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철도시설공단’ 불량부품 의혹

고장 원인 모르지만 일단 설치하고 보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5월 공항철도 수색연결선 하선 선로변에 설치된 고조파 저감장치(RC뱅크)의 소손 사고가 일어났다. 전라선에선 관촌구분소, 죽곡구분소, 금강구분소에 설치된 RC뱅크가 말썽을 부렸다. 서로 다른 지역서 같은 장치가 고장 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공항철도와 전라선의 RC뱅크를 관리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 측은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항철도의 RC뱅크는 재설치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5월6일 한 언론매체는 ‘고양 신공항철도 변압기서 불…10여분 만에 진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6일 오전 7시쯤 경기 고양시 현천동 신공항철도 변압기서 화재가 발생했고, 공항철도 측이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내용과 달리 당시 실제 불이 났던 건 변압기가 아니라 고조파 저감장치(이하 RC뱅크)였다.

변압기로 보도
실제는 RC뱅크

RC뱅크는 교류전력 이용에 불필요하거나 방해가 되는 파형(고조파)을 제거하거나 저감하는 장치다. 국내서 사용 중인 교류 주파수는 60㎐지만 국가와 지역별로 50㎐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이를 기본파 혹은 기본 주파수라고 부른다.

고조파는 기본주파수에 2배, 3배, 4배와 같이 정수의 배에 해당하는 물리적 전기량을 말한다. 이러한 고조파 전류가 합성되면 전체 파형이 기존파에 비해 찌그러진 파형으로 변하며, 전기기기가 연결된 전력계통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전기철도차량서 발생하는 고조파 전류는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08년 대한전기학회 전기기기 및 에너지변환시스템부문회 춘계학술대회 논문집에 실린 <한국형 고속열차의 주행상태와 고조파 상관관계 분석>에 따르면 고조파 전류의 발생은 인접통신선에 유도 장해를 일으키고 철도신호장애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전원계통에 유입되는 경우에는 보호계전의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공항철도에 처음 고조파 관련 문제가 생긴 건 2014년 1월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이 작성한 ‘RC뱅크 설치공사 사업추진방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2014년 1월23일 공항철도 고속열차(KTX) 직결선 연결공사 시설물 검증시험 기간 중 공항철도 전동열차(AREX)에서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했다.

철도 전문가 A씨는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했다는 것은 전기철도 열차가 진행 도중 갑자기 전원이 차단됐다는 뜻”이라며 “실제 열차가 운행하는 도중에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기관사가 상당히 놀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항철도·전라선서 RC뱅크 문제 지적
공단·코레일 “뭔지 몰라도 문제없다”

문제가 발생한 1월23일에는 KTX열차와 AREX열차가 각각의 운행계획에 따라 동일 상·하행 선로를 운행했다.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한 이유는 주행 중이던 KTX열차서 발생한 고조파가 AREX열차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하 철기연)은 중간보고에서 ‘KTX-1과 KTX-산천 열차에서 발생하는 고조파에 대한 저감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6월4일 공항철도 용유기지 내에 시험용 RC뱅크가 설치됐다. RC뱅크의 설치로 5월29일부터 6월3일까지 매일 발생하던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은 이후 5일에 2번꼴로 줄어들었다.


당시 자료에는 “RC뱅크 적용 시 효과는 있겠지만 전기요금과 유지보수 비용 발생에 따른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그로부터 5개월여 뒤인 11월23일 공항철도 수색연결선 하선 선로변에 RC뱅크가 신규로 설치됐다. 지난해 사고가 발생한 장치다.
 

해당 RC뱅크는 지난해 사고 이후 1년 가까이 재설치하지 못했다. 지난 2월로 예정됐던 설치 일정이 3월 말, 4월 초로 연이어 연기됐다. 20년 넘게 RC뱅크를 제작해왔다는 제작·설치 업체 관계자 B씨는 “해당 제품에 대한 시험과 검사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설치를 코앞에 둔 상황서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공항철도, 공단, 업체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공항철도 관계자는 “공단서 밝힌 사고 원인은 제작상의 결함이라고 했다. (RC뱅크의 경우) 운영은 공항철도서 하는 게 맞지만 제작·설치는 공단 수도권본부 기술처에서 한다”며 “더 자세한 내용은 공단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단 수도권본부 기술처 전철전력PM 관계자는 “제가 사고 이후에 (이 자리에) 와서 잘 모르겠지만, RC뱅크가 선로변에 설치돼 있었기 때문에 진동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제품이 진동을 견딜 정도로 견고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고 밝혔다.

업체 측은 사고가 난 그 자리에 수리한 RC뱅크를 재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RC뱅크 설치 위치는 공항철도 측이 정하는 것으로, 업체엔 권한이 없다. B씨는 “다른 곳에 설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항철도 측은 “당초 제품에 결함이 있다고 통보받았기 때문에 그것만 해결된다면 위치를 바꿀 필요가 없다”며 “제작상의 문제라면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공단은 ‘선로변’이라는 위치가 제품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이다. 공단의 입장대로면 RC뱅크를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 재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항철도와 공단 모두 ‘제작상의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세부적인 사항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고속·전동열차
양립 현상 감지

반면 업체 측은 공항철도, 공단과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다. B씨는 “확실하게 드러난 원인은 없다”며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도 마땅한 게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업체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유를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닌데... 그날(사고가 발생한 날)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다른 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만 유독…”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공항철도와 공단이 사고 원인으로 제품을 문제 삼은 것과 달리 업체는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의견이 엇갈렸다.

B씨는 공단의 주장대로 위치상 제품이 진동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관련 업체 등 여러 군데서 조사했지만 뚜렷한 ‘정답’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B씨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우리(업체)가 잘못한 걸로 하자고 해서 다시 설치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또 3년이라는 보증기간 내에 사고가 발생했기에 수리를 해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업체 측은 전문가를 투입해서 원인을 분석할 것인지 얼른 수리를 해서 열차가 다니게 할 것인지 두 가지 선택 앞에서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 두고
서로 ‘딴소리’

업체는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해 제품을 수리한 후 재설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업체 측 주장대로면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서 제품을 재설치하는 것이다. B씨는 “앞으로도 계속 관련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리를 안 해줄 수 없다”며 그래도 이번에는 공단이 요구하는 대로 제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할 말이 생겼다는 입장이다.

B씨에 따르면 실제 문제가 생긴 제품의 경우 ‘충격 내전압 시험’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그 제품과 똑같은 제품을 10년 전에도 납품했기 때문에 서로 협의해 시험을 받지 않는 것으로 처리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 A씨는 “동일 제품이라 해도 설계과정에서 조건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며 “형식시험으로 인정된 제품도 공장 자체검사로 해당 공인기관검사를 대신할 수는 있어도 생략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RC뱅크 관련 자료를 확인한 전문가 C씨는 애초에 성능 없는 제품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철기연은 지난 2015년 1월 문제의 RC뱅크에 대한 성능 측정 결과 분석 자료를 내놨다.
 


자료에 따르면 “RC뱅크를 설치하면서 계양변전소와 수색연결선 사이의 급전구간의 선로임피던스가 안정적으로 변화해 고조파 왜형율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고장현황을 분석해 보면 산천이 KTX에 비해 10배 많이 고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RC뱅크 설치 후 고장 이력을 볼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철기연이 내놓은 향후대책을 보면 해당 RC뱅크의 성능에 더욱 의구심이 생긴다.

철기연은 공항철도와 경의선 간의 접지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RC뱅크의 효과가 없었다”며 “직결선에 설치된 RC뱅크는 당장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계양변전소 등 회로적으로 유리한 개소에 코레일서 보유하고 있는 RC뱅크를 활용해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AREX열차와 KTX열차가 상호양립 할 수 있는 ‘차량 측의 대책’을 요구했다.

명확한 사고원인 밝히지 못해
그래도 계획대로 재설치 강행

같은 해 3월에 나온 ‘RC뱅크 재측정결과 보고서’도 첫 번째 분석 결과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RC뱅크 On 조건서 전압종합왜형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는 결과는 이전 분석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철기연은 “수색연결선 구간서 RC뱅크 On/Off에 따라 고속열차별 보호동작건수와 총 보호동작건수의 변화가 크지 않다”며 “RC뱅크를 이동하거나 접지단 연결을 변경하는 게 필요하다”는 차선책을 제안했다.

전문가 C씨는 “철기연 보고서를 보면, 처음부터 어느 장소에 RC뱅크를 설치하는 게 최적인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며 “내가 아는 범위서 RC뱅크를 선로변에 설치한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B씨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업체는 공단이 요구한대로 제작하고 정해진 기준을 통과, 지정해주는 위치에 설치하는 일만 담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B씨는 관계자로부터 “(성능이) 잘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업체 측은 사고 장소에 RC뱅크 재설치를 앞두고 있고, 공항철도 3개 장소에 신규 설치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B씨는 “새로 들어가는 RC뱅크는 이전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업그레이드됐다. 공단서 승인받았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건설 중인 원주강릉선의 안전성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 A씨는 “원주강릉선의 경우 전동열차, 광역열차(ITX), 고속열차가 동일 상·하행 선로를 이용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공항철도의 사례처럼 전동열차의 추진제어장치 보호 동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실제 운행 중 열차에 이상이 발생하면 올림픽 관람객이나 공항 이용객에 불편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달 11일 대전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역으로 향하던 KTX열차가 고장 나면서 공항철도 전 구간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공항철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53분 청라역과 영종역 사이 45km 지점인 영종대교 구간서 KTX열차가 고장으로 멈췄다. 이 사고로 공항철도는 1시간30분 동안 전 구간 운행이 중단됐고, 오전 9시30분에야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공항철도 전동열차와 KTX열차는 인천국제공항역서 서울역까지 상·하행 각 1개 선로를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열차까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 운행이 중단된 상·하행선 열차는 일반열차 15대와 직통열차 4대로 파악됐다.

이날 사고로 인천공항에 비행기를 타러 가던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57명 중 16명은 예약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레일 측은 비행기를 놓친 고객들에게 보상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KTX 고장에 올 스톱
올림픽 문제없나

원주강릉선에는 RC뱅크 설치를 위한 예비비가 편성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강원본부 관계자는 “실제 열차가 운행할 때 전력이 어떤 상태로 나타나는가를 평가하는 전력품질분석 과정을 거쳐야 RC뱅크가 필요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지금은 뭐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공단 강원본부 측은 오는 7월 말로 예정된 시설물 검증 시험 이후 RC뱅크 설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조속히 조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원주강릉선으로 인해 올림픽에 지장이 생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RC뱅크 왜 고장났나요?
코레일 ‘묵묵부답’

RC뱅크 관련 사고는 공항철도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전북 익산과 전남 여수를 연결하는 전라선서 알려진 것만 네 건의 RC뱅크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11월 전북 관촌구분소서 RC뱅크가 섬락에 의한 아크발생으로 망가졌다. 지난해에는 전북 관촌구분소서 재차 RC뱅크가 고장 났고, 전남 죽곡·금강구분소서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 11월 소손된 죽곡구분소 RC뱅크 소손장애 현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장치는 고속열차(KTX) 운행 중 구간 내 주행 중인 광역열차(ITX)의 보호 장치 동작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입돼 운영 중이었다. 공항철도 사례와 그 쓰임이 같다. 

전라선 벌써 네 건 발생 

전라선의 경우도 사고 원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코레일 전남본부 전기처 관계자는 “사고가 있었던 건 맞지만 수리했고, 당시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면서도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본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요청하라”고 답했다. 코레일 본사 언론홍보처 관계자는 “전남·전북본부에 해당 사안과 관련해 답변을 요청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수차례 연락에도 끝내 답변이 오지 않았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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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폴 적색수배’<br> 황하나 근황 포착

[단독] ‘인터폴 적색수배’
황하나 근황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마약 투약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은 황하나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1월3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황씨를 형사 입건했다. 앞서 황씨는 2023년 9월, 영화배우 고 이선균을 협박한 유흥업소 실장 김모씨 등과 함께 내사를 받아왔다. 지난해 2월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간이시약 검사 등을 통해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했다. 수사를 받던 황씨는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마약과 성매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드러나자 태국에 있는 황씨를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 적색수배와 현지 영사 조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폴 적색수배 중인 황씨는 지난 1년 사이 캄보디아로 이동했다. 유튜브 채널 ‘크라임넷’을 운영하는 제보자 A씨에 따르면 현재 프놈펜 소재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한국인 남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태국으로 도주한 황씨는 자동차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현지인 N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N씨는 태국 상류층을 뜻하는 ‘하이소(High-Society)’로 분류되는 유명인사다. 황씨의 지인이자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했던 여성 Y씨는 “(자신과 함께) N씨가 클럽, 유흥업소 등에서 황씨와 파티를 즐겼다”고 알려왔다. 태국에서 상위 10% 미만에 속하는 재벌인 하이소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파티를 즐길 뿐더러, 전관예우 등에 따라 현지 경찰의 수사가 어려운 대상이다. 황씨가 N씨의 비호를 받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Y씨를 비롯한 다수의 제보자는 황씨가 태국, 캄보디아 등을 오가며 성매매,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한국에 있던 Y씨 등을 불러 현지 남성과의 성매매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 밖에 황씨는 과거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에이미(이윤지) 등 유명인들과 어울리며 여유로운 삶을 이어갔다. 현지 정보망에 따르면 황씨는 하이소들과 함께 했기에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하이소의 권력이 얼만큼인지 나타내는 실제 사례도 있다. 스포츠음료 ‘레드불’ 공동 창업주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야의 뺑소니 사망사건이다. 오라윳은 2012년 9월 방콕 시내에서 술과 마약에 취해 페라리를 과속으로 몰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한 후 도망쳤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 후 스트레스로 술을 마셨다는 오라윳 측 주장을 인정하고 음주 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오라윳은 불기소됐고, 이후 마약 복용에 따른 처벌도 면했다. 경찰 추적 중에도 호화 생활 동남아 오가며 ‘환락 파티’ 2022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마약법 개정으로 만료됐다고 현지 검찰총장실 대변인이 밝혔다. 1979년 제정된 마약법을 보면 코카인 불법 복용자는 6개월~3년 징역에 처하고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오라윳의 공소시효는 그해 9월3일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1년 12월 발효된 새로운 마약법에 따르면, 코카인 복용은 징역 1년에 공소시효는 5년이다. 이에 따라 오라윳의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는 자동 기각됐다는 것이다. 오라윳은 이를 틈타 해외로 도주했다. 불기소 결정 뒤 반정부 집회가 열릴 만큼 반발은 심했다. 결국 총리 지시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검찰과 경찰의 조직적 비호가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검·경은 뒤늦게 부주의한 운전에 의한 과실치사에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도 추가했다. 하지만 오라윳의 행방은 묘연하다. 검찰은 경찰이 오라윳을 체포해 데려오기 전까지는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현재 오라윳에게 남은 혐의는 과실치사뿐이며 공소시효는 2027년 9월3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동남아로 도주하기 전 마약을 투약한 것과 더불어 지인에게 마약을 권하기도 했다. 황씨의 지인 J씨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황하나가 나에게 좋은 거 있는데 해볼래?”라며 팔에 주사로 된 약물을 주입했다. 그는 “좋은 거라길래 설마 했는데,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를 하게 됐다”며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에 주사기들이 놓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J씨는 “마약을 투약한 것 같다”고 경찰에 자수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이어 황씨는 지난해 3월19일 취재진과 통화에서 “술은 왜 마셔요? 마약이 더 좋은데”라며 “왜 기자들은 내 기사만 쓰는지 모르겠다. 다른 약쟁이들도 많은데, 좀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씨의 아버지 황재필씨는 “딸이 적색수배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카카오 메시지를 읽었지만, 묵묵부답이다. 태국 재벌 ‘하이소’ 조력 “나 잡아봐라” 수사망 피해 한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로 전환된 황하나에 대해 출국금지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적색수배가 내려진 황씨가 이번에 귀국하게 되면, 앞으로 1년 이상 태국에 재입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이자, 동방신기 출신 박유천의 전 약혼녀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수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황씨는 2019년 11월 항소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면서 석방됐다. 앞서 여러 차례 마약 투약으로 처벌받은 이력도 있다. 2015년 5~9월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세 차례 투약했다. 2018년 4월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 없이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21년 7월9일 재차 마약을 투약해 1심 판결로 추징금 40만원에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에 마약 투약죄로 선고받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종범죄 재범에 이종범죄까지 저지른 대가로 가중처벌을 받은 것이다. 당시 마약 혐의와 함께 2020년 11월, 시가 500만원 상당의 명품 신발 등을 훔친 혐의도 받았다. 기소된 이후 세 차례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28일 2심 판결서 검찰은 황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황씨는 최후 진술에서 “휴대전화도 없애고 시골로 내려가 열심히 살고 제가 할 수 있는 성취감 느끼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보겠다”면서 “지난 3~4년간 수면제나 마약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제가 너무 하찮게 다뤘고 죽음도 쉽게 생각하며 저를 막 대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변론했다. 그해 11월15일 2심 판결서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추징금은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태국서 이동 이후 2023년 이선균 마약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황씨를 포함해 총 8명이 마약을 투약한 단서를 포착하고, 일부는 형사 입건해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황씨는 내사자 신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내사 대상에 오른 인물 1명과 성명불상자 1명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실도 파악했다. 다수의 제보자들은 “황하나는 이선균이 협박당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선균을 협박해 금품을 뜯은 전직 영화배우 박모씨와 유흥업소 여종업원 김씨의 협박 행각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