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청의 ‘어린이집 죽이기’ 내막

민원 안 들어줬다고 탈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기자= 시험에 떨어지면 원인을 찾기 마련이다. 응시자의 대다수가 합격하는 시험이라면 더욱 그렇다. 불합격한 사람은 답안지를 통해 정답을 확인하려 한다. 이때 답안지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의심은 꼬리를 물어 결국 주최 측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불합격의 이유가 시험 외부에 있다는 의혹까지 나오면 걷잡을 수 없다. 현재 강남구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서울 강남구에는 54개의 구립 어린이집이 있다. 구립 H어린이집도 그 중 하나다. H어린이집은 KC대학교(이하 KC대)가 2015년 5월27일 강남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문제는 신규 위탁 후 3년마다 진행되는 재위탁 심사에서 H어린이집이 부적격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강남구서 20여년간 구립 어린이집을 운영해온 한 원장은 “재위탁 심사에서 떨어진 어린이집은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다. 이 소식은 지난 4일, H어린이집 학부모들에게 전해졌다. 학부모들은 위탁 운영 만료 날짜인 5월26일 이후 급변할 보육환경에 우려를 표했다. 9일부터 학부모들의 민원 전화가 강남구청에 쏟아졌다.

재위탁 탈락
놀라운 일

위탁체인 KC대와 H어린이집 A원장은 심사 결과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KC대가 재위탁을 받지 못하도록 심사 과정서 강남구청의 의도적인 방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먼저 문제 삼은 것은 재위탁 심사 서류 제출 기간이다.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체 선정관리 권장 표준안에 따르면 재위탁 심사결정은 계약 만료일 3개월 이전에 이뤄지도록 돼있다. 오는 5월26일에 계약이 만료되는 H어린이집의 경우 2월26일 전에 심사가 진행돼야 했다.


재위탁 심사에는 어린이집 위탁 신청서, 자산 현황에 관한 서류, 등기부등본, 공고일 전일 현재 잔액 증명, 시설운영 기간 동안 실적, 어린이집 운영 계획서 및 예산서 등이 필요하다. H어린이집 A원장이 재위탁 신청 안내 공문을 받은 것은 지난 2월8일 오후 10시경. 

강남구청으로부터 구두로만 서류 준비 요청을 들었던 A원장이 여러 차례 요구한 끝에 받은 공문이다. 

강남구청은 공문서 2월8일 목요일부터 12일 월요일 오후 6시 사이(토·일 공휴일 제외)에 심사 서류를 방문 접수하라고 안내했다. 

KC대 관계자는 “강남구청이 보낸 공문은 8일 밤 10시에 A원장의 개인 메일을 통해 전달됐고, 학교는 다음날인 9일 오전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며 “10∼11일이 주말이어서 학교가 심사 서류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채 이틀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20여가지의 서류 중에서도 특히 ‘시설위탁운영 이사회 결의서’는 학교법인 이사회의 결의를 얻어야만 작성 가능한 서류였다”고 덧붙였다.
 

강남구 내 다른 어린이집과 비교해도 H어린이집에 주어진 서류 준비 기간은 이례적으로 짧았다. 구립 S어린이집과 J어린이집 등은 지난해 재위탁 심사 과정서 접수 마감일로부터 7일 전 신청 안내 공문을 받았다. 2016년에는 접수 마감일로부터 20여일 전에 안내를 받은 어린이집도 있었다.

이틀 만에
서류 준비?


심사 서류 준비 이후 H어린이집 A원장과 KC대는 2월21일 재위탁 심사를 받았다. 심사는 약 10분간 어린이집 원장이 브리핑을 진행하고 이후 10분간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 사이 보육정책위원회 위원들은 심사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심사항목은 ▲운영체의 시설 운영 및 사업 실적(30점) ▲운영체의 대표 및 원장의 전문성(20점) ▲어린이집 운영계획(35점) ▲운영체의 공신력(10점) ▲운영체의 재정능력(5점) 등이며, 100점 만점에 80점 미만이면 부적격 처리된다.

심사 이후 H어린이집 A원장은 결과를 알기 위해 수차례 강남구청에 연락했지만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A원장이 부적격 처분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월26일. 그러나 강남구청은 심사 다음날인 22일 홈페이지에 이미 H어린이집 재위탁 부적격 처분에 대한 공고를 게시한 상태였다.

H어린이집 A원장은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부적격 이유를 알려달라고 강남구청에 요구했다. 보건복지부서 발행한 ‘2018년도 보육사업안내’에 따르면 위탁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심사 결과는 공개하도록 돼있다. 

보건복지부 보육기반과 관계자 역시 “심사기준과 심사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H어린이집 재위탁 제외 ‘이례적’
강남구청 심사 결과 공개 ‘안돼’

하지만 강남구청은 심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H어린이집의 재위탁 부적격 처분은 원장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위탁체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남구청 보육지원과 K과장은 “위탁체 관련 점수가 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전체 심사항목 중 위탁체와 관련된 부분은 ▲운영체의 공신력 ▲운영체의 재정능력 등이다. 그 중 운영체의 재정능력은 법인이나 비영리 민간단체일 경우 5억 이상의 자산을 갖췄으면 5점 만점, 단체나 개인의 경우 2억 이상이면 5점을 받을 수 있다. 

KC대는 재정능력에 있어 5점을 받을 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다. 운영체 관련 점수 15점 중 5점은 이미 확보한 상태서 심사에 들어간 셈이다.

H어린이집 A원장은 “강남구청 보육지원과 관계자가 ‘원장님은 아무 문제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A원장은 2015년 H어린이집 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2번에 걸쳐 강남구청장 상을 수상할 정도로 어린이집 운영에 있어 검증을 받은 상태다.

KC대 관계자 역시 위탁체에 대한 지적에 펄쩍 뛰었다. 그는 “불과 3개월 전 다른 구에서 위탁받아 운영 중인 어린이집이 재위탁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며 “H어린이집과 해당 어린이집은 동일한 조건으로 운영되는데 왜 H어린이집만 부적격 처분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보육지원과 K과장의 부적절한 심사 관여 의혹 등이 제기됐다. 

KC대 관계자는 “K과장이 재위탁 심사 과정서 우리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며 “이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K과장은 “심사 결과는 보육정책위원회서 결정한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K과장은 3월 말 정년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서 퇴사했다. 일각에선 H어린이집 문제로 강남구청과 어린이집 간의 분쟁이 지속되자 ‘꼬리 자르기’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K과장은 “개인 사생활로 인한 퇴사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라며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KC대는 지난 3월 강남구청을 상대로 ‘어린이집 재위탁 부적격 처분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강남구청은 “현재 소송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H어린이집 관련 사항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점수 공개 못해
과장은 퇴사 왜?


KC대 관련 어린이집의 수난은 H어린이집만이 아니다. KC대 학교법인이 위탁받아 운영 중인 P어린이집은 H어린이집보다 앞서 많은 일을 겪었다. 일부 관계자들은 H어린이집의 재위탁 심사 부적격 처분이 P어린이집과 분쟁을 겪은 강남구청의 보복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P어린이집은 1993년 KC대 학교법인이 위탁받아 현재까지 운영 중인 구립 어린이집이다. 2000년 B원장이 부임해 현재까지 원을 이끌고 있다. 그러던 중 2015년 P어린이집의 대체신축이 결정됐다. 20여년가량 된 어린이집 건물이 많이 낡아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입주를 목표로 신축 공사가 시작됐다.

문제는 어린이집 내부 공사 과정서 불거졌다. 인테리어부터 교재·교구, 안전장치, 주방용품, 시설 설비 등 내부 공사는 B원장의 몫이었다. B원장은 입주 일정을 한 달가량 남기고서야 내부 공사에 돌입했다.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로 외부 공사가 늦어진 탓이었다. B원장은 “입주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업체 선정 기간을 1주일 이상 할 수 없었다”며 “나라장터 공고란에 등록한 후 업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수의계약을 통해 선정된 업체는 3곳. 문제는 세 업체와 계약을 마친 이후 등장한 또 다른 업체다. 해당 업체 P대표는 강남구청 관계자와 함께 공사 현장에 나타났다. 당시 B원장은 P대표를 강남구청 ○○과 P과장의 여동생으로 소개받았다고 한다.

B원장은 “P대표는 자신이 당연히 실내 인테리어의 일부를 공사하는 것으로 알고 찾아왔다”며 “언제 공사를 시작하면 되냐고 추궁하곤 했다”고 말했다. P대표를 떠맡은 것은 세 업체였다. 

P대표는 이들 업체에게서 1000만원 상당의 공사를 받아 수행했다. 친환경 황토타일을 이용한 내부 인테리어 공사였다. P대표의 오빠인 P과장은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공사 끝자락에 또 다시 말썽이 일어났다. 마무리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것이다. 2월1일로 예정됐던 입주 날짜는 세 차례 밀린 끝에 2월13일로 결정됐다. B원장은 업체들에 마무리 공사를 재촉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업체 측은 ‘잔금 먼저’ P어린이집 측은 ‘공사 먼저’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면서 세 업체와 따로 이야기를 나눴던 P대표가 공사 잔금을 받지 못했다며 강남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B원장은 “내부 공사 과정서 P대표와 함께 찾아왔던 강남구청 관계자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P대표에게 얼른 돈을 주라고 강요했다”며 “결국 한 업체에 돈을 줘서 처리하게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B원장은 공사를 마무리 하지 못한 두 업체에는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사가 미흡한 부분은 KC대 학교법인의 지원을 받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P어린이집 2016년 공사 이후
원장·위탁체 민원·고발 시달려

문제는 공사 이후다. 강남구청에서 P어린이집 초기설치비 집행실태에 따른 감사를 진행한 후 KC대 학교법인에 ‘원장 교체’를 요구한 것. 

KC대 학교법인 관계자는 “(P어린이집을) 지도 점검한 결과 B원장이 내부 공사 과정서 강남구청 담당공무원과 협의해 일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20여년간 어린이집을 잘 이끈 원장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또 KC대 학교법인은 강남구청의 감사결과 처분사항 이행요구에 대한 답변서에서 강남구청의 사전 승인에 따라 공사가 진행됐고 그 과정서 위반 사항에 대한 지도조언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공사가 진행될 당시에는 별다른 말없이 넘어간 부분을 왜 입주 1년이 지나서야 문제 삼느냐는 지적이다.

이후에도 P어린이집과 강남구청 간의 마찰은 계속됐다. 지난해 9월 강남구청은 서울시 지도점검 결과 P어린이집이 영유아보육법 44조와 46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67조를 위반했다고 통지하고 행정처분을 위한 청문회에 KC대 학교법인 이사장과 B원장의 참석을 요구했다.

주요 위반사항 중 가장 크게 불거진 부분은 ‘보조금 허위 신청’ 건이다. 강남구청은 B원장이 보육도우미 K씨의 두 달 치 월급과 2시간 근무 착오금 30여만원을 부당 수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남구청은 P어린이집과 B원장, KC대 학교법인 이사장을 직접 검찰에 고소했다.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3월, 2013년 5월부터 P어린이집서 근무한 K씨가 식자재를 훔치다 B원장에게 들켜 경위서와 사직서를 제출했다. K씨는 퇴사 과정서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B원장은 노무사와 논의 결과 ‘절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거절했다. 

그런데 이후 강남구청에 민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2014년 7∼8월 K씨가 P어린이집을 잠시 쉬는 동안 B원장의 딸이 대체근무하면서 받은 두 달 분의 월급, 2016년 6월 K씨에게 하루 4시간 근무를 제안한 이후 담당직원의 착오로 근무시간을 6시간으로 계산해 추가로 지급한 30여만원에 대한 내용이었다. 

B원장은 “강남구청은 모든 조치가 마무리되고 4개월이 지나서야 나를 고발했다”며 “그 이전에 보고는 물론 보육지원과에 이미 돈을 반환조치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강남구청은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9월 P어린이집에 과태료 150만원, 원장 자격정지 1개월15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KC대 학교법인에는 신규원장을 공개 채용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KC대 학교법인이 거절하자 11월에는 보육정책위원회를 개최해 위탁 취소 심의를 진행하고, 위탁 취소를 통보했다.

B원장과 KC대 학교법인은 강하게 반발했다. 

KC대 학교법인 관계자는 “B원장이 P어린이집 대체신축 과정에서 강남구청 관계자들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아 보복 조치하는 것”이라며 “보육지원과 K과장이 ‘P어린이집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이어 “H어린이집 재위탁 심사 부적격 처분은 P어린이집 사건과 분명히 연관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K과장은 “P어린이집과 H어린이집 간 연관 관계는 절대 없다”고 해명했다.

P어린이집 사건
H어린이집 불똥?

강남구청과 P어린이집·KC대 학교법인 간의 분쟁은 어린이집 측으로 무게추가 기운 상태다. 검찰은 P어린이집과 B원장, KC대 학교법인 이사장에 대한 고발건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또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는 KC대 학교법인과 B원장이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신청한 어린이집 원장 자격정지 처분 등 집행정지 사건에서 법인과 B원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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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