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여행 ③경북 포항시 북구·영덕군

푸른 바다 따라 달리는 동해선 포항-영덕 기차 여행

동장군이 물러가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3월, 살이 꽉 찬 대게를 맛보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즐기기 위해 동해선 기차에 몸을 실어보자. 포항서 출발해 월포역과 장사역, 강구역을 거쳐 영덕역까지 44.1km를 달리는 동해선이 지난 1월26일 운행을 시작했다. 
 

포항에서 영덕까지 소요 시간은 34분. KTX와 동해선을 이용하면 서울에서 약 3시간10분 만에 영덕에 도착한다. 동해선 덕분에 영덕 여행이 한결 편해졌다. 2020년에는 삼척까지 전체 166.3km에 이르는 동해선이 개통할 예정이다. 
 

푸른 바다를 따라 달리는 동해선은 놀이동산에 있는 기차처럼 앙증맞은 외관을 자랑한다. 세 량이 전부인 기차 안팎은 분홍색 복사꽃과 귀여운 대게, 호미곶해맞이광장에 있는 ‘상생의손’ 등 영덕과 포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알록달록 꾸며졌다. 기차에 오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양한 볼거리

포항역서 출발한 동해선은 시골길을 시원하게 달린다. 오른쪽 창문 너머로 쪽빛 동해가 들어온다. 기차에 앉아 바다를 보는 특별한 여행이다. 
 

첫 번째 정차하는 곳은 월포역이다. 달을 상징하듯 동그란 모양을 한 월포역이 눈을 사로잡는다. 소담한 맛이 느껴진다. 월포역은 동해선 기차역 중 해변서 가장 가깝다. 역에 내려 걸으니, 5분도 되지 않아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달려든다. 


해변에는 갈매기 수십 마리가 노닌다. 여름이면 북적일 월포해수욕장이 한적하다. 고즈넉한 해변을 걷다 보면 발걸음이 한없이 더뎌진다. 
 

월포역서 다시 동해선에 오른다. 행정구역이 포항시에서 영덕군으로 바뀐다. 월포역을 지나면 주로 터널을 통과해 기차 안에서 바다를 보기 힘들다. 기차는 8분 만에 장사역에 닿는다. 장사역은 동해선서 유일한 무인역이다. 

근처에는 백사장이 길어 ‘장사(長沙)’라는 이름이 붙은 장사해수욕장이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 하루 전에 북한군을 교란할 목적으로 시행한 장사 상륙작전이 펼쳐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장사역서 출발한 기차는 들판 가운데 있는 강구역에 닿는다. 강구역서 나와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리면 강구항이 나타난다. 강구항은 영덕대게 집산지이자,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우리나라 대표 여행지다. 

놀이동산 기차처럼 앙증맞은 외관 ‘동해선’
영덕대게 집산지에서 즐기는 ‘영덕대게축제’

강구대교에 들어서니 거대한 대게 조형물이 눈을 사로잡는다. 강구항 주변은 대게와 오징어, 청어가 넘쳐난다. 대게 요릿집이 촘촘히 이어진 영덕대게거리는 대게를 찌는 김으로 자욱하다. 

대게의 ‘대’는 크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나무를 뜻한다. 발이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서 대게라는 이름이 붙었다. 살이 꽉 찬 대게는 맛이 고소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좋은 대게를 고르기 위해서는 찬찬히 봐야 한다. 


발이 제대로 붙었는지, 살아 움직이는지, 속살이 얼마나 찼는지 차례로 살펴본다. 
 

대게는 찜통에 쪄서 먹는다. 식당서 살을 쏙쏙 빼 먹기 좋게 잘라준다. 살을 다 발라 먹으면 게딱지에 밥을 비빈다. 음식점에서 대게 요리를 먹기 부담스럽다면 동광어시장에 들러보자. 1층서 대게를 사고 2층 식당에 올라가면 상차림 비용을 내고 알뜰하게 먹을 수 있다. 

3월은 대게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보는 적기다. 영덕대게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3월22일부터 25일까지 강구항 일원에서 한바탕 대게 잔치가 벌어진다. 
 

고소한 대게를 맛본 뒤에는 바다를 매립해 만든 해파랑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자. 강구항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은 바위에 철썩이는 파도를 감상하며 걷기 좋다. 드넓은 공원에는 영덕대게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갈매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조형물 주변은 영덕 여행의 추억을 남기기 위한 여행자로 북적인다. 
 

동해선 기차의 종착역은 영덕역이다. 이곳에서 먼저 찾아볼 곳은 영덕풍력발전단지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풍력발전기가 천천히 도는 풍경이 이국적이다. 1650kW급 풍력발전기 24기는 3m/s 이상 바람이 불면 움직이고, 20m/s 이상 바람이 불면 자동으로 멈춘다. 
 

풍력발전기 주변으로 영덕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영덕해맞이예술관, 영덕조각공원, 정크&트릭아트전시관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가 있다. 살랑살랑 봄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 안성맞춤이다. 먼 곳까지 돌아보고 싶다면, 전동 휠 대여소 ‘달려라 왕발통’을 이용하자. 달려라 왕발통은 1인용 전동 휠로, 만 16세 이상이면 대여할 수 있다(신분증 확인). 
 

영덕풍력발전단지서 바다를 향해 내려오면 영덕해맞이공원을 만난다. 일출이 유명하지만 아무 때나 가도 동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반겨준다. 공원에 창포말등대도 있다. 집게발이 등대를 휘감은 모양으로, 대게등대라고도 불린다. 등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축산항은 영덕의 숨은 보석이다. 세 방향이 산으로 둘러싸인 축산항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활기가 넘친다. 축산항의 모습을 한눈에 담기 위해서는 죽도산에 올라야 한다. 죽도산은 대나무가 뒤덮어서 붙은 이름이다. 죽도산에 자라는 대나무는 줄기가 가는 소죽으로, 조선시대에 화살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했다. 
 

대나무가 우거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축산항과 주변이 내려다보이는 죽도산전망대가 있다. 죽도산은 해발 87m로 야트막하지만, 사방이 확 트였다. 항구와 바다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죽도산전망대 아래 길이 139m, 높이 26m 블루로드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영덕블루로드 B코스 ‘푸른대게의길’이 이어진다. 호젓한 해변을 거닐다 보면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괴시마을도 영덕 여행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예와 덕이 넘치는 고장’ 영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고풍스런 한옥 있는 ‘괴시마을’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난 이 마을에는 영양남씨괴시파종택(경북민속문화재 75호), 영해경주댁(경북문화재자료 395호), 영덕 괴시동 해촌고택(경북민속문화재 170호) 등 150~300년 된 한옥이 고스란히 남았다. 천혜의 자연이 주는 맛과 고풍스러운 한옥이 주는 멋이 어우러져, 동해선 기차 여행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동해선 기차 여행] 포항역→월포역→월포해수욕장→장사역→강구역→강구항(해파랑공원)→영덕대게거리→영덕역→영덕풍력발전단지→영덕해맞이공원 

[영덕 여행] 포항역→강구역→강구항(해파랑공원)→영덕대게거리→영덕역→영덕풍력발전단지→영덕해맞이공원→축산항→죽도산전망대→괴시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포항역→월포역→월포해수욕장→장사역→강구역→강구항(해파랑공원)→영덕대게거리→삼사해상공원 

[둘째 날] 영덕역→영덕풍력발전단지→영덕해맞이공원→축산항→죽도산전망대→괴시마을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영덕관광포털(영덕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yd.go.kr 
- 영덕대게축제 
http://www.ydcrabfestival.com
- 월포해수욕장 http://www.월포해수욕장.com

문의 전화 
-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0-6533
- 영덕풍력발전단지 054)734-5870
- 영덕신재생에너지전시관 054)730-7052
- 정크&트릭아트전시관 054)730-6610
- 달려라 왕발통(전동 휠 대여소) 054)730-6670
- 영덕해맞이공원 054)730-7052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포항,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7회(06:00~다음 날 01:00) 운행, 약 4시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www.kobus.co.kr 
[기차] 서울역-포항역, KTX 하루 11회(05:40~22:2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용산역-포항역, KTX 하루 1회(17:35)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포항역-영덕역, 무궁화호 하루 7회(포항역 07:58~ 19:30/영덕역 08:52~ 20:50) 운행, 34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http://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 서울 출발: 경부고속도로→도동 JC→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 IC→포항
- 대구 출발: 팔공산 IC→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 IC→포항 
- 부산 출발: 경부고속도로→경주 IC→서라벌대로→구황로→국도7호선→포항

숙박 정보
- 글로리모텔: 강구면 삼사길, 054)733-6450
- 동해해상관광호텔: 강구면 삼사길, 054)733-4466, http://www.dhhshotel.co.kr
- 해맞이캠핑장: 영덕읍 해맞이길, 054)730-6337, http://camping.yd.go.kr
- 영덕고래불국민야영장: 병곡면 고래불로, 054)734-6220, http://stay.yd.go.kr
- 칠보산자연휴양림: 병곡면 칠보산길, 054)732-1607, http://www.huyang.go.kr 

식당 정보
- 대게종가(대게): 강구면 강구대게길, 054)733-3838
- 죽도산(대게): 강구면 강구대게길, 054)733-4148
- 청송식당(물곰탕): 강구면 강구대게4길, 054)733-4155

축제와 행사 정보 
영덕대게축제: 2018년 3월22~25일, 강구항 일원, 054)730-6682, http://www.ydcrabfestival.com 

주변 볼거리
차유어촌체험마을, 장육사, 옥계계곡, 신돌석장군유적지, 삼사해상공원, 영덕어촌민속전시관, 고래불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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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