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

실종자만 보고 온 27년 외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2번 출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고, 떨이로 옷을 파는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주변엔 은행,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입점한 높은 건물이 즐비했다.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의 근거지인 컨테이너는 그런 북새통 속에 고요한 섬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해 9월과 12월에 발생한 2건의 실종사건은 전 국민을 경악에 빠뜨렸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실종됐던 피해자가 결국 시신으로 발견된 점, 초동 조치가 빨랐다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으로 아동 실종에 대처하는 경찰의 안일한 태도가 드러났다. 아동 실종 대책이 수립됐지만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뒤 실종 신고 후에야 발견된 고준희양 사건은 결국 막지 못했다.

6평 컨테이너

지난 5일 청량리역 2번 출구 근처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이하 전미찾모)’ 사무실서 만난 나주봉 회장은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분주했다. 봉사활동 시간 확인부터 인터뷰 요청까지 용건은 다양했다. 

나 회장은 최근 두 사건과 관련해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준희양 사건에 대해서는 아이의 생사가 확인되기 전 이미 부모와의 연관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두 사건을 두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회장은 “아동 실종 사건의 골든타임은 3시간이다. 굉장히 짧은 것처럼 보이지만 요새 3시간이면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며 “실종을 인지한 즉시 경찰에 신고해 찾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서 첫 신고 전화를 받는 담당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영학 사건이나 고준희양 사건 모두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나 회장은 이와 비슷한 사례로 2011년 5월 실종된 후 9개월 만에 경기도 의왕의 모락산서 변사체로 발견된 K씨에 대해 언급했다. 
 

평소 파킨슨병과 우울증을 앓던 K씨는 실종되기 며칠 전 자살하기 위해 자살명소로 알려진 전남 목포의 유달산 마당바위를 찾았다. K씨는 가족들 걱정에 차마 목숨을 끊지 못하고 돌아와 아내에게 자살 시도 사실을 털어놨지만 위로받지 못했다. 결국 이틀 뒤인 5월23일 집을 떠나 홀연히 사라졌다.

이영학·고준희양 사건 충격
실종에서 강력 범죄로 발전

나 회장은 “가족들은 신고 당시 K씨에 대한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접수 담당자가 가족들에게서 K씨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는 자살의심자라는 정보를 끌어냈다면 더 빨리 찾았을 것이고 살아있는 그를 만났을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종자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할 때 들고 오는 건 대부분 사진 한 장이다. 담당자는 그런 상황서 실종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우리 경찰에는 그런 프로파일링 매뉴얼이 부족하다”고 탄식했다.

실종 사건은 대형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반짝 관심을 받는다. 사건을 되짚는 과정서 드러난 경찰의 허술한 대처와 수사 체계의 부재는 매번 여론의 뭇매를 맞는 지점이지만 큰 변화는 없다. 


매년 줄어들던 아동 실종 건수는 지난해 다시 부쩍 늘었고, 잔혹한 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있어 대책이 필요하지만 전담 수사 인력은 전국 200여명에 불과하다.

나 회장 역시 부족한 지원과 관심에 허덕이고 있다. 6평 남짓한 컨테이너 벽면엔 실종자 전단지가 빼곡히 붙어있고, 한편에는 유인물이 수북이 쌓여있다. 컴퓨터와 냉장고 등 최소한의 세간만 놓인 공간은 성인 세 사람이 서 있으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나 회장은 물건 정리를 하지 못했다고 멋쩍어했지만 현실적으론 치울 시간도 인력도 없는 상태였다.

1991년 인천 월미도서 각설이 공연을 하던 중 개구리소년 다섯 부모들과 만난 이후 27년간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실종자 찾기에 매진했다. 
 

나 회장은 “주변서 저한테 미쳤다고 많이 말했는데 그들 말대로 정말 미쳐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사실 내일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토로했다.

전미찾모는 그가 활동을 멈추면 그대로 사라질 수 있는 단체다. 홈페이지 관리는 물론 사무실 내 화이트보드의 기록조차 업데이트가 안 된 상태였다. 지원금이라고는 동대문구서 나오는 몇 백만원이 전부. 그 외 비용은 후원을 받거나 사비를 털어 넣는 수밖에 없다. 바쁜 시간을 쪼개 보험회사에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두 시간 동안 나 회장은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해 찾아온 학생 두 팀, 5통 넘게 걸려온 전화를 일일이 대응해야 했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 실종자 가족까지 등에 업은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최근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결국 재작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나 회장은 이 길에 접어든 것에 대해 소위 말해 “낚였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실종자 문제를 거론하는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두 대의 컴퓨터를 오가며 10여년 동안 쌓인 자료를 설명하는 그에게선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매달린 사람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신고 접수 담당자 중요해
지원도 관심도 열악 수준

일을 시작했던 초기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를 돌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시설에 들어가 일일이 사람들을 들여다보면서 찾은 실종자는 700∼800명에 이른다. 그 과정서 시설 관계자에게 욕을 먹거나 얻어맞기도 했다. 

제도의 필요성을 제기해 실종자 가족들과 법을 만들었고,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데 일조했다.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정치인들과 사진을 찍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끝내 찾지 못한 실종자에 대한 추모도 그의 몫이다.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 피해자 추모제, 이웃집 남성에게 납치·살해된 혜진이·예슬이 추모제를 매년 주관한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 국민, 언론의 관심을 호소했다. 

특히 언론에 대해 “실종 사건을 잘 뜯어보면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참 많다. 언론서 그런 부분을 깊게 파고들어 보도해주면 좋을 텐데, 현재 실종 사건 보도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30년 가까이 없어진 사람을 찾는데 온 시간을 바친 그는 몹시 지쳐 보였다. 
 

그는 “매년 어린이날이면 아동 실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여러 행사를 기획했다. 실종자를 찾겠다고 대형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며 “말 그대로 미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두 아들의 협조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족에 대해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 회장은 실종자 찾기 일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꼭 하나로 단정하긴 어렵다”면서도 평소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 현재 국회에 성인실종법이 계류 중인데 꼭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심 필요해


또 “개구리소년 사건, 안양 혜진이·예슬이, 최근 발생한 이영학 사건, 고준희양 사건 등 못된 어른들에게 희생된 수백명의 아이들을 추모할 수 있는 추모관이 건립됐으면 한다”며 “그 공간 자체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실종 사건에 대한 교육장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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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