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파격! 파란!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뒷얘기

남은 건 ‘트럼프의 선택’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김정수 기자 =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향한 첫 관문인 남북정상회담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65년 만의 종전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채운 남북 정상은 5월 미국으로 넘어가 한반도 긴장의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일요시사>는 남북정상회담서 미처 다뤄지지 않았던 얘기와 성큼 다가온 미북정상회담의 모습을 예상해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오전 8시6분경 청와대를 출발했다. 청와대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문 대통령을 환송했다. 그중에는 보수단체인 재향군인회도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이 보수·진보를 넘어 전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문 대통령은 모여든 인파를 보자 차를 세워 재향군인회 인사 등과 인사를 나눴다.

역사적 만남
맞잡은 손

문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은 경기 파주의 통일대교 남단서 임진강을 건너 판문점으로 향했다. 9시1분경 판문점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평화의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9시27분경 김 위원장을 맞이하기 위해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와 소회의실(T3) 사이 군사분계선(MDL) 쪽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은 9시29분경 인민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바로 오른쪽에 서서 MDL 근처까지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두 정상은 MDL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았다.

잠시 사진을 찍는 자세를 취한 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북측 땅을 밟아보라며 제안했고 문 대통령은 잠시 월경(국경 등의 경계선을 넘는 일)을 했다. 이후 두 정상은 손을 맞잡은 채 MDL을 함께 넘어왔다. 남북 정상이 MDL서 조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는 것 역시 최초다.

두 정상은 이동하던 중 판문각·자유의집 등을 바라보며 차례로 기념촬영을 했다. 민통선 내에 있는 대성동 초등학교 학생들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이벤트도 있었다. 9시34분경 두 정상은 판문점 남측지역 광장서 국군의장대 공식사열을 포함한 공식환영식을 가졌다.

광장에는 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두 정상이 상대측 공식수행원과 인사를 나눔으로써 환영식은 종료됐다. 환영식이 종료된 9시40분경 김 위원장은 의장대 사열이 끝나고 양측 수행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 예정에 없던 기념사진촬영이 이뤄졌다.

김여정 펜으로
‘평화의 시대’

9시42분경 평화의 집에 도착한 두 정상은 방명록을 작성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고 남겼다. 서명대에 준비된 펜 대신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건네준 펜으로 작성해 눈길을 끌었다.

정상회담은 10시15분경부터 시작됐다. 회담 테이블의 길이는 2018㎜로, ‘2018남북정상회담’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두 정상은 약 7분여간 모두발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서 김 위원장은 “지난 시기처럼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오고 발표 되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는 것”이라며 “잃어버린 11년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시로 만나 걸린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이 상황을 만들어낸 김 위원장의 용단에 대해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며 “오늘 통 크게 대화하고 합의에 이르러서 모든 분들에게 큰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모두발언 후 비공개로 전환된 오전 정상회담은 11시55분경 종료됐다. 김 위원장은 11시57분경 MDL을 넘어 ‘소떼 길’을 통해 북으로 돌아갔다. 지난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고향으로 방북했던 바로 그 길이다.

오후 정상회담을 시작한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합의문을 공동발표했다. 합의문에는 ‘2018년 내 종전 선언’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문 대통령의 올 가을 평양 방문’ ‘8‧15남북이산가족 상봉’ 등 파격적인 내용이 실렸다.

남북 정상은 정상회담서 합의된 내용들을 실천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 등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한반도로 집중됐던 세계의 관심은 남북정상회담의 종료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옮겨갔다. 5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5월 말 내지는 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정상회담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로드맵이 어떻게 다뤄지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목표는 한마디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다. 그간 미국 본토를 겨냥해왔던 북한의 핵과 그 운반체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의 완벽한 폐기다.

두 정상 MDL서 만나 “반갑습니다”
김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의 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손에 쥐어졌다.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보인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을 약속할 공산이 크다. 이를 통해 김 위원장은 염원하던 북한의 체제보장을 미국으로부터 약속받는 시나리오다.

북미정상회담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동의하느냐가 관건이다. 6·25전쟁 이후 미국과 중국은 협상을 통해 한반도 휴전을 체결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전쟁의 당사국인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함께 종전선언을 추진하자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앞서 남북정상회담 전 미국과 중국은 종전선언에 대해서 환영의 뜻을 표한 바 있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동참하느냐는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성실하게 비핵화 과정을 이행한다는 약속을 전제로 종전선언에 동참하는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로의 이익을 공유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자국 내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특검 ▲시리아 미군 철수 ▲11월 중간선거라는 세 가지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미 의회와 로버트 뮬러 특검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과 트럼프 캠프와의 공모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시리아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은 군 수뇌부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는 등 군으로부터 신망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서 미국 본토를 향한 북한 미사일 위협 제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들 수 있는 최고의 반전 카드다.

항구적 평화
키맨 트럼프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라는 막중한 당면과제를 앞두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탄핵’ 카드가 핵심 선거 전략으로 부상 중이다. 야당인 민주당뿐 아니라 집권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탄핵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큰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에서 중간선거가 있는 11월까지 유의미한 합의 내용이 발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투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과의 협상 내용을 11월까지 끌고 갈 필요성이 있다. 

중간선거 직전 북한과의 극적인 비핵화 합의로 재신임 투표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전략이 그려지는 이유다.

그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로 중국에 대한 압박수위를 지금보다 더욱 높일 수 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이득이다.

김 위원장 입장서도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의 체제보장뿐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경제 원조를 끌어올 수 있는 상수다. 앞서 김 위원장은 북중정상회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규모 경제협력과 체제보장, 군사적 위협 해소를 요청한 바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로 중국을 압박,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낸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5말6초 북미정상회담, 다가온 종전
남·북·미 정상 노벨평화상 보인다

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군 철수’ ‘사드 해제’ 카드를 들고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협상을 벌이는 그림이 그려진다.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한 병력과 사드는 북한에 대한 압박보다 중국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짙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군과 사드를 일본선까지 후퇴하는 안을 제안한 뒤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원조를 끌어내는 전략이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에 대한 견제를 완전히 철수하는 게 아니라는 측면서, 중국 입장에선 미국의 압박을 지금보다 적게 받을 수 있다는 측면서, 북한 입장에선 중국으로부터의 많은 원조를 기대할 수 있다는 측면서 서로 간에 ‘윈 윈(Win Win)’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해방 후 73년 동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던 한반도서 쓰여지는 ‘평화의 새 역사’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만약 한반도 비핵화를 끌어낸다면 문 대통령, 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단숨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라섬은 물론 수상도 유력해진다.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 이후 문 대통령에 대한 노벨평화상 추진이 한때 이슈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때 청와대는 노벨평화상 추진에 대해 말을 아꼈다. 

미군 철수
사드 해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19일자 논평을 통해 “어느 단체가 ‘문재인 대통령 노벨평화상 추진위원회’를 꾸린다고 한다”며 “문 대통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평화의 바람은 평창올림픽 때보다 더욱 세게 한반도로 불어오고 있다. 제118회 노벨상은 올해 10월 발표돼 12월 수상식이 열린다. 올 연말 문 대통령, 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세 정상의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은 결코 꿈이 아니다.

 

<chm@ilyosisa.co.kr> <kjs0813@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북회담 중러 셈법은?
삼국 정상의 ‘구밀복검’

남북문제는 기존의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서 ‘남·북·미’가 주도하는 상황으로 변화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는 급변하는 남북정세 속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양새다.

중국과 러시아는 ‘중-러 로드맵’과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내 지분을 잃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로드맵은 총 3단계에 걸쳐 북한의 비핵화와 이에 따른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중단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지난 23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베이징서 만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내 긍정적인 상황 변화는 중·러 양국이 상정하고 있는 로드맵에 부합한다”는 데 입장을 함께했다.

양국은 6자회담 역시 언급하고 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8일 “6자회담의 조속한 회복은 국제사회의 공동인식이자 공동염원”이라며 6자회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이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달 초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안보 문제 등은 6자회담 틀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은 중국, 러시아와 달리 북한과 공식적인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 아베 총리는 지난 18일 미국으로 건너가 미일정상회담을 갖고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해 달라고 요청했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아베 총리가 남북문제를 통해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상정해 자국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려 사학스캔들로 추락하는 지지율에 반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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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에서 사라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눈을 가리는 건 거짓이 아니에요. 믿음이죠”라고. 피해자들은 2년여 동안 수십억원을 뜯기면서도 차용증은 물론 사업계획서 같은 문서 한 장 보지 못했다. 그나마 명함에도 이름과 전화번호뿐이었다. 그들의 눈을 가린 건 대체 뭐였을까? 그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서울의 한 보험사 소회의실. 처음에 3명이던 피해자가 2시간 뒤 1명 더해져 총 4명이 됐다. 몇 명은 과거 학습지 회사에서 동료로 일했고, 몇 명은 현재 보험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의 접점은 최모씨라는 한 여자였다. 이들 모두 최씨를 만났고 한 명도 빠짐없이 돈을 뜯겼다. 4명에게서만 20억원 가까운 돈이 흘러나갔다. 클래식한 사기 수법 최씨의 사기 행각은 광범위하면서도 폐쇄적이었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헬스케어 제품 판매 직원 등 각각의 피해자 그룹이 있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다.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 느낄 때쯤에서야 또 다른 피해자의 존재를 발견했다. 피해자 수가 70~80명, 피해액이 300억원에 이른다는 것도 대략적인 수치일 뿐,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한 피해자는 “본인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피해자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씨의 정체는 모호했다. 최씨가 일부 피해자에게 건넨 명함에는 ‘기업/개인 세금 처리 대행’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름, 전화번호만 적혀 있다. 한 피해자는 “최씨는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세무 업무를 대행한다고 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계속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상대에게 ‘사장님’ ‘회장님’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자신을 세무 관련 전문직으로, 배우자는 외교관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 명품 옷, 외제 차 등은 최씨를 ‘돈 많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일종의 장치로 작용했다. 실제 최씨를 만났던 몇몇 피해자들은 ‘(집에) 가정부가 있었다’ ‘가정부에게 LA 갈비 세트를 줬다’ ‘(최씨와 그 가족이) 블랙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급 카페에서 비싼 디저트를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최씨의 배경에 흔들리던 피해자를 완전히 넘어가게 만드는 데는 건 주변 동료, 지인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몇 년 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한 동료,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지인의 말에 피해자들은 최씨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한 피해자는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던 사람이 있었는데 (중간에서) 질릴 정도로 권했다.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피해자가 대부분 ‘여초 직장’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학습지 회사에서 함께 일하다가 보험사로 같이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몇몇이 최씨와 얽히면서 지인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판이 커졌다. 전형적인 ‘피라미드’ ‘불법 다단계’ 방식이다. 한 변호사는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의 사기”라고 표현했다. 최씨의 배경과 언행, 동료와 지인의 꼬드김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그때부터 홀린 듯이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기 수법은 간단했다. ‘(돈을) 일주일 쓰는 대신 이자를 1% 주겠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일주일 동안 빌려주면 이자로 1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피해자는 일주일 뒤 원금과 이자를 합해 1억100만원을 받게 된다. 한 피해자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예 선이자를 떼고 빌려 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 1억원이면 9900만원만 빌려주는 식으로, 원금을 돌려받으면 100만원을 번 셈이 된다. 한남동 아파트 ‘상류층’ 행세 동료, 지인 부추김에 거액 투자 처음 한두번은 이자가 들어왔다. 하지만 원금이 들어와야 할 시기가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이자까지 끊겼다. 원금과 이자를 달라는 요구에 최씨는 이자 비율을 높이면서 추가로 돈을 넣으라고 권했다. ‘돈을 더 넣으면 이자로 10%를 주겠다’는 식이다. 피해자마다 이자 비율은 달랐지만 대략 5~10%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카드 대금을 대신 결제해 주면 월 수수료로 0.8%를 주겠다는 말도 했다. 최씨의 말대로라면 카드로 100만원을 긁었을 때 수수료로 8000원이 발생한다. 당연히 카드 결제액이 커질수록 수수료도 많아진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카드를 내준 것도 모자라 몇몇은 카드를 새로 발급까지 받아 최씨에게 건넸다고 한다. 결말은 같았다. 카드 대금은 쌓여가고 수수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 피해자는 “카드 대금이 계속 연체되고 한도 때문에 사용이 막히니까 리볼빙을 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미루는 서비스다. 당장 변제 부담은 덜하지만 잔액에 연이자가 15~19%가량 붙는다. 눈 깜짝할 새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상품이다. 이자나 수수료는커녕 원금도 못 받는 상황이 계속되자 피해자들은 결국 최씨와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사람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보험설계사 등 피해자 7명은 지난해 12월 최씨를 포함한 5명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사기)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7명 외에도 피해자가 3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고소인 5명은 주범 최씨, 모집책 차모씨, 이모씨, 박모씨, 그 외 김모씨 등이다. 피해자 7명과 접점이 가장 적은 김씨를 제외하고 4명의 피고소인만 놓고 보면 역학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차씨와 이씨, 박씨 등이 최씨와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 7명의 피해액은 26억8700만원에 달한다. 나머지 피해자 3명의 피해액까지 합치면 28억8000만원으로 불어난다. 이들은 계좌이체, 카드 결제 등의 방법으로 최씨 등에게 돈을 보냈다. 이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까지 계산하면 피해액은 1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가운데서도 A씨의 피해액은 확인된 것만 약 17억원에 이른다. 피해자 7명의 전체 피해액(27억원) 중에 63%가 A씨의 몫인 셈이다.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이자 비용은 별도다. 이 돈까지 합치면 A씨의 피해액은 약 23억원까지 늘어난다. A씨는 차씨를 통해 최씨를 만났는데, 두 사람은 보험사에서 5년간 동료로 지냈다. 홀린 듯이 돈 보냈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A씨는 늦게까지 야근하고 있었다. 그는 “죽도록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2024년 초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오라’는 차씨의 부름에 나간 게 시작이었다. A씨는 인근의 카페에서 또 다른 피해자와 함께 최씨를 만났다. 또 다른 피해자는 차씨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A씨는 “처음 만난 최씨는 쉽게 믿기 어려웠지만 차씨는 5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차씨가 나와 다른 피해자에게 ‘원금은 보장된다. 나도 2억을 벌었고 두 달 뒤에 추가로 1억을 번다’고 말하니 솔깃했다. 최씨의 신상에 대해서도 차씨가 신나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차씨는 A씨에게 자신의 계좌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드 결제, 계좌 이체 등의 방식으로 최씨에게 돈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2024년 4월경부터다. A씨의 카드는 2024년 4월부터 8월, 지난해 2월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거래처는 정유사, 명품관 등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동차 기름값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돈이 주유 대금으로 결제됐다는 점이다. 2024년 4월, A씨의 카드가 처음 사용된 날짜에 ‘○○석유’라는 곳에서 1200만원이 결제됐다. 이후에도 1000만원 단위의 돈이 ‘○○상사’ ‘○○○ 에너지’ 등에서 사용됐다. 카드로 긁어놓고 이후에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카드깡’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최씨는 명품관에서도 총 7700만원을 긁었다. 이렇게 결제된 카드 대금은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카드 대금과 수수료를 주겠다는 최씨의 말은 ‘공수표’였다. A씨는 “카드를 빌려준 쪽에서 돈을 넣어달라고 오히려 빌어야 했다. 몇 번을 요구해야 한번 돈을 넣어줄까, 말까였다. 한도가 막히면 다른 카드를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1년여에 걸쳐 최씨로부터 입금된 돈은 2억원. 원금과 주기로 한 수수료를 계산하면 턱없는 돈이다. 결국 A씨는 카드 대금으로만 1억5000만원을 뜯겼다. ‘짧게 쓰고 줄게’라며 빌려 간 자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해자들은 최씨가 이자 명목의 돈을 주지 못한 시기를 2024년경으로 기억했다. A씨 역시 2024년 4월에 처음 돈을 넣고 한 달 뒤부터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회사 세무조사 등을 이유로 돈이 묶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도 죽었나 ‘돈만 들어오면 A씨부터 챙겨줄게’라는 말은 당시 상황에서 A씨가 매달린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손절’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돈을 넣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원금만이라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A씨를 지배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번만 빌려주면’ ‘곧 돈이 들어온다’는 최씨의 말에 속아 A씨가 빌려준 돈은 15억5000만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돈이 전부 A씨 돈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동생, 부모님, 지인, 심지어 고객에게까지 돈을 빌렸다”고 털어놨다. 이 중 3억원가량은 집을 담보로 제3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즉, 사채다. 급하게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제시한 높은 이자율은 A씨의 목을 옥죄고 있다. A씨는 지금도 그 이자를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악랄한 수법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A씨가 보험설계사인 점을 이용해 그의 고객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연결했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대납해 주는 방식으로 돈을 갚겠다며 A씨를 이용한 것이다. A씨는 해당 고객이 최씨와 연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월 400만원이 넘는 보험을 2개 가입한 고객은 10개월 정도 보험료를 낸 뒤 사라졌다. 보험설계사는 고객을 유치하면 전체 납입 기간에 대한 선수수료로 익월에 월급을 받는다. 예를 들어 월 100만원, 20년 납기 보험을 든다고 하면 총 보험료 2억4000만원에 대한 수수료가 보험설계사의 몫이다. 능력에 따라 보험설계사의 연봉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 조항이 있다. 고객이 최소 25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설계사가 받은 월급은 ‘환수’ 조처된다. 보험설계사의 능력은 신규 고객 유치가 아니라 유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환수 조처도 없던 A씨의 경력은 최씨로 인해 무너졌다. A씨의 동료이면서 피해자인 이들 역시 최씨, 차씨 등이 연결해준 고객이 보험금을 납입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환수 조처로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씨에게 넘어간 1억5000만원은 결정타였다. 그전까지 약 10개월간 돈을 보내지 않고 빚 독촉만 했던 A씨는 최씨에게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게 된다. A씨에 따르면 최씨는 수표 다발이 찍힌 사진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 그러면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 1억5000만원의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1억50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돈 못 빌려주면 카드라도 내놔 주범 최씨 다른 사건으로 재판 5000만원만 마련해 갔던 A씨는 그 자리에서 고객에게 1억원을 빌려 최씨에게 건넸다. A씨는 “무슨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사채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당신(A씨) 때문에 450억원을 출금 못하게 생겼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윽박질렀다. 최씨도 나서서 ‘빨리 어디에서라도 빌려봐’라고 계속 압박했다. 정말 내 책임이 될 것 같은 마음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1억5000만원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껍질까지 벗겨 먹었다’ ‘뼈까지 발라 먹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A씨는 최씨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린 상태였다. A씨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속을 수 있냐고 의문을 표했다. 결국 A씨도 피해자들도 쉽게 돈을 벌고자 했던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피고소인 가운데 1명인 김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 역시 최씨에게 빌려준 돈이 상당하다. 그걸로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되짚어 보면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소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 욕심에 시작했다가 원하는 만큼 돈을 받지 못하니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황유준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실제 존재하는 웅덩이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웅덩이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다시 말해 투자의 배경이 되는 회사나 사업체 같은 실체가 아예 없었다. 즉, 최씨는 처음부터 피해자들을 기망할 의도로 만났고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피고소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A씨 등에게 받은 돈을 투자 목적이 아닌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피고소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최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몇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져 물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통화가 연결된 김씨는 “최씨는 고소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부자도 아니고 특출난 사람도 아니다. 걔도 사업 과정에서 돈 문제가 꼬여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걔도 사기 피해자”라며 “가족하고도 사이가 틀어졌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으로 안다. 나는 (최씨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울먹였다. 최씨 사건은 크게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 있고 A씨 등의 고소 사건도 비슷한 유형이라 검찰 송치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또 다른 보험사 지점, 헬스케어 제품 회사, 화장품 회사 등에도 피해자가 있다.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 최씨를 비롯한 중간 모집책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피해 금액이 크기에 이들은 형량이 높은 ‘특경법’에 걸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 사건으로 2명이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도는 상태다. 최씨와 피해자 사이에서 모집책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과 큰돈을 투자했던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피고소인들은 이 여성이 원래 우울증을 앓았고, 남성은 지병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추가 피해자 더 나올 듯 과거 사기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 사건의 진짜 공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돈을 뜯겼던 피해자가 원금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다. 사기 사건이 정말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에 비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은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영혼이 다 빠져나갔을 것”이라며 “일전에 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변호하면서 ‘소리 없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고 생각한 적 있다. 반드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