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미집행 20년> 사형수의 삶과 죽음 ‘풀스토리’

마지막 사형수를 아십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은 ‘해묵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됐다. 우리나라는 2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지만 법률상으론 여전히 사형제 존치 국가다. 이 때문에 사형 집행과 폐지를 두고 ‘끝나지 않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제15회 ‘세계 사형 폐지의 날’ 행사가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5개 단체로 구성된 ‘사형제 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사형 폐지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이들은 “사형집행 중단 20년을 앞둔 현재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을 넘어 완전한 사형 폐지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형 폐지의 날
특별법 나오나

연석회의는 성명을 통해 “제15대 국회를 시작으로 매 국회에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단 한 차례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며 “이번 20대 국회서 많은 의원들이 특별법 공동발의에 동참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흑식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서 “오늘 기념식은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서 법률상 사형 폐지국으로 가는 자리로 생명의 가치가 존중될 때 인간의 잔인함도 치유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일각에선 흉포해지는 범죄에 대응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기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범죄 종류를 떠나 한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앗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며 “국회는 헌법 개정과 법안 심의 과정서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실질적 폐지국이지만 법률상 존치
김대중정부 이후 사형 집행 수 ‘0’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올해 12월30일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꼭 20년이 된다. 일본이 2012년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후 19명의 사형을 집행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일본은 지난 7월에도 사형수 2명에 대한 형을 집행했다.

국제사회에선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지만 강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형제 존치에 대한 여론은 치솟았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나 2010년 여중생을 납치·살인한 김길태 사건 이후 진행한 조사에서 사형제 유지 응답은 평소에 비해 높았다. 실제 여론은 사형제 폐지보다 존치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국민 법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사형제 폐지에 반대했다. 최근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사형제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대중의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걸 알 수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17∼18일 양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6.1%에 달했다. 지난 9일 <세계일보>의 여론조사에서도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9.4%로, 80%에 육박했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위헌 여부 심판서 두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6년 사형을 최고형으로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헌 소원 심판서 7(합헌)대 2(위헌)로 합헌 판결이 나왔다. 


당시 김용준 헌재 소장 등 7명의 재판관은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 등 지극히 한정적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다수 의견을 냈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2010년 헌재는 또 다시 사형제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1996년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먼저 7명이었던 다수 의견이 5명으로 줄었고 위헌 의견이 4명으로 늘었다. 또 일부 재판관들은 사형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살려뒀다.

당시 헌재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도 없는 권리”라며 “비상계엄에 대한 재판에선 그렇지 않지만 우리 형법은 적어도 아직 간접적으로나마 사형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형제는 생명권 제한에 있어 형법 제37조에 의한 한계를 일탈했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96년과 2010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소수 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은 인권의 토대인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정신을 강조했다. 또 형벌로서 사형제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형제 폐지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후보 TV토론회서 “사형이 흉악범죄 억제효과가 없다는 데 전 세계가 공감하기 때문에 160여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존 사형수 65명
70대부터 20대까지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198개국 중 104개국이 법률상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했다. 우리나라처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37개국이다. 전 세계 국가 중 141개국(71%)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셈이다.

사형 미집행 기간이 20년에 이르러 사형제 존폐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자 자연스럽게 사형수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65명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이 61명, 군인이 4명이다. 
 

20년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사형수들의 고령화가 뚜렷해지는 추세다.

최고령 사형수는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으로 여행 온 대학생들을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오모씨로 추정된다. 이른바 ‘보성 어부 살인사건’이다. 그는 여행 온 남녀 두 사람을 자신의 배에 태운 뒤,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자를 먼저 바다로 밀어 살해하고 저항하는 여성까지 물에 빠뜨려 죽였다.

유영철·강호순
10명 이상 죽여


최연소 사형수는 2014년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25) 병장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시에는 21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는 동료병사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범행 직후 무장한 채 탈영해 자살을 기도했으나 결국 체포됐다.

임 병장은 “부대 안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1심과 2심서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대 4로 사형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학창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고 인격 장애 증상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대 내 조직적 따돌림이나 폭행, 가혹행위 등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장기 사형수는 원모씨로 올해로 25년째 복역 중이다. 원씨는 지난 1992년 10월 강원 원주에 위치한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사망케 했다. 중화상을 입은 사람도 36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에는 10세 이하(2명), 10대(4명) 등 어린아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 대법원서 사형이 확정됐다.

원씨처럼 10명 이상을 살해한 사형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유영철과 강호순 등 두 명이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의 검거 이후 국내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강호순은 2004년부터 5년여에 걸쳐 10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2009년 사형이 확정됐다. 강호순이 살해한 사람 중에는 그의 아내와 장모도 있었다. ‘제2의 유영철’로 불렸던 정남규도 부녀자 13명을 연쇄 살인하는 등 10명 이상을 죽이고 사형이 확정됐지만 2009년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사형제 폐지 반대여론 여전히 높아
강력범죄 발생할 때마다 급격히↑

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은 기약이 없다.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김영삼정부시절이다.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30일, 20여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살인 15명, 강도·살인 4명, 상습 강도·강간 2명 등 23명이다.

이중에는 법정에 증인으로 섰던 사람을 살해한 변모씨, 여의도 광장서 ‘묻지마 질주’를 벌여 20여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김용제, 고소 취하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총을 난사해 4명을 살해한 경찰관 김모씨 등이 포함됐다.
 

1997년 사형 집행은 김영삼정부 출범 이후에만 1994년 15명, 1995년 19명 이후 세 번째였다. 또 긴급조치 시대인 1976년 27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이후 최대 규모였다. 23명 가운데 4명은 사형 집행 이후 안구와 사체를 기증했다.

1997년 형이 집행된 이들 가운데 ‘마지막 사형수’로 알려진 인물은 시각장애인 김용제다. 그는 1991년 차를 몰고 여의도광장을 마구잡이로 질주했다. 이 과정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여섯 살 난 유치원생이 차에 치었고 그 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럼에도 차를 멈추지 않은 김용제는 질주를 거듭,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 어머니는 김용제가 초등학교 때 가난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뒤 소식이 끊겼고 몇 년 후에는 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시각 장애를 앓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체구도 작았던 그는 친구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눈 때문에 책이나 칠판을 잘 볼 수 없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시력이 나쁜 탓에 실수가 잦았다. 실수로 인한 손실이 커지자 회사는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일자리를 찾아도 얼마 안 돼 해고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김용제는 체념했다. 

식당 일이나 막노동 자리에 기웃거렸지만 눈이 잘 안 보이는 그에겐 모두가 높은 벽이었다.

경제적·정신적으로 한계까지 몰린 그는 다니던 양말 공장 사장의 자동차 키를 훔쳤다. 김용제는 훔친 차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는 1991년 10월19일 KBS 앞으로 차를 몰았고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여의도 광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그는 차가 멈추자 한 여중생을 잡아 인질극을 벌였다. 김용제는 몰려든 시민들과 여중생을 두고 대치했지만 금세 제압당했다.

‘사형수들의 대모’로 불리는 조성애 수녀는 그의 일기를 엮어 <마지막 사형수>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김용제는 사형 선고를 받은 날부터 일기를 썼다. 책은 그의 일기와 조성애 수녀의 편지로 완성됐다. 
 

<마지막 사형수>는 사형수가 남긴 최초의 기록 모음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조성애 수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사형이란 가해자에겐 참회의 기회를, 피해자에겐 용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용서를 못 한 피해자들은 사형 집행 이후에도 행복하지 않더군요. 용서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용제의 범행으로 손자를 잃은 서모 할머니는 그의 성장 배경을 알고 선처를 탄원하는 등 용서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불우한 성장배경
책으로 나오기도

앞서 1995년 11월에는 전국을 경악에 빠뜨렸던 지존파 6명을 비롯, 19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지존파는 두목 김기환을 중심으로 20대 청년과 10대 가출소년이 모여 만든 범죄 단체다.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서 자란 이들은 부유층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 지존파는 1993년 7월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사람을 납치, 토막 살해하는 엽기적인 범행으로 대중을 공포에 떨게 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세균 “사형제 폐지는 이성적 판단해야”

정세균 국회의장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 축사에서 “사형제도 폐지 여부는 감성적 판단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며 “사형제도는 반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오판의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1975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사례로 든다. 인혁당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64년과 1975년 두 차례였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그로부터 10년 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주범으로 지목된 8명은 1975년 4월8일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확정 판결 후 불과 18시간 만인 4월9일 기습적으로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꼽기도 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9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고문 등을 통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후 법원은 2005년 재심을 수용, 2007년 1월 사형 당한 8명의 전원 무죄가 확정됐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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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