미군을 보니 요동칠 수 있는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김 위원장은 ‘앞으로 우리 남북이 손잡고 미군을 활용한다고 그럴까. 미군이 있는 조건 하에서 남과 북이 왕래하고 교류하고 협력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국내외 요소
얽히고설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반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는 국내외적 요소가 얽히고설켜 단언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이 완전한 핵 폐기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북미정상회담은 애초에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 있다. 이 문제가 제기됐다 하더라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을 찾았을 때 의견을 조율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주한미군 문제는 북미정상회담 이후에 지켜봐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존재감 안간힘 중국의 노림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3일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김 위원장을 만나 담화를 나눴다고 지난 4일 보도했다. 

다만 김 위원장과 왕 부장 간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김 위원장에게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과 획기적인 ‘판문점 선언’에 대해 지지와 축하의 뜻을 전한다”며 “중국은 한반도 종전과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내 ‘중국 배제론’을 불식시키겠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왕이 부장은 지난 달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이라며 “이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발언하는 등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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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