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철도시설공단’ 불량부품 의혹

고장 원인 모르지만 일단 설치하고 보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5월 공항철도 수색연결선 하선 선로변에 설치된 고조파 저감장치(RC뱅크)의 소손 사고가 일어났다. 전라선에선 관촌구분소, 죽곡구분소, 금강구분소에 설치된 RC뱅크가 말썽을 부렸다. 서로 다른 지역서 같은 장치가 고장 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공항철도와 전라선의 RC뱅크를 관리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 측은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항철도의 RC뱅크는 재설치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5월6일 한 언론매체는 ‘고양 신공항철도 변압기서 불…10여분 만에 진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6일 오전 7시쯤 경기 고양시 현천동 신공항철도 변압기서 화재가 발생했고, 공항철도 측이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내용과 달리 당시 실제 불이 났던 건 변압기가 아니라 고조파 저감장치(이하 RC뱅크)였다.

변압기로 보도
실제는 RC뱅크

RC뱅크는 교류전력 이용에 불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파형(고조파)을 제거하거나 저감하는 장치다. 국내서 사용 중인 교류 주파수는 60㎐지만 국가와 지역별로 50㎐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이를 기본파 혹은 기본 주파수라고 부른다.

고조파는 기본주파수에 2배, 3배, 4배와 같이 정수의 배에 해당하는 물리적 전기량을 말한다. 이러한 고조파 전류가 합성되면 전체 파형이 기존파에 비해 찌그러진 파형으로 변하며, 전기기기가 연결된 전력계통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전기철도차량서 발생하는 고조파 전류는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08년 대한전기학회 전기기기 및 에너지변환시스템부문회 춘계학술대회 논문집에 실린 <한국형 고속열차의 주행상태와 고조파 상관관계 분석>에 따르면 고조파 전류의 발생은 인접통신선에 유도 장해를 일으키고 철도신호장애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전원계통에 유입되는 경우에는 보호계전의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공항철도에 처음 고조파 관련 문제가 생긴 건 2014년 1월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이 작성한 ‘RC뱅크 설치공사 사업추진방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2014년 1월23일 공항철도 고속열차(KTX) 직결선 연결공사 시설물 검증시험 기간 중 공항철도 전동열차(AREX)에서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했다.

철도 전문가 A씨는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했다는 것은 전기철도 열차가 진행 도중 갑자기 전원이 차단됐다는 뜻”이라며 “실제 열차가 운행하는 도중에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기관사가 상당히 놀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항철도·전라선서 RC뱅크 문제 지적
공단·코레일 “뭔지 몰라도 문제없다”

문제가 발생한 1월23일에는 KTX열차와 AREX열차가 각각의 운행계획에 따라 동일 상·하행 선로를 운행했다.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한 이유는 주행 중이던 KTX열차서 발생한 고조파가 AREX열차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하 철기연)은 중간보고에서 ‘KTX-1과 KTX-산천 열차에서 발생하는 고조파에 대한 저감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6월4일 공항철도 용유기지 내에 시험용 RC뱅크가 설치됐다. RC뱅크의 설치로 5월29일부터 6월3일까지 매일 발생하던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은 이후 5일에 2번꼴로 줄어들었다.


당시 자료에는 “RC뱅크 적용 시 효과는 있겠지만 전기요금과 유지보수 비용 발생에 따른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그로부터 5개월여 뒤인 11월23일 공항철도 수색연결선 하선 선로변에 RC뱅크가 신규로 설치됐다. 지난해 사고가 발생한 장치다.
 

해당 RC뱅크는 지난해 사고 이후 1년 가까이 재설치하지 못했다. 지난 2월로 예정됐던 설치 일정이 3월 말, 4월 초로 연이어 연기됐다. 20년 넘게 RC뱅크를 제작해왔다는 제작·설치 업체 관계자 B씨는 “해당 제품에 대한 시험과 검사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설치를 코앞에 둔 상황서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공항철도, 공단, 업체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공항철도 관계자는 “공단서 밝힌 사고 원인은 제작상의 결함이라고 했다. (RC뱅크의 경우) 운영은 공항철도서 하는 게 맞지만 제작·설치는 공단 수도권본부 기술처에서 한다”며 “더 자세한 내용은 공단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단 수도권본부 기술처 전철전력PM 관계자는 “제가 사고 이후에 (이 자리에) 와서 잘 모르겠지만, RC뱅크가 선로변에 설치돼 있었기 때문에 진동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제품이 진동을 견딜 정도로 견고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고 밝혔다.

업체 측은 사고가 난 그 자리에 수리한 RC뱅크를 재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RC뱅크 설치 위치는 공항철도 측이 정하는 것으로, 업체엔 권한이 없다. B씨는 “다른 곳에 설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항철도 측은 “당초 제품에 결함이 있다고 통보받았기 때문에 그것만 해결된다면 위치를 바꿀 필요가 없다”며 “제작상의 문제라면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공단은 ‘선로변’이라는 위치가 제품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이다. 공단의 입장대로면 RC뱅크를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 재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항철도와 공단 모두 ‘제작상의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세부적인 사항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고속·전동열차
양립 현상 감지

반면 업체 측은 공항철도, 공단과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다. B씨는 “확실하게 드러난 원인은 없다”며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도 마땅한 게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업체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유를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닌데... 그날(사고가 발생한 날)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다른 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만 유독…”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공항철도와 공단이 사고 원인으로 제품을 문제 삼은 것과 달리 업체는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의견이 엇갈렸다.

B씨는 공단의 주장대로 위치상 제품이 진동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관련 업체 등 여러 군데서 조사했지만 뚜렷한 ‘정답’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B씨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우리(업체)가 잘못한 걸로 하자고 해서 다시 설치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또 3년이라는 보증기간 내에 사고가 발생했기에 수리를 해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업체 측은 전문가를 투입해서 원인을 분석할 것인지 얼른 수리를 해서 열차가 다니게 할 것인지 두 가지 선택 앞에서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 두고
서로 ‘딴소리’

업체는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해 제품을 수리한 후 재설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업체 측 주장대로면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서 제품을 재설치하는 것이다. B씨는 “앞으로도 계속 관련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리를 안 해줄 수 없다”며 그래도 이번에는 공단이 요구하는 대로 제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할 말이 생겼다는 입장이다.

B씨에 따르면 실제 문제가 생긴 제품의 경우 ‘충격 내전압 시험’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그 제품과 똑같은 제품을 10년 전에도 납품했기 때문에 서로 협의해 시험을 받지 않는 것으로 처리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 A씨는 “동일 제품이라 해도 설계과정에서 조건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며 “형식시험으로 인정된 제품도 공장 자체검사로 해당 공인기관검사를 대신할 수는 있어도 생략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RC뱅크 관련 자료를 확인한 전문가 C씨는 애초에 성능 없는 제품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철기연은 지난 2015년 1월 문제의 RC뱅크에 대한 성능 측정 결과 분석 자료를 내놨다.
 


자료에 따르면 “RC뱅크를 설치하면서 계양변전소와 수색연결선 사이의 급전구간의 선로임피던스가 안정적으로 변화해 고조파 왜형율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고장현황을 분석해 보면 산천이 KTX에 비해 10배 많이 고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RC뱅크 설치 후 고장 이력을 볼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철기연이 내놓은 향후대책을 보면 해당 RC뱅크의 성능에 더욱 의구심이 생긴다.

철기연은 공항철도와 경의선 간의 접지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RC뱅크의 효과가 없었다”며 “직결선에 설치된 RC뱅크는 당장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계양변전소 등 회로적으로 유리한 개소에 코레일서 보유하고 있는 RC뱅크를 활용해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AREX열차와 KTX열차가 상호양립 할 수 있는 ‘차량 측의 대책’을 요구했다.

명확한 사고원인 밝히지 못해
그래도 계획대로 재설치 강행

같은 해 3월에 나온 ‘RC뱅크 재측정결과 보고서’도 첫 번째 분석 결과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RC뱅크 On 조건서 전압종합왜형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는 결과는 이전 분석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철기연은 “수색연결선 구간서 RC뱅크 On/Off에 따라 고속열차별 보호동작건수와 총 보호동작건수의 변화가 크지 않다”며 “RC뱅크를 이동하거나 접지단 연결을 변경하는 게 필요하다”는 차선책을 제안했다.

전문가 C씨는 “철기연 보고서를 보면, 처음부터 어느 장소에 RC뱅크를 설치하는 게 최적인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며 “내가 아는 범위서 RC뱅크를 선로변에 설치한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B씨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업체는 공단이 요구한대로 제작하고 정해진 기준을 통과, 지정해주는 위치에 설치하는 일만 담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B씨는 관계자로부터 “(성능이) 잘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업체 측은 사고 장소에 RC뱅크 재설치를 앞두고 있고, 공항철도 3개 장소에 신규 설치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B씨는 “새로 들어가는 RC뱅크는 이전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업그레이드됐다. 공단서 승인받았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건설 중인 원주강릉선의 안전성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 A씨는 “원주강릉선의 경우 전동열차, 광역열차(ITX), 고속열차가 동일 상·하행 선로를 이용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공항철도의 사례처럼 전동열차의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실제 운행 중 열차에 이상이 발생하면 올림픽 관람객이나 공항 이용객에 불편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달 11일 대전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역으로 향하던 KTX열차가 고장 나면서 공항철도 전 구간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공항철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53분 청라역과 영종역 사이 45km 지점인 영종대교 구간서 KTX열차가 고장으로 멈췄다. 이 사고로 공항철도는 1시간30분 동안 전 구간 운행이 중단됐고, 오전 9시30분에야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공항철도 전동열차와 KTX열차는 인천국제공항역서 서울역까지 상·하행 각 1개 선로를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열차까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 운행이 중단된 상·하행선 열차는 일반열차 15대와 직통열차 4대로 파악됐다.

이날 사고로 인천공항에 비행기를 타러 가던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57명 중 16명은 예약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레일 측은 비행기를 놓친 고객들에게 보상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KTX 고장에 올 스톱
올림픽 문제없나

원주강릉선에는 RC뱅크 설치를 위한 예비비가 편성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강원본부 관계자는 “실제 열차가 운행할 때 전력이 어떤 상태로 나타나는가를 평가하는 전력품질분석 과정을 거쳐야 RC뱅크가 필요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지금은 뭐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공단 강원본부 측은 오는 7월 말로 예정된 시설물 검증 시험 이후 RC뱅크 설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조속히 조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원주강릉선으로 인해 올림픽에 지장이 생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RC뱅크 왜 고장났나요?
코레일 ‘묵묵부답’

RC뱅크 관련 사고는 공항철도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전북 익산과 전남 여수를 연결하는 전라선서 알려진 것만 네 건의 RC뱅크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11월 전북 관촌구분소서 RC뱅크가 섬락에 의한 아크발생으로 망가졌다. 지난해에는 전북 관촌구분소서 재차 RC뱅크가 고장 났고, 전남 죽곡·금강구분소서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 11월 소손된 죽곡구분소 RC뱅크 소손장애 현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장치는 고속열차(KTX) 운행 중 구간 내 주행 중인 광역열차(ITX)의 보호 장치 동작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입돼 운영 중이었다. 공항철도 사례와 그 쓰임이 같다. 

전라선 벌써 네 건 발생 

전라선의 경우도 사고 원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코레일 전남본부 전기처 관계자는 “사고가 있었던 건 맞지만 수리했고, 당시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면서도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본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요청하라”고 답했다. 코레일 본사 언론홍보처 관계자는 “전남·전북본부에 해당 사안과 관련해 답변을 요청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수차례 연락에도 끝내 답변이 오지 않았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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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