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집 나간 총수들 막전막후

회장님 투표는 하시나요?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재벌 총수들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대선 결과는 총수들 신변에 중차대한 변화를 불러올 만한 사안인 만큼 정치권 이슈와 맞물려 골머리를 앓는 총수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반대로 정치판과 상관없이 본업에 매달리는 총수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죗값을 치르는 통에 경영에 매진하지 못하거나 건강 논란에 시달리는 사례도 눈에 띈다.

대기업 총수들의 최근 동향은 대선 판국과 밀접히 연관돼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맞물려 치러지는 조기 대선의 결과에 따라 향후 대기업에 대한 전방위 압박도 생각해봄직하다. 대기업 총수들은 정치권과 밀착 여부에 따라 각기 다른 행보를 나타내고 있다.

정치권 후폭풍에
긴장하는 총수들

몇몇 총수들은 최순실 게이트의 늪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6일 국회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제1차 청문회는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3시간 넘게 진행된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었다.

이들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검찰이 신 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한 반면 최 회장에게는 뇌물 혐의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의 희비가 극명히 엇갈린 것이다. 그간 둘의 이름이 함께 오르내렸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신 회장에게는 롯데그룹이 추가로 냈다가 돌려받은 70억원과 관련해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해 3월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독대했을 때 잠실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사업자 갱신 심사에서 탈락했던 롯데그룹이 면세점 영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구속을 피했다는 건 다행이지만 기소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기존에 진행 중인 재판과 더불어 2건의 재판에 출두하려면 주기적으로 법정에 서야 한다. 여기에 뇌물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법정 구속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닮은 듯 다른 제각각 행보들
마치 짠듯 속속 해외행 준비

반대로 최 회장은 혐의를 벗고 ‘강요’의 피해자로 남았다. 지원액수를 두고 이견을 보이다 아예 돈을 건네지 않았던 SK그룹의 마지막 선택이 신의 한수가 됐다. ‘청탁 이후 대가를 원했다면 왜 추가 지원 요구를 거절했겠느냐’는 최 회장과 SK그룹의 논리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최 회장은 그동안 미뤄뒀던 ‘글로벌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간 출국금지에 걸려 실행하지 못했던 해외 출장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주요 계열사 최고 경영자(CEO)가 참여하는 ‘확대경영회의’를 열어 현안을 점검하고 해외 사업 파트너들을 줄줄이 만난다는 계획이다.
 

당장 일본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를 위해 미국 출장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재무적·전략적 투자자들을 물색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상하이세코 지분 50% 인수를 추진 중인 SK종합화학은 협상 막바지에 최 회장의 역할을 기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넥슬렌 합작공장 건설도 최 회장이 직접 챙기는 사업이다.

극명 구별되는
해외 경영행보


경영 일선에서 그룹을 진두지휘해야 할 대기업 1·2위 오너 3세들도 최근 근황이 극명히 갈린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해외 현장경영을 강화하는 반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공판 진행 등 기약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이다.

판매동력 강화를 위해 올초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정 부회장은 최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달 초 정 부회장은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미국 출장은 올해만 벌써 3번째다. 앞서 지난 1월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를 찾아 시장 트렌드를 감지했고 2월 중순에는 LA ‘제네시스 오픈’에 참석했다.

반면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등 혐의로 지난 2월 구속되면서 경영 행보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매년 3분의 1 이상을 해외 주요 고객사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보내는 등 해외 출장이 유독 잦은 총수였다는 점에서 출국금지 여파가 더욱 큰 상황이다.

이탈리아 자동차그룹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 지주회사인 엑소르(Exor)의 이사진서 빠졌다. 엑소르의 주요 계열사인 피아트는 마세라티 등 고급차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브랜드다. 이 부회장은 2012년 5월부터 5년 가까이 엑소르 사외이사를 맡아왔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인한 출국금지로 지난해 11월 엑소르 이사회에 불참했다. 이어 올해 2월 전격 구속 수감되면서 지난 5일 열린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삼성그룹에는 초유의 사태지만 총수 구속 사례는 빈번히 발생했다. 하지만 근래에 징역형을 받은 사례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회장과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에 불과했다.

감옥서 두문불출
퍼진 건강이상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횡령과 상습도박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장 회장에게 징역 3년6개월에 추징금 14억10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장 회장은 2005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비자금 88억5000여만원을 해외도박자금과 개인채무를 갚는 데 쓴 혐의로 구속기소 된 터라 비난 여론이 높았다. 현재 동국제강은 장 회장의 동생인 장세욱 부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사기성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발행으로 일반 투자자 4만여명에게 1조3000억원대 피해를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 전 회장은 2015년 10월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해당 CP를 다른 계열사에 넘겨 부당지원한 것으로 나타나 횡령·배임 혐의도 받았다.

최근 만기 출소한 총수는 지난해 10월 자유의 몸이 된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이 있다. 올해 2월에는 구 전 부회장의 동생인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도 출소했다. 이들 형제의 경영 재참여에는 제약이 걸려 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향후 5년 동안 LIG그룹의 등기임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들이 물밑에서 다시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구 전 부회장은 지난 1월9일 ‘LIG넥스원 임직원 참배식’에 참석해 사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호진 전 태광산업 회장은 지난 21일 열린 파기환송심서 징역 3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건강상태를 고려해 법정구속은 면했다. 무자료 거래와 회계 부정처리, 임금 허위지급 등의 방법을 동원해 회삿돈 400억여원을 횡령하고 그룹에 97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11년 구속기소됐다.


이후 그는 1심서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20억원, 2심서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10억원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간암으로 건강이 악화돼 2012년 6월 보석으로 풀려나 집과 지정된 병원을 오가며 생활 중이었다. 

하나같이 출장 핑계 대고 외유 
몇몇은 감옥·병원서 두문불출

정치권 혹은 개인적인 차원의 비리 혐의가 아니라 건강 문제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총수들도 눈에 띈다. 몇몇은 경영복귀를 서두르면 건강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 반면 여전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총수들도 더러 보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건강이 호전돼 올해 상반기 중 경영일선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CMT) 치료를 받고 있는 이 회장의 건강상태는 정상의 60∼70% 수준까지 나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검찰이 이 회장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하면서 경영복귀에 따른 부담도 한결 줄었다. 재계에서는 대통령선거 직후 또는 늦어도 상반기 내에는 이 부회장이 귀국해 직접 경영을 챙길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조세포탈·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던 이 회장은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건강 회복에 집중하면서 경영 복귀를 준비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검찰이 무혐의로 결론을 내면서 불확실성이 씻어냈다.


어수선한 분위기
복귀 준비 시동

이렇듯 재벌기업 총수들의 근황이 제각각인 가운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대선 후보들을 만나며 기업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반기업 정서 확대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를 전달했다. 박 회장이 경제전도사를 자칭하는 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입지 축소 탓이다. 전경련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대표성을 잃고 주요 그룹 탈퇴가 이어진 끝에 최근 조직·예산 40% 감축 등 혁신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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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