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들먹인’ 사기꾼의 전국구 사기행각

순진한 얼굴로 뒤통수 ‘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현이 있다. 믿었던 누군가에게 속았을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사기 사건이 악질 범죄인 것은 재산 피해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자신도 모르는 새 생기는 타인에 대한 불신은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로 남는다.
 

“저는 사기꾼이라고 하면 말 잘하고 옷 잘 입고 그런 사람들인 줄만 알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나오는 그런 이미지 말이에요.”

경기도 시화산업단지서 ‘빅도어’ 제작업체 K사를 운영 중인 박모 사장은 더 화를 낼 기운도 없어 보였다.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7개월 동안 스트레스로 치아가 5개나 빠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박 사장은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큰 공사로 접근

K사에선 빅도어라는 제품을 만든다. 건설현장 등에서 사용되는 큰 출입문으로, 사람 힘이 아닌 전기로 열고 닫는다. 박 사장이 백모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3월 경남 창원의 두산중공업 공장 내 빅도어 보수공사를 할 때였다. K사는 백씨가 현장소장으로 있던 D사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일하던 중이었다. D사는 두산중공업의 협력업체다.

지난해 12월 D사를 퇴사한 백씨는 K사에 접근했다. 백씨는 두산중공업 공장 내 보수가 필요한 빅도어 물량이 많으니 자신을 영업이사로 채용해주면 다수의 공사를 따올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시 박 사장도 두산중공업 공장 내 빅도어 상황을 봐온 터라 백씨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두산중공업 공장서 일하는 동안 수리할 빅도어가 100개 가까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100개면 엄청난 물량이거든요. 액수도 크고.”

백씨의 말을 믿은 박 사장은 그를 영업이사로 채용했다. K사의 영업이사가 된 백씨는 공사를 따기 위해서는 접대비를 포함, 업무추진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6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은 별도였다. 박 사장은 백씨를 위해 회사 법인카드를 내줬다. 백씨는 법인카드를 가지고 영업을 핑계로 술집 등에서 흥청망청 돈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 번은 창원의 한 술집 주인에게 돈을 보내주라는 내용의 문자가 백씨로부터 온 적이 있습니다. 신용카드 한도가 다 되는 바람에 돈을 못 냈으니 계좌로 쏴주라는 말이었습니다.”

밝혀진 것만 4개 업체
1억원 넘는 돈 가로채

이런 식으로 박 사장이 계좌로 이체하거나 현금으로 내준 돈이 1500만원에 달하고, 신용카드 대금은 2800만원에 이른다. 월급을 포함, 백씨가 준 정보로 K사 직원들이 움직이면서 쓴 비용, 중간서 받지 못한 공사대금 등을 합치면 1억원에 가까운 돈이 박 사장의 주머니서 나갔다. 

박 사장은 두산중공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법인이 필요하다는 백씨의 주장에 올해 1월 회사까지 설립했다. 그는 설립한 회사의 영업이사가 됐다.

돈이면 돈, 직책이면 직책, 박 사장은 백씨의 요구를 거의 빠짐없이 다 들어준 셈이다. 그런데도 백씨에게서는 어떤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박 사장을 포함, K사 직원과 주변 인물들이 의구심을 품자 백씨는 2월 ‘건설공사 표준하도급 계약서’를 성과물이라며 가지고 나타났다.


작성일자가 올해 2월28일자로 기재된 계약서에는 발주자가 두산중공업으로 돼있다. 61억6000만원짜리 빅도어 보수공사 계약이었다. 그 사이 백씨는 두산 로고가 박힌 ‘현장 EHS 작업지시서’ 파워포인트 자료, 4600만원짜리 해체공사 약정서 등을 박 사장에게 끊임없이 들이 밀었다. 

또 이 같은 자료를 두산중공업 김 과장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그에게 받은 이메일을 전달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계약서를 보기 전에도 종종 연락이 끊길 때가 있어 의심스럽긴 했어요. 그래도 ‘열심히 영업하느라 연락이 안 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월에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두산중공업 쪽에 확인을 해봤는데 계약서가 가짜라는 겁니다.”

박 사장과 지인 등이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해당 계약번호로 계약이 체결된 사실은 없었다. 두산중공업 측은 이메일서 “T사(박 사장이 새로 만든 법인)는 거래업체에 등록돼있지 않다. 우리에게 발주받기 위해서는 거래업체로 등록돼야 하는데 T사는 등록도 돼있지 않다”며 “첨부한 계약서의 계약번호로 발주된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진짜 까무러치는 줄 알았습니다. 백씨는 늘 제 앞에서 두산 김 과장이라는 사람하고 통화했어요. 가끔 전화해서 뭐하냐고 물으면 두산 관계자들하고 회의하느라 전화를 빨리 끊어야 한다고도 했고요.”

백씨는 김 과장뿐만 아니라 오 부장 등을 거론하며 두산중공업 관계자들과 잘 아는 것처럼 행동했다. 실제 박 사장은 백씨가 알려준 김 과장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김 과장이라는 사람이 “네, 두산중공업 김○○ 과장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박 사장으로서는 안 믿을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백씨가 김 과장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취재 과정서도 자신을 김 과장이라고 소개했다. “두산중공업 김○○ 과장이 맞느냐”고 묻자 그는 “맞다”고 대답한 것이다. 하지만 두산중공업 측에 확인해본 결과 김○○ 과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제주도서 현장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급도 과장이 아니라 대리였다. 그러면서 “백씨와는 그가 현장소장으로 일했을 때 얼굴을 익혔을 뿐이다. 왜 내 이름이 거론되는지 모르겠다”며 선을 그었다.

대기업 관계자 아는 척
이 핑계 저 핑계 돈뜯어

백씨는 박 사장이 계약서 등에 대해 추궁하자 두산중공업 오 부장이 시켜서 한 일이라며 발뺌했다. 자신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아무 잘못이 없다는 투였다. 백씨는 오 부장이 비리 등의 혐의로 두산중공업 본사서 해고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중공업 측은 한 마디로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일축했다. 김 과장은 물론 오 부장이라는 사람도 없고 백씨의 말대로 비리 등의 문제로 부장급 인사가 해고됐다면 홍보팀서 사정을 모를 리 없다는 입장이다.

백씨의 사기 행각과 박 사장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씨가 모습을 감춘 후 박 사장은 경남 진주서 폐기물 수집 및 처리업을 하고 있는 N사와 경남 창원서 특수화물을 다루고 있는 M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백씨는 두 업체로부터 각각 1200만원, 450만원을 취했다. 허위공사와 장비 사용 등을 이유로 백씨가 두 업체로부터 받은 돈이었다. 두 업체는 세금계산서에 나온 박 사장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돈을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부산의 한 철강업체도 900만원 정도를 자재 사용비로 백씨에게 건네주고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자초지종을 알아보려 했지만 백씨는 지난 5월11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 이리저리 빚이 많아 그동안 사장님 돈으로 돌려막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 제가 벌인 일이니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끝으로 전화도 정지시킨 채 잠적한 상황이다.

문자 남기고 잠적

박 사장을 포함 N사, D사 관계자 등은 “백씨는 순하게 생겼다. 목소리가 작고 말도 더듬었다”며 “소위 말하는 사기꾼처럼은 안 보였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두산중공업 협력업체에서 현장소장으로 일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두 달 넘게 일을 놨다.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박 사장과 N사로부터 고소당한 백씨를 쫓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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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