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지금 집을 사야할까?

8·2대책 이후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던 서울 아파트 값이 재건축 호재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가운데 올 연말까지 주택시장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상 추석은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연휴가 이어지며 주택시장 분위기가 바뀌는 변곡점이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연휴 이후 가계부채대책, 주거복지로드맵 등 굵직한 추가 대책 발표가 예고돼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집값 안정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강력 규제들이 주택시장으로 몰리면서 추석 이후에도 수익형 부동산과 토지시장이 강세를 이어갈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택

수익형의 경우 추석 이후에도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확실히 최근 주택시장 분위기는 ‘관망세’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투자(투기) 수요’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집값은 계속 오르는 게 아니라 사이클을 이루며 등락을 거듭한다. 특히 올 상반기 집값이 많이 올라 단기적으로 크게 오르기 벅찬 구조인데 거기에 규제 태풍까지 불어 닥쳤다. 시장에 미친 영향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한국감정원의‘9월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9월 서울 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단독·다가구 포함) 매매가격은 전달 대비 0.07% 상승했는데, 오름폭이 7월(0.45%)에 비해 크게 줄었다. 2016년 3월(0.01%)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 8·2대책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대책의 직격탄을 맞은 강동구(-0.14%)·서초구(-0.13%)·강남구(-0.09%) 등 ‘강남 4구’주택 가격이 약세를 보였다. 9월5일 추가조치로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으로 중복으로 지정된 노원구는 0.18% 하락해 서울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투기지역으로 중복 지정된 성동구도 0.14%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아파트

범위를 아파트로만 좁혔을 땐 대책 효과가 더 분명해진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달보다 0.01% 떨어졌다. 서울 아파트 값이 떨어진 건 지난해 3월(-0.01%) 이후 1년6개월 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테크의 최대 적은 쓸데없이 서두르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또 오기 때문이다. 실거주 목적의 내 집 마련을 계획한다면 구매력이 된다면 공급 과잉 지역을 제외하곤 매수해도 좋지만 투자 목적이라면 인내력을 갖고 기다리며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는 것도 좋다. 

추석 이후 부동산 시장을 주도할 흐름은 크게 두 갈래다. 먼저 8·2대책에서 발표한 각종 규제가 투기과열지구에서 시차를 두고 본격 적용된다. 예를 들어 분양가상한제가 10월 말부터 본격 적용된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분당 등 수도권을 비롯해 세종시, 대구 수성구가 적용 지역으로 거론된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고분양가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다. 청약 1순위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가점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청약제도 개편안은 9월20일 입주자 모집을 공고한 아파트부터 시행됐다.

8·2대책 후 연말까지 시장 전망은?
연휴 끝 분위기 바뀌는 변곡점 될까 

재건축

정부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재건축 아파트의 시장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재건축만 해도 재건축 조합원에게 ‘핵폭탄’으로 불리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내년부터 부활한다. 재건축으로 얻은 이익이 가구당 평균 3000만원이 넘을 경우 초과이익의 최대 5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내년 초 부활 예정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해간 단지라면 몰라도 사업 속도가 느린 곳은 거품이 끼었을 가능성이 높다. 


재건축 투자는 일단은 지켜보는 게 낫다. 재건축 사업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영향으로 투자 매력이 낮아질 전망이라 구입 시기를 내년 이후로 미루는 편이 낫다.

내년 4월부터는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한다. 8·2대책은 국회 법률 개정과 맞물려 있는 내용이 많아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시차를 두고 연쇄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른 큰 흐름은 입주 물량의 폭발적인 증가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 하반기 전국 입주 예정 물량은 31만3000가구로, 상반기(26만1000가구)보다 약 20% 많은데 2010년 이후 역대 최대 입주 물량이다. ‘수급 앞에 장사 없다’는 증시 격언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통하는데, 단기간에 입주가 급격히 늘면 전셋값이 약세를 보였다. 

지방 시장은 당분간 약세가 이어지며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울산·경남·경북·충남·충북 등 지방은 기업 구조조정과 공급 과잉 등의 영향으로 수도권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와 무관하게 자체 조정기를 거치고 있는 중이라 서울·수도권과 지방, 지방 내에서도 개별 호재에 따라 시장 움직임이 차별화될 것으로 보인다. 

분양

미분양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기에 입주 폭탄까지 떨어지면 시장이 급속도로 양극화할 수 있다. 입주물량 급증이 예상되는 지역으로 대구·울산·경남·충남 등을 꼽았다. 입주 물량이 급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미입주, 신규 분양 단지에서 미분양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집을 사야할까. 지금은 ‘매수자’우위 시장이다.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데다 정부가 추가 대책도 예고한 상태라 매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다만 청약가점제 적용 물량이 대폭 늘어난 점은 고려해야 한다. 부양가족이 많은 장기 무주택자라면 인기 지역 당첨확률이 높아진 만큼 적극적으로 청약하는 것이 유리하다. 

서울 분양시장 전망은 좋다고 본다. 주택도시보증(HUG)에서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한 강남 4구, 경기도 과천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이 계획돼 특별공급 대상자거나 청약가점이 높은 사람이라면 청약할 만하다. 다만, 집값 상승기에 단기 차익을 노린 ‘갭 투자(전세가율 높은 주택을 전세를 끼고 산 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는 위험하다. 

전월세 시장은 양극화가 심화할 전망이다. 입주 물량이 많은 수도권은 ‘갬’, 전세 수요가 많은 서울은 ‘흐림’이며 입주 물량이 워낙 많아 안정세를 다질 전망이다. 물량이 몰린 수도권·지방은 ‘역전세난(전세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현상)’ 가능성도 있다. 

수익형

수익형 강세는 추석 이후에도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억제 정책이 주택시장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서울 도심권과 서울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있는 수익형 부동산은 계속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저금리에 가장 수혜 상품은 역시 수익형 부동산이다. 다만 지역·상품별로 수익률 차이가 크고 공급과잉 문제에 따른 수익률 악화도 예상돼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수익형 부동산을 주도하는 상품으로 부동산 대책과 무관하거나 벗어난 ▲상가 ▲오피스텔 ▲소형 오피스 유망하다. 먼저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상가의 경우 아파트 인기지역 중심 활기 띨 전망이다. 입주가 진행되거나 앞두고 있는 위례신도시나 남양주 다산신도시 등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1억원의 웃돈이 형성되면서 덩달아 인기가 높다.

인기가 높아진 만큼 분양가 상승세라 주변 대비 분양가를 따져봐야 한다. 임차인이 선호하는 입지인지 여부 등도 고려해야 한다. 장기임대업종인 약국, 금융기관, 프랜차이즈 업종 등 우량 업종 선임대 상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주거와 임대사업이 가능한 신도시 상가겸용주택과 LH 단지 내 상가도 꾸준한 인기를 끌 전망이다.


전월세 양극화 심화할 전망
수도권·지방 역전세난 감지

이번 조치로 오피스텔도 규제에 포함됐지만, 여전히 소액투자처로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8·2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의 오피스텔은 거주자 우선 분양 요건(20%), 분양권 전매제한 등 규제대상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오피스텔 시장은 아직 규제가 강도가 약하고, 법 사각지대에 있어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도 높은 규제와 저금리 기조 속에 투자처를 잃은 시중 자금이 여전히 오피스텔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타 상품에 비해 소규모 자본으로 투자가 가능하고, 신규 상품의 경우 아파트에 비해 청약 장벽이 낮다는 점도 장점이다. 

거주지에 관계없이 청약할 수 있고, 청약통장도 필요 없이 중복청약과 제3자 대리청약이 가능하다는 점도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비규제 지역에서는 당첨 즉시 분양권을 전매할 수 있어 시세 차익을 가능하다. 

업계에서도 당분간 오피스텔 시장의 호황이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오피스텔 투기 수요를 막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오피스텔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시장이기 때문에 아파트 청약 규제가 심해져 진입이 막힌 수요자들이 꾸준히 눈을 돌릴 것으로 전망했다.

저금리에 소액 투자처로 소형 오피스도 급부상 중이다. 임대료 등 비용 절감을 위해 사무실 규모를 줄이는 기업이 늘어나는 있는 것도 오피스의 소형화를 부추기는 이유다. 소형 오피스는 오피스텔과 비교해 화장실과 주방 공간 등이 없어 같은 면적이라도 사무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면적이 넓은 오피스와 달리 면적이 작아 임차수요가 꾸준하고 공실 위험을 분산할 수 있어 인기다.


투자지역으로 대기업 이전지역이나 업무밀집지역, 도청, 구청, 법원, 세무서 등의 이전지를 주목해야 한다. 대기업이 이전하는 지역 인근에 계열사나 협력업체 등도 소형 오피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도 있다. 소형 오피스 임차 수요는 많지만 대신 매수 수요가 별로 없어 환금성이 낮고 아파트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이 커져 가치가 떨어지기 쉽다. 경기에 따라 매입수요 변동 폭이 크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해당 건물 상태를 잘 살펴 비교적 노후도가 낮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 주변 건물에 비해 노후한 곳은 다른 소형 오피스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수익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소형 오피스 임대 역시 수익형 부동산이기 때문에 분양가나 임대료 등 초기 투자액과 임대료가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토지

최근 수년간 수요층에게 각광받고 있는 토지 시장이 황금연휴 이후로도 상승기조가 이어질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3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으로 아파트 시장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투자 가치가 높은 토지의 경우 아파트 대체 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지가변동률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0.59%포인트 증가한 1.84%를 기록했다. 지난 2010년 11월 이후 80개월 연속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물가변동률(1.41%)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전국 17개 시·도별로 살펴보면 모든 지역의 땅값이 상승한 가운데, 수도권(1.86%)의 오름세가 지방(1.82%)보다 소폭 큰 것으로 집계됐다.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상반기 전체 토지(건축물 부속토지 및 순수토지) 거래량은 총 155만4000필지로 전년 동기 대비 10.4% 증가했다. 면적은 서울의 1.8배인 1095.4㎢에 이른다.

토지는 일대 개발호재, 향후 미래가치 등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반적 통찰력이 뒷받침돼야만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진입장벽이 높은 상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도 최근 들어 토지 시장에 대한 수요층의 꾸준한 인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토지 관련 정보가 지자체 홈페이지 및 부동산 정보업체 등을 통해 과거보다 쉽고 편리하게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저금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토지에 유동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점도 한몫 한다. 특히 8·2대책으로 재건축, 신규 아파트는 물론 오피스텔까지 투자 규제가 강화되면서, 최근 토지는 이들 상품을 대체할 수 있는 투자처로도 부각되고 있다.

토지 시장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토지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환금성이 높은 상품이 아니므로 토지를 매매하는 데 앞서 토지 활용에 대한 장기적인 포트폴리오를 미리 구상해야 한다. 단순한 시세차익을 노려 접근했다가 자칫 자금이 오랫동안 묶일 경우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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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