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내까지 바꾸고…” 뉴보텍 전 대표의 충격 고백

”형이 모두 앗아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왔더니 모든 게 바뀌어 있었다. 소재파악이 안 되는 거주불명 등록자가 돼있었고, 인감이 변경된 것도 모자라 특허권이 양도됐다. 심지어 아내까지 다른 사람으로 뒤바뀐 상황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한승희 뉴보텍 전 대표가 실제 겪은 일이다.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승희씨는 지난 2003년 3월 뉴보텍 대표로 선임됐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뉴보텍은 상‧하수도관 등 환경 관련 배관자재를 제조하고 판매한다. 2009년 4월부터 한씨의 형 한거희씨가 대표에 취임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한씨는 “믿었던 형이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며 “2006년 일어난 사건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영애 사건에
징역 4년 받아

▲‘이영애’가 불러온 나비효과= 한씨는 뉴보텍 대표 시절 ‘주식회사 이영애’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펼치려다 이영애씨 측으로부터 명예훼손과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고소당했다. 2006년 2월 한씨는 “영화배우 이영애씨를 영입해 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이와 관련한 영화, 광고, 판권사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허위 보도자료와 공시를 낸 혐의를 받았다.

한씨는 이영애씨의 오빠인 이○○씨와 법인 설립 관련 합의서를 체결하기로 했지만 의사소통 과정서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영애씨 측은 애초에 사업 관련 이야기조차 없었다며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결국 한씨는 기자회견서 고개를 숙였다. 이영애씨 측은 사과를 받아들여 고소‧고발을 취하했지만 뉴보텍 주주들은 그를 증권거래법상 허위 공시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다 2006년 7월 한씨는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 그는 서울 한남동 소재의 도피처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4년 동안 숨어 지내다 2010년 10월 검거됐다. 2010년 11월 구속 기소된 한씨는 배임, 업무상 횡령,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 등이 인정돼 2012년 대법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뒤바뀐 아내= 처음 이상기류가 감지된 때는 한씨가 서울구치소에 있던 2011년 초 무렵이다. 당시 한씨의 아내 정○○씨는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정씨는 아주버님인 한거희 대표의 요구로 남편의 수감증명서를 떼려 했다. 서울구치소 측은 수감증명서는 가족만 발급받을 수 있다며 정씨의 요청을 거절했다.

정씨가 자신을 한씨의 아내라고 말했지만 서울구치소 창구 직원은 “컴퓨터 서류상에 기재된 한씨의 아내 이름은 정○○씨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라며 “본인이 정말 아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씨는 주민센터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가고 나서야 수감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정씨는 지난 2월5일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한거희 대표가 회사 업무에 필요하다고 해서 수감증명서를 두 번 떼다줬다”며 “그때마다 서울구치소는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 직원이 언급한 다른 이름은 이○○씨다.

4년 수감생활 하고 나왔더니…
가족 잃고 돈 잃고 ‘엉망진창’

지난달 1월19일 서울 청담동의 한 사무실서 만난 한씨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내 아내로 등록돼있고 진짜 아내(정씨)는 그 여자(이씨)가 누구냐고 묻고 정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구치소 입소 당시 한씨가 직접 작성한 수용기록부 가족사항란에는 아내 이름이 정씨로 기재돼있다.


그는 “2011년 초 아내 정씨가 서울구치소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두 번 제출한 일 말고도 최소 6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2013년 7월 경주교도소 정기재심 과정에서 분류심판관으로부터 가족관계를 확인받던 중 “두 사람(정씨와 이씨) 가운데 누가 진짜 부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자리서 그는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2014년 5월 천안개방교도소서 귀휴심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씨는 “몇 번을 요구해도 수정되지 않아 직접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고 했다. 그는 전산 수용기록부에 기재된 본인(한승희)의 처(정씨) 외 아내로 등록돼있는 사람(이씨)의 신상정보를 천안개방교도소 측에 요구했다.

회사 전 직원
아내로 둔갑

2014년 5월 천안개방교도소 측이 공개한 내용에는 한씨의 아내가 정씨가 아닌 이씨로 나온다. 이씨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제외한 주소나 주민번호, 등록일자에 대해서는 ‘기록없음’으로 적혀있다. 

해당 정보를 근거로 한씨는 대리인 변호사를 통해 서울구치소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누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이씨가 자신의 아내로 등록된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2014년 6월 서울구치소 측은 “2010년 10월19일 신상정보 입력담당자 박○○ 교사가 (한씨의 정보를)등록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오랜 기간의 경과로 당시 등록 경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며 “다만 접견예약자 등록 과정서 단순 착오에 의해 오등록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서울구치소 측은 “가족사항 오등록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다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 사이 가족은 이미 파탄 상태였다.

의문점은 한씨의 아내라고 기입된 이씨의 정체다. 

한씨는 면회 온 아내 정씨가 ‘이씨는 대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이름이 비슷했던 자신의 담당 검사로 착각할 만큼 그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러다 한씨가 출소 후 확인한 결과 이씨는 뉴보텍 경영지원본부에 근무했던 직원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수용기록부에 한씨의 아내로 잘못 기입된 여성이 공교롭게도 뉴보텍 전 직원이었다는 것. 

한씨는 “2014년 10월13일 출소해 이씨에 대한 정보를 찾았고 11월20일 만났다”며 “그 자리서 자초지종을 물었고 이씨는 다음날(21일)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오지도 않고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본인도 해당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답했다. 

1월31일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씨는 “뉴보텍을 그만둔 후 교도소서 전화가 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척 황당했다”며 “한씨와는 당연히 아무 관계도 아니다”고 말했다. 뉴보텍 비서실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 전 직원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거듭 놀라운 점은 한씨의 1심 재판을 맡고 있던 변호사 역시 뉴보텍 고문변호사였다는 사실이다. 

한씨는 “1심 변호사 양종관씨가 뉴보텍 고문변호사인 줄 그때는 전혀 몰랐다”며 “양 변호사는 형이 소개해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뉴보텍 내부 사정에 밝은 익명의 관계자는 “양 변호사는 2009년 한거희 대표가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뉴보텍 고문변호사가 된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인감은 왜?= 황당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씨의 주민등록은 수감기간 중인 2011년 5월20일 재등록됐다가 같은 해 9월5일 거주불명 등록 상태가 됐다. 2011년 5월25일 그의 인감이 바뀌었고, 같은 날 인감증명이 5부 발급됐다. 


6월3일에는 누군가 그의 주민등록초본 2부를 떼어갔다. 한씨는 약 4개월 사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여러 번 바뀐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양 변호사가 보낸 서신을 통해 전입신고를 한 게 한 대표라는 점만 파악한 상태였다. 양 변호사는 2011년 5월20일 “형님께서 한승희님의 주소를 형님 주민등록 내 동생으로 전입신고를 해 두었다고 합니다. 한승희님의 주민등록상 주소는 형님 집 주소와 일치합니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한씨에게 보냈다.

한씨는 사실 확인을 위해 출소 후 서울 관악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자신의 주민등록 재등록‧전입‧거주불명 등록 등이 누구에 의해 이뤄졌는지, 2011년 5월부터 9월 사이 인감‧초본‧등본 등 자신의 개인증명서 발행 여부와 신청자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형수가 인감을
특허권 때문에?

관악구청은 청구 내용이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점을 들어 ‘비공개’ 결정을 통보했다. 한씨는 “나도 모르는 새 내 개인정보가 난도질됐는데 그 행위자가 누군지 당사자가 확인을 못하는 게 어이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후 수차례의 정보공개 청구 끝에 그는 정보의 일부가 공개된 서식을 받아볼 수 있었다. 주민등록 재등록, 거주불명 등록 신고서였다. 해당 신고서는 성명, 주민번호, 세대주와의 관계 등 신고인의 신상정보가 검게 지워져 있었다. 다만 세대주는 한 대표로 돼있다.

한씨는 전북 순창으로 주소 이전까지 하면서 떼어본 인감대장을 통해 자신의 인감을 변경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5월25일 서면 신고를 통해 한씨의 인감 변경 신고를 한 사람은 김○○씨. 한씨의 형수, 즉 한 대표의 아내였다.

당사자가 아닌 대리인이 인감을 변경할 경우 그 절차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일반적으로 복역이나 징집 등 대통령령이 정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본인이 직접 변경 신고를 하도록 돼있다. 

대리인이 인감을 변경하려면 서면신고용 인감 변경 신고서, 사유 입증 서류, 보증인 1명의 인감이 필요하다. 이때 보증인은 대리인과 동일한 사람이면 안 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버지도 안 믿어줘

특히 수감자의 인감을 대리인이 변경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직인이 찍힌 수감증명서는 물론 서면신고서 여백에 수감자 본인의 무인 날인과 교도관 서명이 있어야 한다. 한씨는 “내 인감을 바꾸기 위해 아내에게 수감증명서를 떼오라고 한 것 같다”며 “수감돼있는 동안 인감이 바뀌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무인 날인을 한 적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이한 점은 5월20일 작성된 한씨의 주민등록 재등록 신고서에 5월25일 김씨가 변경한 인감도장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한씨는 “양 변호사가 전입신고와 관련해 서신을 보낸 2011년 5월20일은 금요일이다. 수감자는 서신을 바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다음 주 월요일에야 내용을 파악했다. 그때서야 전입신고에 대해서 확인했을 뿐 주민등록 재등록은 물론 인감 관련 내용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한씨의 인감을 바꿨을까.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 양도 절차를 진행할 때는 권리이전 등록신청서와 양도인의 인감 날인이 된 양도계약서가 필요하다. 여기에 발급일로부터 6개월 이내의 인감증명서를 준비해야 한다.

실제 2011년 6월경 한씨가 권리를 가지고 있던 다수의 특허권과 디자인권이 뉴보텍으로 ‘권리의 전부 이전 등록’된 사실이 확인됐다. 

한씨가 2005년 12월23일 출원한 ‘다관절 자유곡관을 구비한 오수받이 장치’의 권리가 2011년 6월23일 뉴보텍으로 양도된 식이다. 이렇듯 특허권 4개, 디자인권 5개 등 확인된 것만 총 9개 물품에 대한 권리가 2011년 6~7월 사이에 뉴보텍으로 이전됐다. 같은 해 9월에 그는 거주불명 등록자가 됐다.

한씨는 2015년 9월30일과 지난 2월13일 특허권 권리 변경에 대해 뉴보텍의 소명을 요구하는 최고서를 두 차례에 걸쳐 발송했다. 

그는 “특허권의 권리 이전과 관련해 양도 또는 사용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한 사실이 없다”며 “어떤 사유로 권리가 이전됐고 그 과정서 필요했을 인감증명과 그 발급자, 발급 경위, 발급에 따른 위임사항 등에 대해 10일 이내에 소명해달라”고 뉴보텍에 요구했다. 

한씨에 따르면 뉴보텍은 2015년 9월에 보낸 최고서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고, 2월에 보낸 최고서는 아예 ‘수취거절’을 한 상태다.

내용증명 보내도
전혀 답변 안 해

한씨는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 다 3류 막장드라마라고 한다. 심지어는 아버지조차 내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아 이 많은 자료를 모았다”며 서류뭉치를 들어 보였다.

그는 “4년 수감생활을 하고 나왔더니 고향(전북 순창)에선 천하의 사기꾼, 아내에게는 바람피는 난봉꾼이 돼있었다”며 “내 명예, 권리, 재산 등 형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되찾아 딸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뉴보텍 측 입장은?
“동생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한거희 뉴보텍 대표가 한승희 전 뉴보텍 대표의 아내(정○○씨)에게 수감증명서를 요청한 이유는?
▲요청한 사실이 없다.

-2011년 6월 한승희 전 대표 앞으로 돼있던 특허권이 뉴보텍으로 권리 양도된 이유는?
▲당초 한 전 대표가 권리자로 돼있던 특허권은 뉴보텍 연구 인력의 노력과 비용으로 발명했다. 특허출원을 하면서 대표이사였던 한 전 대표 개인 명의를 사용한 것에 불과할 정도로 특허권리 등은 뉴보텍에 있다. 한 전 대표에게 어떤 실질권리가 있던 것도 아니다.

개발, 출원, 유지에 필요한 모든 비용 역시 뉴보텍이 부담해 왔다. 한 전 대표가 뉴보텍에 10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히고 장기간 수용생활을 하다 보니 회사 측이 특허권 행사 및 유지를 위한 비용 납부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

-김○○씨(한거희 대표 아내)가 한승희 전 대표의 인감도장을 바꾼 이유는?
▲2011년 5~6월경 정재원‧한거희 대표이사, 우석배 부사장 등이 한 전 대표가 수용돼있던 구치소를 방문 면회해 한 전 대표 명의로 형식적으로 등록돼 있던 특허권과 디자인권을 뉴보텍으로 이전 등록의 필요성과 협조를 구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특허권을 이전 등록하는 데 동의했고 이에 필요한 서류작성, 발급 권한 등을 모두 포괄적으로 위임하면서 수감증명서 발급도 동의해줬다. 또 인감을 어디에 뒀는지 알 수 없다고 해 교부받은 수감증명서를 통해 인감변경 후 정당하게 특허권 등록 명의를 바꿨다.

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진행된 재산 명시 사건에서 한 전 대표가 작성해 제출한 재산목록에도 특허권과 디자인권 등 자기 재산이 없다고 한 사실이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 전 대표는 2012년 증권거래법위반,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조세범처벌법위반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사람으로 뉴보텍에 큰 손해를 끼쳤다.

뉴보텍이 민사 청구를 해 확정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손해배상 지급명령 결정문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2018년 3월8일 현재 241억원의 채무금액을 가지고 있다. 한 전 대표는 이를 당사에 변제하지 않고 있으며 연락 또한 두절돼 뉴보텍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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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