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록전문가협회 논평> 대통령기록물관리제도 및 국가기록원 쇄신해야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18대 대통령 기록물 이관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우리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국정농단 사건 및 박근혜 대통령 파면과 관련한 대통령기록물관리에 대해 여러 차례 입장을 표명해왔다.

대통령기록물의 불법유출과 무단폐기를 경계하면서, 대통령권한대행에 의한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의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국가기록원이 책임있는 자세로 대통령기록물 자체폐기 동결 조치를 취하고 불법유출·무단폐기 행위를 검찰에 고발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권한대행과 대통령비서실 등은 대통령기록물의 불법유출과 무단폐기 정황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지정해 이관함으로써 국정농단 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증거를 봉인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초래했다.

국가기록원은 국가기록관리체계를 수호해야 하는 근본적 사명을 방기하고 법령이 부여한 지도·감독 기능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기록물관리제도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제 더 이상의 부실과 혼란을 막아야 하며 잘못을 바로잡아 금번 사태를 대통령기록물관리제도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첫째, 새 정부는 대통령기록물 무단폐기와 불법유출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으로 관련자를 고발하고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국정농단 사건 직후 대통령비서실서 파쇄기를 다량 구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딸의 집으로 대통령기록물을 불법유출하고 무단폐기 했다는 사실이 특검 수사과정서 확인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인사파일이 (사)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무실의 비밀금고서 쏟아져 나왔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서 검찰은 박준우 전 정무수석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서 다량의 청와대 문건을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무단 파기에 대해서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무단 유출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장은 이미 무단폐기와 불법유출에 대해 “대통령기록물법에 징역, 벌금 등 강력한 처벌규정이 있다”며 강력하게 처벌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이제라도 국가기록원은 이러한 위법 의혹에 대하여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대통령기록물법 소관 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둘째,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 의한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은 2016년 12월9일부터 2017년 5월10일까지 대통령권한대행의 직을 수행하는 기간 동안에 본인과 대통령비서실 등이 생산·접수한 대통령기록물에 대해서만 유효할 뿐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은 대통령기록물을 생산·접수한 당해 대통령에게 제한적으로 부여된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권한대행이 본인이 수행하지 않은 대통령 직무에 대해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지정할 권한이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법률상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반드시 지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통령기록물법의 입법 취지를 따르지 않고 대통령권한대행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업무 설명책임성의 증거기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면, 더욱이 은폐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지정 권한을 행사하면, 향후 대통령기록물관리에 일대 혼란이 발생한다.

나아가 일시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 일부를 제한해서라도 국가의 중요 기록을 보존하려는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의 근간도 무너진다. 불행하게도 이제 그 혼란이 눈앞에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한 2013년 2월25일부터 2016년 12월9일까지의 대통령기록물에 대해서 대통령권한대행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한 행위는 부당하며 무효다.

셋째, 국가기록원은 금번 대통령기록물 이관과정서 보인 미온적 태도를 반성하고, 중앙기록물관리기관 본연의 자세로 대통령기록물관리에 임해야 한다. 우선, 금번 대통령기록물 이관과정을 국민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파면선고 시점부터 지금까지 줄곧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의 보호와 이관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무단폐기와 불법유출 우려에 대해서도 대통령기록물법에 처벌조항이 존재하므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을 뿐 실효적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언론이 무단폐기와 불법유출 정황을 보도해도 눈 감았고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국가기록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권한대행의 임기까지라고 본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향후 영향을 끼칠 큰 오류를 범했다. 명백히 박 전 대통령의 임기는 파면 선고와 동시에 종료됐다.

금번 대통령기록물 이관은 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대통령기록물이 동시에 이관되는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것이며 그에 따라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등의 법률적 조치가 분리되어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국가기록원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에 대한 법률해석서도 원칙에 맞지 않는 결론을 내렸다. 파면에 따른 대통령기록물 이관이라는 전대미문의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서의 능동적 책임성과 전문적 대처 능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라도 국가기록원은 금번 대통령기록물 이관의 과정과 결과를 하나하나 투명하게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먼저, 금번에 적용한 대통령기록물의 범위를 공개해야 한다. 법령이 정하고 있는 ‘업무관련 메모·일정표·방문객명단 및 대화록’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국민과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업무수첩’이 포함되었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무단폐기와 불법유출 정황과 이를 방지를 위해 취한 조치를 공개해야 한다. 대통령권한대행의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권한 보유 여부에 대한 법률적 검토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이관과정서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청구된 수많은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과도하게 비공개로 일관한 태도를 버리고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넷째, 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이관과정서 드러난 대통령기록물관리 법 제도상의 미비점으로 인한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 새 정부는 대통령기록물법 정비에 착수해야 한다. 국회는 대통령기록물법 일부 개정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금번에 대통령권한대행이 지정한 대통령지정기록물 중 국정농단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증거가 되는 기록물에 대해서는 현행 대통령기록물법 규정에 따라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또는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에 의해서라도 수사 및 재판 관계자가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에게 지정기록물에 대한 열람권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밖에도 국정농단 사건의 재판과 진상규명 과정서 대통령기록물과 관련한 수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최우선적으로 파면에 의한 궐위라는 상황에 우선 집중해 법률을 정비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명백한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파면에 의한 궐위시의 대통령기록물 이관,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전직 대통령 열람, 지정기록물 지정 해제 등이 주요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권한은 대통령기록물관리제도를 관할하는 독립적인 국가기록관리기구에 부여하는 것이 대통령기록물관리제도의 유지·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타당하다. 개혁의 방향은 독립적인 국가기록관리기구의 수립으로 향해야 한다.


다섯째, 새 정부는 국가기록관리기구의 독립성을 시급히 확보해야 하며, 국회는 독립적인 국가기록관리기구가 대통령기록물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대통령기록물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금번 박 전 대통령 기록물 이관과정서 대량 폐기 의혹이 불거지고 대통령권한대행의 무리한 지정기록 지정이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지만 국가기록원이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못한 것은 국가기록원이 독립적인 국가기록관리기구로서의 권한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대통령기록물 무단폐기·불법유출 의혹을 조사하고 재판 중인 박 전 대통령의 업무 증거기록의 봉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기록원의 독립성이 시급히 제도적으로 확보돼야 한다.

국회는 금번에 드러난 대통령기록물법의 각종 미비 사항을 대통령기록물 문제를 우려해 온 사회 각계와 기록전문가 공동체와 심도 있게 협의해 대통령기록물법 전부 개정으로 입법 조치해야 할 것이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그동안 대통령기록물관리 문제를 중심으로 국가기록관리의 퇴행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비판해왔으며 새 정부와 국회서 이러한 문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새 정부와 국회의 향후 조치와 활동에 주목하면서 국가기록관리의 정상화와 발전에 우리의 전문성이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2017년 5월 10일

한국기록전문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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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