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미집행 20년> 사형수의 삶과 죽음 ‘풀스토리’

마지막 사형수를 아십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은 ‘해묵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됐다. 우리나라는 2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지만 법률상으론 여전히 사형제 존치 국가다. 이 때문에 사형 집행과 폐지를 두고 ‘끝나지 않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제15회 ‘세계 사형 폐지의 날’ 행사가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5개 단체로 구성된 ‘사형제 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사형 폐지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이들은 “사형집행 중단 20년을 앞둔 현재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을 넘어 완전한 사형 폐지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형 폐지의 날
특별법 나오나

연석회의는 성명을 통해 “제15대 국회를 시작으로 매 국회에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단 한 차례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며 “이번 20대 국회서 많은 의원들이 특별법 공동발의에 동참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흑식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서 “오늘 기념식은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서 법률상 사형 폐지국으로 가는 자리로 생명의 가치가 존중될 때 인간의 잔인함도 치유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일각에선 흉포해지는 범죄에 대응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기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범죄 종류를 떠나 한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앗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며 “국회는 헌법 개정과 법안 심의 과정서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실질적 폐지국이지만 법률상 존치
김대중정부 이후 사형 집행 수 ‘0’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올해 12월30일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꼭 20년이 된다. 일본이 2012년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후 19명의 사형을 집행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일본은 지난 7월에도 사형수 2명에 대한 형을 집행했다.

국제사회에선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지만 강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형제 존치에 대한 여론은 치솟았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나 2010년 여중생을 납치·살인한 김길태 사건 이후 진행한 조사에서 사형제 유지 응답은 평소에 비해 높았다. 실제 여론은 사형제 폐지보다 존치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국민 법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사형제 폐지에 반대했다. 최근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사형제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대중의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걸 알 수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17∼18일 양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6.1%에 달했다. 지난 9일 <세계일보>의 여론조사에서도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9.4%로, 80%에 육박했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위헌 여부 심판서 두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6년 사형을 최고형으로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헌 소원 심판서 7(합헌)대 2(위헌)로 합헌 판결이 나왔다. 


당시 김용준 헌재 소장 등 7명의 재판관은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 등 지극히 한정적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다수 의견을 냈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2010년 헌재는 또 다시 사형제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1996년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먼저 7명이었던 다수 의견이 5명으로 줄었고 위헌 의견이 4명으로 늘었다. 또 일부 재판관들은 사형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살려뒀다.

당시 헌재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도 없는 권리”라며 “비상계엄에 대한 재판에선 그렇지 않지만 우리 형법은 적어도 아직 간접적으로나마 사형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형제는 생명권 제한에 있어 형법 제37조에 의한 한계를 일탈했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96년과 2010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소수 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은 인권의 토대인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정신을 강조했다. 또 형벌로서 사형제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형제 폐지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후보 TV토론회서 “사형이 흉악범죄 억제효과가 없다는 데 전 세계가 공감하기 때문에 160여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존 사형수 65명
70대부터 20대까지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198개국 중 104개국이 법률상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했다. 우리나라처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37개국이다. 전 세계 국가 중 141개국(71%)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셈이다.

사형 미집행 기간이 20년에 이르러 사형제 존폐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자 자연스럽게 사형수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65명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이 61명, 군인이 4명이다. 
 

20년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사형수들의 고령화가 뚜렷해지는 추세다.

최고령 사형수는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으로 여행 온 대학생들을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오모씨로 추정된다. 이른바 ‘보성 어부 살인사건’이다. 그는 여행 온 남녀 두 사람을 자신의 배에 태운 뒤,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자를 먼저 바다로 밀어 살해하고 저항하는 여성까지 물에 빠뜨려 죽였다.

유영철·강호순
10명 이상 죽여


최연소 사형수는 2014년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25) 병장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시에는 21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는 동료병사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범행 직후 무장한 채 탈영해 자살을 기도했으나 결국 체포됐다.

임 병장은 “부대 안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1심과 2심서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대 4로 사형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학창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고 인격 장애 증상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대 내 조직적 따돌림이나 폭행, 가혹행위 등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장기 사형수는 원모씨로 올해로 25년째 복역 중이다. 원씨는 지난 1992년 10월 강원 원주에 위치한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사망케 했다. 중화상을 입은 사람도 36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에는 10세 이하(2명), 10대(4명) 등 어린아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 대법원서 사형이 확정됐다.

원씨처럼 10명 이상을 살해한 사형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유영철과 강호순 등 두 명이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의 검거 이후 국내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강호순은 2004년부터 5년여에 걸쳐 10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2009년 사형이 확정됐다. 강호순이 살해한 사람 중에는 그의 아내와 장모도 있었다. ‘제2의 유영철’로 불렸던 정남규도 부녀자 13명을 연쇄 살인하는 등 10명 이상을 죽이고 사형이 확정됐지만 2009년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사형제 폐지 반대여론 여전히 높아
강력범죄 발생할 때마다 급격히↑

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은 기약이 없다.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김영삼정부시절이다.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30일, 20여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살인 15명, 강도·살인 4명, 상습 강도·강간 2명 등 23명이다.

이중에는 법정에 증인으로 섰던 사람을 살해한 변모씨, 여의도 광장서 ‘묻지마 질주’를 벌여 20여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김용제, 고소 취하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총을 난사해 4명을 살해한 경찰관 김모씨 등이 포함됐다.
 

1997년 사형 집행은 김영삼정부 출범 이후에만 1994년 15명, 1995년 19명 이후 세 번째였다. 또 긴급조치 시대인 1976년 27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이후 최대 규모였다. 23명 가운데 4명은 사형 집행 이후 안구와 사체를 기증했다.

1997년 형이 집행된 이들 가운데 ‘마지막 사형수’로 알려진 인물은 시각장애인 김용제다. 그는 1991년 차를 몰고 여의도광장을 마구잡이로 질주했다. 이 과정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여섯 살 난 유치원생이 차에 치었고 그 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럼에도 차를 멈추지 않은 김용제는 질주를 거듭,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 어머니는 김용제가 초등학교 때 가난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뒤 소식이 끊겼고 몇 년 후에는 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시각 장애를 앓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체구도 작았던 그는 친구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눈 때문에 책이나 칠판을 잘 볼 수 없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시력이 나쁜 탓에 실수가 잦았다. 실수로 인한 손실이 커지자 회사는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일자리를 찾아도 얼마 안 돼 해고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김용제는 체념했다. 

식당 일이나 막노동 자리에 기웃거렸지만 눈이 잘 안 보이는 그에겐 모두가 높은 벽이었다.

경제적·정신적으로 한계까지 몰린 그는 다니던 양말 공장 사장의 자동차 키를 훔쳤다. 김용제는 훔친 차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는 1991년 10월19일 KBS 앞으로 차를 몰았고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여의도 광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그는 차가 멈추자 한 여중생을 잡아 인질극을 벌였다. 김용제는 몰려든 시민들과 여중생을 두고 대치했지만 금세 제압당했다.

‘사형수들의 대모’로 불리는 조성애 수녀는 그의 일기를 엮어 <마지막 사형수>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김용제는 사형 선고를 받은 날부터 일기를 썼다. 책은 그의 일기와 조성애 수녀의 편지로 완성됐다. 
 

<마지막 사형수>는 사형수가 남긴 최초의 기록 모음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조성애 수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사형이란 가해자에겐 참회의 기회를, 피해자에겐 용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용서를 못 한 피해자들은 사형 집행 이후에도 행복하지 않더군요. 용서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용제의 범행으로 손자를 잃은 서모 할머니는 그의 성장 배경을 알고 선처를 탄원하는 등 용서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불우한 성장배경
책으로 나오기도

앞서 1995년 11월에는 전국을 경악에 빠뜨렸던 지존파 6명을 비롯, 19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지존파는 두목 김기환을 중심으로 20대 청년과 10대 가출소년이 모여 만든 범죄 단체다.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서 자란 이들은 부유층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 지존파는 1993년 7월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사람을 납치, 토막 살해하는 엽기적인 범행으로 대중을 공포에 떨게 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세균 “사형제 폐지는 이성적 판단해야”

정세균 국회의장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 축사에서 “사형제도 폐지 여부는 감성적 판단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며 “사형제도는 반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오판의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1975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사례로 든다. 인혁당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64년과 1975년 두 차례였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그로부터 10년 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주범으로 지목된 8명은 1975년 4월8일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확정 판결 후 불과 18시간 만인 4월9일 기습적으로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꼽기도 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9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고문 등을 통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후 법원은 2005년 재심을 수용, 2007년 1월 사형 당한 8명의 전원 무죄가 확정됐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