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토익의 이면

깜깜이 시험에 취준생 허리 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요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잠 줄이고 돈 쏟아가며 스펙을 쌓는다. 기업들은 스펙보다는 업무능력이라며 ‘탈 스펙’을 외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쉽게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토익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시험이다. ‘스펙탑’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토익의 이면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가 몰려왔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에겐 이번 한파가 더욱 뼈아프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취준생의 겨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펙 높은데
취업은 안 돼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 수준은 아직 낮은 모양새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이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9.9%로 집계됐다. 2013년 8.0%, 2014년 9.0%, 2015년 9.2%로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로 전년보다 0.7% 포인트 높아졌다. 체감실업률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수치다. 


공식 실업자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았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의 수로 따진다.

반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최근 청년 고용상황이 안 좋다”면서도 “11월은 공무원 추가 채용 시험 원서 접수가 있었고 12월은 조사 대상 기간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20대와 청년층 중심으로 기존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이 실업자로 옮겨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구직 단념자는 취업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아예 구직에 나서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청년실업률 역대 최악
스펙에 돈쓰는 청춘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장벽에 취준생은 갈팡질팡 감을 못 잡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공일자리 증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블라인드 채용 등 노동 관련 이슈를 쏟아내고 있지만 취업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취업절벽에 몰린 취준생은 결국 스펙 시장으로 내몰린다.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서 유래한 말로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단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펙은 취준생의 무기로 작용한다. 그들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스펙을 쌓기 위해 숱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20∼30대에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스펙에 대한 취준생의 압박감은 이미 한계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지난 8월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772명을 대상으로 8월 졸업식을 뜻하는 ‘코스모스 졸업’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대학생 10명 중 3명은 코스모스 졸업을 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졸업을 유예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라는 답변이 37.9%로 가장 많았다.

너도 나도 스펙 쌓기에 돌입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과잉 경쟁은 잉여 스펙, 과잉 스펙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스펙을 많이 쌓아도 취업을 못하고 백수로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빠져드는 취준생을 뜻하는 스펙푸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요즘 청년층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고 평가 받으면서도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기업 등 사회 한편에서는 탈 스펙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점수나 자격증 유무 등으로 지원자를 가릴 수 있는 스펙을 배제한 채 직무 능력으로만 직원을 선발하는 건 공공기관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일각에서는 스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 분위기상 취준생들은 아직 스펙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원하는 단체나 기업에 맞는 역량은 따로 쌓더라도 기본 스펙은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점수 상향 평준화
그래도 토익 시험

그중에서도 토익은 ‘스펙탑’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시험이다. 점수가 높든 낮든 취준생이라면 토익 성적표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토익의 위상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200만명이 토익 시험을 봤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매년 60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토익 문제의 출제와 개발을 맡은 미국의 미국교육평가원(ETS)은 지난 2011년 전 세계 토익 응시 인원이 6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 해 우리나라의 토익 응시 인원은 210만명으로 전 세계 응시자의 무려 40%를 차지했다. 

만점(990점)을 받은 응시자도 회화 등 실전서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토익무용론이 수년째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서 토익의 독점적 지위는 공고하다.

2015년 채용공고 1000여건 중 94%가 토익 점수를 채용에 활용했고, 25%는 일정 점수 이상을 지원 자격으로 삼았다. 일부 대학은 졸업 조건으로 특정 기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졸업과 취업에 있어 가장 밀접한 시험인 셈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시험에도 토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가공무원 7급 영어시험이 자체 시험이 아닌 토익이나 토플, 텝스 등 영어능력검증시험 제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도
민간·공적 독점

지난해 10월3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 영어성적 제출 현황에 따르면 토익 성적을 낸 응시자가 전체(2만4437명)의 91.2%인 2만228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급 공무원 응시자 10명 가운데 9명이 토익으로 영어 성적을 대체한 셈이다.

지난해 7급 응시자는 4만8361명으로 전년 대비 27.5%나 감소했다. 국가공무원 9급 응시자수가 매년 사상 최대 규모를 갱신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가 2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 영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 단계서 일정 점수 이상의 공인 영어 성적을 받지 못한 응시자들이 걸러졌다는 것이다.


국가직 7급 국가검정능력시험 통과 기준 점수는 토익 700점 이상, 텝스 625점 이상, 지텔프 65점 이상(레벨2), 플렉스 625점 이상, 토플 PBT 530점 이상, CBT 197점 이상, IBT 71점 이상이다. 

토익은 다른 시험에 비해 준비 과정이나 방법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응시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면서 토익무용론은 토익 독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구직과 사내 평가 등 민간 영역은 물론 공무원 채용의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서 우월적 지위를 노리고 있는 시험이 아예 독점적 지위를 얻어 그에 따른 폐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너도 나도 고득점이라 스펙으로서 큰 매력이 없고”(대학생) “오로지 점수만을 위한 시험”(공무원 시험 준비생)인데도 불구하고 매달 혹은 2주에 한 번씩 토익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

한 해 200만명 시험 보는데
정답·배점조차 공개 안 돼

이 과정서 YBM한국토익위원회(이하 토익위원회)의 자의적 운영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토익은 미국 민간재단인 ETS가 출제하고 국내에서는 역시 민간기업인 YBM이 대행을 맡는다. 

토익위원회는 토익 시험 전반을 실제 운영하는 곳이다. 토익 시험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 등 공적 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토익위원회는 실제로 한 기업의 사내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토익은 응시 횟수나 응시료, 유형, 접수, 성적 발표 등과 관련해 응시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운영 내용이 응시자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많아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독점적 지위를 누리 있는 현 상황서 시험을 아예 외면하긴 힘들다.

토익위원회는 홈페이지 공지 방식을 통해 시행 두 달 전 응시료 인상과 추가 시험에 대해 전달한다. 지난해에는 11월7일 ‘2018년 토익 정기시험 일정’을 발표했다. 

올해(2018년) 토익 정기시험은 총 24회 시행되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요일 응시가 어려운 수험생을 위해 1·3·6·7·9·12월에 한 번씩 모두 6회는 토요일에 치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한 달에 한 번 꼴이던 응시횟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 한 달에 두 번 꼴로 늘어났다.

응시료 역시 명확한 설명 없이 통보 형식으로 오르고 있다. 2006년 3만4000원이던 응시료는 2016년 3월21일 4만4500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토익 응시료는 30%가량 오른 데 반해 일본은 꾸준히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6년 토익 유형을 바꾼 이른바 ‘신토익’ 원서접수 개시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기습적으로 응시료 인상을 공지한 것은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 토익위원회는 안내문을 통해 “현행 응시료는 2012년 1월 조정된 후 4년간 동일하게 적용돼왔으나 물가 상승과 시험시행 관련 제반 비용 증가로 부득이하게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신토익을 도입한 일본은 응시료를 인상하지 않았다. 이에 토익위원회 측은 “(응시료는) 시행 국가 상황에 따라 조정하고 있어 인상 시점은 국가마다 상이할 수 있다”며 “국내 응시료는 저렴한 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토익 응시료 인상은 고스란히 응시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2014년 청년 유니온의 발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평균 토익 응시횟수는 9회에 달한다. 현재 응시료 기준으로 평균 40만500원에 이르는 돈을 토익에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토익위원회가 응시자들의 성적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응시횟수와 성적은 비례했다. 많이 볼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유명 토익 강사들은 ‘문제 중심’의 공부를 권유한다. 모의고사나 실제 시험을 많이 접할수록 유형에 익숙해지면서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듣기(LC)와 독해(RC) 각각 100문제로 구성된 토익 시험은 파트별로 유형이 존재한다. 그림을 정확히 묘사한 것을 찾는 유형(파트1),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는 유형(파트2), 문법(파트5), 장문 독해(파트7) 등이다.

신촌이나 강남 등 토익 학원이 즐비한 학원가에 가보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이른바 ‘정답 고르는 법’을 알려준다. 첫 두 단어를 듣고 답을 파악하거나 긴 지문의 경우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등의 기술이 반복 학습을 통해 수험생들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유형을 파악하고 문제를 많이 풀수록 시험을 정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2016년 토익 유형이 바뀌어 신토익이 등장했을 때 시장은 큰 부침을 겪었다. 문제는 한정된 응시횟수 말고도 접수 과정서 수험생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전 회차 시험 점수를 확인한 후 다음 회차 도전 여부를 정한다. 하지만 토익의 경우 성적 발표일보다 시험일이 앞서 있다. 예를 들어 346회차 시험의 경우 1월16일에 성적이 발표되는데 347회차 시험은 1월13일에 치러지는 식이다.

그렇다고 점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토익은 정답이 공개되지 않는다. 토익 시험이 끝난 직후 관련 사이트에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문항을 외워온 응시자가 게시글을 올리면 그 아래 정답이 댓글로 달리는 현상이 하루 종일 반복된다. 그리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듣기와 독해 문항 200개를 전부 복원해 정답을 공유한다. 시험 다음 날 복원된 해당 회차 시험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강사도 많다.

또 정답을 전부 알았다 해도 각 문항마다 배점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점수를 산출하는 게 힘들다. 배점에 대한 정보 역시 제대로 알려진 바는 없다. 토익 문제집에 배점표가 기재돼있긴 하지만 비슷한 점수로 환산할 수 있을 뿐 딱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보통 난이도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정답률이 낮을수록 배점이 높다는 풍문만 있을 뿐이다.

정책상 공개 어려워
수험생이 선택해야

토익위원회는 “시험 문제와 정답은 ETS 정책에 의해 공개하지 않는다”며 “이는 토플, GRE, SAT 등 ETS에서 주관하는 모든 시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글로벌 정책”이라고 답했다. 

이어 “한 회차의 토익 시행을 위해서 약 8주간의 접수 기간과 성적 발표 약 2주까지 총 10주가 소요된다”며 “국내서 연간 24회의 시험이 시행되고 있어 회차별 접수기간이 서로 겹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익위원회는 수험자의 시험 일정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시행일, 접수 기간, 성적 발표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안내하고 있다”며 “응시자는 공개된 연간 일정을 통해 시험 응시 일정을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점도 먹여 살리는 토익’ 방학 때 되면 판매량 급증

방학이 되면 서점가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방학 동안 부족한 과목을 보완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여름방학 직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외국어 학습서의 순위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점들 다양한 기획행사도

교보문고에서는 토익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단어장 순위가 6월 대비 10계단이나 올랐고, 독해(RC) 문제집과 종합서 등도 순위가 급등했다. 

yes24 역시 베스트셀러 30위권 안에 토익 단어장 등 외국어 학습서가 5권이 포함됐다. 방학 시즌에 학습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서점들은 다양한 기획 도서행사를 선보이기도 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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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