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달라진 졸업식 풍경

밀가루·계란 대신 문화적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졸업식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졸업식’ 하면 떠오르던 지루하고 따분한 광경이 다채로워지는 모양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 수가 모자라 나홀로 졸업식이 열린다. 취업난에 코스모스 졸업이 늘고, 참석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점차 달라지고 있는 졸업식 문화를 <일요시사>가 조명해봤다.
 

교실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방송을 통한 선생님의 말에 강당으로 움직인다. 냉기가 가득한 강당에 1∼3학년 학생이 전부 모여 줄을 맞춘다. 반별로 철제의자에 나란히 앉아 졸업식이 시작되길 기다린다.

단상에는 화환이 늘어서고 상장과 부상이 높이 쌓인다. 사회를 맡은 학생주임 선생님은 마이크를 테스트하며 식순을 외운다. 애국가와 교가가 흘러나왔다가 멈춘다. 장내를 정리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강당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조금씩 다르게

국민의례로 시작된 졸업식은 성적우수상 등의 시상, 교장선생님의 훈시와 내빈의 축사로 이어진다. 재학생 대표의 송사에 졸업생 대표는 답가로 답한다. 

끝으로 교가를 부르면 졸업식은 끝난다. 각 반의 담임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나눠준다. 졸업장을 받은 졸업생들은 가족,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다.


대학 졸업식에는 검은 가운과 학사모가 빠질 수 없다. 졸업식이 끝난 후 학사모를 머리 위로 던지는 모습도 졸업식의 ‘클리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업식’하면 떠올리는 풍경이다. 

최근 이 같은 천편일률적이던 졸업식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사회 상황에 영향을 받거나 학교 자체적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먼저 졸업식 시기가 전체적으로 앞당겨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2월이 졸업식 시즌이었지만 최근에는 1월 심지어 12월로 당기는 학교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도다.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는 지난해 12월29일에 졸업식을 진행했다. 2016년 2월6일에 졸업식을 열었던 것을 이례적으로 두 달이나 앞당긴 셈이다. 김장영 교장은 “졸업식 날짜를 앞당긴 것은 학생들이 1∼2월 불필요하게 등교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제주도는 도내 학교 197곳 중 12월 1곳, 2월 4곳을 제외하면 모두 1월에 졸업식을 진행한다. 세종시 역시 3월 개학을 앞두고 충분한 새학기 준비 기간과 효율적인 학사 운영을 위해 관내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교 졸업식을 1월 말까지 종료하도록 했다.

2월 대신 1월로 앞당겨 열려
대학가는 코스모스 졸업 늘어

대학가에서는 8월 졸업을 뜻하는 코스모스 졸업이 늘고 있다. 동아대의 경우 코스모스 졸업생 수가 2005년 586명서 2015년 1245명으로 10년새 2배 이상 증가했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 졸업생의 30%에 육박하는 수치다. 


코스모스 졸업의 증가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772명을 대상으로 코스모스 졸업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코스모스 졸업을 계획하고 있는 응답자가 전체 3∼4학년 대학생의 28.5%였다. 이들이 코스모스 졸업을 계획한 이유는 취업 스펙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응답자 중 37.9%는 ‘졸업을 유예해 취업 스펙을 쌓으려고’ 코스모스 졸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기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특히 학교 측의 진행으로 이뤄지던 졸업식이 학생들의 참여로 다채로워지고 있다.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는 졸업식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학생들의 손길이 닿는다. 

선생님과 학생 모두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기인 만큼 함께 졸업식을 준비하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자는 취지서 시작됐다.
 

거제의 한 초등학교는 2016년 졸업주간을 만들어 1주일간 선생님과 부모님께 감사 편지쓰기, 친구들과 사진 찍기, 30년 후 나에게 편지 쓰기 등의 다양한 졸업 행사를 진행했다.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고 학교 주변을 돌며 교내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충분한 석별의 정을 나눴다.

학창시절 추억이 담긴 UCC를 만들어 졸업식 때 상영하거나 자신이 만든 가면을 쓰고 졸업식 공연을 펼치는 학교도 있다. 이외에도 전교생이 한복을 입고 졸업식에 참석하거나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등 학생과 선생님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졸업식으로 기획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비슷한 행사 아닌 다양한 기획
농어촌지역은 나홀로·마지막↑

불과 몇 해 전만해도 졸업식에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긴장감이 흘렀던 때와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당시 과격한 졸업식 뒤풀이 문화는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밀가루를 뿌리고 날달걀을 집어 던져 맞추고 교복을 찢는 영상은 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졌다.

심지어 졸업생이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까지 담겨 충격을 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경찰 수 천 명이 졸업식 날 학교 주변에 배치되는 등 살벌한 광경이 연출됐다.

경찰은 돈을 빼앗거나 교복을 벗겨 알몸으로 만들고 사진을 찍는 행위뿐만 아니라 신체에 밀가루를 뿌리는 행위 등이 형사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졸업식 중 빚어진 강압적 뒤풀이로 인해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다.

일부 사례가 적발되긴 했지만 수위가 가벼워 계도 조치로 그친 게 전부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강압적인 뒤풀이 대신 건전한 졸업식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가에서는 검은 가운과 학사모를 대학 특징에 맞게 바꾸는 등 패션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각에선 검은 가운과 학사모는 대학 졸업식의 상징이지만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이 있어왔다.
 

연세대의 경우 지난해 졸업식에서 100년 넘게 고수하던 전통 학위복 대신 학교의 정체성이 드러난 새 학위복을 선보였다. 서울여대는 사각 학사모 대신 베레모를 쓴다. 새 학위복과 학사모는 졸업생들에게 호응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특색 있는 패션

학생 인구가 줄어들면서 졸업생이 한 명에 불과한 ‘나홀로 졸업식’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전일보>에 따르면 올해 충남도 내 마지막 졸업식을 하거나 1∼2명의 학생만 졸업하는 초등학교는 18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내서 나홀로 졸업식을 하는 학교는 12군데로 대부분 농어촌지역에 위치한 곳이다. 전교생이 9명뿐인 강원도 양양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1명의 졸업생을 위해 전교생이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졸업식 불참하는 학생들

취업을 못한 졸업생들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일이 늘고 있다. 졸업식에 갈지 말지 고민하는 학생도 늘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졸업을 축하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취업한파로 인해 크게 줄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대학 졸업 예정자 1391명을 대상으로 졸업식 참석 여부를 물은 결과 30.9%가 ‘참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23.7%는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서’ 20.7%는 ‘취업이 안 돼서’를 이유로 꼽았다. 

졸업식 불참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 문제를 이유로 든 것이다. 그러면서 졸업장만 받아오거나 그나마도 우편으로 받는 졸업생이 많아졌다.

취업한파는 졸업앨범도 찬밥신세로 만들었다.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아침부터 미용실에 들르고 고가의 옷을 사던 풍경도 사그라지는 추세다. 아예 졸업사진을 찍지 않거나 친구들과 스냅사진 등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한양대, 연세대, 서강대 등은 졸업앨범 신청자가 전년에 비해 모두 감소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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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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